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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재 일 (남측 편찬위원장, 서울대학교 교수)
남북 학자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정성껏 만드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사업에 참여한 지 이제 2년 반이 되었다. 내가 사전에 적용할 어문규범을 단일화하는 일을 맡은 것이 그 처음이었으며, 올해 봄에 편찬위원회가 제2기를 맞으면서는 위원장 일까지 맡게 되었다. 책임의 무거움을 시시때때 느낀다.
내가 《겨레말큰사전》 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로부터 듣는 말이다. “통일운동가와는 거리 먼 사람이 왜 거기에 가 있느냐?” 둘째는 동료 언어학자, 사전학자들로부터 듣는 말이다. “실용적 가치가 없는 남북 단일 사전을 이 시점에서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글에서 나는 이 두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려 한다. 왜냐하면 《겨레말큰사전》은 남과 북의 학자들이 분단 상태의 우리말을 다듬어 담는 뜻 깊은 사전이기에, 참여하는 학자로서 분명히 대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통일운동가와는 거리 먼 사람이 왜 거기에 가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하나이던 나라를 다시 하나 되게 해야 하고 하나이던 언어를 다시 하나 되게 해야 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생각이나 정치적인 이념이 설령 다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위한 일이 통일운동가의 일만은 아닐 것이며, 더욱이 달라진 어문규범을 하나로 다듬는 일과 이를 바탕으로 단일 사전을 편찬하는 일은 언어학자라면 마땅히 관심 가질 일이라고 믿는다. 이 일은,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밀쳐놓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민주 사회로서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다양한 생각을 서로가 존중할 때 비로소 올바른 민주 사회가 될 것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해서 그 일 자체의 가치를 낮추어 보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다.
둘째, 실용적 가치가 없는 남북 단일 사전을 이 시점에서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사전 이용자는 당연히 그 사회에 통용되는 언어를 반영한 사전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뜻에서 남한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도 아닌, 북한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도 아닌, 우리가 장차 지향해야 할 우리말을 다듬어 제시하는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에 대해 사전학자들은 회의적인 비판을 한다. 그러나 사전의 목적은 한결같지는 않을 것이다. 사전마다 지향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현실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의미에서 그 가치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은 지난 60년간 서로 달라진 남북의 언어를 단일화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사전에 실을 어휘(즉, 올림말), 그 올림말에 대한 뜻풀이, 그리고 어문규범은 남북 각각의 지금 시점의 언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겨레말사전 편찬의 의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간 길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제도와 생활 때문에 달라진 남북의 우리말을 하나의 같은 기준으로 기술하는 것에서 이 사전의 편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전에 실을 올림말을 공통적으로 선정하는 일은 언어를 단일화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우리는 북한에서 남한의 특정용어를 기피하고 남한에서 북한의 특정용어를 기피하는 현실을 알고 있다. 그러한 용어를 그냥 사전에 모두 실을 수는 없다. 서로가 이마를 맞대고 올릴 수 있는 말, 올릴 수 없는 말을 가려내어 올림말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지난 3년간 남북의 편찬실 학자들은 이 일에 정성을 쏟았다. 양쪽이 제시해 온 올림말을 함께 검토하여 반영, 보류, 삭제 등으로 분류하여 이제 올림말을 거의 확정한 단계에 이르렀다. 남북이 함께 쓸 우리말 단어를 가려 정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의의가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올림말 선정에서 무엇보다도 비중을 두는 것은, 현재 남한의 사전이나 북한의 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잊혀져가는 우리말을 찾아 담는 일이다. 《겨레말큰사전》은 지역어와 문헌어에서 10만 단어를 새로 발굴하여 올림말로 삼고자 한다. 이것 역시 《겨레말큰사전》의 큰 의의일 것이다.
올림말 선정뿐만 아니라 현재 남북에서 서로 달리하고 있는 사전의 뜻풀이를 하나의 같은 기준으로 새롭게 집필하는 일도 매우 값진 일이다. 현재 남북 양쪽의 사전을 살펴보면 일상생활에 흔히 쓰는 명사나 동사의 경우도 그 뜻풀이가 서로 다르다. 이것을 같은 말로 뜻풀이하며 보기글도 남북 모두가 받아들이는 문헌에서 가려 뽑아 실어 남북 어느 쪽 사람들이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풀이는 일상생활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사상, 역사 등의 전문용어에까지도 적용하여 양쪽이 함께 받아들일 뜻풀이를 집필할 것이다. 이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알지만 현재 시범 집필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조정해 가고 있으며 마침내는 이룰 것이라 남북 편찬실 학자들은 믿고 있다. 지금의 남북 언어 현실과는 차이 있지만, 남북 모두가 받아들이는 뜻풀이와 보기글의 집필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가장 큰 의의라 생각한다.
어문규범을 단일화해서 사전의 올림말과 뜻풀이에 반영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어문규범 단일화 논의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미 사전의 자모 배열 순서, 띄어쓰기, 문법 형태 표기, 외래어 표기 등 여러 부문에서 단일 규범을 합의하였다. 물론 사이시옷 표기, 두음법칙 표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간 서로 달리 써 온 어문규범을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합리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그 의의가 클 것이다. 그 결과물이 비록 남한의 현행 규범과 다른 것일 수도 있고, 북한의 현행 규범과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전의 자모 배열 순서가 현행 남한의 규정으로는 ㅅ 다음에 ㅇ이 오고 ㅈ이 온다. 그리고 ㄱ 다음에 ㄲ이 ㄷ 다음에 ㄸ이 온다. 현행 북한이 규정으로는 ㅅ 다음에 ㅈ이 오고, 자음이 다 끝난 뒤에 ㅇ이 온다. 그리고 ㄲ, ㄸ 등은 ㅎ 다음에 놓인다. 이를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가? 여기에 바로 합리적이면서 실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논의를 거쳐 결국 남한의 규정처럼 ㅅ 다음에 ㅇ이 오고 ㅈ이 오는 것으로, 북한의 규정처럼 ㄲ, ㄸ 등은 ㅎ 다음에 놓이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어문규범과 관련해서 한 예만 더 들어보자. 현행 남한의 규정으로는 ‘학굣길, 장맛비, 시냇가, 촛불’과 같이 사이시옷을 쓴다. 북한의 규정으로는 이것을 ‘학교길, 장마비, 시내가, 초불’처럼 쓴다. 이를 어떻게 단일화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일까? 남한은 정해진 조건에 따라 사이시옷을 쓰고, 북한은 몇몇 예를 제외하고는 사이시옷을 전혀 쓰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남한은 사이시옷 쓰기를 줄이고, 북한은 사이시옷 쓰기를 늘리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남한에서 현실성이 없는 ‘학굣길, 장맛비’를 북한처럼 ‘학교길, 장마비’로 하고 ‘시냇가, 촛불’ 같은 것은 남한의 표기대로 쓰도록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 첫머리에서 말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꽤 길어졌다. 이러한 나의 대답에 대해 물론 또 생각을 달리하여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대해 비판적일 수 있겠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2007년 4월 국회에서 여야 의원 다수의 찬성으로 제정된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 사업회법’에 따라 우리는 2013년까지는 《겨레말큰사전》을 세상에 펴내야 한다. 이를 위해 편찬실 학자들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이들을 돕는 편찬위원회의 편찬위원 선생님들도 정성을 다할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사전학자, 그리고 사회 각계 여러 분들의 긍정적인 관심과 따뜻한 성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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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 자
(남측 편찬위원,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 시작된 지 올해로 만 3년이 되었다. 2005년 2월 금강산에서의 1차 모임에서 ‘민족어 유산을 집대성한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공동 보도문을 발표하고 올림말 선정 작업 기간을 2006년에서 2008년으로 계획한 후, 3년이 지난 지금 목적한 대로 기존 사전에서의 올림말 선정 작업을 마치고 남북이 공통으로 작업할 1차 올림말 목록을 확보하였다.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의 특성, 선정 원칙, 작업 내용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술(‘겨레말 소식지’ 1호, 2006: 이희자 참고)에 이어 이 글에서는 남북공동편찬위원회에서 합의한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 요강’ 및 ‘《겨레말큰사전》올림말 선정 작업 요강’에 따라 기존 사전인《표준국어대사전》(1999)과 《조선말대사전》(1992)에서 1차로 선정된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의 특성과 선정 원칙 및 방법, 규모 등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남과 북의 기존 사전의 올림말을 비교ㆍ검토하여 하나의 통일된 올림말 목록을 만든다는 일은 언뜻 듣기에 간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원칙을 정하고 막상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해당 어휘가 반영되어야 할 어휘인지 삭제되어야 할 어휘인지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 사전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어휘인 ‘공산주의’니 ‘자본주의’와 같은 체제 관련 어휘 선정에서는 매우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고유명사는 삭제하기로 하자는 대원칙을 세웠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서울’, ‘백두산’, ‘고구려’, ‘흥부’ 같은 것도 일괄적으로 삭제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조금만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단어들과 맞닥뜨리게 되면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일례를 들어 ‘알배기’, ‘공짜배기’, ‘곱빼기’, ‘토배기’, ‘토박이’, ‘코빼기’, ‘등배기’ 등 ‘-배기’, ‘-빼기’, ‘-박이’(조재수 2005: 남북편찬회의 자료)와 관련하여 접미사 형태에서부터 파생된 단어들까지 남ㆍ북 사전에 뒤섞여 올라 있는데 이는 기존 사전의 올림말 검토 작업이 단순 비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제에 표기 문제에서부터 의미 항목의 검토 문제 등 기존의 국어사전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들을 바로잡아 가면서 국어의 어휘 체계를 세우는 것을 뜻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이다.
