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누리판 2007년 1월
겨레말 2006


2006년 겨레말큰사전 사업을 돌아보다

1. 2006년 겨레말큰사전을 둘러싼 환경

 

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는 어느 해보다 가파른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다. 북의 미사일 발사(7월 5일)와 북한 핵실험(10월 9일)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와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미사일 발사 직후 부산에서 가진 남북 장관급 회담(7월 11일~14일)이 결렬되고, 핵실험 이후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와 남쪽의 대북지원 제재가 이어짐에 따라 남북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통일시대를 위한 노력은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되었다. 북의 큰물 피해(7월 14일~16일)에서 시작된 소통의 창구 마련과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10월 30일, 금강산)과 남북 언론인 토론회 개최(11월 29일, 금강산) 등으로 이어진 노력에 힘입어 이후 핵정국의 긴장은 평화를 향한 민족의 염원으로 가닥을 잡아갔고 이후 13개월 만에 6자회담을 재개(12월 18일~22일)로 이어졌다.

이렇듯 드센 풍랑에도 불구하고 안팎의 도움과 열의로 인해 겨레말큰사전은 대북 사회문화교류 사업 중 가장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북과 협력하여 실질적 성과를 내는 사업으로써 예정된 정기회의와 현장조사를 이어갔으며 남과 북이 공동으로 어휘를 선별하고 사전에 대한 의견을 일치시켜 나가는 성과를 이어갔다.

이는 겨레말큰사전이 통일을 근본적으로 준비하고자 하는 남과 북의 열망이 일치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하고 있다. 단순한 대북교류사업을 넘어 북과 남의 언어뿐 아니라 그동안 소홀히 취급되어온 지역어(방언)와 해외 동포의 말을 복원하는 일은 전민족적 사업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대북관계는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이 있지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지속되어야 할 사업이라는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과 북의 편찬위원들은 그 어떤 정치적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하게 우리의 할 일을 다해가자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2007년에도 성실한 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2. 2006년 전체 사업 내역

 

2006년 한 해 동안 겨레말큰사전이 이뤄낸 연구 성과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주요 편찬회의 내용

 

1) 남북 공동편찬위원회 회의 4회 개최(5차~8차 회의)

2) 남측편찬위원회 회의 5회 개최(10차~14차 회의)

3) 문헌 및 현장 조사 사업 설명회 2회 개최

4) 국내 학술 회의 1회 개최

5) 전문가 초청 회의 1회 개최

 

나.

부서별 사업 내용

 

1) 올림말부

가) ‘올림말 선정 기준’ 작성

나) ‘ㄱ~ㅅ’ 부분 올림말 선별(410,843개)

다) ‘올림말 선별 및 선별 결과물 비교·검토 방식(안)’ 작성

라) 통합 파일 구성 및 작업 매뉴얼 작성

마) 한자어 올림말 선별 용역 계약 체결 및 선별(≪표준≫ : ㄱ~ㅅ, ≪조선≫ : ㅂ~ㅅ)

 

2) 뜻풀이부

가) ≪표준국어대사전≫ 지침 분석 : 지침 집필 작업과 병행

나) 지침 대조표 작성 : 155 항목 완료(별첨1 참조)

다) 간략 지침 작성

라) 지침 예시 어휘 관리 : 지침 집필 작업과 병행

마) 품사별 어휘 목록 분류 수합 : 검색 프로그램 개발 후 시험 작업 중

 

 

3) 자료관리부

가) 2006년 문헌 어휘(시, 소설, 구비문학대계) 조사 추진

나) 남북공동편찬위원회 5차~7차 회의에 새 어휘 500개씩 총 1500여 개 제출

다) 북측에서 제출한 새 어휘 1500여 개 검토

라) 제1차 문헌조사 소위원회 개최(2006. 4. 7.)

마) 문헌 및 현장 조사 사업 설명회(2006. 6. 10.)

라) 문헌 및 현장 조사 사업 중간 결산 및 간담회(2006. 10. 28.)

