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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나아가는 한겨레,
남북대결을 넘어 웅대한 민족공동체로 나가야
김덕룡 편찬사업회 후원회장,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60년의 저력이 위기를 극복할 것
길었던 겨울이 홀연 사라지고 사방에 핀 꽃처럼 문득 봄이 왔습니다만, 봄 같지 않은 봄(春來不似春)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듯이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예외없이 이땅에도 몰아 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0만명 실업자 시대라는 말이 있지만 체감지수는 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도 결국은 머지않아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헤쳐 온 60년의 저력을 뒤돌아볼 때 오늘의 이 위기도 우리 국민의 지혜와 능력으로 슬기롭게 극복해 낼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근현대 60년을 뒤돌아보면 대한민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 건국한 140여개 국가 중 완벽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대한민국 60년’을 성장, 변화, 개발, 발전, 성공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말로는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치민주화, 근대적인 경제발전, 사회문화적 다원성, 고등교육,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근대화의 기준과 내용을 높은 수준에서 성취한 유일한 나라가 된 것입니
다.
‘프리덤 하우스’의 지표를 보면 이는 객관적으로 드러납니다. 2차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국 중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전후를 넘나드는 성취를 이룬 UN회원국은 싱가포르, 부르나이, 카타르, 쿠웨이트, UAE(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그리고 대한민국 등 7개국 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6개 나라는 모두 인구 50만 내지 4백만의 도시국가나 석유중심국가로 이들은 정상적인 근대화의 기준에 비추어 그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오직 우리만이 정상적 수준의 국가로 국민소득 2만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은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산업과 기술의 고도화를 이룬 것을 계기로 정보화 부분에서는 최첨단의 선진국과 발걸음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GDP 대비 3% 수준의 연구개발비를 쓰고 있는 비(非)서방국가는 대한민국뿐입니다. 고등교육기관의 재학생 비율, 해외유학생 비율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후진국이나 중진국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전 세계 기준으로도 1~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등교육이 발달하고 해외지향 성장전략과 민주화를 이룩함으로써 우리사회와 문화의 다원성, 다양성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만큼 확대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가 균형있게 공존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경제를 보면 우리의 눈부신 발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1위 상품만 하더라도, D램 반도체, 디지털 TV, CDMA, 휴대폰, MP3 플레이어, 조선기술 등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첨단기술의 제품
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국민적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60년’이 영광과 빛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욕(辱)된 것과 그림자도 있습니다. 남북 간에 서로 적대하여 소중한 민족역량을 소진시킨 것은 물론 대한민국 내부에서도 군사독재와 지역주의 문제, 계층간의 갈등 등 부정적 유산들도 적지 않습니다.
소통과 통합이 민족의 미래를 결정해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어두운 그늘보다는 빛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거기다 우리 민족에게는 지금 시운(時運)이 따라주고 있습니다.
첫째, 천시(天時)가 한국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화시대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이동이라는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하자원을 비롯하여 많은 자원과 시장, 인구, 군사력 등 이른바 Hard Power가 강한 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던 산업화시대보다는, 잘 교육받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처지에서 보면 문화나 교육, 학술, 예술 등 Soft Power가 중심이 되는 지식정보화 시대가 우리에게 더 맞고 유리합니다. 실제로 이미 IT, BT, ET 분야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이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둘째로 위치 환경적인 이로움, 지리(地利)가 또한 우리 편입니다.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하여 대서양 연안국가 사이의 교역량보다 태평양 연안국가 사이의 무역량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동베를린 장벽의 철폐를 계기로 동서냉전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냉전 체제의 최전선에 있던 한반도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이 바뀌는 아시아·태평양시대에 이제 한국은 세계의 변방이나,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이 아시아의 허브공항으로 우뚝 서고 있듯이 경부고속전철은 이제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21세기 ‘철의 실크로드’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민족국가의 개념을 뛰어넘어 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하는 글로벌시대에 접어 들었습니다. 지금 세계는 급속히 하나의 마을, 지구촌으로 통합되어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가라는 개념도 급격히 바뀌고 있습니다. 국가의 3대 요소라 할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개념도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국민의 개념도 새롭게 확장되어야 합니다. 국적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로 국민이 가름되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같이 하거나, 경제생활과 문화영역을 공유하고 있다면, 사실상 그는 우리 국민이라고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어의 공통성이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통일시대에 남북 국민은 물론 해외동포들도 우리 국민의 시야에 넣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미 5대양 6대주 190여개국에 나가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750만 한민족 동포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해외동포는 우리의 정치, 경제, 안보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글로벌시대에 이것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영토의 개념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제 국경안의 땅이 영토라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 활동공간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생활권, 문화권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세계 어디든 한국인이 집중적으로 모여서 활동하는 지역은 곧 한국의 영토라고 보고, 우리 동포들이 대거 진출하여 활동하는 지역, 이른바 <Korean Cluster>를 <세계한인전략지역>으로 설정하고 전략적인 관리를 해야 합니다.