1. 기존 사전에서의 올림말 선정 원칙은 첫째, 규범어(남측:표준어/북측:문화어), 지역어, 전문어(기본적인 학술 용어), 순화어(다듬은말), 흔히 잘못 쓰이는 비규범어, 문법 형태 등을 선정한다. 둘째, 전문어는 쓰임이 잦은 것을 선정한다. 셋째, 일련의 고유명사(국가명, 지명, 인명, 작품명, 고적물명, 사건명, 종족명, 단체명 등), 어근, 옛말, 쓰임이 드문 어려운 한자어 등은 선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넷째, 남북의 체제와 관련된 용어는 차후에 협의하여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
2. 올림말 선정 방식은 첫째, 남북 양측에서 각각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북측의 《조선말대사전(1992)》에 수록된 올림말 중 《겨레말큰사전》에 수록할 올림말을 위의 선정 원칙에 따라 “반영” ㆍ “삭제” ㆍ “검토” 어휘로 구분하여 선별한다. 둘째, 이러한 기준에 따라 남북 양측에서 선별한 올림말을 분기별로 비교 ․ 검토한다. 셋째, 문제가 되는 어휘는 남북 양측의 협의를 통하여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
3.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조선말대사전(1992)》에 수록된 올림말의 “반영” ㆍ “삭제” ㆍ “검토” 어휘의 구분 기준은 아래와 같다.
“반영” 어휘: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적합한 어휘 부류로서 이에는 규범어를 비롯한 지역어, 기본적인 학술 ․ 전문 용어, 흔히 잘못 쓰이는 비규범어, 순화어, 은어 ㆍ 비속어, 문법 형태 등이 있다.
“삭제” 어휘: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부적합한 어휘 부류로서 이에는 고유명사, 옛말, 비자립 어근, 현재 쓰임이 확인되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 극히 좁은 분야에서만 쓰이는 학술ㆍ전문 용어 등이 있다.
“검토” 어휘: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수록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되는 어휘 부류로서 이에는 현재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 역사 제도 용어, 민속 용어, 국악 용어, 종교 용어, 한의학 용어 등이 있으며, 남북의 언어생활 차이에서 발생한 문법 형태나 체제 관련 용어 등도 이 부류에 해당한다.
4. 이러한 기준에 따른 올림말 선별 결과 남측은 《표준국어대사전》의 50만 6천여 개의 올림말 중 29만 5천여 개(58%)와 《조선말대사전》의 29만 5천 여개의 올림말 중 20만 3천여 개를(69%) , 북측은 《조선말대사전》만을 대상으로 하여 23만 5천여 개(80%)를 각각 “반영” 어휘 즉《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적합한 어휘로 선별하였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미 ‘북한말’이 4만 8천여 개가 올라 있으므로 이를 제외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반영” 어휘 수는 24만 8천여 개이고, 《조선말대사전》에만 올라 있는 남북 공통의 “반영” 어휘 수가 10만 4천여 개(위의 북한어 4만 8천여 개 포함)이므로 이를 합하면 2008년 2월 현재《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이 될 수 있는 어휘는 35만 2천여 개이다.(단, 관용구, 속담 제외)
이 작업은 3년간 2ㆍ3차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초기에는 북측은 어휘 선정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남측은 엄격하게 적용하여 올림말 선별 결과물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점을 보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견해차가 좁혀져 현재는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 남측에서 검토한 북측 작업을 중심으로 선별 작업 중 문제가 된 것을 어휘 유형별로 보면, “반영”에서 “삭제”로 된 것들에 ‘간부양성기관’, ‘간첩파괴분자’, ‘공산주의사회’, ‘간백산밀영’, ‘간삼봉전투’와 같은 체제 관련 용어나 ‘가격격차금’, ‘가공공정공학’, ‘가로세로베아링’, ‘가소성물질’, ‘간접적론증’, ‘경제적효과’와 같은 좁은 분야에서만 쓰이는 어려운 전문어 및 음절 수가 긴 전문어, ‘가감(可堪)’, ‘가귀(加貴)’, ‘가랄(苛剌)’, ‘고극(苦劇)’, ‘공근(恭勤))’과 같은 비자립 어근, ‘가공가소’, ‘가내균안’, ‘가담항의’, ‘가부가친’, ‘겸인지용’과 같은 어려운 한자어, ‘가는날개수염어’, ‘가는풀색깡충이’, ‘가는대안장버섯’, ‘가는살말굴레’와 같은 음절 수가 긴 동․식물명 및 전문 용어, ‘가죽벗기기’, ‘가까운바다’, ‘가벼운짐’, ‘가격종류’, ‘가격균형’, ‘가려놓다’, ‘가려보이다’, ‘가로질러가다’, ‘가져보다’와 같은 단순 복합어가 있다.
“반영”ㆍ“삭제”ㆍ“검토”가 혼재해 있어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어휘 부류에 ‘가관’, ‘가관노’, ‘가귀선인기’, ‘가호둔전’, ‘갑술옥사’, ‘갑신정변’과 같은 역사 제도 용어, ‘가장리벽화무덤’, ‘고대중국’, ‘고대인디아’, ‘고려’, ‘고조선’과 같은 고유명사와 그 외에 한의학 용어, 불교 용어 등이 있다. 특히 ‘고유명사’의 경우 일괄 “삭제”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서울’, ‘평양’, ‘백두산’, ‘한라산’, ‘고구려’, ‘신라’, ‘심청’, ‘흥부’ 등과 같은 일부 고유명사와 속담ㆍ관용구에 들어 있는 고유 명사는 올림말로 수록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되어 이 부분은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5. 두 사전에서의 어휘 선정과 관련하여 이제 남은 작업은 “검토” 및 “삭제”로 분류된 어휘 25만여 개의 처리인데 사실상 이들은 "삭제"를 염두에 둔 분류이므로 이들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반영”에 속한 어휘와 계열어휘를 이루는 것들이 “검토” 및 “삭제”에 속해 있을 경우 이들을 “반영”으로 선별하는 일일 것이다. 이는 계열어휘 목록을 지속적으로 추가 보완하여 하나의 완성된 ‘계열어휘 목록’을 만들고, 작성된 ‘계열어휘 목록’을 근거로 1차 선별 어휘에 대한 2차 선별 작업을 진행하여 정제된 올림말 목록을 확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6. 이렇게 마련된 올림말 목록은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서 각기 선정된 것을 하나의 파일로 통합하여 ‘통합자료’로 만들어 이를 집필을 위한 ‘1차 올림말 목록’으로 사용한다. 집필 단계에서 이 올림말 목록은 일련의 정비 작업을 통하여 최종 확정된다. 이제 남은 과제는 관용구 ․ 속담 목록을 마련하는 것과 문제 어휘에 대한 유형을 정리하고 선별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다.
올림말 목록이 정해지면 사전 편찬의 반은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올림말 선정은 사전이 인쇄되어 나올 때까지 끝까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이 힘을 합하여 어렵게 사전을 편찬하는 만큼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선정된 단어 하나하나가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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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측의 두 사전의 “반영” ․ “삭제” ․ “검토” 어휘 1차 선별 결과는 다음과 같다.
어휘유형 |
"반영"어휘 |
"검토"어휘 |
"삭제"어휘 |
기존 사전 |
《표준》 |
《조선》 |
《표준》 |
《조선》 |
《표준》 |
《조선》 |
선별된 숫자/ 전체 올림말 수 |
295,371/ 506,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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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57/ 295,716
|
73,757/ 506,276
|
48,432/ 295,716
|
137,148/ 506,276
|
44,327 / 29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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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비율 |
58% |
69% |
15% |
16% |
27%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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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재 용(남측 편찬위원, 원광대학교 교수)
《겨레말큰사전》의 여러 분과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이 바로 새 어휘 분과이다. 남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의 《조선말대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어휘들을 문헌과 현장에서 찾아내어 《겨레말큰사전》에 올리는 것이 새 어휘 분과의 일이기 때문에 본 작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겨레말큰사전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일반인들이 가장 궁금해 할 것이 이 새로운 사전이 기존의 남북 사전에 없는 좋은 말을 얼마나 올렸는가 하는 것일 터이기에 그 사명은 더욱 무겁다.
