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에서 『국수』까지](/webzine/2018_08/images/window_title.png)
_ 염무웅 / 겨레말큰사전 이사장
며칠 전 작가 김성동이 보내준 소설책 한 질을 받았다. 400쪽 가까운 두께로 모두 다섯 권이니, 대하소설이라 할 만하다. 이름하여 『국수』인데, 표지에 ‘國手’라고 한자로 크게 쓰여 있다. 이 작가의 문학적 이력을 웬만큼 알고 있는 나로서는 “1991년 연재 이후 27년 만의 완간! 구도(求道)의 작가 김성동 혼신의 역작!”이라고 출판사에서 내건 선전 문구가 한갓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그런데 작가는 다섯 권 소설만 쓴 것이 아니라 따로 ‘國手事典’이라는 제목의 낱말사전을 지어서 별권(別卷)으로 붙였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물론 과거에도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소설어 사전’은 더러 편찬되었다. 들인 수고에 비해 알아주는 이가 적은 이 힘든 작업을 가장 열심히 해온 분은 민충환 교수라고 알고 있는데, 그는 이미 1995년에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을 출간한 바 있었다.
벽초 홍명희가 1928년 연재를 시작하여 미완으로 끝낸 대하소설 『임꺽정』은 잘 알려져 있듯이 저자인 벽초의 월북으로 인해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다가 1980년대에 와서야 열 권으로 전체가 출판되었다. 『임꺽정』은 작품이 연재되던 일제강점기에도 이미 풍부한 우리말 어휘로 인해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소설가 이효석은 “큰 규모 속에 담은 한 시대의 생활의 세밀한 기록이요 민속적 재료의 집대성이요 조선어휘의 일대 어해(語海)”라고 격찬했고, 평론가 박영희는 “구상의 광대함과 어휘의 풍부함과 문장의 유려함”에서 세계문단에 자랑할 만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사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근대 전환기는 말과 글의 일치를 향해가던 근대적 ‘우리말 문장’의 형성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자ㆍ한문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소설가들이 이룩한 공적은 특별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벽초와 함께 도쿄에서 유학했던 춘원 이광수의 초창기 소설들도 근대적인 어문일치 문장의 발전에 불멸의 기여를 했고, 뒤를 이은 염상섭ㆍ김동인ㆍ현진건 등의 공적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민충환 교수의 정리작업은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 이후에도 민 교수는 박완서ㆍ최일남ㆍ송기숙ㆍ이문구 등의 작품들에 대한 ‘소설어 사전’을 내놓아, 이들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비평적 분석이나 문학사적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들이 구사하는 소설 언어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생략될 수 없는 기초과정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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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국수』에 대한 본격적인 문학적 평가는 간단한 일이 아니니, 그것은 뒷날 또는 뒷사람에게 맡긴다. 다만, 나는 여기서 『임꺽정』의 소설 언어에 대한 김성동의 견해를 검토해보고 그것이 ‘겨레말’의 역사적 위상을 생각하는 데 어떤 유익한 암시를 줄 수 있을지 하는 점만 잠깐 살피려고 한다.
먼저 상기할 것은 김성동이 자신의 선행업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임꺽정』을 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식구들 생각」이라는 글에서 그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1958년 할아버지 손에 잡혀 한밭(大田)에 갔다가 대본서점에서 『림꺽정』을 빌려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열두 살짜리 어린아이였음에도 그 소설에는 모르는 말이 거의 없었다. 식구들이 늘 쓰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다음이 중요한 지적인데, “됩세(=도리어)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라고 하면서 그는 『임꺽정』 언어의 아쉬운 점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는 것이다.
“몰밀어 말이 똑같다는 것.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말이 죄 똑같고, 사는 고장에 따라 달라지는 말이 죄 똑같다. 이른바 계급, 곧 사는 꼴과 사는 땅에 따라 달라지는 ‘말’을 조선시대 것으로 되살려 내지 않은 글지(=작가)한테 아쉬움이 크다.”
과연 김성동의 지적대로 『임꺽정』에서는 조광조 같은 선비나 임꺽정 같은 왈패나, 또 함경도 출신 갖바치나 서울 출신 양반이나 거의 구별 없이 점잖은 말을 사용한다. 이것을 문제 삼은 평론이 없었다고 김성동은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임꺽정』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대뜸 인지되는 점을 그동안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 리 없다.
