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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북의 문학 작품에 나온 어휘 비교
글쓴이 김성수 작성일 2012.10.15
남북의 문학 작품에 나온 어휘 비교
- 최신 소설을 중심으로
 
김성수(성균관대 학부대 교수)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 우리 근현대문학사는 현실을 현실 그 자체의 논리와 언어로 표현하는 리얼리즘 문학이 강세였다. 중산층의 서울말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염상섭의 <삼대>나 강원도 춘천 사투리가 정겨운 김유정의 <봄봄> 같은 성과가 어우러져 홍명희의 기념비적 대작 <임꺽정>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개화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북에서는 1967년 주체사상의 정립 이후 수령론에 입각한 정치용어가 남발하는 선전문학이 주류가 되었고, 남에서는 90년대 이후 외래어, 외국어가 남발한 ‘신세대문학’의 광풍과 포스트 담론이 유행이 되고 말았다. 그 어느 쪽이든 문학이 그 사회와 체제의 바로미터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이에 분단 이전의 사실적 생활 어휘가 이야기 줄거리 속에서 자연스레 되살아나는 통일된 민족 문학의 개화가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며 남북한의 최근 소설을 잠시 비교해 보자.
그녀는 마치 내 꿈을, 몽정을 누군가 훔쳐다가 빚어낸 피조물 같았다.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붉은 원피스에 붉은 하이힐. 그리고 망사스타킹을 신은 그녀는 짧은 숏컷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작은 머리가 더욱 작아 보였고 8등신의 몸매는 더욱 두드러졌을 뿐 아니라 중성적이면서도 묘한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 임성순,  ?컨설턴트?(2010) 중에서 
아흐레갈이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상징하는 듯싶은 세 사람은 깊은 감회에 젖어 벌을 둘러본다. 오늘따라 밭은 무연히 넓기도 하다. 되살아난 땅, 넓어진 땅... 용팔이가 다가왔다.
“할아버지, 이젠 밭이 이렇게 더 넓어지구 또 지금은 뜨락똘로 씽씽 갈아엎는 세월인데 아흐레갈이의 이름을 좀 새 맛이 나게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박달신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이름은 그대로 둬야 한다. 우리 수령님 대에 세포위원장이랑 그때 사람들이 지어놓은 이름이 아니냐.” - 강철, ?아흐레갈이?(2012) 중에서
임성순의 2010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컨설턴트?의 한 대목은 감각적이고 간결하지만 영어말로 범벅이 되어있다. 강철의 <조선문학> 축전상 수상작은 ‘아시김매기, 아흐레갈이, 강냉이포기, 갈매빛’ 등의 고유어가 생생히 살아있는 농촌소설이지만 그 또한 ‘뜨락또르’ 같은 러시아어투 외래어와 ‘수령님, 세포위원장’ 같은 정치 선전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평양말 중심의 ‘조선어’는 서울말 중심의 ‘한국어’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거꾸로 북한 사람은 남한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숱한 한자어나 외래어, 특히 영어 중심의 외국어를 거의 접해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북한이탈주민)들에게 일상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영어말 어휘가 너무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적응하기 힘들다고 할 정도이다.
북한에서 언어와 문학은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조직 동원의 무기이며,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민족적 자부심과 계급의식을 높이는 사상 교양의 도구로 인식된다. 이는 언어가 혁명과 건설의 무기라는 유물론적 언어관의 연장선에 문학이 놓여있음을 알게 한다. 남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한 신세대문학’ 이후 본격문학이 힘을 잃고 ‘사이버문학과 판타지소설’이 판을 친다. 북에서는 수령에의 충성을 미학 차원으로 더욱 강화한 ‘주체사실주의’에 근거한 ‘수령문학, 선군문학’이 고착되어 통일된 겨레말에서 멀어졌다.
다시 다른 작가의 소설 어휘를 비교해보자.
“가끔 타이밍을 놓쳤을 땐, 토사물 비닐봉지, 편의점에 시급 이천오백 원짜리 아르바이트, 대학가 근처에 있는 주택단지 안의 반지하, 빠른 하이톤의 목소리, 안창이 볼록볼록한 지압용 슬리퍼, 코르셋, 다라이 바닥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한 장는 최근 남의 인기 작가 김애란의노크하지 않는 집? (2010) 몇 쪽에 걸친 어휘를 찾은 것이다. “다락밭 왕가물, 초들초들 말라가는 강냉이 포기, 덜퍽진 엉치, 분조장, 유별나게 긴 황새목, 이랑을 어기치면서 겉층을 대수 파고, 미타한 표정, 곡식이란 건 땅김만 쐬면 좀해서 죽지 않아요.… ” 이는 북의 소설가 정철학의 ?일없어요?란 ‘벽소설’ ( ?문학신문? 2012.8.11. 4쪽)에서 찾은 어휘들이다. 소설 제목 ‘일없어요’는 상관하지 말란 남쪽 의미와는 달리 ‘괜찮다’는 긍정적 의미이며, ‘벽소설’은 1920-30년대에 유행하다 남에선 사라진 선전물 성격의 ‘대자보 소설’이다. 이를 대비해 보면 남한은 현대화, 세계화, 자본주의적 일상화가 두드러지는 어휘가 사용되며 북한은 전통성, 주체성, 인민성, 사회주의 조직생활의 그림자가 어른거림을 알 수 있다.
2012년 가을, 지금은 남북 관계의 불통 국면이다. 남북관계의 악화 일로 속에서 북한은 사회주의적 보편성을 저버린 채 중세적 3대 세습을 연상케 하는 김정은 체제가 안착함으로써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사상으로 한 ‘주체-선군(先軍)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차이와 거리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언어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즉, 그들을 적대시하여 다른 나라로 치지도외하거나 주적으로 삼더라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역과 번역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통일 이후 한반도 주민의 과제는 자기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언어·문학의 실현이 과제가 될 터이다. 특히 평양말 중심의 문화어와 수령·선군 중심의 주체문학의 자장에서 자유로워야 진정한 교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 북한 소설의 한 대목처럼 다투면서 시나브로 정이 들었으면 한다.  
“옥주 동문 앵돌아지니까 앵두 같애, 익지 않은 퍼런 앵두.…“
“흥!”
“아, 흥미 있다는 ‘흥’자로군.” - 김경일, ?다시 찾은 열쇠?(2011)
 
 * 이 글은 2012년 소식지 '겨레말' (2012.9.27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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