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누리판 2007년 5월호

겨레말소식


사업회법 공포 및 경과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공포

남북교류 민간단체 중 법이 규정하고 지원하는 최초의 사업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2007년 4월 2일 임시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동안 사단법인으로 운영되어 온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특수법인으로 전환됩니다.

이로써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법의 지원을 받는 최초의 남북 민간교류이자 미래의 통일 국가를 준비하는 상징적인 사업이 되었습니다.

 

 분단 이후, 남북 민간교류에 있어서 단일 사업을 규정하고 지원하는 최초의 법안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남북 교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은 남북 교류에 있어 단일 사업을 법으로 규정하고 지원하는 첫 법안이라는 점에서 많은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겨레말큰사전이 남북 민간에서 시작되었지만 남북 장관급회담을 거치면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2005년 2월 19일 남북의 사전편찬 전문가들이 금강산에 모여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결성식을 가졌을 때, 일부에서는 ‘한글 창제 이래 대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과 인력의 안정적인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법안의 통과로 인해 그러한 불안정성이 해소됨으로써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민족공통어의 집대성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의 신호탄!

분단 이후 그 생활 방식의 차이로 인해 남과 북의 어휘는 많은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입니다. 그러나 <겨레말큰사전>은 단순한 남과 북의 어휘 통합이 아니라 지역어와 해외 동포들이 사용하는 어휘까지 발굴하여 살려내는 ‘민족공통어 사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 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아울러 통일의 기틀을 닦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업회법 제정 경과

· 2005년 10월 사업회법 입법을 위한 국회 공청회 개최

· 2006년 2월 장영달 의원 등 41인 발의

· 2006년 9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상정

· 2007년 3월 30일 제265회 국회(임시회) 제4차 전체회의 상정/의결

· 2007년 4월 2일 본회의 심의 수정가결

· 2007년 4월 27일 법률 제8392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공포

 


사업회법 공포 관련 특별 대담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공포와 <겨레말큰사전>

   -  정도상 상임이사를 만나다

 

글 : 정도상(겨레말큰사전 상임이사, 소설가)

 

지난 4월 27일 사업회법이 공포되었다. 축하한다. 이번 법안 통과의 의의를 말해달라.

 

무엇보다도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경과야 어찌 되었든,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법에 의해 지원받는 최초의 남북 민간의 교류협력 사업이 되었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동안 남북 교류 사업이 국내외 정세에 의해 심하게 영향받아왔던 점을 감안한다면, 법의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법의 발의자인 장영달 의원의 노력과 이와 관련된 국회의원들의 합치된 노력의 결과였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인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의 압도적 다수가 법안에 찬성해준 점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은 이사장님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아가 민족 정체성의 생명 기호인 ‘말과 글’의 발전에 모두들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작가에게 있어 제1의 조국은 언어이다.” 라는 라파엘 콩피앙의 말에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통일이란 “모국어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라고 주장해왔다.

 

남과 북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모국어공동체가 사실상 분단체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 늘 주목해왔다. 그로인해 재외동포사회는 친남과 친북으로 분열되어 다투고 있는 형편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모국어공동체의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모국어의 속살을 겨레 앞에 순정하게 내보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1989년 문익환 목사 평양 방문시 겨레말큰사전이 처음 제안되었다. 추진 과정에 나름대로

......우여곡절과 남다른 이야기가 있으면 이야기해달라.

 

1989년, 당시 현행법을 어긴 방북은 매우 위중하게 다뤄졌다. 놀라운 것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문익환 목사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통일국어대사전>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평소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의 친구였다. 그것만으로도 문익환 목사는 모국어의 속살이 지닌 역사성과 문화의 총체를 알고 있었다. '릴케시집'을 번역하여 출간했고 이어서 첫시집을 상재한 것은 윤동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세월이 흘러도 육신적으로 각별했기 때문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시인이었다. 시인이었기에 언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고 본다. 그것을 모르면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말의 통일에 대해 제안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다음부터는 줄곧 우여곡절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웃음) 최초로 제안하고 이에 동의했던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후 통일맞이 사무처장의 자격으로 북 당국에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안하기도 했고 박용길 장로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2004년 4월에 중국 연길에서 남의 통일맞이와 북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의향서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남북간의 정세가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의향서를 체결하고 거의 1년 뒤에야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남북공동편찬위원회를 결성하고 편찬 사업이 본 궤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남다른 이야기랄 것은 없다. 북도 이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2년 가까이 사업을 진행해왔다. 현재 사업 진행은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나?.

 

2005년 2월부터 시작되었으나 사무실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6년 2월부터이다. 지난 4월 28일의 회의까지 공동편찬회의를 아홉 차례 가졌다. 사전 편찬 공정으로 보자면 20%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전 편찬 작업은 세부적으로 ‘올림말 선정’, ‘새 어휘 조사’, ‘뜻풀이’, ‘어문규범’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올림말은 현재 ‘ㅂ’ 부분 어휘까지 선별 작업을 진행했고 새 어휘 조사 작업은 3000여 개의 새 어휘를 조사한 상태다.  아울러 도별로 남과 북의 지역어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현재 남측의 경우 8,000여 개의 새 어휘를 확보한 상태다. 뜻풀이 작업은 얼마전 9차 회의부터 합의된 올림말을 뜻풀이하기 위한 기준을 각 측이 작성하여 검토하는 중이다.

어문 규범 작업은 현재, 올림말의 배열, 두음법칙, 사이시옷, 문법 용어, 문법형태 표기, 외래어 표기 등에 대한 각 측의 의견 제시가 있었고, 개별 항목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을 것도 같지만, 양 측이 모두 의지를 가지고 있어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남과 북이 함께 진행하는 만큼 북측에서도 진척이 있을 것 같다.