마) 각종 자료집 발행

바) 자료실 도서 구입 및 관리

 

4) 자료조사부

가) 문헌 및 현장 조사 사업 설명회

나) 문헌 및 현장 조사 사업 중간 결산 및 간담회

다) 세밀화 용역 사업 지원

라) 현장 어휘 조사 사업 지원

   (1) 2006년도 현장 어휘 조사 어휘 목록 작성 및 사진 파일 수집

   (2) 현장 어휘 조사용 그림책 제작

   (3) 현장 어휘 조사 분야 및 어휘 목록 작성(2007년 이후)

마) 방언 자료 검토 및 입력

바) 지역어 조사(2007년 12월 18일 현재)

구  분

목표량(2006년)

조사된 어휘 수

지역어 조사

5,600개

8,456개

사) 현장 어휘 조사(2007년 12월 18일 현재)

구  분

목표량(2006년)

조사된 어휘 수

현장 어휘 조사

2,000개

1,429개

아) 세밀화

  - 현장 조사 질문지 작성 및 ≪겨레말큰사전≫ 삽화로 제공될 세밀화 500점 작성

  - 작성분야 : 동물과 식물

 

5) 전산부

가) 편찬실 업무 지원

나) 편찬실 서버 및 PC 관리

다) 프로그램 개발

   (1) 문헌어휘 및 현장어휘 조사를 위한 새 어휘 입력 시스템 개발

   (2) 사전카드 검색 프로그램 개발

   (3) 말뭉치 검수 프로그램 개발

   (4) 문헌어휘 및 현장 조사 어휘 원고 입력 양식 개발

   (5)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추출 프로그램 개발

   (6) 사전카드 검색 프로그램 개발

   (7) 말뭉치 검수 프로그램 개발

   (8) 구축된 말뭉치의 정리 및 검색 프로그램 개발 중

라) 올림말 선정을 위한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운영

 

6) 단일어문규범부

가) '단일어문규범작성위원회'의 회의 관련 회의록 작성

나) 단일어문규범 작성을 위한 연구 활동 및 자료 수집·정리

   (1) ‘자모의 배열순서’ 관련

   (2) ‘사이시옷’ 관련

   (3) ‘띄어쓰기’ 관련

   (4) ‘외래어 표기’ 관련

   (5) ‘언어학 용어’ 관련

   (6) ‘형태 표기’ 관련

   (7) ‘두음법칙’ 관련

   (8) 2006년도 단일어문규범부 사업 결과물 자료집 발행

 

7) 해외사무소

가) 해외 문헌조사부

   (1) 문헌 입력을 위한 목록 조사

   (2) 올림말 선정을 위한 조선족 작품과 작가 연구

   (3) 조선족 교수들과의 편찬관련 자문모임 형성

   (4) 연길 입력팀과 말뭉치 구축 용역 계약
........(조선어문잡지사 및 연변대학보사 팀과 각각 2,100만자 용역 계약)

   (5) 올림말 선정

   (6) 입력자료 검토, 보완

 

나)

해외 지역어조사부

(1) 연변지역어 기초 조사 : 올림말 800 개 목표

(2) 해외 지역어 조사자 관리

(3) 용역 결과물 관리 및 검토

 

※ 자료정리: 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한용운

 

국제학술회의

세계 사전 편찬 경험과 만나다

 
 

· 일시: 2월 6일 오후 1시
· 장소: 전국은행연합회관(명동성당 앞) 국제회의장  

· 주요참가자 : 레인하르트 하트만(영국, 버밍엄 대학 명예교수)
..클라우스-디터 루드비히(독일, 훔볼트 대학 교수),
..태평무(중국, 중앙민족대학 교수), 후쿠이레이(일본, 동경대 교수)

 

국내학술회의 전경

 