내 생각에 문제는 벽초 자신이 이 점을 어떻게 의식하고 소설창작에 임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출신성분이나 교양으로 보아 비록 소설에서라도 상스러운 말을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처한 특수한 역사적ㆍ정치적 상황으로 미루어 그는 어떤 ‘특정한 언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호의적인 추론이다. 『임꺽정』의 한 대목을 가지고 이 점을 생각해보자.
갖바치가 주석하는 칠장사에 꺽정이와 김덕순(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처형된 김식의 둘째 아들)이 잠시 머무는데, 이때 꺽정이의 어릴 적 동무 이봉학이가 나타난다. 김덕순은 오래전 헤어졌던 봉학이를 20여 년 만에 보는지라 “자네를 만나기는 의외일세” 하고 반기고, 그러자 꺽정이는 왜 봉학이에게는 ‘하게’를 하고 자기에게는 ‘해라’를 하느냐며 덕순에게 따지고 든다. 그리하여 덕순이와 꺽정이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다.
“존대, 하오, 하게, 해라, 말이 모두 몇 가지람. 말이 성가시게 생겨먹었어.”
하고 말의 구별 많은 것을 타박하니 덕순이가 웃으면서
“말의 구별이 성가시다고 하자. 그러하니 너는 어쨌으면 좋겠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말을 한 가지만 쓰게 되면 좋을 것 아니오.”
“어른 아이 구별 없이 말을 한 가지만 쓰는 데가 천하에 어디 있단 말이냐?”
“두만강 건너 오랑캐들의 말은 우리말같이 성가시지 않은갑디다. 천왕동이의 말을 들으면 아비가 자식보고도 해라, 자식이 아비보고도 해라랍디다.”
“그러니까 오랑캐라지.”
“오랑캐가 어떻소? 그것들도 조선양반 마찬가지 사람이라오.”
하고 꺽정이가 덕순이와 말을 다툴 때에 대사가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이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된 것 아닌가.”
하고 말참례하고 나섰다.(『임꺽정』 제3권)
요컨대 우리말에 층하가 많은 것은 언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속에 실재하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계급구조의 반영이라는 것, 따라서 어떻게 하면 현실 자체를 평등한 인간사회로 개혁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 여기 표현된 벽초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 지향적 사상만으로 벽초의 언어사용이 다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임꺽정』이 쓰여지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그리고 그 시대의 우리말과 우리글이 현실적으로 어떤 발전상태에 있었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든 것은 1933년인데, 맞춤법의 적용대상은 당연히 그 나라 안에서 사용되는 말 전체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지역에 따라 다르고 계급에 따라 다른 말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표준으로 삼지 않고서는 맞춤법의 보편적 적용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지고 표준어가 정해지더라도 그것들이 실생활에서 정착되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30년대는 일제의 식민지 억압체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어서 민족적 정체성의 유지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바로 이런 조건 속에서 벽초는 우리말의 규범적 단일성을 수호하고 우리 민족의 정서적 뿌리를 탐색하는 일을 자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삼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작업이 그에게는 『임꺽정』 집필이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의 조건은 벽초의 시대와 크게 다르다. 하지만 70년이 훌쩍 넘는 남북분단의 지속은 식민지상태 못지않은 또 다른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계층 간 격차는 더 벌어졌고 수많은 외래어의 범람은 우리말의 개념 자체에 재정의를 요구하며, 각종 매체의 발달은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듯하다. 시인ㆍ소설가를 포함하여 지식인이라면 이 점을 의식하고 글을 쓸 책임이 있을 텐데, 소설 『국수』는 충청남도 내포 지방의 토속어를 새롭게 활성화하는 작업을 통해 ‘아름다운 조선말’의 본래의 모습을 찾음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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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무웅 |
문학평론가. 1941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창작과비평사 대표,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과 영남대 명예교수로 있다.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1979), 『모래 위의 시간』(2001), 『문학과 시대현실』(2010),『살아 있는 과거』(2015), 산문집 『자유의 역설』(2012),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2015),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 (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