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강보선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 연구원
남북한 어휘 중에는 형태와 의미가 동일한 단어들(동형동의어)이 많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남북한 사전에서 뜻이 거의 동일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남북 사전을 비교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남북한 동형동의어(同形同義語)로 분류되는 단어 중에는 실제로 남북에서의 쓰임이 일부 차이 나는 단어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전의 뜻풀이 비교를 통해서는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해당 단어가 실제로 사용된 여러 용례들을 분석하여 미묘한 차이를 밝혀 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북한의 문학 작품, 신문, 영화 등에서 남한과의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을 찾아내고, 이를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의 도움을 받아 10여 명의 새터민에게 차이 여부를 검증받아 보았다. 그 결과, 동형동의어로 분류되는 단어들 중에는 의미, 용법, 빈도 등에서 남북이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단어로는 ‘소행(所行)’, ‘늙은이’ 등이 있다. ‘소행’은 남한에서는 부정적 의미를 주로 지니고 있으나 북한에서는 부정적, 긍정적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무책임한 소행’은 자연스러운 반면 ‘아름다운 소행’은 부자연스럽지만 북한에서는 ‘아름다운 소행’과 ‘무책임한 소행’이 모두 가능하였다. 남한의 ‘선행상’에 해당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소행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북한에서는 ‘소행’이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또한 ‘늙은이’의 경우, 남한에서는 ‘늙은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때때로 중립적인 의미인 ‘노인’을 사용하나 북한에서는 ‘늙은이’에 부정적인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북한 문학에서는 “늙은이들은 낡은 것이라도 손때 묻은 것은 귀중히 여긴다.”, “늙은이, 젊은이, 아이할 것 없이 명절날 같이 바빠 돌아가며 분주히 드나든다.”와 같이 ‘늙은이’가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 예들이 많이 보였다.
남북에서의 ‘용법’ 차이를 보이는 단어로는 ‘살찌다’, ‘머리’ 등이 있다. 남한에서는 “살찐 송아지”, “왜 이렇게 살쪘니?”처럼 ‘살찌다’를 동물과 사람에게 두루 사용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주로 동물에게만 ‘살찌다’를 사용하고 사람에게는 ‘살찌다’ 대신에 ‘몸이 나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또한 남한에서는 “돼지 머리”, “철수의 머리가 크다”처럼 ‘머리’를 동물이나 사람에게 모두 사용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머리’를 사람에게만 사용하고, 동물에게는 철저히 ‘대가리’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새터민들은 남한에서 사용하는 ‘소머리 곰탕’, ‘돼지 머리 국밥’이라는 표현이 매우 낯설게 여겨진다고 하였다.
남북 사전에 모두 등재되어 있는 단어이지만 사용 빈도가 다른 단어도 있었다. 예를 들어 ‘끝물’, ‘싸다’는 남한에서는 많이 사용되나 북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반면에 ‘끝물’, ‘싸다’의 동의어인 ‘막물’, ‘눅다’는 남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나 북한에서는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또한 ‘휴일에 일한 대신으로 얻는 휴가’라는 뜻을 지닌 ‘대휴’, ‘불법’이라는 뜻의 ‘비법’, ‘자신감’을 뜻하는 ‘자신심’의 경우 남한에서보다 북한에서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남북한 사전 모두에 동일한 의미로 등재되어 있는 단어들 중에는 남한과 북한 어느 한 쪽에서만 유독 많이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남북에서의 쓰임이 동일하다고 생각해 온 단어들 중에는 실제로 의미, 용법, 빈도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나는 단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차이를 정확하게 밝히는 일은 남북 간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또 ‘겨레말큰사전’과 같은 남북 공동 사전의 편찬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더 많아져야 하겠다.
| 강보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