 

남과 북이 동시에 편찬 작업을 하고 있다. 회의 때마다 서로의 성과를 교환해나가야 하므로 남측의 진행 상황과 거의 일치할 수밖에 없다. 북의 편찬위원들과 편찬원들의 열정에 찬 모습에서 이 사업이 잘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아무래도 60년을 다른 제도 아래에서 생활해왔다. 어휘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전 편찬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뭐니뭐니해도, 어문규범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두음법칙 같은 것이다. 우선 사전 편제에서 자모의 배열순서가 다르고 사이시옷, 띄어쓰기, 형태의 표기, 언어학 용어, 외래어 표기법 등이 다르다. 특히 ‘두음법칙’은 남북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규정으로 어느 한 쪽으로 단일화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이다. 사안의 중요성만큼 남과 북은 두음법칙의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듭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노력중이다.

남북 어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다만,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로 ‘밥공장’, ‘동요분자’처럼 이념과 제도에 의한 차이와 노크/손기척 등의 말다듬기에 의한 차이 등을 들 수 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통일을 대비해서라도 남북의 언어 이질화가 더 깊어지기 전에 ≪겨레말큰사전≫의 편찬과 같은 언어 통일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겨레말큰사전>이 남쪽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쪽의 <조선말대사전>을 합한

......것은 아니다. 해외 동포가 사용하는 어휘까지 포괄한다.

 

모국어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경이 근대가 인위적으로 구획한 경계라면, 같은 말을 사용하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삶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해외동포들이 사용하는 말을 조사하고 어휘를 수집해야 하는 이유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지역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누천년에 걸쳐 삶의 심연이 표현되고 있는 어휘를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하위언어로 포함시켜 왔는데, 이 점은 되도록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표준에 의해 비표준으로 밀려났던 지역어들을 살려내는 것이 우리말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을 발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등 재외 동포들이 사용하는 우리말 조사, 남북 각각 지역어 조사 용역팀을 운용하여 생동하는 입말 조사, 현장 어휘 조사, 문헌 어휘 조사를 하고 있다. 특히 재외 동포들이 비록 일부이지만 우리말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점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포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재외동포들의 경우 남과 북 양쪽 문법과 어휘에서 많은 혼동을 겪고 있다. 특히, 조선족 동포의 경우, 국어 관련 교재는 북쪽의 것을 사용하나 문화생활은 남쪽의 것으로 하고 있다. 이런 혼돈으로 인해,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가장 독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재외동포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실용적인 측면뿐 아니라 문화정체성의 근간인 말의 외형을 확장함으로써 그동안 남과 북의 중앙으로 한정되었던 문화적 양태를 확장하고 민족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법안이 통과되고 가장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사단법인 체제로 꾸려져 왔다. 그러나 국회에서 여야가 모두 합의한 대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민족적 사업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번 법안 통과는 민간의 의지를 당국이 받아 안아 지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잘 알다시피 사전 편찬은 상당한 인력과 시간, 그에 따른 예산이 투여되는 작업이다. 진행의 안정성이 담보되었다는 점이 가장 달라진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대북 관련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일각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대북 사회문화교류 중 가장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특히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는 사업이 아니라 그 시작과 진행 과정이 모두 남과 북의 합의에 의해 공동으로 실시되고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도 여타 사업과 구분될 것이다.

겨레말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비정치적이면서도 당위적 측면의 교류를 실행하는 사업이며 <겨레말큰사전>에 대한 남과 북의 이해가 오차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치 교류 분야에서 가장 성과를 내는 사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북교류가 계량적인 수치로 환산해내기 힘들며, 그 효과 또한 계측이 불가능하지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편찬 일정에 따라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겨레말큰사전은 ‘미래’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어쩌면 통일의 미래가 겨레말큰사전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사업회법 통과에 대한 감회와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무엇보다도 상임이사라는 직책에 앞서 글을 쓰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일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겨레말큰사전을 통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사전의 전자화 등도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단순한 전자화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의 총체로서 전자화를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법안에도 명시된 것처럼 남북 공동의 사전편찬실인 ‘겨레말의 집’을 건립할 계획이다. ‘겨레말의 집’은 우선 사전편찬 작업을 하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30만 개 이상의 어휘를 남과 북이 합의해나가는 실질적인 공정이 남아 있다. 매일매일 수백 개의 어휘를 공동으로 검토하려면 공동의 사전편찬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거기에 보태어 남과 북이 어떠한 타산적 견해도 갖지 않고 공통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말이라는 점에서 분단시대에 ‘겨레말의 집’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며, 무형의 가장 위대한 유산을 유형의 유산으로 치환해낸다는 점에서 ‘겨레말의 집’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북과 합의가 되는 대로 개성 일대에 겨레말을 쓰는 사람들이 겨레말의 큰 산 아래서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중요한 것은 이 사업 자체가 ‘문화’라는 점이다. 문화가 생성되고 창조되는 유무형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 가려고 한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개소식 안내

 

오래 준비해 온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통일을 바라고 우리말을 아끼는 많은 분들의 도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에 즈음하여 겨레말큰사전이 새로운 첫 발을 내딛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 일시 : 2007년 6월 8일(금) 오후 5시

  · 장소 : 서울 공덕동 지방재정회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내

  · (지하철 5호선, 6호선 공덕역 4번 출구 직진 50미터 신한은행 건물 12층)

겨레말큰사전 이렇게 만듭니다

남북의 외래어 표기 통일에서 제기되는 몇 문제

글 : 임보선 (겨레말큰사전 단일어문규범부 연구부장)

 

잘 알려졌다시피 남북의 어문규범은 그 체제나 세부 규정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남북의 언어가 이질화한 데에는 사회·정치 체제나 언어 정책상의 차이 등에 말미암은 바도 있지만 어문규범의 차이가 가장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 문제는 남북의 어문규범을 통일시킴으로써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어문규범에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가운데 남북의 외래어 표기를 통일하는 데서 제기되는 몇 문제 살펴보기로 하겠다.

