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얽힌 이야기 | |인쇄 |
평양 여자, 청진 여자
안도현(시인)
몇 해 전 평양에 처음 갔을 때였다. 남북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한 행사에 참가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이 3박 4일 동안 내내 묵었던 곳은 대동강 안에 있는 양각도 국제호텔이었다. 그 호텔의 47층 꼭대기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다.
밤에 바깥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남쪽에서 간 술꾼들이 득시글거릴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사실은 술도 술이지만 우리는 사람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차와 술을 나르는 북쪽의 접대원(종업원의 북한식 표현이다)들과 눈이라도 한 번 더 맞춰보고 이야기라도 한마디 더 나눠보려는 심사가 더 컸을 것이다. 남쪽의 술집에서처럼 종업원 여성에게 수작을 걸어보겠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남북이 근래 들어 왕래가 잦아지긴 했으나 정작 사사로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직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첫날은 이런저런 정해진 행사에 참가한 탓에 피곤이 겹쳐 일찍 자고, 두 번째 날 밤에 몇 사람과 나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술을 한잔하기로 했다. 차림표를 들여다보며 남쪽의 안주 가격과 북쪽의 안주 가격을 비교해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저쪽에서 파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여성 접대원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분명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여성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과 넉 달 전에 북경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처녀였다.
북경에 갈 때마다 나는 거의 빠짐없이 북한 식당 <해당화>를 들르곤 한다. 그곳은 북쪽의 토속음식인 명태식혜, 온반, 평양랭면 같은 맛깔스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국적을 가진 동포를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설레는 기대감이 그곳으로 자주 발길을 향하게 했다. 중국에서는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복무원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해당화>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친절하기 그지없는 복무 태도는 남쪽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우리 식구들하고 후배 부부하고 함께 간 북경 <해당화>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내 앞의 술잔이 비어 있기에 우리 탁자 옆을 지나가던 복무원을 조용히 불렀다. 중국에서는 음식점에서 잔이 비면 종업원이 따라주는 풍습이 있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망치 좀 갖다 주세요."
그녀는 아연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망치를 어디에다 쓴답네까"?
나는 빈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잔 이 비어 있으니 그냥 깨버리게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 여성 복무원은 뒤늦게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잔에다 술을 따라주며 아이처럼 큭큭대며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자리에 가서 '복무'를 하면서도 연신 우리가 앉은 식탁 쪽을 보며 미소를 띠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당성이 상당히 높다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라는, 그래서
때로는 도도하게 보이기도 하던, 그 북한 복무원의 이름은 김은숙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람을 넉 달 후에 평양에서 만났으니 우연이라기엔 마치 약속하고 짜 맞춘 듯한 우연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나를 혹시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하고많은 손님을 맞다가 보면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찌 그 일을 잊을 수가 잊겠습네까"
처음 만난 북한 여성과 내가 아는 척을 하자,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는지는 여기에다 일일이 다 쓰지는 않겠다.
그녀는 우리가 묵던 양각도호텔과 <해당화> 식당이 한 회사라서, 두 달 전에 평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런 인연 때문에 우리 일행은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도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 죽쳤다. 사진을 찍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북경에서 일하는 게 좋습니까, 평양이 좋습니까"?
"그야 당연히 조국 평양이 좋지요."
그녀에게 북한은 "조국"이었으니, 내 질문이 애초부터 어리석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미군 없는 청진항에서
헌 자전거 한 대 빌어 타고
퍼붓는 눈발을 따라가서
어둠을 털어 내는 전등을 밝힌 집
백설기 같은 김이 하얗게 서린
유리문 열고 들어서면
갈탄 난로가 뜨거운 집
이름도 버리고 돈도 없이 왔노라고
내가 등 푸른 한 마리 정어리로
당신과 헤엄치고 싶다 말하면
동해 같은 자궁을 열어주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봄에 눈이 온다는
물 맑은 청진항 부근에서
꿈의 벌레 같은 눈송이들이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적시는 밤
아내를 남쪽에 두고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부끄럼 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듯이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온 바다로 파도 치는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비로소 하나 되는 날
그 설레이는 첫새벽에
동해 붉은 해 같은 아이를 낳아
넘치는 젖을 물리게 될 청진 여자여,
우리는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 싶다.
-졸시 [청진 여자] 전문
이십여 년 전에 쓴 시다. 이 시를 두고 어떤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뿐이라고 하고, 또 어떤 젊은 평론가는 ‘개꿈’이라 하고, 아내는 농 삼아 기분 나쁘다고 토라지고, 짓궂은 친구는 외설적이라며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를 쓸 당시에나 다시 읽어보는 지금이나 나는 기분이 좋은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청진이라는 곳은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치면 청진은 함경북도 동햇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먼 옛날 까마
득히 잊어버린 마을의 이름 같은 이 지명이 우리나라 지도 위에는 무수히 많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휴전선이라는 붉은 점선의 위쪽은 모두 내 마음속의 청진 땅이다. 개성 해주 사리원 남포 송림 원산 평양 신의주 회천 함흥 강계 혜산…… 이런 지명들은 갈 수 없는 청진의 또 다른 이름들인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또 다른 김은숙들이 그들의 '조국'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안도현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낙동강’으로 등단하여, 2007년 제2회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분 수상.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