본 사업회는 오는 2월 6일 오후 1시, 전국연합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세계 사전 관련 석학들을 불러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겨레말큰사전의 내실을 기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본 회의에서, 영국의 하트만 교수가 정통 사전편찬에 관한 이야기를, 독일의 루드비히 교수는 동서독 분단기의 사전 편찬 경험을, 중국의 태평무와 일본의 후쿠이레이 교수가 주변국 연구자가 바라본 남과 북의 언어 및 자국의 사전 편찬 경험을 발표할 예정이다. ※ 글 : 누리판

 

▲ 국내학술회의 전경
 

늦봄 문익환 관련 행사

겨레말큰사전> 첫 발의자, 늦봄문익환목사 13주기 묘소참배 안내

 

 

· 행사 일시 : 2007년 1월 13일(토) 오후 3시

· 행사 장소 : 마석 모란공원

· 출발 시간 장소: 종로 기독교연합회관 앞, 12시 30분 버스 출발

  (1호선 종로5가역 2번출구, 300미터 가량 직진)

 

문익환 목사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늦봄 문익환 목사 13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문익환 목사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첫 발의자이다. 1989년 평양 방문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제안했던 것. 이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인 통일맞이는 이를 꾸준히 진행시켜 2004년 사전 편찬의향서 체결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도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은 <겨레말큰사전>의 모체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번 문익환 목사의 생과 뜻을 기념하기 위한 13주기 묘소참배 행사는 추모사를 시작으로 참석자들과 함께하는 추모노래 “그대 오르는 언덕”과 가족인사 등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 글 : 누리판

 

겨레말나들이

<제주의 말, 제주의 얼을 찾아서> 제주도 지역어조사팀과 함께

 

히도리의 바다

12월 25일 성탄절, 일행은 지역어 조사 점검 및 현장 어휘 조사를 위한 사전 자료 수집 차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조각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집들과 경계 없이 어울리는 산천을 바라보며 한 시간 가량의 비행이 끝나자, 우리를 먼저 마중 나온 것은 제주도의 바다였다.

예전 같으면 뱃길로 수일이 걸렸을 머나먼 고장 제주가 지금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 제주도에 초행길인 일행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 하도리의 바다

공항에 내리자 서울의 쌀쌀한 날씨와는 달리 제주도의 포근한 햇살이 피부에 닿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종려나무가 도로변을 채우고 있었다. 그 풍경들과 어울려 공황 주위를 활보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마치 우리가 낯선 나라로 온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제주도 말은 이곳이 분명 우리의 국토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일행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제주시에 있는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이었다. 전시품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그들만의 특이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질할 때 착용하는 '물안경'이 '눈'으로 불리는 것이 한 예이다. 이밖에도 소주를 거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소줏고리'는 '고소리'로, '멧돌'은 '레' 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비록 달리 불리지만 다른 지역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주도 말 역시 겨레말의 근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자료 수집을 끝낸 일행은 해녀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12번 국도를 타고 북제주군 하도리로 향했다. 제주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길, 차창 밖에 보이는 밭들은 가녘마다 돌담을 두르고 있었다. 아마도 바람 많은 제주에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삶의 지혜가 아닐지. 바람 많고 돌 많은 삼다(三多)의 섬 제주. 하나를 다른 하나를 보완하는 데 이용할 줄 아는 제주도 사람의 지혜가 척박한 화산의 땅을 지금의 최고의 관광지로 만든 힘일 것이다.

 

제주 해녀 박물관 전경

 

▲ 제주 해녀 박물관 전경

바다와 돌담의 어름에 낀 도로 위에서 삼십여 분을 달리자 고즈넉한 바닷가에 앉아 있는 하도리가 나타났다. 하도리는 제주 해녀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가장 많은 해녀들이 활동하는 곳이 바로 하도리다. 그래서 최근 하도리 근처에 제주해녀박물관이 건립되어 많은 이들에게 제주 해녀를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다.

해녀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져 각 전시실마다 물적삼, 미역갈퀴 등 해녀와 관련된 민속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이 박물관은 제주 해녀에 관한 짧은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는 상영관이 1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지하 1층에는 체험관을 개설하여 관람객들이 단순한 관람에서 벗어나 해녀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고인이 된 해녀들의 얼굴을 석고상으로 제작하여 전시하는 등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회견 중인 이길재 부장(왼)과 김창화 선생(오른)

박물관 관람과 자료 조사를 마친 후 일행은 관리 사무소를 방문하여 김창화 소장을 만났다.

