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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일보] 사설/ 남북을 잇는 ‘겨레말큰사전’의 위기
글쓴이 겨레말 작성일 2010.11.01

2010년 10월 8일 [세계일보]에 보도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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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남북을 잇는 ‘겨레말큰사전’의 위기

예산 승인안나 사업 중단될 위기
‘보이지 않는 손’ 개입… 제동 나선 듯

손바닥만 한 한반도, 그중에서도 허리가 잘려 나머지 반절인 남쪽에서조차 사투리 때문에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낯선 단어들도 있고, 쓰는 말은 같지만 심한 억양 차이 때문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수도 있다. 사투리는 고사하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같은 말이라도 토씨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언어생활이라는 게 참 미묘하고 어렵다. 하물며 분단 60년 세월 동안 체제와 문화까지 달라진 북쪽과의 소통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용호 문화부 선임기자
하루만 지나면 다시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목적은 아마도 상하 계층이 더불어 읽고 소통하기를 원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난해한 한자보다 모두가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소통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통일시키는 데 유리한 수단이 바로 한글이었을 테다.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한글을 칭송하자는 것은 아니다. 같은 한글을 사용하면서도 심하게 달라진 남과 북의 언어, 그 소통과 통일을 위한 대비책 중 하나로 남과 북이 함께 진행하다가 중단 위기에 처한 겨레말큰사전이 당장 문제다.

2005년부터 20여회에 걸쳐 남북합동편찬회의를 가지면서 2014년 출간을 목표로 진행해온 사업이 예산이 승인되지 않아 차질을 빚고 있을 뿐 아니라 중단될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인 고은 시인이 며칠 전 긴급하게 이 상황을 호소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통일부 남북교류추진협의회(교추협)에서 기관운영비인 경상비만 승인하고 남쪽의 집필사업비와 북측 편찬사업 보조비 등 사업비는 모두 묶어버렸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독일은 통일되기 오래전부터 동서독 간에 ‘괴테사전’이라는 통합사전을 만들었고, 중국과 대만은 ‘양안사전’을 만들어 말길을 열어가면서 통일의 순간을 기다렸다”면서 “일제가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시절,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가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해방되자마자 우리 민족은 맞춤법조차 변변하게 갖지 못한 야만적인 민족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인은 이어 “당장에는 실효성이 없어 보이지만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 사업은 콩나물을 키우는 일과 비슷한 것이니 이념적이며 정치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남북관계가 경직돼 잠시 숨을 고르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통일부 관계자들이 사업 자체는 유지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사업비를 승인하지 않는 단계에서 내년에는 이로 인한 사업 중단을 빌미로 경상비까지 묶고 사업 폐기로까지 나아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핵실험이나 서해교전, 혹은 미사일 발사 때까지도 사전 편찬 사업에 제동을 거는 일은 없었다는 게 이런 의구심을 가진 이들의 근거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기실 사업비 불승인은 천안함 사태 이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매년 북측에 편찬보조비로 5억원씩을 지급해오던 것마저 현금 대신 현물 지급을 고집해 북측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종이나 쌀, 자동차 등 그때그때 북측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오다 이마저 끊기게 된 상황이다. 북측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쪽에서 준비해온 편찬작업마저 용역을 맡은 이들이 생계 때문에 여러 해 동안 해오던 일을 팽개치고 떠나고 있다니 참 갑갑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작금의 상황을 통일부 교추위의 주도적인 결정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다. 통일세를 거두자면서 언어 통일을 위한 기본사업에 제동을 거는 행위는 명백한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면, 문화적이고 학술적인 사업을 숨어서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차라리 떳떳하게 국민 앞에 나서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게 백번 타당할 것이다.

조용호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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