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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얽힌 이야기

강릉사투리, 마실 나가다

_ 전혜숙 / 문학박사

아이구야 마이 속았소, 아주 폭 속았소.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으로 확정된 후 심심찮게 듣게 된 말 중 하나가 이 말이 아닐까 한다. 동계올림픽 개최를 염원하면서 그간 공들인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가장 강릉적인 인사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싶다.
  잘못 이해하면 다른 사람의 거짓됨에 넘어갔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인데 이곳 강릉에서는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한 사람에게 그 애씀을 인정한다는 뜻을 담아 서로 주고 받는다.
‘속다’는 표준어 ‘수고하다’와 같은 뜻이다. 보통 ‘속았다’로 쓰지만 ‘속었다’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많다. 이 말은 단순히 ‘수고’에 대한 인사가 아닌 어떤 무엇을 하면서 들인 공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있는 정(情)이 가득한 말이다.
  이 말이 제주도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랜 적에는 여러 지역에 보편적으로 쓰였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하나의 어휘만을 짚어 보더라도 강릉이 얼마나 오랫동안 옛 언어를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옛적, 그 이전의 언어를 살피게 하는 강릉말로 ‘지벌나다’를 하나 더 덧붙여 본다. 이 말은 몇 가지 상황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요란하다’라는 뜻이다.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표현할 때 주로 쓴다. ‘신나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는데 이 또한 흥이 나서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 쓴다. 마지막으로 ‘넘쳐나다’라는 뜻이 있다. 이는 음식 같은 것을 지나치게 많이 장만하였을 때나 여러 가지 풍성하게 차려진 상차림에 대하여 ‘지벌나다’, 또는 ‘지벌이 콸썩 나다’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그 뜻을 음미하면 결국 이 셋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가 일정한 한도를 넘어 요란하고, 신나고, 넘쳐나는, 충분, 그 이상의 벗어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속았다’나 ‘지벌나다’는 그 어휘의 어원을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언제부터 쓰였던 말인지, 어느 지역에서 유입된 말인지조차도 설명하기 쉽잖다. 이런 말들이 강릉에서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음을 보면, 강릉이야말로 역사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언어의 보고(寶庫)라 할만하다.

  강릉말의 유지(維持)와 변화를 지리적으로 살펴, 남으로는 경상도를, 북으로는 함경도, 그리고 경기도를 주변으로 하여 그 지역들과의 언어 교차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강릉은 삼척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연접하고, 속초와 양양을 경계로 두고 함경도와 이어져 있다. 또한 평창과 정선을 앞세우고 경기도와 닿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강릉말이 이들 지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할 수 있다.
  현재 강릉에서 쓰이고 있는 표준어 집적거리다에 대응되는 ‘당글다’만 하더라도 경상도에서도 쓰이고 있음이 그러하고, 맷돌을 이르는 ‘망’이 함경도에서 쓰임이 그러하다. 더하여 가위를 이름하는 ‘가새’가 경기도 방언임은 너무도 잘 알려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은 경상도와 함경도, 경기도 그리고 그 주변 지역들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강릉만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어휘들이 여럿 사용된다. 새총을 이르는 ‘느르배기’가 그러하고 목말을 말하는 ‘동고리’가 그러하다. 속이 쓰릴 때 쓰는 말 ‘대룹다’ 역시 이 지역만의 언어가 아닌가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어휘들이 주변의 세(勢)를 과감하게 물리치고 독자적인 언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강릉이, 강릉만이 가지는 독특한 언어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주 간출하게 답을 낸다면, 아마도 지리적인 특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대관령과 태백산맥의 그 굵은 줄기가 사람들의 왕래를 쉽지 않게 했음은 분명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언어적 고립을 유지시켰을 것이다.

  말(言)은 변한다. 시간을 따라 변하고, 사람을 따라서도 변한다. 지금 이 지면으로 마실 나온 ‘속았다’나 ‘지벌나다’도 어느 때엔가 그 모양이 변해 있을 수도 있겠구나......생각해 본다.

| 전혜숙 |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 취득하고, 하노이국립외국어대 객원교수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강원도 동해안 방언의 사회언어학적 연구(2008년), 강릉방언사전(2009년, 2인 공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