남북의 새 어휘 분과에서 새 어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남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의 《조선말대사전》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남과 북에는 이 두 사전 이외에 다른 많은 사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남북이 새로운 어휘라고 규정하는 것은 남과 북의 대표적인 사전이라 할 수 있는《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어휘들은 지칭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고, 이 기준에 바탕을 두고 현재 작업을 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은 매우 많은 양의 어휘를 수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문헌과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어휘들의 상당 부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땅에서 생산된 문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어휘를 추출하는 작업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하에 출판된 문학 작품들을 들추어보면 현재 남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의 《조선말대사전》에 없는 어휘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936년에 발간된 백석의 시집 {사슴}에 수록된 유명한 시 [북관]을 훑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끼밀다', '배척하다'의 두 어휘를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다. '끼밀다'라는 것은 한 몸이 될 정도로 아주 가까이 끼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배척하다'라는 것은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어휘는 일제하에서 분명히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오르지 못 하였다. ‘가느슥히’의 경우 다소 복잡하다. 이 어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조선말대사전》에는 들어 있다. 하지만 그 뜻풀이가 다르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가느스름하게'라는 의미로 이 어휘의 뜻풀이를 하고 있지만 백석 시의 문맥을 볼 때 이 어휘의 뜻은 '희미하게'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맞다. 백석은 이 낱말을 비단 이 시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에서도 이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겨레말큰사전》에 이 어휘는 새로운 어휘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어휘 자체는 이미 올림말로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뜻풀이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끼밀다’, ‘배척하다’ 그리고 ‘가느슥히’와 같은 아름다운 토박이 우리말을 《겨레말큰사전》에 올려 자칫 사라질 수 있는 우리 말의 유산을 지켜야 할 것이다. 누군가 백석의 시를 읽다가 이 낱말의 뜻을 몰라 《겨레말큰사전》을 들추게 되고 거기서 이 낱말들의 상세한 뜻풀이와 용례를 만나게 되면 매우 기뻐 할 것이며 사전의 소중함을 실감할 것이다. 또한 사전이 만들어진 이후 훗날 누군가 이 새로운 낱말을 접한 후 더욱 풍부하게 구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은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과거 문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좋은 우리말들이 사전에 오르지 못하고 사장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겨레말큰사전》의 새 어휘 분과에서는 비단 문헌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좋은 우리말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결실을 맺고 있다.
그 동안 남북 특히 새 어휘 분과는 여러 차례에 걸쳐 만나서 새 어휘 추출 작업을 하고 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새 어휘 500개를 교환하여 상호 검토하고 있다. 남북은 각각 자신들이 검토하는 대상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방 이후 남의 것은 남에서 하고, 해방 이후 북의 것은 북에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전의 것은 부주의로 인한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작품과 잡지를 엄격하게 나누어서 작업을 행하고 있다. 남북 각각은 문헌과 현장에서 수집한 어휘들을 놓고, 남북이 합의한 기준을 적용하여, 수록해야 할 어휘와 수록하기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어휘로 나눈다. 수록해야 할 어휘라고 판단된 어휘들을 매 분기 남북 회의 때마다 500개씩 교환한다. 이후 이를 각자 검토하여 다음 모임에서 의견을 주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행하고 있다. 8차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남북 각각 4000개, 합쳐 8000개의 새 어휘를 이미 모았다.
《겨레말 큰사전》은 규범사전이 아니고 유산사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가급적 우리 토박이말을 찾아내어 올리고자 한다. 또한 한반도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는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도 조사를 하고 있다. 중국 동북 3성을 대상으로 하여 이미 조사 작업을 하였고 그 동안 조사된 3,711개 중에서 1,185개가 《겨레말큰사전》에 수록되어도 좋다는 판단이 잠정적으로 내려진 상태이다. 《겨레말큰사전》의 동시대성을 고려하여 문헌은 20세기 이후로 한정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숨어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석을 캐내는 이 작업은 품이 많이 들고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서는 《겨레말큰사전》이 바로설 수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업에 매달려 있는 많은 이들의 땀은 《겨레말큰사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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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종 선
(남측 편찬위원, 고려대학교 교수)
1. 집필팀에서는 ≪겨레말큰사전≫에서 싣기로 한 올림말에 대하여, 실제 사전에서 찾아볼 내용을 풀이해 넣는 작업을 진행한다. 사전에서 풀이말을 집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집필 지침을 마련해야 하며, 집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도 적지 않다. 현재 남과 북은 집필에 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들을 이미 합의하였고, 그에 따른 세부적인 내용들을 논의해 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겨레말큰사전≫의 풀이말 집필과 관련하여 남과 북이 합의한 내용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집필 작업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각 풀이말에는 아래의 사항을 필요에 따라 제공하기로 남과 북은 결정하였다.
(1)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 집필 내역
올림말(표기)
발음 정보
활용 정보
원어 정보
품사 정보
지역 정보
전문 영역 정보
문법 정보
뜻풀이(동의어)
용례(예구, 예문, 출전)
관련 정보(본말, 준말, 비슷한말, 반대말)
참고 정보(여린말, 센말, 거센말 등)
형태소 분석
어원(최초 출현형, 출전)
갈래말 정보
붙임
관용구와 속담(뜻풀이, 용례, 출전)
삽화 및 사진
2. ≪겨레말큰사전≫의 집필 지침의 협의는 남측안(2006년 11월)과 북측안(2007년 3월)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초기에는 각 올림말에 어떤 사항을 집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남과 북은 의견차를 보였었다. 양쪽의 지침을 근거로 2007년 3월부터 집필팀에서는 이와 같은 차이점을 극복하고 서로의 견해를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합의안 마련에 착수하였다. 현재는 ≪겨레말큰사전≫에서 올림말을 어떻게 집필할 것인가에 대한 대체적인 사항은 합의에 도달하였고, 실제 집필에서 만나게 되는 세부적인 문제점들을 꾸준히 논의해 가고 있다.
한편 2007년 하반기부터는 남북이 합의한 올림말을 대상으로 집필 지침을 적용해 보는 ‘시범 집필’을 수행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에는 국어사전 편찬에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기는 하나, 남과 북의 사전 편찬 전통이 다르고 남쪽 안에서도 사전 편찬 경험이 달리 있었던 터라, 남북의 단일한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남쪽 안에서도 단일한 지침을 만드는 데에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대강의 체제를 마련한 집필 지침에 따라 실제 집필을 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적인 문제점을 찾아내어 집필 지침을 완성해 간다는 것이 시범 집필을 한 취지였다. 1차 80개 올림말, 2차 200개 올림말을 뽑아 남북이 함께 집필하여 서로의 원고를 검토한 결과 양측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나타났다. 현재 자모순에 따라 500개 올림말을 선정하여 3차 시범 집필이 진행되고 있는데, 역시 남과 북이 각기 집필하여 서로 검토할 것이다. 이와 같은 진행을 통해 ≪겨레말큰사전≫을 어떻게 집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보완하며 단일한 집필 방안을 마련해 가는 중이다.
3. 올림말 표기는 ≪겨레말큰사전≫에 반영할 어문 규범을 따르게 된다. 남북의 규범에 차이가 있는 올림말은 모두 자모순에 따라 표기하여 올리기로 하였다. 예를 들어 ‘논리’와 ‘론리’처럼 두음법칙 적용에 견해차가 있는 것은 그대로 모두 올림말에 넣고, 이후에 어문 규범의 합의에 따라 정리하게 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합의한 단일한 언어 규범에 따라 공식적으로 출판하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다.
올림말이 표기된 대로 발음되지 않는 경우는 되도록 발음 표시를 하기로 하였다. 아직 모든 경우에 대해 합의하지는 못하였으나, 남북의 현실 발음 차이까지 포함하여 남북의 발음 실제를 되도록 충실히 보여주자는 취지이다. 이는 우리말의 언어 현실을 역사적으로 기록하는 의미도 있다고 할 것이다.
용언 올림말의 실제 쓰임은 기본형만으로는 충실하지 않으므로 활용 정보를 아울러 보인다. ≪겨레말큰사전≫의 활용 정보는 ‘-어/-아, -니/-으니’가 통합한 형태를 보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른바 불규칙 활용의 경우에도 불규칙 활용의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하였으나, 제한된 활용을 보이는 용언은 문법 정보에서 그 쓰임을 보이기로 하였다.
외래어에는 원어를 보인다. 한자어는 한자로, 그 밖의 외래어는 로마자로 원어를 보이고, 슬라브계 외래어는 키릴 문자와 로마자를 병기하여 보이기로 하였다. 속음으로 읽히는 한자어의 경우에는 본음을 원어 정보에서 보여 일반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품사는 남북 문법관의 차이에 따라 ‘조사’와 ‘어미’를 모두 ‘토’로 묶어서 보이기로 하였다. 용어에서도 ‘접두사’, ‘접미사’를 각기 ‘앞붙이’와 ‘뒤붙이’를 쓰기로 한 점은 그간 대개의 남측 사전에서 쓰던 것과도 다른 점이다. ‘사면초가’처럼 북의 사전에서 ‘성어’로 표시해 두던 것은 명사로 다루기로 하였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지역어 정보는 되도록 충실하게 주고, 전문 영역 정보는 되도록 간명하게 하기로 하였다. 전자는 겨레말의 실제 쓰임을 잘 반영하여 사전을 집필하고자 한 것이고, 후자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어휘를 지나치게 전문어로 풀이하는 데서 오는 거리를 줄이고자 한 것이다.
