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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제신문] 新 문학기행 <66> 시인 고은과 해인사
글쓴이 겨레말 작성일 2007.07.23

 

新 문학기행 <66> 시인 고은과 해인사


"고향은 공간아닌 시간… 해인사는 내 문학의 고향"
열심히 살았고 내면을 이룬 '시간'을 고향으로 삼으면 장소의 고향은 저절로 따라온다
시 언어 속에는 작가의 삶이 오롯이… 그로 인해 시와 시인은 완전한 하나가 된다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비석 앞에서 독자들과 문학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은 시인. 서순룡 기자 seosy@kookje.co.kr


지난 15일 경남 합천 해인사. 법당 보현전에 고은 시인이 들어섰다. 옅은 옥색 상의에 흰 와이셔츠를 받쳐입은, 일흔 네살의 노시인.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유럽의 세계문학전집과 세계시인전집 목록에 이름이 올라 있고,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이 적어도 17개 나라에서 읽히는 시인이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 투쟁을 위해 울부짖다 4번 감옥에 갔으며, '저서가 100권을 넘어섰다'고 소개된 것은 이미 1990년대 일이다. 지금 그의 이름은 민족통일을 위해 애쓰는 문화예술인 명단의 가장 앞자리에 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일요일 해인사 보현전

이날 보현전 자리는 신문학기행에 참가한 일행 40여 명을 위한 고은 시인의 문학특강으로 마련된 것이었지만, 우리가 이 한국의 대표 시인을 독점할 수는 없었다. 법당은 어느새 해인사 스님과 신도들로 꽉 찼다. 신문학기행 일행이 가세하자 청중은 얼추 200명. 청년 시절부터 고은 시인을 만났고 그를 깊이 존경한다는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산사의 모든 정기를 담아 대시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해인사일까.

"사람들은 고향 하면 장소만 생각합니다. 고향은 시간입니다. 아니, 시간과 공간이 하나입니다. 시간을 버리고 공간만 갖고 얘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 태어난 고향에 갔더니 낯선 개만 짖더라, 이렇게 되어선 공간조차 의미가 없는 것이죠. 공간은 허무한 것입니다. 선생님, 어디서 태어나셨냐고? 내게 이런 질문은 헛소리입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좋죠? 거기에 있는 것은 시간입니다. 국제신문의 문학기행 제의를 받고 수십 회에 걸쳐 문인과 독자가 만나는 장을 마련해 왔다니 참 찬란한 기획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시간의 고향을 떠올렸습니다. 그곳이 해인사입니다. 해인사는 내 문학의 고향입니다."

'고향은 시간이다'라고 해놓고 보면, '고향은 장소다'라고만 규정했을 때 불거지는 갈등은 단박에 해결된다. 내가 절실하게 열심히 살았고, 드디어 나의 내면이 수긍할 만한 무언가를 이룬 '시간'을 내 고향으로 삼고 나면, 그 시간을 보낸 공간은 자연스럽게 내 고향으로 딸려들어오는 거다. 거기에 지역감정 지역갈등 따위가 들어설 곳이 어디 있는가. 고향이 시간이면, 우리는 나아가고 머무름에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 된다.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 되는 날이 내 무덤"이라고 고은 시인이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 말에서도 시인은 시공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법당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가 나는 듯했다. '고향은 시간'이라는 시인의 말에 청중이 마음으로 깨침을 얻는 소리였다.


