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와 ‘오징어’

정영효(시인)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한 악기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 악기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물었다. 긴 목판에 현이 달린 현악기가 분명했다. 학생들의 절반은 거문고라고 대답했지만 나머지는 가야금이라고 응수했다. (당시 동급생들이 알고 있던 우리의 현악기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전부였다) 그때 선생님은 거문고와 가야금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의 개수를 세는 것이라 했다. 현이 여섯 개면 거문고, 현이 열두 개면 가야금. 이후로는 거문고와 가야금에 대해서 확실한 구분법이 생겼다. 비록 이들과 모양새가 비슷한 아쟁은 일곱 개의 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얼마 전에 안 사실이지만.

종종 비슷한 물건이나 동물을 구별할 때 이처럼 수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의 뜻풀이에서도 이는 활용되는데 현악기인 거문고와 가야금의 뜻풀이에도 현의 숫자가 명시되어 둘의 특징을 구분한다. 두족류(頭足類) 동물인 낙지와 오징어도 비슷한 경우이다. 낙지는 다리가 여덟 개, 오징어는 다리가 열 개. 말 그대로 머리에 다리가 달린 것이 특징이므로 어쩌면 가장 정확하면서도 손쉬운 구분법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상식이 된 것이지만 어릴 적에는 쉽게 혼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리가 여덟 개인 오징어와 다리가 열 개인 낙지도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 재직하던 2007년, 금강산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을 때 나는 이 이상한(?) 동물들은 보았다. 회의 첫 날, 오전 일정이 끝나고 북측 연구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오징어 요리가 식탁에 차려졌다. 분명 다리가 열 개인 오징어였다. 금강산에 초행이었던 나는 북측 연구원들과 서먹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오징어 요리를 먹으며 “오징어가 참 맛있습니다.”라고 한 북측 연구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내가 먹은 것이 오징어가 아니라 낙지라고 말했다. 다리가 열 개인데 어떻게 이것이 낙지란 말인가? 나는 다시 다리의 개수를 세어보았지만 틀림없이 열 개의 긴 다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오징어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고모가 울릉도에 살아서 해마다 ‘울릉도 특산’이라는 상표가 찍힌 오징어를 보내왔고 나는 긴 겨울밤을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지냈다. 더구나 회의에 참석하기 며칠 전에도 오징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 적이 있었다. ‘오징어’하면 열 개의 다리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특히 마른 오징어는 다리부터 찢어 먹어야 오징어 특유의 짭조름한 맛을 느낄 수 있으므로 술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오징어는 어떤 각별함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오징어를 먹을 때 몸통은 안 먹고 열 개의 다리만 먹는 사람도 있는데…… 심지어 오징어 다리 중 제일 긴 것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도 어느 술집에서는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터인데…… 내가 모르는 낙지의 한 종류가 북에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낙지의 다리 개수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이 교차하는 사이, 그 자리에 동석한 남측 연구원이 북에서는 남의 오징어를 낙지라 하고 반대로 남의 낙지를 오징어라고 말한다고 귀띔해주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났는지 그 유래를 따져보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남에서 쓰고 있는 말이 북에서는 다른 말로 쓰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 오징어, 아니 낙지 요리는 참 맛있었다. 세상에서 한 민족의 공통점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음식이라고 했던가. 비록 남과 북이 한쪽에서는 오징어, 한쪽에서는 낙지라고 부르는 동물이 있지만 함께 모여 먹은 그 요리에 대해서는 모두 익숙한 미각으로 친근한 맛을 느꼈음은 분명하다.

음식뿐 아니라 말에도 맛이 있다. 흔히 말을 재미있게 잘 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 참 말을 맛있게 한다.”고 이르기도 한다. 즉, 이 표현은 말의 의미를 잘 살리고 자신만의 어법으로 상대방을 흡입시켰음을 뜻한다. 물론 화자나 청자 모두 하나의 언어를 쓸 때 그 맛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음은 당연하다. 독일의 언어학자인 훔볼트(Humboldt)가 말했듯이 언어는 발신자의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문화와 세계관 등이 담겨 있으며 사회적 맥락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정의한 것은 단편적으로 보면 언어가 지니는 고유한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역사적 ? 문화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과 북이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지만 과연 그 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북의 말을 들을 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데에 동질감을 느끼고 방심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남과 북의 상당한 말들에 차이가 생겼고,

그 동질감이 시나브로 이질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단지 남과 북의 말을 정리하는 작업을 넘어 말에 담긴 맛을 찾아내고 그 고유의 맛으로 남과 북을 묶어주는 일임은 분명하다. 최소한 다리가 열 개인 낙지를 보면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영효

정영효

전(前)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연구원.
200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현재 동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