외래어는 고유어와 상대되는 말로, 외국어 중에 국어에 동화되어 국어로 쓰이는 어휘를 이른다. 한자어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나 통상적으로 외래어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외래어를 남북 모두 한글로 적는 방법을 규범으로 마련해 두고 있다. 남의 ‘외래어 표기법’(1986), 북의 ‘조선어 외래어 표기법’(1956)과 ‘고친 외래어 표기’(1984)가 그것이다. 그런데 북은 남과는 달리 외국어를 한글로 적는 방법으로 ‘외국말 적기법’(1985)을 두고 있다. 외국의 인명, 지명과 국어에 동화가 덜 되거나 되지 않은 어휘를 외국어로 보고 이를 적는 방법으로 ‘외국말 적기법’을 별도로 규정한 것이다. 규정에서 남북의 이러한 차이는 남에서는 외래어를 넓은 의미로 해석한 반면, 북은 외래어를 좁은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외래어를 표기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남북이 모두 같다. 남이나 북이나 외래어 표기에서 원지음을 고려하면서 국어의 특성도 중시하며, 관용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래어 표기 원칙상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외래어 표기 실태를 보면 그 표기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북의 현행 어문규범이 반영되어 있는 ≪표준국어대사전≫(1999)과 ≪조선말대사전≫(1992)에서 의미나 쓰임이 같은 외래어를 조사해 보면 표기가 같은 것과 다른 것의 비율이 대략 반반 정도로 나타난다.

 남북의 표기가 같은 외래어는 표기와 원어 정보를 기본 지표로 하여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표기와 원어 정보가 모두 같은 외래어이고, 두 번째 부류는 표기는 같으나 원어 정보가 다른 외래어이다.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예로는 ‘기타(guitar), 로프(rope), 스타일(style), 아스팔트(asphalt), 잉크(ink), 텐트(tent), 히터(heater)’ 등이 있다. 이 부류는 이미 남북의 외래어 표기가 같은 상태이므로 특별한 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이 남북의 표기를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들이다.

 

두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예로는 ‘멜로디(영어, melody)/멜로디(독일어, Melodie), 발라드(프랑스어, ballade)/발라드(이탈리아어, ballad), 헤로인(영어, heroine)/헤로인(라틴어, Heroin), 호크(네덜란드어, ←haak)/호크(영어, ←hook)[* ‘빗금(/)’ 앞의 것은 남의 표기, 뒤의 것은 북의 표기임. 이하 같음.] 등이 있다. 이 부류도, 사전 편찬에서 원어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으나, 남북의 외래어 표기가 같으므로 큰 무리없이 단일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남북이 표기가 같은 외래어는 큰 어려움 없이 단일화를 이룰 수 있는 대상이다.

남북의 외래어 표기를 단일화하는 작업에서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로 다루어질 것은 표기가 다른 외래어들이다. 남북의 표기가 다른 외래어도 표기와 원어 정보를 기본 지표로 하여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표기가 다르고 원어 정보가 같은 외래어이고, 두 번째 부류는 표기와 원어 정보가 모두 다른 외래어이다. 여기에서는 단일화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복수 표기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부류는 대체로 남북 외래어 표기 규정의 세칙 차이나 남북이 인정하는 관용 외래어의 차이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밖에도 첫 번째 부류에서 남북의 외래어 표기에 차이를 가져온 요인을 더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두 가지 경우로 한정해서 남북의 외래어 표기 단일화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세칙의 차이란 말 그대로 외래어에 적용되는 외래어 표기법의 세부 규정이 달라서 나타나는 차이를 이른다. ‘러닝/런닝(영어, running), 로봇/로보트(영어, robot), 뉘앙스/뉴앙스(프랑스어, nuance), 테이프/테프(영어, tape), 텔레비전/텔레비죤(영어, television), 플래시/플라쉬(영어, flash)’ 등이 세칙의 차이로 나타난 외래어 표기이다. 이처럼 단순히 세칙의 차이로 나타나는 외래어 표기는 남북 외래어 표기 규정의 세칙을 통일함으로써 남북의 어느 한쪽 또는 제3의 표기로 단일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남북 외래어 표기 규정의 복잡성과 난해함을 감안할 때 자음이나 모음의 표기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대원칙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외래어의 개별 단어를 낱낱이 대비하여 각각의 단어를 알맞게 표기하는 방법을 취해 단일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관용 외래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 외래어 가운데 오랫동안 쓰여 아주 굳어진 외래어를 말하는데, 그 표기는 현행 외래어 표기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남북의 관용 외래어에는 표기에서 ‘껌, 파마’처럼 같은 것도 있지만, ‘라디오/라지오, 마라톤/마라손’처럼 서로 다른 것도 있다. 그러면 남북 간에 차이가 나는 관용 외래어 표기는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 것인가? 남북의 언어적 특수성을 생각하면 이 문제의 답을 찾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어문규범은 원칙적으로 복수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복수의 형태를 인정할 뿐이다. 이를테면 표준어 규정에서 복수 표준어, 띄어쓰기에서 보조 용언의 띄어쓰기가 복수의 형태를 인정하는 경우들이다. 외래어 표기에서도 복수 표기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남에서 사용 분야에 따른 관용을 인정하여 ‘cut’을 ‘컷’(영화 따위의 장면이나 작은 삽화를 뜻하는 말)이나 ‘커트’(머리를 자르거나 탁구 등의 운동에서 공을 깎아 치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남이나 북이나 외래어 표기에서 관용을 인정하여 복수 표기를 하는 범위에 사용 지역의 차이는 들어 있지 않다.

