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박일환 / 영남중학교 국어교사, 시인
국어사전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뿐만 아니라 ‘학술이나 기타 전문 분야에서 특별한 의미로 쓰는 말’인 전문어와 함께 인명, 지명 따위도 함께 실어놓았다. 그중에서 전문어의 뜻풀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전문어는 보통 <동물>, <건축> <음악>, <화학> 따위의 분류 항목을 설정해 놓고 있으며, 말 그대로 전문 분야에서 주로 쓰는 말이므로 일반인들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그럼에도 전문용어 사전이 아닌 국어사전이라면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말로 풀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실린 전문어들의 뜻풀이는 너무 불친절하다.
매니큐어를 지울 때 많이 쓰는 아세톤에 대해 알고 싶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다.
아세톤(acetone) 「명사」 <화학> 카보닐기에 메틸기 두 개가 결합된 구조의 화합물. 독특한 냄새가 있는 무색투명한 휘발성 액체로, 물이나 유기 용매에 잘 녹으며 인화성이 있다. 화학 실험이나 화학 공업의 용매로 쓰인다. 화학식은 CH3COCH3.
정작 궁금하게 여기던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고, 전문가들이나 이해할 법한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위 풀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카보닐기’나 ‘메틸기’를 다시 찾아보아야 하는데, 이들 낱말은 또 어떻게 풀어놓았을까? ‘카보닐기’ 하나만 우선 찾아보기로 하자.
카보닐기(carbonyl基) 「명사」 <화학> 탄소와 산소가 이중 결합으로 연결된 이가(二價)의 원자단. 불포화 결합을 가지는 기(基)로, 반응성이 풍부하다.
이쯤 되면 짜증이 밀려들면서 더 이상 국어사전을 찾아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낯선 화학 용어 말고 친근한 식물 이름은 어떻게 풀어놓았을까? 낱말을 가리고 뜻풀이만 먼저 본 다음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생각해 보자.
작약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미터 정도이고 가지는 굵고 털이 없으며, 잎은 크고 이회 우상 복엽이다. 늦봄에 붉고 큰 꽃이 피는데 꽃빛은 보통 붉으나 개량 품종에 따라 흰색, 붉은 보라색, 검은 자주색, 누런색, 복숭앗빛을 띤 흰색 따위의 여러 가지가 있다. 열매는 골돌과(蓇葖果)를 맺는다. 근피(根皮)는 두통ㆍ요통에 쓰는 약이나 건위제, 지혈제, 진통제의 약재로 쓰인다. 추위에는 강하나 더위에는 약하며 연평균 15℃ 이상의 따뜻한 지방에서는 발육이 부진하다. 인가나 화원에서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무척 길고 자세하게 풀어놓았지만 무슨 식물에 대한 설명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단 답부터 말하면 위 뜻풀이에 해당하는 식물은 ‘모란(牡丹)’이다. 국어사전은 백과사전이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 서술 방법이 달라야 하는데, 마치 백과사전이나 식물사전을 보는 듯하다. 풀이에 나오는 ‘이회 우상 복엽’이나 ‘골돌과(蓇葖果)’ 같은 낱말은 식물학자들이나 쓰는 말일 터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필시 일본 학자들이 만들어서 쓰던 걸 그대로 들여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는 불교용어 하나를 살펴보자.
화엄경(華嚴經) 「명사」『불교』 석가모니가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설법한 경문. 법계 평등(法界平等)의 진리를 증오(證悟)한 부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칭양하고 있다. 정식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제대로 불교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접근하지 말라는 의도가 아니라면 대체 저런 식으로 뜻을 풀어서 어쩌자는 걸까? 거듭 말하지만 국어사전이 백과사전이나 전문용어 사전을 흉내 내려는 까닭을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컴퓨터 관련 용어 몇 개의 뜻풀이를 살펴보려고 한다.
오프라인(off-line)[명사] <컴퓨터> 단말기의 입출력 장치 따위가 연결되어 있지 아니하여 중앙 처리 장치의 직접적인 제어를 받지 아니하는 상태.
키워드(key word)[명사] <컴퓨터> 데이터를 검색할 때에, 특정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하여 사용하는 단어나 기호.
파티션(partition)[명사] <컴퓨터> 하나의 물리적 저장 장치를 논리적인 여러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 실제 물리적으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으로 분할하여 이용을 간편하게 한다.
컴퓨터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컴퓨터 관련 용어들의 뜻이 번져서 일상어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오프라인은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 공간, 키워드는 핵심이 되는 중요한 말, 파티션은 사무실의 칸막이와 같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로지 컴퓨터와 관련된 뜻으로만 풀이를 해놓았다. 평상시에 자주, 그리고 쉽게 쓰는 말조차 전문어라는 틀에 너무 가둬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어의 뜻을 풀 때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풀이를 맡긴 다음 제대로 다듬지 않고 그대로 국어사전에 옮겨 놓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듯하다. 아무리 전문어라도 보통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쓰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 박일환 |
1961년 생.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하여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의 시집을 냈으며, 우리말 관련해서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국어 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 『미친 국어사전』 같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