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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 깁고 더하기

달가니

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지난해레 당마가 제서 {달가니레} 다 터뎄디.(지난해에 장마가 져서 냇둑이 다 터졌지).
  {달가니를} 쌓을 때두 온 생산대 사람들이 다 같이 가서 쌓구 했디.(냇둑을 쌓을 때도 생산대 사람들이 다 같이 가서 쌓고 했지.)
  위의 예에 나타나는 ‘달가니’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발주한 ‘2007년 해외 지역어 조사’에서 중국 조선족 동포 사회의 말로 채록되었다. ‘당마가 제서 달가니레 터뎄디’와 ‘달가니를 쌓을 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달가니’가 내나 강의 양 옆에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냇둑’이나 ‘강둑’을 뜻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글》(7권 7호)의 ‘시골말’
   ‘달가니’는 ‘해외 지역어 조사’에서 채록되기 훨씬 이전인 1939년 8월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한글》(7권 7호)의 ‘시골말’에 ‘달가니’는 ‘강달가니’와 함께 ‘냇둑’의 평북 의주 방언으로 조사되었다.
  이후 ‘달가니’는 《한국고어방언사전》(1947), 《평북방언사전》(1981)1), 《조선어방언학》(1982)의 부록,2) 《조선어방언사전》(1992)3) 등에 계속해서 실리게 된다. ‘달가니’가 방언사전이나 방언 연구 관련 저서가 아닌 국어사전에 처음 실린 것은 1992년 남측에서 간행된 《우리말큰사전》이다. ‘달가니’는 북측에서 간행된 국어사전에는 계속해서 실리지 않다가 2006년 《조선말대사전(증보판)》에 실리게 된다.
  그런데 《조선말대사전(증보판)》에는 두 개의 ‘달가니’가 실려 있다. ‘달가니1’은 문화어로서 ‘강이나 바다 같은 곳에서 갑자기 푹 빠져 깊어진 곳’으로, ‘달가니2’는 ‘내뚝(냇둑)’의 평북 방언으로 풀이되었다. ‘달가니1’은 아직까지 남측에서 간행된 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단어로, 1969년 북측에서 간행된 《현대조선말사전(제1판)》에 처음 실렸다. 이후 ‘달가니1’은 《현대조선말사전(제2판)》(1981), 《조선말대사전》(1992), 《조선말대사전(증보판)》(2006)에도 계속해서 실렸는데, 그 뜻은 《현대조선말사전(제1판)》과 큰 차이가 없다.
  ‘달가니1’과 ‘달가니2’는 어떤 지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적 상관성을 갖지만, 그 뜻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형태가 같은 두 단어가 서로 다른 뜻을 갖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서로 상반된 뜻을 갖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달가니1’과 ‘달가니2’가 어떻게 서로 상반된 뜻을 갖게 되었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뜻풀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다.   ‘달가니1’이 북측에서 최초로 간행된 《조선말사전》에는 실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북측의 문화어 정책의 일환이었던 1960년대 중엽의 ‘어휘정리사업’과 관련이 있다. ‘어휘정리사업’ 이후 《현대조선말사전(제1판)》 이후의 사전은 《조선말사전》에서 방언으로 풀이하였던 올림말의 상당수를 문화어로 풀이하였거나, 《조선말사전》에는 없던 방언들을 문화어로 수록하였다. 전자의 예로는 ‘강냉이’, ‘게사니’4)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다랑구’5), ‘달재’6) 등을 들 수 있다. ‘냇둑’의 의미를 갖는 평북 방언 ‘달가니’도 ‘달재’와 마찬가지로 《조선말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다가 ‘어휘정리사업’의 일환으로 《현대조선말사전(제1판)》에 문화어로 등재되었다. 그 과정에서 ‘달가니1’의 뜻풀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둘째, ‘달가니1’과 ‘달가니2’가 그 어원이 서로 다른 말이었을 가능성이다.
  《조선말대사전(증보판)》에 ‘달가니’는 ‘달가니1’과 ‘달가니2’로 어깨번호를 달리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조선말대사전(증보판)》은 두 단어가 현재에는 소리와 형태가 모두 같지만, 어원적으로는 서로 다른 말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두 단어의 어원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겨레말큰사전》에서 두 단어를 동음이의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달가니1’과 ‘달가니2’의 어원적 관계를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북측과 ‘남북공동집필회의’가 열리게 되면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겨레말큰사전》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1) 북측에서 간행된 사전.
2) 북측에서 간행된 방언 연구 관련 저서.
3) 중국에서 간행된 사전
4) 거위.
5) 두름: ① 조기 따위의 물고기를 짚으로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 ② 고사리 따위의 산나물을 열 모숨 정도로 엮은 것.
6) 달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