외래어 표기법은 표기를 통일하고 어형을 고정하여 외래어 표기의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문자생활 또는 의사소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규정인 만큼, 남북의 외래어 표기를 통일하는 데서 가장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은 표기를 한쪽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라는 지역에서 널리 그리고 다르게 쓰이는 관용 외래어 표기를 통일하는 일에서는 이상만 좇을 수는 없고 현실적인 문제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남북의 어느 한쪽을 가려잡아 단일화한 관용 외래어 표기는 남 또는 북의 언중들에게 주는 거부감이 클 것이며, 남북의 언어 현실과 크게 어긋나 결국 혼란만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의 관용 외래어 표기에 대해서는 표기의 단일화이라는 이상적인 방향의 방안만이 아니라 남북의 언어 현실을 받아들여 복수 표기를 인정하는 방안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부류의 표기와 원어 정보가 모두 다른 외래어는 일반적으로 남북이 받아들인 원지어가 달라서 나타난는 차이이다. ‘라켓(영어, racket)/라케트(독일어, Rakett), 샴페인(영어, champagne)/샴팡(프랑스어, champagne), 에너지(영어, energy)/에네르기(독일어, Energie)’ 등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남과 북의 표기와 원어 정보가 다른 상당수의 예가 남은 영어권에서 받아들인 외래어이고 북은 러시아어권에서 받아들인 외래어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이러한 차이는 남과 북의 사회·문화·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 나타난 것이어서 현 단계에서 어느 한쪽을 가려잡아 단일화하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남에서 영어로부터 받는 영향과 견주어 북에서 러시아어로부터 받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북의 외래어 실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어 외래어 표기법’(1956)에서는 외래어를 러시아어 발음에 근거하여 표기하였다. 이후 ‘고친 외래어 표기’(1984)에서 김정일이 “외래어를 표기할 때에는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인가를 알아보고 그 나라 사람들이 발음하는 대로 표기하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라는 지적에 따라 북의 외래어 표기가 원음주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에는 ‘트랙터/뜨락또르, 매트리스/마다라스, 모터사이클/모터찌클, 모티브/모찌브, 불도저/불도젤, 세미나/쎄미나르, 캐비닛/까비네트’처럼 러시아어 계통의 외래어가 상당수 있다. 또한 북에는 ‘플라스~쁠라스, 마이나스~미누스, 케블~까벨’과 같이 의미나 쓰임이 같은 외래어가 함께 쓰이는 경우가 있다. 한쪽만을 써도 될 일인데 원어를 달리하는 외래어를 함께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은 규정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계통의 외래어보다 앞선 시기에 썼던 러시아어 계통의 외래어를 북의 언중들이 아직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두 번째 부류도 관용 외래어 표기와 마찬가지로 단일화 작업에서 표기 통일이라는 이상적인 방향만을 좇기는 어려우며 복수 표기를 인정하는 현실적인 방안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남북의 언어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물론 어문규범이 통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통일 시대를 대비하여 남북의 언어를 통일하는 데는 어문규범의 통일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을 비롯하여 남북의 어문규범은 각기 다른 체제의 소산이어서 이의 단일화를 이루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론적으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대두되리라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최선의 방안뿐만 아니라 차선의 방안도 놓고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남북 어문규범의 단일화는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을 계기로 마련될 남북 단일어문규범은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에 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단일어문규범은 단계적인 수정, 보충 과정을 거쳐 통일 시대의 민족어 통일규범이 탄생하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겨레말큰사전》에 수록될 새 어휘 기술의 몇몇 문제점

글 :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자료조사부 연구부장)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는 지역어 및 현장 어휘 조사에서 남과 북이 각각 40,000여 개의 새 어휘를 조사하고, 남과 북이 조사한 각각 조사한 80,000여 개의 어휘 중에서 40,000여 개를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로 수록하기로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 소창진평(小倉進平)이 한반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방언 조사를 실시한 이후, 방언 조사는 남측은 남측대로 북측은 북측대로 이루어져 온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지역어 및 현장 어휘 조사는 남과 북이 같은 목적과 같은 취지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이번 조사는 남과 북이 공히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의 부록 ‘방언’에 올라 있지 않은 방언형이나 가능한 한 기존의 방언사전류에 올라 있지 않은 방언형을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역사의 한 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 민족의 언어 유산을 발굴하여 채록하고, 보존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남과 북이 조사한 새 어휘를 사전에 수록하고 기술함에 있어서 몇몇 문제점들이 예측된다.

첫째, 북측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인한 분포 지역 표시의 문제이다. 북측의 행정구역 개편은 1946년 평양시를 평안남도에서 분리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평북과 함남의 일부를 병합하여 자강도, 함남과 함북의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량강도를 신설한다. 또한 황해도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된다. 행정구역 개편 이후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의 부록 ‘방언’의 분포 지역 표시에서 ‘량강, 자강, 황남, 황북’ 등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 표시는 2006년 말에 간행된 《조선말대사전》 증보판 1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말대사전》 부록 ‘방언’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두거리 [명] 딱따구리. (자강, 평북)

멱장귀 [명] 개구리. (황남)

해깝다 [형] 가볍다. (량강)

홀라마시다 [동] 까불다. (황북) 등

 

현재 《겨레말큰사전》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 부록 ‘방언’에 등재된 올림말 중에서 음운론적 이형태를 제외한 모든 방언형들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전에 수록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지역 표시가 ‘함북, 함남, 황해, 평북’ 등으로 지역 표시가 된 방언형들 중에서 《조선말대사전》의 부록 ‘방언’에 수록되지 않았거나, 동일 방언형이 ‘함북, 량강’, ‘평북, 자강’, ‘황남’, ‘황북’, ‘량강’, ‘자강’ 등으로 분포 지역이 제시된 방언형들의 기술이다. 가령 ‘가루’의 방언형 ‘갉’의 분포 지역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평북’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북측의 행정구역상으로 볼 때, ‘갉’이 ‘평북’에 해당하는 방언형인지 아니면 ‘자강’에 해당하는 방언형인지 아니면 ‘평북’과 ‘자강’ 두 지역 모두에 해당하는 방언형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겨레말큰사전》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평북, 함남, 함북, 함경, 평안, 황해’ 등으로 분포 지역이 제시된 방언형들에 대해서 각각 ‘평북, 자강’, ‘함남, 량강’, ‘함북, 량강’, ‘함경, 량강’, ‘평안, 자강’, ‘황남, 황북’과 같이 분포 지역을 병기하는 방안([1안])과 《조선말대사전》의 부록 ‘방언’에 ‘평북, 자강’, ‘함남, 량강’, ‘함북, 량강’, ‘함경, 량강’, ‘평안, 자강’, ‘황남, 황북’, ‘자강’, ‘량강’ 등으로 분포지역이 제시된 방언형들에 대해서 각각 ‘평북’, ‘함남’, ‘함북’, ‘함경’, ‘평안’, ‘황해’, ‘평북’, ‘함남이나 함북’과 같이 북측의 개편된 행정구역을 고려하지 않고 1946년 이전의 행정구역 명칭인 ‘평남, 평북, 함남, 함북, 황해, 강원’ 등으로만 분포 지역을 표시하는 방안이다([2안]).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안]

너버구 명방‘너비1’의 방언(평북). → 너버구 명방‘ ‘너비1’의 방언(평북, 자강).

