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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뜻풀이 깁고 더하기

한자어 위주 뜻풀이의 문제

_ 박일환 / 영남중학교 국어교사, 시인

   책을 보다가 낯선 말이 나오면 국어사전에서 뜻부터 찾아보곤 한다. 얼마 전에도 시집을 읽다 ‘간드레’라는 말이 나오기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았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풀이가 달려 있었다.
간드레(←candle) 「명사」 <광업> 광산의 갱(坑) 안에서 불을 켜 들고 다니는 카바이드등.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리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카바이드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고 싶어서 다시 사전을 들춰보았다.
카바이드등 (carbide燈) 「명사」 <전기> 카바이드를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조명 기구. 탄화칼슘과 물을 섞어 아세틸렌을 발생시켜, 이것을 태워 광원(光源)으로 쓴다.
   낱말의 뜻은 간단하면서도 쉬운 말로 풀어주는 것이 좋다. 위 풀이에서 굳이 ‘조명’이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불을 밝히는 기구’라고 해도 충분하다. 더 문제인 것은 뒤에 나오는 ‘광원(光源)으로 쓴다.’라고 한 부분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한자어를 넣어 뜻을 풀이하는지 모르겠다. ‘탄화칼슘과 물을 섞어 만든 아세틸렌을 태워 빛을 만든다.’라고 하는 게 훨씬 깔끔하고 단순하다.
‘조명’과 ‘광원’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아래 낱말을 살펴보자.
인공조명(人工照明) 「명사」 1. 인공의 광원에 의한 조명.
   뜻풀이가 모두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다, 이미 있는 낱말의 형태에다 ‘광원’만 덧붙인 꼴이다. 이런 식의 뜻풀이가 얼마나 불친절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전기 따위의 힘을 빌려 만든 불빛’ 정도로 풀이하면 좋을 듯하다. 이렇게 성의 없이 뜻을 풀어놓은 낱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이다.
때로는 잘못된 풀이를 버젓이 올려놓고 있기도 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낱말을 보자.
연구비(硏究費) 「명사」 어떤 사물을 연구하는 데 드는 비용.
   뜻풀이에서 두 가지 문제를 짚어볼 수 있겠다. 우선 ‘비용’ 대신 ‘돈’이라는 우리말을 쓰면 안 되느냐 하는 점이다. ‘재료비’나 ‘원료비’ 등의 뜻풀이에도 모두 ‘돈’ 대신 ‘비용’이라는 한자어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보다 한자어를 더 고급스러운 언어로 여기는 심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연구비가 꼭 사물을 연구할 때만 들어가느냐 하는 점이다. 정작 ‘연구’ 항목은 다음과 같이 풀어놓고 있다.
연구(硏究) 「명사」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
   연구의 대상을 ‘어떤 일이나 사물’이라고 해놓았다. 그렇다면 ‘연구비’ 항목도 이에 맞추어서 풀어야 마땅하다. 나아가 ‘사물’ 대신 ‘대상’이라는 말을 쓰는 게 더 정확한 풀이에 다가갈 수 있다. 사물이 아닌 여러 동식물이나 사람도 연구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뜻풀이를 함에 있어 정확성과 엄밀함을 따져보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허술한 뜻풀이가 자주 눈에 띄는 건 사전 편찬자의 무책임과 불성실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살핀 ‘연구’와 ‘연구비’보다 더 엉뚱한 뜻풀이도 있으니,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액세서리(accessory) 「명사」 복장의 조화를 도모하는 장식품. ‘노리개’, ‘장식물’, ‘치렛감’으로 순화.
   우리말로 순화하라는 친절을 보이고 있지만 뜻풀이는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들다. 복장, 조화, 도모, 장식품이라는 한자어를 빼고 뜻풀이를 할 수는 없었을까? 더구나 액세서리가 ‘복장의 조화’를 위한 것이라는 데 이르면 절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반지나 귀걸이가 복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예문으로 제시한 ‘머리에 꽂은 액세서리가 돋보인다.’라는 문장과도 맞지 않는 풀이인 셈이다. ‘몸을 돋보이도록 꾸미는 데 쓰는 물건’ 정도로 풀이하면 좋겠다.
   국어사전의 기능은 정확성과 함께 낱말의 뜻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예를 든 몇몇 낱말의 사례에서 보듯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아예 잘못된 뜻풀이를 실어놓고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이 정말 국어사전다우려면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편찬자들이 꼭 필요한 경우 말고는 한자어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뜻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박일환 |

1961년 생.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하여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의 시집을 냈으며, 우리말 관련해서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 미친 국어사전 같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