두 손 모아 우리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한 김 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제주 해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데 제주 해녀가 다른 지역 해녀에게 영향을 줄 만큼 그 수가 많았고, 일반적으로 해녀라고 하면 제주 해녀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제주도바다가 청정해역이라 제주 해녀들이 딴 수산물들은 정말 깨끗하고 맛도 좋지요.”

▲ 회견 중인 이길재 부장(왼)과 김창화 선생(오른)

제주 해녀에 큰 자부심을 가진 김 소장은 최근 해녀의 수가 급감하고 있고 현재 활동하는 해녀들도 고령화가 진행되어 그 명맥이 끊어질까봐 염려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수익이 쏠쏠했지만 바다가 오염되면서부터 백화현상이 나타나 소득이 현저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도시화 과정에서 다른 직업들이 생기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해녀라는 직업을 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물질이 고된 작업일 뿐만 아니라 해녀가 천하다는 인식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김 소장은 이마에 파도 같은 주름을 만들며 제주 해녀에 관한 예전 제주 사람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았다.

“제주에는 해녀로 태어나는 것보다 소로 태어나는 게 더 낫다고 할 만큼 해녀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습니다. 돼지 새끼가 태어나면 반기고 딸이 태어나면 발로 찬다는 속담까지 있으니 부모 입장에서 딸자식이 위험도 따르고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해녀의 운명을 지닌다는 것이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세태로 명맥을 잃어가고 있는 제주 해녀를 위해 건립된 것이 해녀박물관이고 건립된 지 6개월 정도 지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온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덧붙여 불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겨레말큰사전》에 거는 기대를 내비쳤다.

“해녀들이 물질이 끝나고 뭍에 나와서 몸을 녹이며 불을 쬐던 곳을 불턱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젊은 해녀들은 늙은 해녀들에게 바람이 덜 부는 좋은 자리에 먼저 앉히고 그 다음에 자신들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불턱은 단순한 노동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부녀자들은 많은 담소를 나누고 여러 소문들도 공유했지요. 불턱의 예처럼 제주는 전통적으로 어업과 밭농사가 발달해서 이와 관련된 여러 말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말들이 잊혀져 갑니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언어를 광범위하게 아우를 뿐만 아니라, 이런 특수한 말들을 조사 보존하는 역할도 해주었으면 합니다.”

김 소장과 면담을 마친 후 박물관을 나와 우리는 하도리 근처에 숙소를 정했다. 다음 날 물길이 좋아 해녀들이 직접 물질을 하는 모습을 담고 싶어서였다.

26일 아침,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파도는 거칠었다. 머나먼 수평선을 끌고 온 파도는 바위에 철썩일 때마다 매서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해녀들이 잠수했다가 물위로 얼굴을 내밀 때 참았던 숨을 내쉬며 분다는 휘파람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자연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존재임을 다시 느끼며 일행은 직접 해녀들을 만나 보겠다던 계획을 접고 하도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현재 제주도 지역어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순자 선생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역어 조사 작업으로 인해 서울에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 제주도에서 직접 김순자 선생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김순자 선생은 제주도에 온 소감을 인사 대신 물은 후 지역어 조사의 진척 정도를 일행에게 말했다.

“지역어 조사를 위해서는 문헌뿐 아니라 현장에 직접 나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편찬 사업 첫해라서 부담이 되는지 아니면 욕심이 앞서서인지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순자 선생은 지역어 조사에는 표준이란 없으며 지역적 색깔을 충분히 고려해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간된 여러 서적에서 제주도 말의 'ㆍ(아래아)'발음을 일괄적으로 'ㅏ'로 표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주도 원주민에게 들어보면 'ㆍ'가 'ㅏ'와 가깝게 발음이 되는 것이 있는 반면 다르게 발음되는 것도 많습니다. 정확한 규칙이 없는 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존처럼 무조건 'ㅏ'로 발음을 표기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순자 선생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 지역어 조사 작업도 현재 상황과는 달리 조직과 체계가 정비되어 내년에는 더 활발하게 진행되리라 예상했다.