너무사나 부방 ‘너무나’의 방언(함남). → 너무사나 부방 ‘너무나’의 방언(함남, 량강).

냥창 명방‘벼랑1’의 방언(함북). → 냥창 명방‘벼랑1’의 방언(함북, 량강).

 

[2안]

낭기[명] 나무. (함경, 평안, 량강, 강원, 충남, 전남) → 낭기[명] 나무. (함경, 평안, 강원, 충남, 전남

낭그하다[동] 나무하다. (평북, 자강, 함경, 량강, 강원) → 낭그하다[동] 나무하다. (평북, 함경, 강원)

 

현실적으로 북측에서 [2안]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안]이 채택될 경우 북측의 개편된 행적구역 명칭이 남측의 일반 사전 이용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둘째, 남측에서 방언형으로 인식되는 어휘들이 북측에서는 《조선말대사전》에 문화어로 등재된 경우이다. 아래의 예들은 《조선말대사전》에 문화어로 등재되어 있으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방언으로 처리되었거나 지역어 조사에서 방언형으로 보고된 어휘들이다.

 

가리국(갈비탕)

가리찜(갈비찜)

가슴띠(브래지어)

걸구(걸귀02[2])

검부락지(검부러기)

검불나무(검부나무)

고물돛(고물대)

깍지광(여물간)

깨묵장(깻묵으로 담은 장)

꺼끄럽다(껄끄럽다)

꿍지다(꾸리다)

나락(벼)

달비(다리03)

댕기다01(다니다)

두루막(두루마기)

둑(두동)

등멱(등목)

등줄(한태)

뚝방(제방02)

뜨리(수두)

모다들다(모아들다)

모달리(융03)

밑비료(밑거름)

바늘집(바늘겨레)

바람개비(팔랑개비)

벌거지(벌거집)

빠가사리(동자개)

서거프다(서툴다)

얼구다(얼리다)

에움《조선》

종고래기(종구라기)

쥐불싸움(쥐불놀이)

짚세기(짚신) 등

 

위의 예들 중에서 ‘나락’이나 ‘종고래기’ 등은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나락1 명방‘벼1’의 방언(강원, 경남, 전라, 충청).② 일부 속담이나 관용구에 쓰여 ③ 북[식]‘벼1’를 이르는 말. ‘벼1’의 북한어.

종고래기 ① 방‘종구라기’의 방언(충남). ② 북 ‘종구라기 ’의 북한어.¶ 종고래기로 쌀을 퍼서 주다≪선대≫/그들은 잡곡을 뒤섞은 데다가 무우를 짓찧어 넣은 밥을 종고래기와 상사발에 펴 놓고 앉았다.≪현대 조선 문학 선집, 선대≫ ③ 북 ‘종구라기 ’의 북한어. ¶ 부엉이 어머니가 내미는 이남박에 좁쌀을 두 종고래기 좀 못 되게 퍼 주었다.≪선대≫

 

《조선말대사전》

나락01 《22》[명] 낟알이라는 뜻으로 “벼”를 달리 이르는 말. ∥ 황금빛 ~이 물결치는 기름진 농장벌. ~으로 지은 밥.

종고래기 [명] ①조그마한 바가지. ∥ ~로 쌀을 떠서 주다. | 쌍가매어머니에게 쌀을 퍼주고나자 리진사마누라는 되박을 놓고 종고래기로 쌀을 떠서 부엉이어머니에게로 내밀었다.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1》 / 승호가 언뜻 곁눈질로 보니 그들은 잡곡을 뒤섞은데다가 무우를 짓찧어넣은 밥을 종고래기와 상사발에 퍼놓고 앉았다. (《현대조선문학선집》 3) § ②이름수의 단위로 쓰인다. ∥ 한~. 두~. | 부엉이어머니가 내미는 이남박에 좁쌀을 두종고래기 좀 못되게 퍼주었다. § (=) 종구래기.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방언’으로 처리되었거나, 혹은 남측의 언중들이 ‘방언’으로 인식하고 있는, 《조선말대사전》에는 문화어로 등재된 ‘종고래기, 나락, 달비’ 등과 같은 어휘들을 《겨레말큰사전》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첫 번째 방안은 위의 ‘나락’이나 ‘달비’ 등을 지역어로 처리하는 방안이며([1안]), 두 번째 방안은 지역어로 처리하지 않고 다른 올림말과 동등하게 기술하는 것이다([2안]).

 

[1안]

나락 [나락] 명《강원, 경남, 전라, 충청, 함경》 ‘벼’를 달리 부르는 말. ¶황금빛 나락이 물결치는 기름진 농장벌. 논배미 한 구석텡이에서 나락을 베고 있는 노인의 얼굴에 세월의 긴 흔적이 느껴진다.

 

[2안]

나락 [나락] 명 ‘벼’를 달리 부르는 말. ¶황금빛 나락이 물결치는 기름진 농장벌. 논배미 한 구석텡이에서 나락을 베고 있는 노인의 얼굴에 세월의 긴 흔적이 느껴진다.

