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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開封)

_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영화관 단성사 1980년대 후반 모습 ▲영화관 단성사 1980년대 후반 모습
출처:http://blog.naver.com/sako71?Redirect=Log&logNo=130088762904
  서울에 극장이 많지 않던 시절, 거의 모든 극장이 종로와 충무로에 모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 단성사, 피카다리, 서울극장, 허리우드극장, 대한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정도가 서울에 있는 개봉관의 전부이지 않았나 싶다.
  그 시절, 사람들이 영화 한 편 보려고 1회 상영 시간 두 시간 전부터 아니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은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내겐 람보가 그러했다.
  꽤 인기 있는 할리우드 영화가 들어오면 극장들은 앞다퉈 큼직하게 ‘◯◯◯ 개봉 박두’라고 쓴 간판이나 플래카드를 내건다. ‘개봉박두’를 영어로 하면 ‘커밍 순’, 우리말로 풀면 ‘며칠 이내에 영화 상영을 시작하니 줄을 설 준비를 하시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때의 ‘개봉’은 다른 말과 어울려 영화와 관련 있는 새로운 말을 만든다.

⁃ 재개봉: 이미 상영하였던 영화를 다른 영화관에서 다시 상영하는 것.
개봉관: 새로 만들었거나 새로 들여온 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개봉’의 원뜻이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개별 한자어의 뜻을 봐도 그렇고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의 뜻풀이를 봐도 그렇다.

개봉(開封)
⁃ 한자어 뜻: 開 [개] 열다, 封 [봉] 봉하다
⁃ 표준국어대사전: ① 봉하여 두었던 것을 떼거나 엶.
⁃ 조선말대사전: 봉해놓은 것을 떼는 것.

  예전에 제작사에서 완성된 영화 필름을 각 영화관에 보낼 때 그 필름을 봉투나 필름통에 넣고 봉인하였다. 영화관에서는 봉한 것을 열고 필름을 꺼내어 영사기에 걸고 영화를 상영했다. 즉 영화관에서 봉한 필름을 여는 행위는 곧 ‘새 영화를 처음으로 상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 의미는 지금도 왕성하게 사용되고 있다.

⁃ 영화 광해 일본 개봉 확정, 내년 일본 전역서 개봉 <대전일보>
⁃ 스티브잡스 영화, 10월 10일 국내 개봉 <헤럴드생생뉴스>
⁃ <비 내리는 밤의 기적>이란 영화 보셨어요? 전 개봉 때 놓쳤다가 지금 명동극장에서 보구 오는 길예요.《황순원: 일월》

  남측에서 발간한 모든 사전에서 개봉의 두 번째 뜻풀이로 인정한 이 의미는 《조선말대사전》에 없다. 또한 북측 용례에서도 쓰임이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곧 ‘개봉’의 두 번째 뜻풀이는 남측에서만 쓰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