문법 정보는, ‘자다’에 대하여 “‘잠’으로 끝나는 말이 목적어로 쓰이기도 함”처럼 문장 성분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데리다’에 대하여 “‘데리고’, ‘데리러’, ‘데려’로만 쓰여”와 같이 올림말의 제한된 쓰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항목이다. 기존의 국어사전에서는 용언의 문장 성분을 형식화하거나 체계화한 문형을 제공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일반 독자들에게 너무 번잡하여 실제 이용성이 높지 못하였다고 본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일반 독자가 쉽게 읽고 잘 이해할 수 있는 집필을 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문법 정보는 간명하게 풀어서 써 넣기로 하였다.
뜻풀이는 올림말의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부분이다. ≪겨레말큰사전≫의 뜻풀이는, 올림말의 의미를 쉽게 풀이하면서도 다른 올림말을 참조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뜻풀이 부분은 현재 남북이 시범 집필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어 지침을 확정해 나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측이나 북측에서 쓰임이 확인되는 뜻은 빠짐없이 찾아 넣고자 한다.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이들을 모두 수용하되, 사회 체제에 따른 이념적인 요소나 정서 등은 배제하기로 하였다. 또한 통일을 앞두고 민족어가 발전 지향하는 방향성에도 남과 북은 모두 유의하고 있다.
용례는 남과 북에서 실제로 쓰인 용례를 되도록 충실히 반영하기로 하였다. 특히 남과 북의 현대문학 작품 등에 나온 용례를 두루 찾아, 겨레말 사용의 외연을 넓히고 문예 창작에도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예구와 예문을 다양하게 보이며, 예문에는 해당 문헌의 출전을 제시하여 관심 있는 이는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올림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련 정보와 참고 정보로 제시한다. 올림말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다른 올림말은 ‘관련 정보’로, 간접적이지만 올림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올림말은 ‘참고 정보’로 제시하기로 하였다. 다만 올림말과 동의어인 경우에는 뜻풀이에서 풀이말 직후에 제시하여 사전 이용자가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련 정보에는 ‘본말, 준말, 비슷한말, 반대말’이 있고, 그 밖의 올림말은 참고 정보에서 제시하였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올림말이 복합어인 경우에 그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여주기로 하였다. 이는 ‘형태 분석 정보’에서 다루는데, 고유어 올림말의 경우에 한정하여 제시하기로 하였다. 또 올림말의 어원은 최초 출현형을 확인할 수 있는 때에 그 문헌 정보와 함께 제시하기로 하였다.
올림말이 쓰인 관용구와 속담을 올림말 풀이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함으로써 올림말이 쓰이는 여러 표현을 아울러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들의 개념이나 범위 등에 대해선 남북이 차이가 있지만 합의에 따라 가능한 한 폭넓게 표현을 수용하여 겨레말의 풍성한 표현을 충실히 보여주는 데 목표를 두었다.
4. ≪겨레말큰사전≫에서 올림말 속구조의 각 항목을 집필하는 것은 이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크고 중요한 핵심적인 일이다. 남과 북은 오랜 시간 각기 다른 사전 편찬 전통을 이어 왔지만, 지금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자들은 그동안 이룬 성과와 역량을 모아 단일한 사전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이제 서로가 단일한 집필 지침의 대강을 완성하고, 올림말을 실제 집필하여 교환 검토하는 단계에 와 있다. 아직은 집필 작업에서 남과 북이 합의해야 할 세부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단일 민족어 사전으로서의 지향점이 공감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상호 호혜적인 이해 속에서 충분히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전의 뜻풀이 집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 몇 년 안에 남북 통일 ≪겨레말큰사전≫을 우리 겨레 앞에, 그리고 세계를 향해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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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호 철(남측 편찬위원, 고려대학교 교수)
0. 남북의 단일어문규범 작성위원회는 2005년 11월 개성에서 열린 제4차 남북편찬위원회에서 단일 어문 규범의 성격과 작성 원칙 및 범위를 정하고, 토론할 대상에 대하여 전반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단일 어문 규범의 성격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목적으로 작성되는 것으로서 남북에서 사용하는 현행 어문 규범에 대하여 어떠한 구속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4차 회의 이후 현재에 이르는 동안 남북 단일어문규범 작성위원회에서 논의한 바를 사항별로 기술하기로 한다.
1. 자모의 배열 순서와 이름
초성 글자의 배열 순서에서 남북의 차이는 ㅇ과 ㄲ, ㄸ, ㅃ, ㅆ, ㅉ에 있다. ㅇ을 남에서는 ㅅ과 ㅈ 사이에 두고 있는데 북에서는 자음 글자의 맨 뒤에 두고 있으며, ㄲ, ㄸ, ㅃ, ㅆ, ㅉ을 남에서는 홑글자의 결합으로 보아 해당 홑글자 뒤에 분산하여 두고 있는데 북에서는 하나의 단위로 보아 ㄲ, ㄸ, ㅃ, ㅆ, ㅉ 순서로 ㅎ 뒤에 한데 모아 두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ㅇ은 ㅅ과 ㅈ 사이에 두고, ㄲ, ㄸ, ㅃ, ㅆ, ㅉ은 이 순서로 ㅎ 뒤에 두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중성 글자의 배열 순서에서 남북의 차이는 겹글자에 있다. 이들 겹글자를 남에서는 홑글자의 결합으로 보아 홑글자 사이사이에 분산하여 두고 있는데 북에서는 하나의 단위로 보아 홑글자를 한데 모은 뒤에 두겹글자를 모아 두고 그 뒤에 세겹글자를 모아 두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홑글자 10개를 한데 모아 먼저 배열하고 그 뒤에 겹글자 11개를 한데 모아 배열하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홑글자 10개의 순서는 남북의 차이가 없으므로 그대로 인정하기로 하였으나, 겹글자 11개의 순서는 ㅘ, ㅝ, ㅙ, ㅞ에 대하여 이견이 있어 추후 논의하기로 하였다.
종성 글자의 배열 순서에서 남북의 차이는 쌍글자 ㄲ, ㅆ에 있다. 이들 ㄲ, ㅆ을 남에서는 홑글자의 결합으로 보아 해당 홑글자 뒤에 분산하여 두고 있는데 북에서는 하나의 단위로 보아 ㄲ, ㅆ 순서로 ㅎ 뒤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ㄲ, ㅆ 순서로 ㅎ 뒤에 두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그런데 초성과 중성 글자 배열에서 홑글자 전체를 앞에 두고 그 뒤에 쌍글자나 겹글자를 두는 대원칙에 따라 종성 글자의 배열에서도 이 원칙에 따라 재조정하는 문제를 추후 중성 겹글자 배열을 논의할 때 함께 다루기로 하였다.
자모의 이름에서 남북의 차이는 ㄱ, ㄷ, ㅅ 과 ㄲ, ㄸ, ㅃ, ㅆ, ㅉ에 있다. ㄱ, ㄷ, ㅅ을 남에서는 ‘기역, 디귿, 시옷’으로 부르는데 북에서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부르며, ㄲ, ㄸ, ㅆ을 남에서는 ‘쌍기역, 쌍디귿, 쌍시옷’으로 부르는데 북에서는 ‘된기윽, 된디읃, 된시읏’으로 부른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기윽, 디읃, 시읏, 쌍기윽, 쌍디읃, 쌍시읏’으로 부르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2. 띄어쓰기
남북의 띄어쓰기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의존 명사, 보조 용언, 명사 연결체, 수사의 띄어쓰기이다.