 

[1안]의 경우 규범어의 자격을 가졌던 어휘가 비규범어로 처리된다는 점이, [2안]의 경우 분포 지역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아 실제의 언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 남북공동편찬위원회의 협의를 통하여 가장 적절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 남과 북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역어 및 현장 어휘 조사의 대상 어휘가 남과 북이 협의하여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측에서 조사된 어휘가 북측에 분포하는지 역으로 북측에서 조사한 어휘가 남측에 분포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2006년도 남측과 북측에서 제출한 새 어휘의 일부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남측]

가재미(기저귀)

간삽다(간사하다)

간지랑대(바지랑대)

갈부다(문제삼다)

갓내다(암내내다)

갓붙이다(흘레붙이다)

강눈밥(누룽지)

개노릇(학질)

개밥(송순)

개방구(소름)

달구개비(닭의장풀, 달개비)

달버드름하다(달짝지근하다)

닭울청(닭어리)

개투(참고 : 준저리콩)

갱심줄(낚싯줄)

거렁지(삼태기)

거무락지(거머리)

거문골(구렛들)

거작이(거의, 대부분)

게알시염(구레나룻)

골개리다(낯가리다)

골골이(고림보)

공곰허다(높다랗다)

담박골(담박질, 달리기)

대라보다(만져보다)

망우리다(망설이다)

공돌(공기놀이)

구랑같다(굴뚝같다)

너풀어지다(엎어지다)

널다(열리다)

네모잽이(네모)

눈따께(안경)

늘렁감(토마토)

늙발(늙으막)

능글아지다(물러지다)

단둥이(달팽이)

맨맛허다(만만하다)

물신(장화)

미씰다(밀뜨리다)

 

[북측]

감새목(부뚜막)

강녕(처마)

거마이(그을음)

검즐하다(다듬다)

고무락(다락)

고재(그을음)

공사발(보시기)

국마룩(국물)

굴통지기(족답기)

그레미(검불)

그막(부뚜막)

개바늘(도깨비바늘)

게참(곁두리)

과파이(고무래)

나레미(지느러미)

낙때기집(오두막)

너납새(처마)

누데기풀(도깨비바늘)

눈오태(애꾸)

다할티(눌은밥)

달도리(굴렁쇠)

당털장털(깃》)

덜거기(장끼)

도꾸방살이(소꿉놀이)

둥지(바구니)

등발(보시기)

물딱재(물방개)

방게밥(결두리)

소고리(발채)

주데(주근깨)

증배기(정수리)

재차라(도꼬마리)

초삼신(미투리)

치개(딸꾹질)

칼메이(칼국수)

코팽챙이(언청이)

하새(억새)

호독치기(자치기)

찡기(미꾸라지)

쨀내비(뚝배기)

아이겨께(왕겨)

응아지(진드기)

 

새 어휘에 대한 교차 조사를 통하여 새 어휘의 분포지역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겨레말큰사전》이 갖는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남북이 합의하여 새 어휘에 대한 교차 조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을 계기로 이루어지는 남북의 지역어 및 현장 어휘 조사는 단순히 남북이 새 어휘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새 어휘 조사는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확인하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록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나 민족의 통일이라는 전제 아래 그러한 문제들을 남북이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겨레말나들이

<말에 얽힌 이야기> “나봐”

글 : 최명진(시인)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러니까, 내가 4살 즈음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됐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당시 나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었다. 투박한 할머니 손보다 매끄러운 엄마의 손을 얼마나 고대했던지. 운동회나 소풍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을 참 부러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무룩하다가도 어느덧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다 보면 왠지 송아지처럼 기분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내 감수성은 그때 여물지 않았을까. 흙먼지에 검정고무신, 신나게 잘 놀다가도 사소한 일로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고 해가 저물면 수수깡을 잘라다 지팡이 삼으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산 좋고 물 좋고 교통은 정말 안 좋았던 전라북도 고창군의 한 산골마을. 그곳에 내 유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나름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 무척이나 활발했다. 산에 가서 가재잡고 수박서리에 폭죽놀이 같은 건전놀이는 말 할 것도 없고, 남의 집 장독대를 깬다거나, 건초에 불을 지른다거나, 점방에서 과자를 훔치다 걸린다거나 하는 것들. 다분히 개구쟁이라 보기엔 좀 수위가 높은 이러한 행위들을 저질렀을 경우, 내 등 뒤엔 늘 할아버지가 계셨다.

근데 어째서일까? 할머니의 빗자루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골치 아픈 사고를 잘 마무리하시고 나를 집으로 데려온 다음 무뚝뚝하게 방으로 들어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뭔가, 위압갑을 느끼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다고 전형적 한국의 무뚝뚝한 남성상이냐, 그건 아니다.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한 두 사발을 주고받을 땐 넉살스런 입담을 잘도 만드셨으니까. 하지만 집에만 들어오시면 다시 근엄하게 앉아 할머니를 부르시곤 했는데

 “나봐!”

나바? 나방? 나발? 도대체 무슨 말이지? 훗날에서야 “나 좀 보라.”는 뜻의 줄임말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은 어린 꼬마였던 나는 할아버지의 그 독특한 부름이 신기하기도 했고, 뭔가 카리스마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어린놈이 기특하게 그걸 이해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릴 때의 난 좀 똑똑했나보다.) 물론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동네의 남정네 대부분이 자신의 아내를 그리 불렀을 거라 기억한다. 하지만 유독 할아버지의 그 말이 왜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왔을까? 할아버지만의 경박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은 어떤 남성다운 톤 때문일까?

할머니는 부름을 받을 때마다 할아버지께 다가가서는 순순히 뭔가의 지시를 받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직한 목소리로, 예를 들면 동냥 온 거지를 보고 매정하게 밥만 주지 말고 김치도 같이 주라던가, 아니면 큰 형님네 작은 아들이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게 됐는데, 내일 나를 데리고 읍내에 나가 옷이라도 한 벌 사서 전해 주라던가, (할아버지의 이 말이 난 늘 기다려졌다. 왜냐고? 눈깔사탕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부름은 대체로 이런 사소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곤 했다. 하지만 왜 할아버지께서는 “임자” 또는 “여보” 혹은 “당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이런 좋은 말들을 놔두고 할머니를 그렇게 부르셨을까? 지금이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또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펄쩍 뛸 노릇이겠지만 당시엔 할머니의 그 고분고분함이 할머니 자신이나 할아버지나 당연하게 여기셨던 것 같다. 암튼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내가 보기에 좀 카리스마가 있으셨다.

