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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이 만난 사람

이준익 영화감독

사업회는 ‘93년 영화 ‘키드 캅’ 데뷔 이후 지역감정이라는 현재성에 주목하여 백제와 신라의 전쟁을 접목시킨 ‘전쟁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영화 ‘평양성’ 이후 환경운동 시민네트워크 ‘(사)푸른아시아’ 홍보대사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준익 감독을 만나 영화뿐만 아니라 역사와 언어, 문화에 대한 그의 화수분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익 감독하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왕의 남자’를 비롯하여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많은 영화가 떠오르는데요. 특히 사극영화인 ‘황산벌’, ‘평양성’에서 사투리를 소재로 삼아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키셨는데요. 이처럼 사투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언어 속에는 영화 속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관이나 사회관, 자연관 등 이런 게 풍부하게 들어있죠. 사실 언어가 없어지면 문화며 정체성 등이 없어지는 거죠. 언어 안에 세계관이 다 숨어있단 말이에요. 일례로 ‘거시기’ 라는 단어를 통한 언어의 소통의 오해와 이해, 이런 과정들을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반영을 했어요.

이준익 감독


실제로 영화에 전라도 고창 출신인 이문식씨를 캐스팅해서 시나리오에 없는 사투리의 디테일한 맛들을 살리는 의외의 성과를 얻기도 했죠. 사실 시나리오상에서는 ‘엄청 징한 욕’이라고 딱 한 줄 써있었는데 이문식씨가 욕을 개발하자고 현장에서 제안했죠. 이를 테면 “염병할, 우린 밥을 먹어도 반찬이 40가지야. 이 씨버럴놈아”라고. 근데 재밌게도 그 얘기를 듣다보니 “밥을 먹어도 반찬이 40가지야라는 것이 정말 욕이 되겠구나” 싶더라구요. 상대 비교가치에서 내가 열세, 열등감이 된다면 내가 욕을 보는 거니까요. 경상도는 산 밖에 없어요. 산이 악산이라 나물도 변변치 않아요. 소여물을 사람이 먹어야 되는 상황에서 우린 반찬이 40가지라고 약을 올리면, 엄청난 욕이 된다는 거죠. 언어를 중심에 놓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비교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예전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집단 차이는 집단의 풍습에서 나오고, 그것의 대표가 언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영화 속 ‘거시기’의 등장은 그 지역 언어, 즉 사투리를 통해 그 지역의 원형을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라고 봐도 될까요.

맞습니다. ‘거시기’의 분포를 보면 같은 자연환경, 생활환경에서 자란 표식이 있어요. 기호든 기표든 언어적 수단으로 그 “거시기가 아, 그 거시기” 한다는 거 아니에요. 다 알아듣는다고요. 경상도의 “가가 갸가?”는 전라도의 “거시기가 그 거시기?”인 거죠. 그 말이 똑같은 말이에요.
이렇듯 생활 속 가치, 생활문화 역사를 우리가 배우면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인정하고 사이좋게 살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지역어라고 말하는 전달 매개체로 해결이 되는 거죠. 실존적인 문화적 가치로 그 특성을 드러내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는 다 지배자의 후기 기록들입니다. 때문에 굉장히 폭력적인 역사관을 학습 받다 보니 계속 경제나 권력의 가치를 비교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는 거죠.

다시 영화 얘기로 들어가볼까요.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어느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영화를 찍으면 놀이터에 가는 기분이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이준익 사단’처럼 특별히 선호하는 배우가 있는지요.

적어도 영화를 찍을 때 만큼은 그 시대에서 자유롭게 놀자라는 생각에 배우들, 현장 스태프와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 찍죠. 그리고 전 사단이라는 말을 기본적으로 싫어해요. 왜냐하면 집단화라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나 집단 이기주의를 유발하기도 하기 때문이죠. 종종 매스컴에서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난 그런 표현을 기본적으로 싫어하고 영화를 만들 때 형성하지도 않아요.