‘주권’의 개념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독점적인 권력인 주권도 그 의미가 축소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적 재산권이나 특허권 등과 같은 새로운 권리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초월적으로 행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권력인 주권이 약화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권력인 지적재산권, 특허권 등이 강화되면서 세계적으로 각종의 기준이 형성되고 통용되어 그것이 바로 power가 되고 있습니다. WTO나 우루과이 라운드가 국내법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예일 것입니다. 소위 세계표준이라는 Global Standard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누가 Global Standard를 많이 확보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힘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의 국민이라는 폐쇄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세계속의 한국인, 세계한인(Global Korean)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민족구성원의 소통과 단합의 제일 도구는 ‘말’
천시와 지리,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이라는 두 가지 큰 기둥이 우리의 편입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인화(人和)입니다.
현대사 60년 동안 바로 이 문제, 인화 - 국민통합이라는 과제가 가장 난제였습니다. 현재 중장년 세대들은 식민지에서 막 탈피한 후발국가로써 가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권위주의적 군사정치에 대항해서 싸워야했습니다. 저는 군사독재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국가발전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기여 헌신해야 할 이 나라의 인재들을 ‘민주 대 반민주’의 내전(內戰)으로 소진시킨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야를 한반도 전체로 보면 남과 북의 대립구도는 우리 민족역량을 안으로 소진시켜 더 큰 비약을 이루지 못하게 발목을 잡아왔습니다. 남북, 남남 간에서 이 인화, 국민통합 문제를 끈기와 소통으로 이것을 마저 성취해낸다면 우리 국운은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국토도 좁고 자원도 빈약한 우리가 남북 대결시대를 끝내고 세계 속의 한국인들과 하나로 통합되어 민족의 우수한 자질을 극대화한다면 글로벌시대 우리 코리아는 세계에 우뚝 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홍익인간, ‘인간을 두루 이롭게 하라’는 단군왕검이 세운 건국이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은 모든 인간, 세계와 인류 앞에 보편 타당성을 지닌 사상입니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만이 잘살겠다는 것이 아
니라 모든 인간, 인류의 번영을 위해 크게 이바지 하겠다는 고상한 정신이요, 도덕적 가치입니다.
우리민족의 인류 사랑의 정신과 그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이념입니다. 세계 어느 국가도 전 세계와 인류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세계인과 더불어 함께 살기를 주창하는 이런 건국이념을 가진 나라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글로벌시대의 중심에 서서 위대한 한민족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는 시대적 여건과 지리적 환경, 경제력, 문화적 힘을 포함한 제반 조건에 더하여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 간직해온 세계공동체의 이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모든 좋은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큰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민족 내부의 소통과 단합이 중요합니다. 그 소통과 단합의 첫 단추가 바로 소통의 도구인 ‘말’입니다. 남과 북, 해외의 우리 민족구성원이 민족현실을 공감하여 큰 꿈을 함께 꿀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말이 통해야 합니다.
민족공동체의 흥망성쇠와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공동의 ‘말’은 순수한 의미의 혈연과 국가영토의 경계가 무너진 복잡한 세계 속에서 진정 우리 민족공동체를 하나되게 하는 겨레의 얼, 근본 정신과 같은 것입니다.
2013년 출간을 목표로 남북의 언어학자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은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큰 사업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여야, 남북, 국내 해외의 경계를 넘어 민족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함께 거들어야 할 사업입니다.
우리의 힘을 한데 모아 민족의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통일시대의 상징사업인 겨레말큰사전은 민족구성원의 인화를 현실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어떤 난관에서도 이 사전 편찬작업이 완수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을 부탁합니다.
김덕룡
편찬사업회 후원회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대통령 국민통합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