잠시 군대 얘기를 해본다. 그러니까, 내가 병장 2개월 쯤 됐을 때의 일화다. 갑자기 고참 한 명이 나를 저탄장으로 끌고 가더니 담배를 한대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제부턴 니가 수고 좀 해라.”

 “뭘 말입니까?”

 “뭐긴, 오늘부로 넌 똥장이야.”

 “똥장이라고 말입니까?”

똥장? 이건 또 뭔가. 각 군대마다 병사들끼리 쓰는 은어가 있다. 여기서 똥장이라 함은, 부대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고참 중 한명이 반드시 악인이 되어야 했는데, 그때 선택받은 자에게 부여되는 별명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세월이 흘러 내 차례까지 온 것이다. 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병영생활의 긴장유지와 군기증강이겠지만 (요즘 수시로 터지는 군대문제를 보면 아마 이런 똥장들의 행동이 너무 과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아니면 지금은 사라진 제도가 됐거나.) 어쨌든 난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똥장이 됐고, 몇 달 동안 내무반의 악인이 되어 후임병들을 원활하게 통솔해야 했다. 참고할 것은 똥장이라는 것이 딱히 군에서 정식으로 발령되는 직책이 아니라, 병사들끼리 알게 모르게 되물림되는 선도부장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저탄장에서 똥장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리고 문득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부를 때 하셨던 것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그 말을 후임병들에게 꼭 써보고 싶어졌다.

저녁점호시간이 되었다. 내무실에 모인 병사들을 일일이 체크한 후, 일직하사로부터 다음날 사격훈련에 대한 점검사항을 하달 받았다. 사격이라는 게 군대에서는 아주 예민한 훈련이다. 자칫 긴장이 풀리면 당일 날 대형사고의 우려가 있으니까. 그래서 일직사관 점호 전에 난 잠시 병사들에게 훈계를 하기로 했다. 뭐라 뭐라 한 10분 정도의 연설을 한 후 꾸벅 조는 병사가 보이자, 이때다 싶어 할아버지의 그 목소리로 근엄하게 소리를 쳤다.

 “나봐!”

전부 긴장된 눈빛으로 나를 주목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내 뒤로 물러서서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것이 아닌가.

 “뭐하는 거냐?”

 “나와 보라며 말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만 그렇게 부르신 게 아니다.

 “나 좀 보자!”

삼촌들을 부를 때는 글자 두 개가 더 첨가되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삼촌을 데리고 천천히 뒷마당의 낙엽이나 주워가며 학업성적과 용돈삭감에 대한 상관관계 등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께서는 제대로 가족들 이름 한번 불러보신 적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를 빼고는. 7살 때까지 난 가족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의 무르팍에 눕거나 또는 간지럼을 피우거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몰래 사탕도 주시고 했던, 지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께서는 하루 중 나와 지낼 때 가장 많이 웃으셨던 것 같다. 물론 내가 7살 때 까지는 말이다.

그 후 난 국민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 좀 보자!”의 의미망에는 어느덧 나 자신도 포함되게 됐다. 한마디로 좋은 시절 다 간 셈이 된 것이다. 남자로써 가능한 집안일도 도와야 했고 용돈이 삭감되지 않기 위해 나름 잔머리도 굴려야했다. 그것 뿐 아니라 엄격한 식사예절을 준수하며 TV에 눈도 돌리지 못하고 정자세로 밥을 먹어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남의 집 장독대를 깬다거나 하는 악질의 장난은 바로 그 시점, 국민학교를 다니고부터 시작된 것이라 추측한다. 그렇다고 내 악행의 시발점이 할아버지의 느닷없는 무관심 때문은 아니다. 단지 나는 “나봐!” 하며 집안의 위에 조용히 군림하셨던 할아버지의 그 카리스마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 최명진 : 1976년 서울 출생. 2006년 리토피아 신인상 당선


<남북의 언어> 김순경과의 대화

글 : 김완서(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김순경은 온화했다. 엠비시(mbc) 월화 드라마 히트에 경찰로 출연하는 짜증과 히스테리로 50분 내내 인상 쓰고 소리지르는 고현정과 달리 김순경은 따듯했으며 온화했다.

내가 식사를 끝내면 맛있게 먹었는지 물어봐 주었으며 차도 가져다 줄 정도로 자상하고 배려가 넘치는 김순경이었다.

그런 김순경의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도 전달 되었는지 그의 얼굴은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동그랬다.

얼굴의 구성요소가 동그랗다보니 자연스레 얼굴의 형태도 동그랬다. 그런 이유로 그의 미소도 동그랬다.

김순경. 그는 경찰관이 아니다. 단지 성이 김씨이고 이름이 순경으로, 금강산호텔에서 근무하는 접대원 아가씨이다. 이름이 특이해서 “어이 김경장, 김순경이 주는 안주 하나 받지”라는 농담을 들었던 접대원 아가씨이다.

금강산 도착 이튿날 아침, 남북 편찬회의 준비로 분산하던 회의장 앞에서 나는 우연찮게 김순경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커피 한잔을 따르면서 나는 김순경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일하셨는데 피곤하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김순경의 말에 난 잠시 머뭇거렸다. ‘일없습니다’라는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괜찮습니다’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김순경이 ‘겨레말큰사전’을 언급하면서 던진 한마디는 더욱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큰일났습니다.”

나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대체 우리가 어제 밤에 그녀에게 뭔 실수를 했나? 남북간에 또 무슨 문제가 터졌나? 대체 뭘 가지고 큰일났다고 하는 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김순경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앞뒤 문맥을 가지고 뜻을 유추해 보았다. 이윽고 김순경이 말한 ‘큰일났습니다’는 ‘겨레말큰사전이 우리 민족의 경사스런 일’이라는 말로 해석되어 나의 당황스러움은 곧 해소되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남측의 말을 가르쳐 주겠다며 ‘싸가지 없다’라는 말을 김순경에게 던졌다. 김순경은 ‘싸가지 없다’라는 말에 생소해 하면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나에게 질문을 했다.

