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박지용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지난 10월 말 연변대학교와 「2015동북아협력포럼」을 진행하기 위해 연길을 다녀왔다. 안내하는 분이 조선족이었는데 “일정이 긴장돼서 거기는 방문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안내원이 “한국 드라마를 매일 보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북쪽과 말이 매우 비슷합니다.”라고 덧붙인다.
북쪽 사람들은 ‘긴장’이라는 명사를 남쪽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이 순조롭지 않을 때 주로 ‘긴장됩니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오징어나 낙지처럼 같은 대상을 두고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다 보면 충분하게 이해가 가능하다. 오히려, 남쪽처럼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이 조일 때는 ‘긴장’보다는 ‘떨었구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자주 북쪽 사람들과 교류협력 사업 협의를 위해 접촉했고, 접촉할 때마다 북쪽 사람들이 ‘긴장됩니까?’ 또는 ‘사업이 긴장된단 말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협의하고 있는 사업의 성사 여부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중에도 어색한 느낌이다.
‘긴장’과 비슷하게 사용할 때 어색한 단어가 ‘조직’이다.
남쪽과 달리 북쪽은 무슨 일을 하든지 ‘조직한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남쪽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처럼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체나 요소를 모아서 체계 있는 집단을 이룸.’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물론, 북쪽도 사회적 집단이나 기구를 짜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앞으로 할 일을 짜고 드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얼마 전 북쪽에서 유명한 모란봉 악단이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첫 해외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공연 시간 3시간 전에 돌연 취소한 적이 있다. 당시 관영 신화통신은 “공작(업무)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 연결에 원인이 있다.”라고 밝혔다. 북쪽 표현대로 하면 “조직(업무) 측면에서”라고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준비 과정에서” 또는 “추진 과정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리라.
“사업을 조직하는데 긴장됩니다.”라는 북쪽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어색하다.
그래도 말과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같은 민족으로 공동의 역사를 가지고 같은 말로 대화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분단 이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면 과연 민족이라는 매개를 가지고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요즘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젊은 세대의 옅어진 동족의식, 통일의식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남쪽 청소년들의 통일의식 조사 결과 후에는 우리 언론과 전문가들이 어김없이 걱정을 토로한다. 북쪽을 바라보는 우리 청소년들의 시선도 우리 어르신들이 같은 동포로 한 민족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와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북쪽 청소년들의 경우도 어떤 이유에서건 동포애와 민족애라는 감정만으로 남쪽과 남쪽 사람들을 생각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한다.
문제는 남북 청소년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현재와 같은 감정과 태도로는 통일을 이루어서 반드시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를 거북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일이다. 분단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도 된다고 믿게 되는 일이다. 분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현상을 변경하는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남쪽의 어른들도 청소년들의 통일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요즘은 북쪽의 어른들도 이런 문제로 ‘긴장’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것 같다.
최근 개성에서 업무 차 남북 민화협 사이에 몇 차례 접촉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음식 이야기, 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남이나 북이나 명태는 모두가 즐기는 생선이다. 그런데 한때 국민 생선이었던 명태가 동해안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해양수산부에서 「명태살리기 프로젝트」까지 진행 중이다. 며칠 전에 개성에서 같이 식사하는 중에 명태조림이 나왔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북쪽 사람들에게 명태가 잘 잡히느냐고 물어보니 북쪽도 요즘 명태가 잘 잡히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올해는 도루메기가 정말 많이 잡힌단다. 명태가 도루메기 새끼나 낙지류의 알을 먹이로 삼는데 명태가 사라지니 도루메기가 풍년일 수밖에……. 도루메기를 남쪽에서는 도루묵이라고 부른다. 그날 개성에서 만난 남북의 사람들은 금강산 삼일포에서 도루메기 구이에 막걸리를 한 잔씩 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명태살리기 프로젝트」야 말로 남북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같이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왕 명태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맥주 안주로 자주 먹는 마른 명태포를 북쪽에서는 ‘탈피’라고 부른다. 남쪽에서는 맥주 안주로 명태 새끼인 ‘노가리’를 많이 찾는데, 북쪽에서 ‘노가리’는 농사짓는 방법의 한 가지다. ‘탈피’라는 명사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같은 뜻인데 북쪽에서는 ‘껍질을 벗긴 마른 명태’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
처음 방북했을 때 북쪽 사람들이 ‘맥주 한 고뿌(Cup)에 탈피’ 달라는 말이 참 어색했었다. 된장국도 그렇다. 북쪽에서는 집에서 담근 된장을 ‘토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집에서 만들건 공장에서 만들건 다 ‘된장’이라고 부르고, ‘토장’이라는 말은 이제 잘 사용하지 않지만, 북쪽에서는 ‘된장’과 ‘토장’을 구분하는 것 같다. ‘장 담그기’는 우리 민족이 함께 가지고 있는 전통이라 메주를 쑤어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드는 것은 같은데, 된장으로 끓인 국을 북쪽은 주로 토장국이라고 한다. 오래전 첫 방북 때 단고기를 즐기지 않는 내가 된장국을 달라고 하자 잘 못 알아들었던 북쪽 안내원 선생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도 어느 해인가 “한 잔에 명태포 달랍니까?”라는 북쪽 접대원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북쪽 접대원 선생 입장에서야 남쪽 손님들을 배려해서 사용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배려보다는 같은 언어를 함께 사용하다 보니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순간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기분이 색달랐던 기억이 있다.
긴장과 조직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다르고, 노가리면 어떻고, 탈피면 어떠랴. 된장국이면 또 어떻고, 토장국이면 또 어떠랴.
서로 부대끼고 자주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될 일이다.
어색함은 한순간이다.
남북의 더 많은 사람이 자주 만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통일로 가는 길에 ‘만남’이 중요하다.
| 박지용 |
다양한 남북 사회문화교류 사업에 참여했고, 통일교육협의회,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등을 거쳐 현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