 

김순자 선생

 

▲ 김순자 선생

김순자 선생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겨레말의 보물 창고 같은 섬 제주도. 그렇지만 최근 제주도는 국제화 시대로 인해 분명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이 되었고 이에 따라 영어를 공용어로 추진한다는 계획이 이미 시도되고 있다. 우리의 말을 지키는 일이 우리의 얼과 혼을 지키는 일임은 당연한 사실이다. 제주도를 떠나며 아직 초록빛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의 바다처럼 오염되지 않고 순수하게 간직해야 할 겨레말을 되새겨보았다.

※ 글 : 정영효 (겨레말큰사전 자료조사부 연구원)


<말에 얽힌 사연> 흔들바람

 

이영주(시인)

 

창문이 흔들린다. 오늘처럼 추운 새벽에는 이음새가 빠져나갈 것처럼 격하게 부는 바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다. 일그러진 이마와 어둑한 골목을 돌아 나오느라 구부러진 귀, 둥그렇게 말렸다가 펴지는 주름진 입술 같은 것들. 그러나 바람은 잠시 창문을 붙들고 흔들다가 사라진다. 이 바람은 ‘흔들바람’일 것이다. 초속 8.0~10.7미터로 불며, 작은 나무가 흔들리고, 바다에서는 작은 물결이 이는. 삶이 자연과 닮아 있다면 누구에게나 바람에게 휩쓸린 공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스무 살이 그러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기억을 거꾸로 반추하고 싶다. 나는 그늘 없는 마당에서 뜨거운 태양의 혀에 시달리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졌고 응급실에서 링거 병을 꽂은 채 그에게 달려갔고 그는 텅 빈 눈으로 이런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

▲ 이영주(시인)

“그건 단지 ‘흔들바람’ 같은 거야.”

나는 초속 8~10미터의 아찔함 속에서 생각보다 강한 다리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질풍(疾風) 같은 거지. 너는 지금 재빠르게 지나가는, 어떤 바람의 속도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야. 너는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질(疾)의 ‘빠르다’의 뜻에만 방점을 두었지만, 나에게 질(疾)은 ‘병적이다, 괴로워하다, 앓다’라는 뜻으로 느껴졌다는 것을 알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스무 살의 어떤 속도는 단어 하나 때문에 점점 더 빨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열망을 나는 잘 안다. 단순히 그 존재가 나를 알아채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에서 출발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의 암시와 착각에 의해 거대한 폭풍이 된다. ‘의미 있는 존재’가 조금씩 폭풍의 핵을 만들면서 ‘특별한 존재’로 바람을 형성하고,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면서 ‘유일한 존재’로 지구의 어느 반도를 휩쓸어버리려는 자연의 포악함으로 귀착되는, 감정의 운동.

나는 절제를 모르는 스무 살이었고 눈알이 까만 거미처럼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포획하려 했다. 그때 나는 풍물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빠져 들어갔으며 남원의 어느 전수관에서 만난 사부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그를 보는 순간 풍물보다 더 깊은 소유욕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키가 작고 얼굴이 새까만 그는 장고를 매면 딱 어울릴 인상이었다. 그는 내게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풍물 가락처럼 친해질수록 어려운 선배였고 가락보를 빠져나가려는 음률처럼 논두렁을 걸어 풍경의 끝으로 사라지는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낡은 가방에 대금과 장구채를 넣어 아침마다 어딘가를 다녀왔던 그가 풍경의 끝에서 옅은 아지랑이처럼 돌아올 때마다 나는 생목이 올랐다. 민들레가 그려진 보자기 같은 무명천 가방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근대적인 환경에 침윤당한 도시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결정적인 아이콘처럼 이 가방이 떠오른다는 것. 이 가방은 도대체 그를 얼마나 길 위를 서성이며 떠돌게 했던 것일까. 가방 속의 사물들은 얼마나 그의 발목을 가볍게 했을까.