먼저 의존 명사의 띄어쓰기에서 남은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단위 명사에 대해서는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북은 모든 의존 명사를 붙여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일반 의존 명사는 띄어 쓰고,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붙여 쓰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그리고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에서 남은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어미 ‘어’ 바로 뒤에 오는 보조 용언은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북은 모든 보조 용언을 붙여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원칙적으로 보조 용언은 띄어 쓰되, 어미 ‘어’ 바로 뒤에 오는 보조 용언은 붙여 쓰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또한 명사 연결체의 띄어쓰기에서 남은 단어 단위로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에 대해서는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북은 하나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를 단위로 띄어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전체적으로 의미 단위에 따라 띄어 쓰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고 구체적으로 사전 집필 과정에서 제기되는 개개의 항목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수사의 띄어쓰기에서 남은 만, 억, 조 단위에서 띄어 쓰고 있는데, 북은 백, 천, 만, 억, 조 단위에서 띄어 쓰고 있다. 이에 대해서 남북은 만, 억, 조 단위에서 띄어 쓰는 것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3. 문법 용어
사전 집필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제기되는 문법 용어에 대하여 남북은 아래와 같이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남측 |
북측 |
단일 |
어미/조사 |
용언토/체언토 |
용언/체언 뒤에 붙는 토 |
자립명사/의존명사 |
완전명사/불완전명사 |
자립명사/의존명사 |
단위명사 |
단위명사 |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
인칭대명사 |
사람대명사 |
인칭대명사 (1인칭, 2인칭, 3인칭, 부정칭) |
지시대명사/의문대명사 |
가리킴대명사/물음대명사 |
지시대명사/의문대명사 |
양수사/서수사 |
수량수사/순서수사 |
수량수사/순서수사 |
성상형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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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및 상태 형용사 (성질형용사, 상태형용사) |
성상관형사 |
성질관형사 |
성질 및 상태 관형사 (성질관형사, 상태관형사) |
수(량)관형사 |
분량관형사 |
수량관형사 |
감탄사 |
감동사 |
감탄사 |
4. 고유어의 형태 표기
고유어의 형태 표기에서 남북의 차이가 나는 것에는 개별적인 단어 외에 어미 ‘어, 오’나 접사 등의 표기가 있다. 이 가운데 북에서 ‘여’로 적고 있는 어미 ‘어’의 표기와 북에서 ‘군’으로 적고 있는 접사 ‘꾼’의 표기에서는 의견의 접근을 보지 못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단어 개별적인 차원에서 의견의 접근을 본 것은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우므로 생략하고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의 일부에 대해서만 보이면 아래와 같다.
5. 사이시옷
남북의 사이시옷 표기에서 남은 고유어가 들어 있는 합성어에 한하여, 북은 철자가 같은 일부 단어에 한하여 앞말의 받침으로 ㅅ을 적음으로써 차이가 난다. 이 문제는 남북의 표기에서 큰 차이이므로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하기로 하였다.
6. 한자어 두음 ㄴ, ㄹ 표기
남북의 한자어 두음 표기에서 남은 발음을 기준하여 ㄹ은 ㄴ이나 ㅇ으로 적고, ㄴ은 ㅇ으로 적기도 하지만, 북은 형태를 기준하여 ㄹ이나 ㄴ을 그대로 적는다. 이 문제 역시 남북의 표기에서 눈에 띄는 큰 차이이므로 이론적·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논의하기로 하였다.
7. 문장 부호
사전 집필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제기되는 문장 부호의 차이에 대하여 남북은 다음과 같이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남에서 규정하고 있는 가운뎃점(·)과 중괄호({ }), 북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두점(;)은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남의 따옴표와 북의 인용표는 둘 다 인정하되 그 사용의 범위에 제한을 두기로 하였다. 즉, 남의 큰따옴표(“ ”)는 글 가운데서 직접 대화를 표시하거나 남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 작은따옴표(‘ ’)는 큰 단위를 표시하는 큰따옴표(“ ”) 안에서 작은 단위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하고, 북의 인용표(≪ ≫)는 출전을 나타내는 데에, 거듭인용표(< >)는 단어나 어구를 강조해서 드러내는 데와 큰 단위를 표시하는 인용표(≪ ≫) 안에서 작은 단위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8. 외래어 표기
외래어는 우리말에 들어와서 우리말의 음운 체계에 맞게 조정되어 사용되므로 모든 외래어에 대하여 정해진 규정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남북은 사전의 올림말 후보로 선정된 단어에 대하여 남북의 외래어 표기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각 측의 의견을 제시한 다음에 논의를 거쳐 의견의 접근을 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남북 각 측이 제안한 단일안이 서로 같은 것은 그대로 인정하고, 남북 각 측이 제안한 단일안에 차이가 있는 것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단일안을 마련하는 데에 의견의 접근을 보았다. 첫째는 남측의 안으로 단일화되는 것이고, 둘째는 북측의 안으로 단일화되는 것이며, 셋째는 남북의 안을 모두 수용하는 복수의 것이다.
남/북 외래어 |
남측 |
북측 |
단일 |
남북 각 측이 제안한 단일안이 서로 같은 것(보기)
가솔린(gasoline)/가소링(gasoline)
갈락토오스(galactose)/갈락토즈(영galact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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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갈락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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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갈락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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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갈락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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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의 안으로 단일화되는 것(보기)
뉘앙스(프nuance)/뉴앙스(프nuance)
마네킹(mannequin)/마네킨(영manneq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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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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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안스
마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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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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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의 안으로 단일화되는 것(보기)
러닝(running)/런닝(영running)
로봇(robot)/로보트(영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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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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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
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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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
로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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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안을 모두 수용하는 복수의 것(보기)
갤런(gallon)/갈론(영gallon)
달리아(dahlia)/다리아(영dah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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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런
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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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론
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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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런/갈론
달리아/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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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상의 의견 접근을 바탕으로 앞으로 단일어문규범 작성위원회에서는 사전의 집필 과정에서 제기되는 개개의 사항에 대하여 그때그때 남북이 함께 논의하여 의견의 접근을 보게 될 것이며, 남북 규범의 차이에서 크게 부각되는 사이시옷과 한자어 두음 ㄴ, ㄹ 표기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하여 최선의 단일화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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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현 아나운서(MBC 우리말 나들이 PD)
MBC 문화방송에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으로 아나운서들이 직접 만든 방송의 이름은 ‘우리말나들이’이다.
하지만, '우리말나들이'는 방송프로그램으로 제작되기 이전인 1993년에 한글창제 550돌을 기념한 유인물로 시작됐다.
그 당시 입사 6년차였던 강재형 아나운서(현 MBC 아나운서국 뉴스, 스포츠부 부장)의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만들어 졌던 우리말 나들이.
1993년 당시에는 어떤 방송사에서도 우리말 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은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글창제를 기념하기위해 흔히 틀리는 말을 모아서 시작했던 우리말나들이였고, 5년 뒤 'MBC우리말나들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 MBC의 직원들은 출근할 때 회사정문 게시판에서 우리말나들이 유인물을 통해서 우리말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16절 갱지에 찍어낸 이 유인물의 반응은 뜨거웠다. 홍보부에선 사내방송 기획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신입사원이었던 박나림(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 이다.)아나운서가 MC로 강재형 아나운서가 PD를, 그리고 이재용 아나운서가 급식담당(?)을 맡아서 사내방송프로그램이 제작됐다. 첫 방송소재는 강산애씨의 노래 ‘넌 할 수 있어’ 중에 나온 ‘깨끗이’의 발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획에서 촬영, 편집, 출연까지 모든 과정을 아나운서들이 직접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됐다.
월~금 오전 10시 55분과 오후 5시 25분에 각 1분씩, 1998년 12월 1일 첫 방송이 시작된 후 2008년 4월 17일 ‘깨작깨작하다’방송까지 1,747회에 이르는 방송이 제작됐다.
요즘은 각 방송사마다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을 앞다퉈 제작하고 있고,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꽤 높게 나오면서 시청자들의 우리말 실력만큼이나 방송사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말나들이'는 시발주자였던 만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우리말을 배운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말 그대로 무모한, 아니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고작(?) 1분짜리 프로그램에 넣기 위한 30초짜리 영상을 위해서 헬기를 띄웠으며(당시의 소재는 헬리콥터의 북한말인 직승기, 산마루 등이었다.), 첫 해외촬영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하지은 아나운서의 도움으로 우리말속의 일본말을 걸러내는 작업을(지리, 짬뽕, 묵찌빠 등)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우리말나들이 in USA’가 미국 LA현지에서 제작되어(MC 이하정 아나운서) 미국 현지 교민들 사이에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바람몰이에 나섰고, 같은 해 10월에는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한글을 배우려는 고려인 3,4세들의 꿈과 열정을 소개하고, 한글을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힘써온 고려인 1,2세들을 만났다.
우리말나들이는 이 밖에도, 남쪽의 ‘한국어’와 북쪽의 ‘문화어’가 아닌 ‘우리말’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금강산과 백두산, 중국 옌지, 헤이룽장성, 하얼빈을 찾아가 ‘북한말나들이’를 제작, 현지에서 쓰이고 있는 북한말을 남쪽에 소개했고, 2004년에는 방송문화진흥회와 공동기획으로 방북해 ‘북한말나들이’를 제작하고자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지금까지는 성과를 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고려인들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니자미 사범대학 한국어문학과에서는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선생님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학교에서는 어떤 말을 가르치고 있었을까?
한국어? 아니면 구소련의 연방이었으니 문화어?
정답은 둘 다이다. 실제로 구소련시절에는 북한의 학자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문화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후에는 한국과 국교를 맺고, 현재 외교부의 파견교수님들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덕분에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1,2세대 그리고 3세대까지도 문화어를 한국어로 알고 사용하고 있었고, 인터넷에 익숙한 4세대 고려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대학생을 인터뷰했더니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인 ‘커피프린스’에 나온 탤런트 윤은혜보다 자기 여자친구가 더 예쁘다고 말하기도 했다.)를 실시간으로 보고 현대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같은 민족 두 가지 언어의 공존.
같은 듯, 다른 듯. 틀림없이 신세대 고려인들은 부모와 대화하면서 단어의 의미가 혼동될 때 러시아어로 번역했으리라.
