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 아침을 맞이하며

한용운(편찬사업회 편찬실장)

한용운

2005년 ≪겨레말큰사전≫ 편찬이 시작된 이래 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공동편찬요강 작성’, ‘올림말 배열순서 합의’, ‘올림말 선정 원칙 합의’, ‘지역어 조사 원칙 합의’ 등의 결실을 보았다.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하여 2008년에는 ‘2차 올림말 선정 작업’을 완료하였고, ‘집필 지침’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현재까지 ‘44,000여 개(남측 기준)의 새어휘 조사 작업’도 진행하였다. 올해는 남북에서 그동안 찾고 고른 올림말에 대한 본격적인 뜻풀이 작업을 시작하고, ‘어문규범 단일화 논의’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찍이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1709-1784))이 ‘사전편찬가’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사소한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였듯이, 사전을 만드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국어사전 편찬의 경우 ‘ㄱ’부터 ‘ㅎ’까지의 어휘를 모두 거두어 편찬 지침에 맞게 올림말을 선정하고, 선정된 올림말을 뜻풀이하고, 뜻풀이된 어휘를 교정․교열하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는,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단순한 작업이다. ‘ㄱ’ 부분 어휘를 검토하면서 언제쯤이면 ‘ㅎ’ 부분까지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ㅎ’ 부분을 끝내고 ‘ㄱ’ 부분으로 되돌아 갈 때, 다시 도달해야 할 ‘ㅎ’을 생각하며 아득함을 느끼는 그런 작업이다.

그런데 ≪겨레말큰사전≫의 경우 일반 사전 편찬과 다른 점이 있다. ≪겨레말큰사전≫은 30만 이상의 올림말을 수록하는 대사전(unabridged dictionary)이므로 남북의 ‘사회’, ‘문화’, ‘제도’, ‘생활방식’ 등 여러 상황이 반영된 어휘를 수록하게 된다. 지금까

지 남이나 북에서 각각 간행된 대사전은 ‘사회’, ‘문화’, ‘생활방식’ 등의 상황들이 동일하였으므로 별 문제 없이 사전을 편찬할 수 있었지만,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한 ‘올림말 선정 여부’와 ‘뜻풀이 방식’ 등을 합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즉, 일반 사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체제와 언어 규범을 전제로 하여 사전을 편찬하게 되지만, ≪겨레말큰사전≫의 경우 두 개의 체제와 언어 규범을 아우르면서 사전을 편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전문가들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두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거나, 혹 편찬되더라도 남과 북의 어디에서도 쓸모없는 사전이 될 것이라 예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앞에 반드시 건너야 할 큰 개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한 번에 건널 수 없다고 하여 그 개울이 메워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개울의 중간중간에 돌을 놓고 하나하나 디뎌 가며 건너듯이, 우리가 열망하는 언어 통일도 디딤돌을 놓는 작업처럼 하나하나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그 디딤돌이 잘 못 놓이거나 쓸모없는 것이 될지라도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언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남북 언어 차이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언어 차이를 단번에 해소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해소할 수밖에 없는데, 그 방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남북의 겨레가 함께 볼 수 있는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다. 사전을 편찬하려면 일관된 체계가 있어야 하므로, ‘언어관 및 언어 정책’, ‘언어 규범’의 차이 등에 대한 논의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념과 정치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들은 통일 이후 언어 규범을 작성하는 데에도 밑바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겨레말큰사전≫은 언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2006년 3월에 꾸려졌다. 이 사업회가 꾸려지기까지 여러 곡절이 있었고, 많은 분들의 성원도 있었다. 사전 편찬이 완료될 때까지 여러 어려움이 계속되겠지만, 그 어려움이 사전 편찬 외적인 것이 아니길 바란다. 아울러 남과 북의 편찬원들이 동요 없이 ‘ㄱ’부터 ‘ㅎ’까지 올림말을 선정하고 뜻풀이하는 작업을 반복할 수 있도록 겨레 여러분의 고요한 기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새해 아침, 완성된 <겨레말큰사전>을 그리며 소처럼 묵묵히 앞만 보며 나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