스무 살. 그러니까 소녀를 벗어나 처녀의 계단으로 막 오르고 있을 무렵. 그때 만난 풍물은 나에게 섣부른 희망과 비전을 제시했다. 이렇게 가락에 취해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 길 위를 떠돌고 벼가 익은 들판에 서서 가락을 읊고 두들기며 자연의 정석 같은 풍경의 한 공간이 되리라. 그와 나는 그렇게 좁고 가파른 어떤 길목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원인 불명의 열병에 사로잡혀 ‘꾼’으로서의 미래를 꿈꾸었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막연한 공상이란 인간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 걸까.

공부도 하지 않고 방학 내내 전수관에만 붙어살며 뙤약볕 아래 설장고를 배웠다. 밤이면 모기에 뜯기며 가락보를 외웠고 아침이면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손장단을 연습했다. 어딘가를 다녀오는 그를 기다리며 전수관 문 앞에서 음표를 그렸다. 함께 머물던 친구는 내 곁에 앉아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들었다. 그녀도 나처럼, 열병을 앓는 중이었다. 사회의 틀에 맞추어 살아왔던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설계도에 미치도록 흥분했고 과도하게 열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폭풍을 만들기 위해 그를 괴롭혔다. 풍물과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협박했으며 아침마다 그가 다녀오는 지평선 너머의 공간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아마 그때 나의 얼굴은 부나방처럼 뜨겁고 빨갛고 번들거렸을 것이다.

그는 어느 새벽, 나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무명천 가방을 매고. 텅 빈 집들, 수북하게 자란 수풀들, 닦여지지 않은 길을 지나 무성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낡은 지붕 앞에서 그는 멈췄다.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낡은 문짝이 삐걱거리고 있었고 좁은 마당에는 털 빠진 늙은 개 한 마리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함.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정적. 그리고 그 정적을 더 부각시키는 새의 울음소리.

그가 문 앞에서 선생님, 하고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르자 창백한 얼굴 하나가 낡은 문을 열고 나타났다. 희끗희끗한 옆머리, 이마에 패인 주름, 차가운 콧날, 단정하게 쪽진 머리. 그리고 단호한 표정의 ‘선생님’은 그를 보자 환히 웃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상하고 기묘한 미소였다.

그는 아침마다 혼자 사시는 선생님의 집에서 소리와 대금을 배웠다.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 먼 길을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찾는 그의 열정은 무엇이었을까. 도시의 네온간판과 한밤의 경적소리, 쉽게 꺼지지 않는 건물의 불빛들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비현실적인 섬 같은 그곳은 어떤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친구들과 다글다글 붙어서 가락을 치고 뛰고 놀고 했던 전수관은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의 본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길 위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이상하고 기묘한 웃음 하나를 갖기 위해 평생 고요와 정적 속을 돌아다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내 웃음이 아니었다.

스물한 살. 나는 마지막 전수를 위해 남원에 왔다. 그늘 없는 마당에서 일사병에 걸렸고, 그것은 신호와도 같았다. 응급실에 누워 끝없는 꿈속을 헤매면서 나는 사라져가는 폭풍의 꼬리를 보았다. 꼬리는 길고 푸르렀으며 서늘했다. 내 다리는 한곳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누렇게 뜬 얼굴로 실패감과 자괴감에 빠져 그를 마주볼 수 없었을 때 그는 따뜻하게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건 단지 ‘흔들바람’ 같은 거야.”

누군가를 사랑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라고 대답하겠지만 단순히 그, 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 길에 섰던 나의 스무 살이었다고, 그건 단지 흔들바람, 초속 8.0~10.7미터로 불며 작은 나무가 흔들리고 바다에서는 작은 물결이 이는, 바람의 한 종류였다고 말할 것이다. 내 사랑은 바람의 빠르고 거센 표정 하나였다고.   