●희랑대

가야산 기슭 해인사 주위에 있는 열 대여섯 곳의 암자 가운데 희랑대가 있다. 계단이 꽤 가파른 곳인데, 70대 중반의 시인은 일행을 이끌고 성큼성큼 너끈히 올라섰다. 암자의 아담한 마당에서 시인은 자신의 문학과 해인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들려줬다. 모두가 궁금하던 차였다.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난 고은 시인이 가난한 소년 시절을 보내다 나이 열아홉이던 1952년 동국사에 출가해 승려가 된 것은 그럭저럭 알려진 이야기다. 군산 동국사는 한국에서 유일한 일본 양식의 사찰로도 유명하다. "사정이 생겨 통영 미래사로 옮기게 됐지요. 군산서 통영까지 고픈 배를 움켜잡고 걸어갔지요. 거기서 새로 만난 은사가 효봉 스님입니다." 고승인 효봉 스님의 상좌로 시작한 승려 생활은 1962년까지 꼬박 만 10년을 채웠다. 그는 서울의 종단에서 일했다. 문학에 소질이 많았던 청년 승려 고은은 "중에게 그것이 왜 필요하냐"는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잡지와 불교신문 내는 일에 팔을 걷었다.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문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시와 산문을 썼는데 그 중 한편을 동료가 나도 모르게 잡지사에 투고했는데 그게 실린 거라." 1958년 '현대문학'이었다. 그 뒤 그의 재능을 아낀 지인의 배려로 "그때까지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중학교 시절, 통학길은 4㎞나 됐다. 어느 날 하교길에 길에서 빛이 한줄기 번쩍 올라왔다. 누군가 잃어버린 '한하운시초'였다. 그걸 읽고 엉엉 울면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문둥병(한센병)에 걸리리라" 결심했다. 이육사의 '광야'를 처음 읽고 언어에 의해 공간과 시간이 무한히 확장하는 황홀한 경험을 한 뒤끝이었다. 청소년 시절이 그렇게 갔다. 뒤에 '내가 폐병에 걸렸는데 나를 간호하던 누님이 전염돼 그만 죽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허구의 시를 썼다. 이 허구의 시는 나중에 실화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전쟁통에 죽어야 할 목숨이었죠. 그러나 쓰레기같이 살아 남았어요. 세상을 떠난 부재자들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1959년부터 1961년까지 해인사에 있었는데 사라호 태풍 때 물난리가 난 거라. 그때 절을 뺏기고 숨죽여 지내던 대처승들이 이때다 하고 절로 쳐들어왔는데 깡패들 손에 돌계단에 머리를 쿵쿵 부딪쳐 피를 철철 흘려가면서 절을 결국 지키게 됐어요. 그 뒤 해인사 주지 대행까지 지냈지요. 내 첫 시집은 자비로 냈는데 출간 전에 그만 출판사에 불이 나 세상에서 사라졌지요. 두번째로 시집 '피안감성'을 1960년 냈는데, 그 시집을 낸 곳이 해인사입니다. 그때 많은 스님들을 만났고 해인사 주변의 암자를 많이 돌아다녔지요."

시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빨치산 이현상 부대가 가야산으로 진출했지. 그때 주지로 있던 효당 최범술 스님과 이현상이 만나 이야기를 했지. '가야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소실될 위험이 크다.' 그 점에 동의한 이현상 부대는 활동 근거지를 지리산으로 옮겼고 이현상은 지리산에서 죽었지."

고은 시인은 문학의 고향 해인사를 손금 보듯 자세히 회상했다. "해인사에서 내는 잡지 '해인'은 정말 훌륭한 종교잡지"라며 여일한 해인사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은 시인과 함께 다닌 현응 주지 스님이 희랑대 마당 한 켠에서 조용히 웃음짓고 있었다.


●홍제암

오후 늦게 일행은 해인사 입구의 홍제암으로 내려왔다. 만났으니 헤어지는 순서만 남았다. 홍제암 앞에서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노시인을 보면서 이날 하루 그가 들려준 조용한 사자후를 떠올렸다.

"한국 문학이 반드시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요. 내 경우를 말하면, 16~17개 나라에 시집이 번역됐고 몇 년 전 어떤 나라 교통청과 계약했는데 세계의 시인 10명의 작품을 그 도시의 버스정류장 등지에서 홍보하는 것이었소. 지금 세계가 동아시아 하면 중국 일본만 떠올리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이요.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으로 한국은 그동안 우리 문학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한국 문학은 강해지고 있어요. 앞으로 100년을 내다본다면 전망은 오히려 밝아요. 그래서 우리의 21세기가 의미 있는 것이지."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는 느낌은 어떤지, 우리의 문학 번역이 너무 뒤처진 건 아닌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시의 이면에는 시인의 삶이 있지요. 시어만 훌륭한 게 아니죠. 이육사의 '광야'가 보여주는 천고 초인 광야 백마 같은 황홀한 시어 뒤에는 독립운동 하다 16번 감옥을 드나든 그의 절실한 삶이 있는 거요. 언어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절실한, 핍진한 삶이 있어요. 시와 시인이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것,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어요." 시인은 꾹꾹 찍어누르듯 이렇게 말했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803-8000 www.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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