그런데 이런 문제는 자칫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2008년 4월 1일 14:00 금강산 골프장>
“최 사장님, 여기는 짧은 중간거립니다. 쇠채 드릴까요? 나무채 드릴까요? 타격대 올라가시기 전에 말씀해 주세요.”
‘짧은 중간거리?’, ‘타격대는 뭐고, 쇠채는 뭐지?’
모처럼 휴가를 내고 금강산 골프장을 찾은 최 사장은 심기가 불편하다. 라이벌인 이사장과의 게임인데, 캐디와 영 호흡이 맞질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찮더라도 사정을 해서 남쪽 캐디를 쓰는 건데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오늘 시합은 일찌감치 포기다.
분단 60년을 맞는 지금 남과 북의 언어는 이렇게 차이가 나고 있다. 외래어니까 그렇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쓰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왕따’를 북쪽에서는 ‘모서리 먹는다’라고 한다는 것을 아는 남쪽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런 상태가 더 진행된다면, 남북이 통일됐을 때, 우리는 북쪽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로 혹은 러시아어로, 중국어로 번역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나들이 PD로서 또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한다고 자부(?)하는 아나운서로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를 만나게 됐다.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편찬 사업회에서는 겨레말큰사전에 수록할 30만 개에 달하는 어휘선정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말을 통일시킨다는 작업, 남과 북 모두 양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힘든 점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외세에 의해서 갈라져 버린 우리말을 우리가 바로잡아서 후손들에게 교육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말나들이'에서는 5월에 ‘겨레말나들이’를 기획하고 있다. 비록 남북간의 정세 악화로 4월 개성회의에는 동행할 수 없게 됐지만, 5월에 개성을 방문해서 2004년 못 이뤘던 우리말나들이 북한촬영을 성공시킬 계획이다.물론 여기서 다룰 소재는 겨레말이다. 개성 집필회의에서 다뤄진 어휘들을 소개하고,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의 의미도 시청자들에게 전할 생각이다. 앞으로 우리말나들이에 북한말 나들이 대신 겨레말나들이를 연재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말의 통일 사업이 성공해서 진정한 《겨레말큰사전》이 편찬되길 기원한다.
최대현 MBC아나운서는 부산방송(PSB)과 강원민방(GTB)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MBC 우리말나들이 PD와 MBC 5시 종합뉴스 앵커로 활동중이다. 주요프로그램으로는 MBC 정오뉴스, 주말뉴스, 화제집중, 아주 특별한 아침, 네 꿈을 펼쳐라, 1%의 나눔 행복한 약속, 프로야구중계, 대학농구중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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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성(SBS 해설위원)
벌축, 빼몰기, 몸놀기
“그간의 성과와 부족 점을 분석총화하고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한 달 동안 세웠다. 이러한 전술적 과업의 결과다.” 언뜻 이해가 쉽지 않다. 분명 우리말인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난 3월26일 '2010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 남북전' 직후 북한대표팀 김정훈 감독의 말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펼쳐진 남북전이 무승부로 끝난 데 대한 김정훈 감독의 소감이다. 전력 약세로 평가받은 북한으로선 만족스런 결과였고 한국전을 철저히 대비한 노력의 결과라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직업상 많은 축구 경기를 접하고 북한대표팀 또한 가까이 지켜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경기 결과와 성적을 떠나 한민족의 또 다른 대표팀을 바라보는 것은 기분을 묘하게 한다. 설렘, 반가움, 아쉬움 등이 한 데 섞인 감정이랄까. 묘한 마음도 잠시, 말을 주고받다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식 인터뷰 등을 통해 접하는 북한의 축구용어는 생경하다. '기술 수법'(테크닉), '기초 동작'(기본기), '몸놀기'(유연성), '차넣기'(슈팅), '빼몰기'(드리블로 수비수 제치는 동작), '벌축'(프리킥) 등 낯선 표현이 적지 않다. 문맥 전체를 살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단어만 듣고는 이해가 쉽지 않은 표현들이다. 하지만 자꾸 들으면 이해에 불편함이 사라진다. 우리식 표현에 외려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대세의 북한대표팀 적응기
북한이 영어 등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속도'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스피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축구의 발상지가 영국인데다 유엔(UN)보다도 많은 가맹국을 두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영향을 받는 축구인지라 영어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존재한다. 국제축구연맹은 전 세계 가맹국들에게 통일된 규정과 용어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국가대항전이 빈번한 운동 경기라 일정 정도 표현의 통일은 불가피하다.
물론 영어 사용은 공식석상에서의 일이고 국가 내부적으로 뭐라 쓰는지는 자유다. 우리도 '스로인'을 '던지기 공격' 등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북한식 축구용어를 꼬아 볼 필요가 없는 이유다.
북한선수들 인터뷰는 아직까지 여의치 않다. 믹스트존(선수들의 인터뷰가 허용된 장소) 등지에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북한 선수들이 말을 꺼리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갖은 노력을 다해 어쩌다 들을 수 있는 한 마디가 “최선” 정도다.
북한대표팀에 변화가 생겼다. 자연스레 인터뷰에 응하는 선수들이 나타난 것이다. 주인공은 정대세(가와사키프론탈레)와 안영학(수원삼성)이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북한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정대세와 안영학은 남쪽에서 온 기자들의 질문에 거리낌 없이 답을 내놓는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 사회, 정치적 거리감이 없는 데다 일본과 한국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며 인터뷰 문화가 몸에 밴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대세 또한 북한대표팀 합류 초반 언어와 문화적 생경함 때문에 적잖게 고생을 했다는 사실이다. 국적 논란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정대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총련계 수업을 받으며 북한말과 문화에 익숙했지만 북한 선수들과의 직접 대면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고 한다. 표현과 생각이 다소 다르다 보니 대표팀에 합류한 초반에는 서로가 서먹해 멀뚱히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만 언어와 표현이라는 것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면 한껏 다가오듯 정대세가 대표팀에 합류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축구공은 하나다
한국선수 중 가장 말(인터뷰)을 잘 하는 선수는 이영표(토트넘)와 김상식(성남일화)이다. 특히 이영표는 인터뷰를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기사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논리 정연한 말솜씨로 유명하다. 한번은 잉글랜드에서 잠시 휴식차 국내에 들어온 이영표 선수에게 “큰 체구의 유럽 공격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말이 압권이었다. 반문으로 운을 뗐다. “삼국지를 읽어 보셨나요? 삼국지를 보면 상대를 꺾기 위해선 나를 상대에 맞추기 말고 상대를 나에게 맞추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공격수들의 체구가 크지만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이영표 선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뒷목이 뻐근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의 인터뷰는 기자 사이에선 기피 대상이다. 성격이 까다롭거나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박지성 선수의 인터뷰는 언제 어디서나 모범 답안이다. 치열한 주전경쟁관계에 대해 물으며 “축구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고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는 식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삿거리에 목마른 기자들로선 뭔가 허전한 인터뷰가 아닐 수 없다. 기삿거리를 위해 말을 지어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박지성 선수 인터뷰 때마다 기자들의 웃음이 터지곤 한다. 박지성 특유의 말버릇 때문이다. 박지성 선수는 '때문에'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쓴다. 문장 중간에 '때문에'를 넣어 말을 이어간다. 한 번은 박지성 선수에게 '때문에'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제 말버릇이기 때문에ㆍㆍㆍ.” 고 말해 주위가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축구공은 발로 차지만 동료들 간에 이해와 협력 없이는 기대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말이다.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아가 남북한 선수들이 자유로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남측 선수들이 벌축이라 소리치고 북측 선수들이 프리킥을 차는 장면은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남북한 팀은 두 개여도 축구공은 하나다.
박문성 SBS 축구해설위원은 MBC ESPN 해설위원을 거쳐 2006년 SBS 독일월드컵 해설위원을 역임하고, 지난 3월 26일 남아공월드컵예선 남북전을 생중계했다. 현재 월간 베스트일레븐 차장, 네이버 축구칼럼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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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 언(민화협 ‘민족화해’지 편집인)
“동무라고 하면 잡혀 간다”
전쟁이 터졌다. 어른들은 난리가 났다고 했다. 공산당이 쳐내려오면 빨갱이세상이 된다고 했다. 빨갱이 세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잡혀 죽는다고 했다. 빨갱이세상이 되면 학교월사금도 안내고 논밭도 공짜로 준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교에 가면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북진통일’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빨갱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용감한 우리 국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하여 멀지 않아 통일이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훈시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지금부터 너희들은 동무라는 말을 하지 말고 친구라고 해야 한다. 동무는 공산당이나 빨갱이들 끼리 쓰는 말이니 동무라고 하면 잡혀간다. 그러니 너희들은 서로 친구이지 동무는 아니다.”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했다. 왜 동무라고 하면 잡혀가는지 알 수 없었다. 또래들은 ‘동무’였지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무야 노올자”고 하던 또래들을 갑자기 “친구야”하고 부르려니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동무라고 하지 못하다 보니 우리 또래들은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야”라고 불렀다.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라는 ‘어깨동무’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동무들아 나오라 달 따러 가자”라는 노랫말도 “친구들아~”로 바뀌었다.
