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우리말 보물찾기

나눌 수 있겠느냐

_ 이상배 / 동화작가

   ‘인정이 없으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정!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세상 사람들의 마음’ 등. 어느 뜻이든 인정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어느 마을에 삼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삼 형제는 집이 가난하여 일자리를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한나절을 걸어간 삼 형제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습니다.
   “여기 마침 옹달우물도 있고 나무도 있으니 쉬어 가자.”
   큰 형의 말에 형제들은 싸 가지고 온 주먹밥을 나누어 먹으며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후유, 나도 여기서 쉬어 가야겠구나.”
   “할아버지, 시장하시지요. 이것 좀 드십시오.”
   막내가 노인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먹을 것을 나눠주다니 고맙소. 잘 먹겠소.”
   노인은 주먹밥을 받아들었습니다. 우물가 앞 넓은 벌판에 언제 날아왔는지 까치들이 날아와 깍깍 우짖었습니다.
   삼 형제가 주먹밥을 먹고 나자 노인이 옆에 있는 큰형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요?”
   “일거리를 찾으려고 다리품을 팔고 있습니다.”
   “허허, 그러시오. 무엇을 가지면 일을 할 수 있겠소?”
   “목장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 까치들이 다 젖소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젖소를 기르게 되면 이웃들이 찾아와 우유를 달라고 하면 나누어 주겠소?”
   “그야 물론이지요. 이웃을 돕고 살아야지요.”
   “좋소. 내가 젊은이의 소원을 들어주겠소.”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한 번 툭 치자 까치들이 우짖던 넓은 벌판이 목장으로 변하였습니다. 큰형은 그곳에 남아 젖소를 기르기로 하였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노인과 같이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 걸어가니 넓은 가시나무 숲이 나왔습니다. 숲 앞에 다다르자 노인이 둘째에게 물었습니다.
   “소원을 말해 보아요.”
   “저는 저 가시덤불이 사과나무 밭이라면 좋겠습니다.”
   “사과는 과일 중에도 달고 맛있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겠소?”
   “그러고 말고요. 얼마든지 나눠주겠습니다.”
   “좋소. 내가 젊은이의 소원을 들어주겠소.”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쳤습니다. 그러자 가시나무 숲이 사과나무 밭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그곳에서 사과나무를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셋째와 노인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니 맑은 개울이 흐르고 앞에 넓은 자갈밭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잠시 다리쉬임을 하였습니다.
   “목마르시지요.”
   막내는 흐르는 개울물을 그릇에 떠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물이 시원하고 맛있군!”
   물을 마시고 나자 노인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말해 보게?”
   “저는 저 자갈밭을 기름진 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농사를 짓고 싶은 거로군.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줄 수 있겠지?”
   “예, 할아버님!”
   노인이 지팡이로 땅을 한 번 치자 자갈밭이 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 형제의 소원을 들어준 노인은 할 일을 다 하였다는 듯이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막내는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풋솜씨였지만 부지런히 땅을 파고, 거름을 만들고 이랑을 내어 씨를 뿌렸습니다. 2년이 지났을 때는 고래실논도 갖게 되었습니다. 3년째,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습니다.
   막내는 형들 소식이 궁금하였습니다.
   “형님들을 찾아가 보자.”
   막내는 먼저 사과밭을 가꾸는 작은형한테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과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대신 처음 보았던 가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큰형에게 가보자.”
   막내는 부지런히 걸어 처음 노인을 만났던 우물가로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목장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대로 까치 떼들이 우짖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막내는 우물가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조용히 나타났습니다.
   “아, 할아버님!”
   막내는 할아버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할아버님, 형들이 어찌 된 일입니까?”
   “너의 두 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주인이 되자 느림뱅이가 되고, 돔바른 욕심쟁이가 되었어. 나눌 줄 모르면 가질 자격도 없는 걸세.”
   “할아버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너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마음자리가 착하여 앞으로 더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막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노인은 어디인가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뜻풀이

한나절: 하루 낮의 반.
옹달우물: 작고 오목한 우물.
주먹밥: 주먹처럼 뭉친 밥덩이.
꼬부랑: (주로 명사 앞에 쓰여) 꼬불꼬불하게 휘어짐을 뜻하는 말.
시장: 배가 고픔.
다리품: 길을 걷는 데 드는 노력. ‘괜히 다리품만 팔았다.’
자갈밭: 자갈이 많이 깔려 있는 땅.
다리쉬임: 오랫동안 길을 걷거나 서서 일을 하다가 잠깐 다리를 쉬는 일. 다리쉼.
먹을거리: 먹을 수 있거나 먹을 만한 음식 또는 식품. 식량.
풋솜씨: 익숙하지 못한 솜씨.
거름: 식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하여 주는 물질. 똥, 오줌, 썩은 동식물, 광물질 따위가 있다.
이랑: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고래실(논):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
느림뱅이: 행동이 느리거나 게으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돔바르다: 매우 인색하다. 조금도 인정이 없다.
마음자리: 마음의 본바탕. 심지.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