 "‘싸가지 없다’가 무슨 뜻입니까?”

난 낭패에 빠졌다. 내가 던져 놓고 정작 설명을 하자니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매우 궁색해진 것이다. 늘 하던 대로 ‘그말은 네 가지가 없다는 뜻으로……’라고 설명하자니 그 네 가지가 뭔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답해 주었다.

 "‘싸가지 없다’는 버릇없고 예절없는 것을 말해요.”

그제서야 김순경은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김순경에게 다시 물었다.

 “북에서는 ‘싸가지 없다’를 뭐라고 말합니까?”

 “그냥 ‘도덕없다’라고 말합니다.”

아쉽게도 이 대답을 듣는 걸로 ‘김순경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회의에 참여하는 북측 인사들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순경과의 대화는 짧았지만 남북 간의 언어 생활에서 오는 작은 차이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순경이 내게 가르쳐준 ‘도덕없다’라는 말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온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김순경이 가르쳐준 ‘도덕없다’라는 말을 꼭 한번 써봐야겠다.

요즘 편찬실에서는 뜻풀이부 이대성 선생님 주도로 ‘국어 정서법’ 교육을 하고 있다. 난 강의를 하는 이대성 선생님 바로 옆에 앉아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을 맹신하면서 교육 내내 존다. 교육 시간 내내 조는 게 미안해서 어느 날 이대성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옆에서 조는 제 모습은 안보이죠?”

그 물음에 이대성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게 아니라 등잔 밑이 너무 환해서 수업을 못하겠어요.”

이는 내 머리숱 없음을 놀리는 표현으로, 표현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나의 신체중 가장 멋있는 부분(?)을 가지고 종종 놀림감으로 삼곤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대성 선생님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에이, 도덕없는 이대성 선생!”

겨레말이모저모

국립국어원 '언어 자원의 다원화'를 위한 제주 학술 대회 개최 안내

 

'언어 자원의 다원화'를 위한 제주 학술 대회 -표준어, 지역어, 사회 방언의 공존 모색-

 

국립국어원은 표준어에 묻혀 명맥을 보존하기 어렵게 된 지역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겨레말의 유산을 풍족하게 개발하고 이를 민족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언어 자원의 다원화’란 주제로 제주 학술 대회를 개최한다.

1. 일시 : 2007. 5. 26. (토) 09:30~18:00

2. 장소 : 국립제주대학교

3. 주최 : 국립국어원

4. 주관 : 전국국어상담소연합회, 국립제주대학교 국어상담소

5. 후원 : 문화관광부, 국립제주대학교

6. 토론주제

 

중심 지향의 문화를 넘어서기 / 경희대학교 김진해

 

공통어 중심의 표준어 정책 / 전북대학교 이태영

  새로운 표준어 정책 방향 / 대구교육대학교 손중선
  표준어 정책을 다시 논한다 / 국립국어원 정희창
  방언의 국어 교육적 의의 / 제주대학교 강영봉
  민속학적 관점에서 본 종의 다양성 / 한국민속학연구소 주강현
  신세대 언어에 대한 새로운 해설 / 대구대학교 이정복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제막식 안내

 

늦봄문익환목사시비건립추진위원회는 19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문익환 목사의 생과 뜻을 기념하고자 통일의 길목인 도라산역에 시비를 건립한다. 시비 제막식 외에도  제12회 늦봄통일상 시상식과 평화통일 사진전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1. 일시 : 2007년 6월 3일(일) 오후 4시

2. 장소 : 도라산역

3. 참가인원 : 1,000명(모금참가자, 추진위원, 참가신청자)

4. 행사내용 :

    · 전시회(늦봄문익환목사 사진전 및 평화통일사진전)

    · 제막식 행사

       - 경과보고 / 제12회 늦봄통일상 시상식 / 상임추진위원장 인사말

       -  축사 / 가족인사 / 제막식 / 축하공연

 

(개정판) 남북한말 비교 사전 출간

 

- 남북한, 중국, 중앙아시아에서 3만 어휘를 가려 모은 겨레말 사전

| 우리말 어휘의 보고 (寶庫)

 

오늘날 우리말에는 나라 안의 ‘한국어’와 ‘조선말’ 및 국외 700만 동포들이 간직해 오는 모국의 언어들이 있다. 국외 동포들의 언어 가운데 주요 지역 언어로는 중국 땅에 사는 200만 동포의 ‘조선말’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지역에 살아오는 40만 동포의 ‘고려말’이다. 남과 북의 언어는 지난 60년 동안 서로 다른 정치, 사회, 문화 환경에 따라 자라 온 언어이기에 둘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났다. 그 차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어휘 면이다.

이 책은 이런 어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남북한, 중국, 중앙아시아에서 3만 어휘를 가려 모은 겨레말 사전으로 <남북한말 사전>(2000)을 개정, 증보한 책이다. 사전 본문 이외 붙임으로 ‘남북한 표준말의 차이와 공동 표준말 가꾸기’, ‘중국, 옛 소련 지역 한인들의 한글 문예 작품론’을 더했다.

편찬이: 조재수

현재 <<겨레말 큰사전>> 편찬 위원. 한글 학회에서 <<우리말 큰사전>> 수석 편찬원, <<한글 새소식>> 주간을 지냄. 논문으로 <국어사전에서 비자립어 다루기 문제>, <중국·소련 한인들의 한글 문예 작품>, <북한의 사전 편찬에 대한 고찰>, <윤동주의 시와 언어>, <윤동주 시어 사전 -그 시 언어와 표현>(2005) 등이 있음.

 

겨레말큰사전 남북북공동편찬사업회서울시 마포구 공덕2동 253-42 지방재정회관 12층(121-719) 대표전화 02-3275-0815 전송 02-3275-3715

 

누리판신청,추천하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