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에 바란다 | |인쇄 |
남북사회문화통합의 길잡이 《겨레말큰사전》
박지영(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남과 북이 함께 쓰는 겨레말
아기가 태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이전까지 울음과 몸짓으로 또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아기와 엄마는 서로를 알기위해 또 자신을 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엄마와 아이의 표현방법은 끊임없이 학습된다. 입술을 움직이고, 옹알이를 거쳐 비로소 아이의 말이 그 입으로부터 나올 때, 아이가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할 때 그때의 놀라움과 기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말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그 의미를 넓혀본다면,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교류가 있다는 것이고, 이는 서로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은 곧 소통이며, 다양한 소통이 문화로 연결된다.
남과 북은 한글을 쓰며, 또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왔다. 현재의 언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에 큰 무리가 없고, 글의 형태나 표기도 거의 같다. 그러나 서로 다른 환경과 체제 속에서 남과 북의 언어는 다른 형태로 발전해올 수밖에 없었다. 보통 한세대라 하면 30년을 본다. 이제 남북은 2세대를 훌쩍 넘은 기간 동안 서로 다른 말들을 만들었고, 각각의 표기법과 기준아래에서 말을 사용해오고 있다. 조금 달라지기도 하였겠지만 여전히 남과 북, 사람과 사람을 변함없이 이어주는 모국어가 바로 겨레말이다.
‘민족’이라는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공통의 언어와 문화이다. 따라서,《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단순히 남과 북의 언어문화유산을 수집․정리하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 문화 통합이라는 대업의 초석을 놓는 일인 동시에 남북의 그리고 여러 세대를 아울러 내면적 소통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가진다. 여기에 바로 《겨레말큰사전》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홍윤표는 '특수기호'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백서 2005 '특수기호' 에서 “통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민족의 문화를 잇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민족의 언어다.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곧 언어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동일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은 우리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정치적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곧 통일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라고 《겨레말큰사전》의 사업목표와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의의
《겨레말큰사전》편찬의 의의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의의는 남과 북의 생활과 문학작품들 곳곳에 남아있는 민족 문화의 유산인 어휘들을 함께 수집하여 사전에 싣게 됨으로써 겨레말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전이 그 민족의 문화와 정신 유산의 성과를 통합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결정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다소 소홀히 다루어 왔던 삶의 현장의 어휘나 문학 작품에 실린 어휘를 새롭게 발굴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는 참으로 뜻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곧,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우리 민족의 문화 역량을 더욱 확대하고 고양하는 작업이다.
편찬의 두 번째 의의는 그동안 서로 달랐던 남북 언어 규범의 재조정이라는데 있다.
짧지 않은 시간, 서로 다르게 사용했던 규범들을 재조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며 남과 북의 이해관계들 속에서, 이 문제야말로 참으로 합의하기 힘든 일이 아닐까 했던 우려와 걱정들을 훌쩍 뛰어넘어 상당한 진척을 이루어 냈다는 점은 매우 큰 성과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의의는 바로 남북의 학자들과 관련자들이 만나서 논의하고 합의하고, 문제점들을 해결해내는 장이라는 것이다. 4년간 16차례에 걸친 남북공동편찬위원회 회의와 30회에 가까운 남측편찬위원회 회의, 국제학술회의와 집필회의 등의 과정을 통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민족어 통일의 큰 기초를 다녔다는 점이 어찌 보면 현 단계에서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겨레말큰사전》편찬 사업을 통해 우리는 민족 문화유산인 우리말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남북이 함께 어문규범을 협의함으로써 지금 세대는 물론이고 차세대들의 소통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편찬위원회 구성부터 공동편찬회의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금은 비록 남북이 서로 나뉘어져 있으나 함께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대화방식과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배워나간다는데 있어서, 《겨레말큰사전》편찬 사업이야 말로 남북사회문화교류의 훌륭한 장인 동시에 최고의 사회문화통합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남북관계와 겨레말큰사전 편찬
그동안의 남북관계변화에도 불구하고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사업의 진행은 비교적 잘 진행되었다. 편찬합의서 세 번째 조항인 ‘분기에 1차씩 합의되는 장소에서 진행하며 여기에서 사전편찬과 관련한 제반문제들을 협의 결정하기로 하였다.’를 보더라도, 북핵실험과 올해 남북관계 악화라는 외부조건으로 인해 분기별 1회라는 것이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못했지만 1년에 4번을 정기적으로 만나 사전 편찬과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왔다.
작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무적인 사실은 최근 제16차 공동 편찬회의(2008년 12월 13일~16일, 평양)까지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측편찬위원회의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16차까지 이어 온 공동 편찬회의가 2008년 8월 15일 보고대회(서울, 백범기념관)를 제외하고는 그 개최장소가 북(평양, 개성, 금강산)과 제3국(중국)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12.1 조치 이후 더욱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편찬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남측편찬위원회는 순수하게 민간에서 활동하는 언어학자, 사전학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까지 남북이 함께 쌓아온 말의 공동체, 민족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남북의 정치적 관계와 상관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꾸준하게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지금까지의 남북 어문 정책은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와 더불어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2004년부터 진행되어 온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의 성과 역시 우리 민족 공동체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밑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온 겨레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통일’과 ‘통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 ‘일치’일 수는 없다. 모두 ‘같음’이 서로 ‘다름’보다 항상 좋은 것은 아니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전체의 ‘어울림’인 것이다.
박지영
덕성여대 사회학과 졸업
(전)통일교육협의회 총무과장 근무
(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재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