감독님 영화에는 유독 영웅이 없는데요. ‘라디오 스타’, ‘님은 먼 곳에’, ‘즐거운 인생’ 등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을 굳이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삼류를 일류로 만들고 싶은 욕망도 없어 보이는데요. 이처럼 특별히 영웅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영웅을 제국주의의 소산물이라고 봐요. 좀 멀리 올라가 보면 결국 서구사회에서 영웅이라는 가치를 계속 재생산해냈다고 봅니다. 영웅의 가치가 어떻든 저는 개인적으로 영웅을 좋아하지 않아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내게 맞아요.

감독님은 ‘왕의 남자’가 은유의 미덕이라면 다른 영화는 직유의 미덕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요. 관객 입장에서는 은유의 미덕으로 표현하는 게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직유로 접근했을 때는 뭔가 관객에게 끊임없이 설득하려고 드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는데요. 그렇다면 감독님이 정말 찍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사극을 찍다보면 자꾸 직유화 돼요. 사극 자체가 이미 은유이기 때문에 보다 더 직접적인 주제를 전달해주고 싶은 쪽으로 쏠려서 저도 고통스럽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의미의 체계와 재미의 체계가 균형을 잘 잡았을 때 대중들이 즐기면서 그 의미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인데, 찍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한 번 사용한 은유를 또 사용하진 않거든요. 그것은 자기표절에 가깝고, 심하게 말하면 창조적 능력이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하죠. 흥하던 망하던 보다 더 본질에 가깝게 영상을 구성하고 싶은 거죠. 과거 역사와 오늘의 현재성을 직렬방식으로 묻고 싶었어요. 그게 만드는 사람의 병이죠. 전 이미 그 중병에 걸린 상태라 사실 저도 굉장히 힘들어요.

사실 감독님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 스토리에 강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계신대요. 최근 몇 편의 영화에서는 어느 순간 이야기의 힘을 상실한 느낌이랄까? 관객에게 어떤 교훈을 의식적으로 던져주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유를 보여주려다 보니 스토리가 약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스토리가 강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대중들은 약해진 것 같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게 괴리감이죠. 황산벌부터 기존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출발을 했고, 가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계속 가고 관객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더라고요. 그럼 갈아타야 하는데 못 갈아타고 있어요. 문학이나 미술은 혼자 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영화는 스태프, 배우, 호감을 가졌던 관객까지 같이 가는 장르입니다. 혼자 갈 수가 없는 예술장르입니다. 바로 그게 최근 은퇴 발언을 한 이유예요.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손목을 잘라야 겨우 도박에서 손을 끊을 수 있잖아요. 그처럼 영화판에서 아주 타짜가 되서 능숙하게 같은 패를 돌리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에, '오케이' 그래서 내 손목을 자르자. 이렇게 된 거죠.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가보자 뭐 이런 거죠.

감독님의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 입장에서 다음 영화가 무척 기다려지는데요. 요즘 영화 생각은 안 하시는지?

한 6개월 안했다가, 다시 해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사극을 하지 말라고 말리네요. 일종의 병을 벗어나는 방법은 그 자리를 떠나는 거니까요. 다음 작품은 현대사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혹시 사극영화를 제작하신다면, 어떤 사극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요.

만약 사극을 한다면 고조선으로 가고 싶어요. 고조선을 좀 환타지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거죠. 영화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잖아요. 절대반지라는 상징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보다 더 오래된 신화의 시대가 고조선 시대입니다. 치우천왕 마스크는 지금도 기와에 여전히 남아 있죠. 그처럼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현대역사가 얼마나 옛날의 역사를 가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옛 역사의 웅장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조선, 바이칼이나 만주의 넓은 공간으로 가고 싶은 거죠.

감독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애정도 많으신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겨레말큰사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다만 언어를 살린다는 가치는 우리네 삶의 본질을 살린다는 가치와 일치하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겨레말큰사전》의 그 노력을 전적으로 동감해요. 앞으로《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할 때, 지금 현존하는 압록강 두만강 아래에서부터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상태 고구려부터 시작해서 들어가서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점차 확장해서 봤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무쪼록 반드시 성과를 내어 표준어사전을 능가하는 《겨레말큰사전》을 우리 민족 앞에 내놓아주십사 부탁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준익 |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1993년 영화 ‘키드 캅’으로 데뷔하여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라디오 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곳에(2008), 평양성(2011)등을 제작하였다. 2006년 제3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상, 제43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씨네월드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