국군이 이기고 있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대포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지 않은 낙동강주변에선 미군전투기의 폭격소리가 고향산천을 흔들었다. 이어 미군들이 탱크와 대포를 앞세워 고향에 무더기로 들이닥쳤다. 이빨만 하얀 흑인 미군도 그 때 처음 보았다. 어른들은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대포소리가 가깝게 들려도 나는 이웃 동무들과 어울려 동네마당에서 놀았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몰랐다. 며칠 후 안개 낀 새벽녘 귀가 따가운 총소리에 잠이 깼다. 총소리에 귀가 멍해졌다. 우리 동네에서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학생 동무 물 좀···”
한국전쟁 당시 내 고향(경남 창녕군 영산면)은 낙동강전투의 최대 격전지였다. ‘영산방어선’이 무너지면 대구가 고립되고 부산이 위협당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미군은 내 고향에 최후방어선을 구축하고 주력부대인 제24단을 배치했다. 인민군도 전력이 막강한 제4사단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국군은 많지 않았다.
1950년 8월11일 새벽녘 낙동강을 건너온 인민군이 마침내 우리 동네까지 진격해 왔다. 나는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잘사는 사람들은 부산으로 거제도로 피난을 떠났지만 고향 사람 거의가 가난한 처지여서 그냥 머물고 있었다. 오전 내내 총소리가 산천을 흔들었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두터운 솜이불을 덮어쓰고 광속에 숨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동무들” “인민공화국만세”라는 외침이 들렸다. 우리 집에는 다행히 총알도 날아오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총소리가 뜸해졌다. 인민군들이 후퇴했는지 미군을 따라온 국군들이 마을 사람들을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후방 산골로 소개시켰다. 나머지 인민군들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네 앞산 밑을 지나가는데 인민군들의 시체가 엄청나게 많았다. 미군들이 점령하고 있던 가파른 고지를 오르다 죽은 인민군시체들이 나무에도 수없이 걸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부상당한 인민군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무서웠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처음 본 인민군들의 얼굴색이었다. 주검들이었지만 얼굴색은 빨간색이 아니었다. “공산당은 빨갱이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북한사람얼굴이 빨간 줄 알았고, 그림도 그렇게 그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와 꼭 같은 모습이었다.
더 놀란 일은 논두렁길을 따라 피난을 가는데 죽은 줄 알았던 인민군이 내가 들고 가던 고추장간장이 담긴 주전자를 보고는 논두렁에 기댄 채 힘없이 손을 내밀며 “학생 동무 물 좀···”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동무”라는 말에 놀라 멈칫했다. 찌던 얼굴이었지만 창백했다. 까까머리여서 더 앳되게 보였다. 바지에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내가 물이 아니고 간장이라고 하자 손을 내렸다. 뒷집 할머니가 바가지로 개울물을 떠다 주려 하는데 흑인 미군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고함을 치면서 총으로 빨리 가라는 시늉을 했다.
미군들의 엄청난 화력에 인민군들은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이틀이 지나자 미군은 마을 사람들을 다시 집으로 보냈다. 갔던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물을 달라고 했던 까까머리 인민군이 궁금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 자는 듯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도 인민군들의 시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인민군이 퇴각하고 미군이 철수한 후 어른들은 죽어 있는 인민군들의 시체를 수습하여 고향주변 외진 산자락 여러 곳에 한꺼번에 묻었다. 나에게 동무라고 했던 그 인민군도 내 고향주변 산자락 어딘가에 묻혔을 것이다.
60년이 다되어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인민군을 묻었던 고향 어른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나 지금은 장소마저 어렴풋이 전해져 올 뿐이다. 내 고향뿐만 아니라 인민군들의 시신을 묻었거나 장소를 알고 있는 노인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있을 때 표지석이라도 세워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북녘에 묻혀 있을 국군들도, 남녘에 묻혀 있는 인민군들도 언젠가 돌아오고 돌아가야 할 원혼(冤魂)들이니까.
“기자선생, 동무라고 하면 반동 안됩네까?”
전쟁 때 물을 달라고 했던 그 인민군을 본 후 내가 북녘의 ‘동무들’을 다시 만난 것은 40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나는 기자였다. 1990년 9월16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된 남북총리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으로 북녘 땅을 밟았다.
정부관계관 50명과 기자단 50명은 판문점을 통과해 개성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갔다. 판문점에서 개성으로 가면서 인민군들을 보니 나를 동무라고 부르며 물을 달라고 했던 그때 그 인민군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기자들과 함께 노동신문사를 방문했다. 노동신문기자들이 건물 앞에 나와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편집국을 돌아본 후 국장실에서 남북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나는 기자단 대표 자격으로 인사말을 하면서 “북녘에 오면 북녘 말을 해야 친근감이 생긴다.”면서 “로동신문 기자 동무들이 남조선기자들을 렬열히 환영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동신문 기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요란하게 쳤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팔팔한 젊은 기자가 나에게 “기자대표선생, 동무라고 하면 남조선에선 반동으로 몰리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계면쩍었지만 웃으며 “남조선에선 동무보다 친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나는 북한에 가면 동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식당에 가도 “접대원 동무”라고 부른다. 그때마다 아가씨들은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어떤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선생님, 동무라고 해도 괜찮습네까?”라고 묻는다. 고려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왔습니다. 동무들 반갑습니다.”라고 하면 더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하고 답례한다.
전쟁 이후 지금까지 나는 어릴 적 동무들을 동무라고 불러 본 적도 들어 본 적 없다. 정겹던 동무라는 단어 앞에 ‘빨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에는 동무는 없고 친구만 있을 뿐이다. 어릴 적 벗들도 ‘고향 동무’가 아니고 ‘고향 친구’다. 북한에 가도 북녘동포들도 나를 “동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동무”라고 불러준 사람은 어릴 적 그 인민군이 마지막이었지 싶다.
고향에 가서 그때 나에게 물을 달라며 “학생동무”라고 불렀던 그 인민군이 문득 생각나면 그가 죽어있던 자리를 찾아가 잠시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는 물을 주지 못했던 일을 미안해한다. 어쩌면 부상당한 아픔보다 목마름이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
이수언 선생님은 1942년에 출생하여 국민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한국언론재단 기금운영본부 본부장과 언론중재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 민화협 ‘민족화해’지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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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임 하(한국체육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
1.
생태계에 일어나는 사태와 파장은 상상을 넘어선다. 사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정도면 단시일에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 최근 서해안 원유 유출사태가 가져다준 엄청난 파장도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백 만을 훨씬 넘긴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물결이 세계에 널리 회자되기는 했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서해안 주민들의 절망은 전쟁의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오염된 바다의 소생은 수십 년,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게 자연의 냉엄한 법칙이다.
지금의 북한 사회는 생태계 문제에 관해 어떤 인식수준과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북한 사회가 생태계 문제에 눈뜨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86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환경보호법’이 생태계의 관리 보존을 법적으로 제도화한 첫 행보였다. 이후 공해방지와 생태 환경 보호를 위한 각종 시책을 펴나갔다. 하지만, 1997년 대만으로부터 핵폐기물을 수입하려 했던 점을 떠올려 보면,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대도시보다는 중화학공업지대가 있는 지역이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중화학공업지대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 폐기물은 처리시설과 여과장치를 갖추지 못해 인근 해역의 오염 정도는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북한 농촌에서는 물자난으로 인한 산림 훼손이 가장 심각하고, 다음으로 토양 오염, 쓰레기 및 폐기물 오염, 수질 오염 등이 뒤를 잇는다.
북한의 환경오염 문제는 중화학 분야를 중시해온 산업정책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문제는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홍수와 산사태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진 것도 땔감을 얻고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산자락을 밭으로 일구어 산림을 지속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정부도 북한사회 지원에 해야 할 일로 산림녹화를 돕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오늘 북한사회가 생태 환경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사태의 심각성에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최근의 소설 사례가 있어 흥미롭다. 최련의 《바다를 푸르게 하라》(<조선문학> 2004년 2월호)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드물게도 바다 생태계에 대한 북한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2.
《바다를 푸르게 하라》는 여성 과학자를 주인물로 등장시켜 ‘바다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의 첫 면 머리말로 배치된 “경제와 과학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라의 국력을 백방으로 다지자!”라는 구호는 과학자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대변하고 있다.