※ 글 : 이영주: 1974년 출생. 2000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남북의 언어> 사투리 놀림, 알고 보니 편견일 뿐

 

모순영

 

수도 서울로부터 한참 남쪽으로 치닫다 바다와 딱 맞닥뜨리는 고장에서 태어난 나는 말끝마다 붙어나오는 사투리 때문에 한동안 적잖은 놀림을 당해야 했다. 지금도 가끔 고향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라치면 불쑥불쑥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제풀에 놀라기도 한다. 허허, 사투리가 내심 억압으로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투리를 쓰면 무슨 국물 묻은 옷을 입고 다니는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학창시절엔 미팅을 나가도 입을 열지 말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들어야 했으며, 커피숍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목소리를 낮추라는 핀잔을 듣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몇 번 여차저차 하여 북에 다녀오게 된 나는 사투리가 사실은 서로 선 긋기에서 비롯된 편견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 모순영

“울 어무이 가차운 데 갔응께로 인자 금시 올 끼구마는.”

내가 서울 친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뱉었다 치자, 그네들은 아마 자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표준어를 쓰는 자기들이 보기엔 이 촌스럼의 경지가 개그의 수준과 엇비슷할 것이요, 종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르다고 놀리는데, 그것이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태도일까. 이쯤 되면 나에게 표준어의 강박은 폭력에 가깝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실상을 짚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지난해 민족작가대회 실무진으로 평양에 갔을 때 참관지로 이동할 일이 있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을 때다.

“가차운 데 있습메다.”

우리는 ‘가깝다’는 말을 쓰지만 북에서는 ‘가찹다’는 말을 쓰고 있었다. 이런! 고거 저짝 우리들 고향에서 사돈에 팔촌까지 무디기로 쓰는 말이다카이. 억수로 반가웠다.

학생소년궁전에 가서는 공연 시작 시간이 빠듯하게 닥쳐서야 들어가야 했다. 역시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하고도 잘생긴 북쪽 젊은 친구의 말,

“인차 막 올릴 예정입메다.”

오! ‘인차!’ 고향에서도 ‘인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북에서의 ‘인차’는 ‘곧’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시간상 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남쪽 고향에서 ‘인자’는 ‘곧’이란 뜻과 함께 ‘이제’란 뜻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신기했다. 사전에서는 대부분의 북쪽 말을 강원도 일부와 북에서 쓰는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표준어 사용지역을 자칭하는 중부를 건너뛰어 남단의 부산 경남 일대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표준어 정책이 강물처럼 흐르는 말의 공간성을 토막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뿐인가. 내가 어머니를 ‘어무이’라고 부른다거나 할머니를 ‘할매’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나의 교양 있는 서울 친구들은 킥킥거릴 테지만, 북에서 ‘오마니’를 문화어로 지정하여 부르는 것을 중심에 두고 본다면 북에서는 오히려 ‘어머니’가 더 촌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표준어는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언어가 그 문화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얼토당토않은 처사는 여기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문화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삼을 터이기 때문이다. 표준어가 비표준어를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은 분명 그에 반하는 것이다. 아, 이것을 이렇듯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니! 역시나 우리에게 통일은 더 많은 것을 얻게 할 것임에 분명하다.

※ 글 :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사무처 총무과장)

 

겨레말소식

제9차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정기회의 안내

 

 

 

·  일시: 2007년 2월 27일(화)~3월 1일(목)
·  장소: 금강산

 

2007년의 첫 정기회의인 제9차 회의가 2월 27일(화)~3월 1일(목)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제9차 회의에서는 ‘ㅅ 부분 올림말’, ‘뜻풀이 요강’, ‘새말 조사’, ‘어문규범’등이 논의 된다. 또한 2006년 한 해 동안 논의된 ‘자모 배열순서와 이름, 띄어쓰기, 사이시옷, 형태 표기, 문법 용어, 외래어 표기’ 등을 중심으로 합의에 이른 것과 이르지 못한 것을 정리하고 두음법칙에 대해 재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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