작품의 중심 화자는 현지답사조 책임부원 ‘박신철’을 수행하는 ‘윤해송’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고향 바다를 지켜보며 성장해온 인물로, 바닷가의 아름다운 정경을 벗 삼아 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20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런 그녀가 부딪치는 문제는 바다 자원의 합리적 이용과 함께 그것의 남용으로 인한 자원 고갈 문제 때문이다. 작품이 가진 빛나는 면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약 생산은 외화 획득과 관련해서나 자원 활용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긴요한 당면과제이다. 이는 국가의 부를 제고하는 국가적 시책에 부응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약 생산이 불가피하게 자원의 고갈을 초래하고 생태계 교란을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자원 활용과 바다 생태계 보존이라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윤해송’은 ‘련포 앞바다’에 침광시약 시험분 공장을 건설하는 움직임에 대해 “바다 주변 바다풀을 연간 수백수천 톤씩 거두어들여야” 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습니다. 바다풀 그 자체와 그 풀에 모여사는 미생물들은 물고기들의 먹이로 리용될뿐 아니라 은신처로도 되고 특히는 알쓸이터로 됩니다. 그 바다풀이 없어지면 물고기들은 자기 서식터를 잃게 되고 결국 바다생물계의 생태학적 사슬고리는 파괴됩니다.”
해조류의 남획이 수십 년 후에는 인근 해역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므로 바다 생태계의 보존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시약 공장 건설을 위해 현지답사차 내려온 책임부원 ‘박신철’은 ‘윤해송’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약 생산이 “국가적 의의를 가지는 사업”이라는 것, “희유금속의 선광실수률을 높임으로써 나라에 막대한 리득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을 들어 ‘윤해송’의 주장을 거부한다. 더구나 외화 획득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기에, “시약 생산에 쓸 해조류의 량은 현재 바다에 잠재해 있는 량에 비해볼 때 그리 많은 것은 아니”므로, 시약 공장 건설은 오히려 “바다 자원의 합리적인 리용”이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박신철 등이 이미 사업 비준을 받은 시점에서 바다 생태계의 보존을 외치는 윤해송의 목소리는 현실과 국가의 차원을 고려하면 반향이 커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연보호연맹에 호소하는 외에는 딱히 방도가 없는 현실에 크게 낙담한다. ‘해송’은 답답한 마음에 바다를 찾았다가 해변에서 아이로부터 조가비를 한 줌 얻은 지적인 여자를 만난다. 그녀에게 답답한 심사를 털어놓게 된다. 몇십년 후면 해안 기슭의 바다풀이 사라지면서 물고기들은 사라지게 되고, “그럼 대체 이 바다에 무엇이 남을가요. 물고기도 바다풀도 갈매기도 없는 바다가 무슨 바다겠어요”하며 반문하며, 바다를 사랑하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전 평양에서 왔어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전 이 바다가 마을에서 살았어요. 여기서 조가비도 줏고 양식공언니들과 함께 미역을 따면서 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노래도 불렀어요./ 우리 마을사람들은 바다를 무척 사랑해요. /고난의 행군/ 때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바다를 가꾸었어요. 그런데… (중략) 나도 알아요. 그 공장이 필요한 공장이고 또 해조류의 량도 조절할 수는 있다는 걸… 하지만 50년, 100년후의 바다를 생각하는 것이 과연 어리석고 천진한 일일가요?”
호기심 어린 눈길로 해송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여인은 침광 시약을 연구한 여성 과학자 채연경이다. 작가는 자연 보존과 국가 이익이라는 선택지를 놓고 독자들을 고심하게 만든다. 바다를 사랑하는 해송의 자연보호에 대한 안목과 시약 개발 당사자인 연경을 대면시킴으로써 황폐해지는 자연과 국익 사이에 분명한 척도를 마련하는 문제가 더는 회피하거나 방관할 수 없음을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자연의 황폐화가 국가의 이익에 부합될 수 없다는 인식은 자연의 보존이 긴 안목에서 보면 ‘자원의 합리적 활용’이라는 남획과 구별되는 것이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생태학적 관점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마을 사람들이 혹독한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바다를 가꾸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해송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북한사회가 처한 자연 생태계의 보존과 개발을 놓고 경합하는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해송의 답답한 심사는 바다를 ‘자원의 합리적 활용’과 ‘이익의 창출’이라는 현상적 국면이 가진 위세에 비해 바다라는 자원의 보존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회적 인식 수준이 크게 미약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그런 측면에서 작품은, 자연보호라는 문제가 현실의 절박함 때문에 우선순위로 고려되지 못하는 북한 생태학의 딜레마를 담아낸 것일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국익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으로서 바다를 미래에도 가꾸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해송의 발언은 그래서 빛난다.
이익의 창출과 자연 보존이 병립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문제인지는 모두가 수긍한다. 그러나 그 해답은 자칫 이상화되면 현실의 맥락을 벗어난다. 작품에 제기된 생태계 보호 문제는 북한의 황폐해진 연근해를 쉽사리 연상시켜준다. 윤해송의 실망과 답답한 심정이 이같은 상황을 얼마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국가적 입장을 강변하는 책임부원 박신철의 발언 강도는 공장 건설을 실행하는 절차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음을 고려할 때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에 반해 윤해송의 문제 제기는 개인적 차원이고 또한 심정적이다. 또한, 그녀가 제기하는 바다 생태계의 보존 문제는 지금의 북한사회가 요청하는 국익 차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는 바다의 미래가 해송의 고적한 발언처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런 까닭에 여성 과학자 채연경의 결의는 흥미롭다. 채연경은 해송의 바다 사랑의 마음과 후대를 생각하는 생태관에 공감한다. 연경은 해송에게 자신이 침광 시약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큰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음을 인정하며 해송에게 오히려 고마워한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과학자의 열정과 양심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간의 연구 성과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연경에게는 안타까움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다.
“내가 괴로운 건 새롭게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그 때문은 아니야. 난 나 하나의 고생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나 애 아버지와 웅이가… 날 기다리고 있어.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해할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구나.”
작품은 과학적 성과보다도 가정의 일상과 행복을 희생시키며 밤낮없이 연구하는 과학자의 일상과 가족애를 부각시킨다. 연구에 몰두하며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바다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는 새로운 시약 개발을 결심한다. 해송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연경의 애환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해조류연구사가 아니라 기계공학 연구사임을 밝힌다. 성급한 독자들은 여기에서 반전을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연경은 해송으로부터 감화 받은 바다 사랑의 마음과 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용기를 가상하게 여기면서 새로운 시약 개발을 위한 결심을 철회하지 않는다. 해송이 해조류연구사이든 기계공학연구사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들과 남편에게 보여줄 아름답고 풍요로운 바다의 보존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바다 생태계의 보존은 문제를 제기한 자의 진정성과 함께, 바다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대의로 부상하는 것이다.
채연경은 한 사람의 열정적인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어머니이다. 그러한 그녀가 해송의 아름다운 생각을 수락하며 새롭게 연구 개발의 열정을 재정비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상화된 과학자의 면모는 이 순간 가족애와 인간애, 자연에 대한 애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작품의 마무리는 연경이 아들 웅이에게 보여줄 건강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떠올리며 새로운 시약 개발을 위한 연구의 행로에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3.
작품의 묘미는 열정적인 과학자의 연구가 외화 획득과 국익이라는 막대한 성취를 낳는 노골적인 성공담으로 치닫지 않는 데 있다. 아름다운 바다의 미래를 역설하는 해송에게서 감화 받아 연구 개발한 시약 생산을 포기하는 여성과학자의 모습은 오늘의 북한사회가 직면한 생태계에 대한 인식 수준이 출발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여성 과학자의 새로운 결의와 가족에 대한 애환이 한데 녹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과 맞서서 생태계 보존이라는 문제를 놓고 벌이는 갈등과 긴장을 초점화한 것이다. 바다 자원의 남획이 우려되는, 해조류를 원료로 한 침광시약 생산을 포기하고 새로운 실험의 여정에 오른다는 이야기 설정은 아마도 작가의 상상적 일화일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시약 공장 건설이 선택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공장 건설로 인해서, 멀지 않은 미래에 바다 생태계가 피폐해질 것이라는 문제 제기에는 오늘의 북한 사회가 고심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이는 ‘한반도의 남쪽을 관통하는 대운하 건설’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윤해송의 문제 제기는 바다라는 자연 생태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바탕으로 ‘자원의 합리적 활용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데 있다. 또한, 그녀의 행동은 후대에 물려줄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어떻게 지켜내고 가꾸어야 할지를 보여준다.
작품에서 채연경의 행로는 피폐한 북한의 생태 환경을 타개하려는 지식인들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시약 생산을 위해 마음을 추스리는 연경의 모습처럼 과학자의 양심과 열정은 포기할 수 없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녀가 택한 행로는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고 황폐한 산림을 치유하기 위한 길이 아직 멀고 먼 과제임을 일러준다.
작품에서 고심하는 것은, 파괴된 자연이 먼 훗날에나 평화로움과 풍요로움을 회복할 터인데, 지금의 현실에서 횡행하는 자원의 파괴와 남획이 국익과 외화 획득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통용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보면, 자연 생태계에 대한 북한사회의 관심은 태동의 단계를 넘어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국가적 테제를 놓고 자연 보존이라는 문제를 함께 고려하기 시작한 흔적을 담고 있다.
유임하 선생님은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현대소설)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소설의 분단이야기」, 「한국문학과 불교문화」, 「북한의 문학과 문예이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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