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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4.03

겨레말이 만난 사람

통일이란 하(何)오

_ 전영선 / 건국대 HK연구교수

전영선 교수    이즘처럼 통일을 설명하기 쉬운 때는 없다. 아니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통일을 해야 할 필요성도, 이유도 한 마디로 결론난다. 말 그대로 ‘대박’이다. 구호는 간결하게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그 힘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통일은’이라는 선창에 맞추어 ‘대박이다’로 건배도 몇 번 해 보았다. 통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데, 통일 대박론은 식어가던 통일논의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다.
   통일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준비가 필요하다. 남북 분단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 놓은 마음의 장벽, 분단의 상처가 아로새겨 놓은 몸의 기억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 속에서 공통성을 찾아내고, 그 공통성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남북의 문화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회적 성숙이 필요하다.
   대학원에서 수업할 때였다. 통일 관련 과제를 낸 적이 있었다. ‘통일이 되면 대박 날만한 직업은?’, ‘북한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남한 영화 5편을 고른다면’, ‘북한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북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곳 5군데와 그 이유는’ 등이었다.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있었고, 전업학생에서부터 종교인, 시민단체, 북한이탈주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각각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남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목표였다. 각자의 다른 생각을 읽고, 차이를 발견하고, 소통의 방향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노래’ 다섯 곡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제목만 기억하는 것도 박수를 받을 일이었다. 명색이 북한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대학원이었지만 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일반인과 크게 다른 수준이 아니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열의만 가득했지, 통일에 대한 기초체력은 부족했다. 열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정이 있다. 통일은 이 지난한 과정을 이겨낼 체력이 튼실해야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다. 욕심만으로 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은 분단의 시간만큼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문화적 공통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달라졌다. 소통 없이 지나온 분단의 시간이 낳은 결과이다. 남북문화의 이질화를 당연한 결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통일이 아니어도 문화적 혈맥을 찾아 이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편적 가치와 보편적 기준이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북 교류는 당장의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통일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 이익을 통일한국으로 환원하는 과정이다.
   통일은 오랫동안 분단되었던 남북의 삶이 하나가 되는 지난(至難)한 과정이다. 서로 다른 타자와 소통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남북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분단의 기억, 남북 사이에 켜켜이 쌓인 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 십 년을 불신의 관계로 이어왔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의 진정성보다는 말 뒤에 감추어진 의도를 먼저 경계한다. 불신의 아비투스가 우리 삶 속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통일이 되면 현재 휴전선 이북에 살고 있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북한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 사람’이라는 생각보다는 ‘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통일이 되어도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북한 사람’이라는 개념이 유효하다면 통일한국의 사회통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새로운 민족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민족개념의 방향은 한민족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혈연, 언어, 생활문화 등 표준화될 수 있는 지표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민족 구성원들이 각 지역에서 이룩한 차이와 문화변용을 바탕으로, 이 차이들이 상호 교감되고 소통되는 집단적 유대의 끈을 형성하는 데 있다. 단지 단순한 체제 대립만이 아니라 ‘마음의 장벽’을 남긴다는 점에서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간의 소통과 상처의 치유, 그리고 평화공존의 방향성 속에서 통일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남북 교류와 협력 사업은 단순하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과정이 아니다. 통일생태계를 푸르게 가꾸고, 통일한국의 꽃을 피우는 과정이고,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고, 북방을 통해 대륙으로 향한 문명의 길을 열어 나가는 과정이다. 남으로 해양으로 진출하고, 북으로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길을 다시 찾아 한반도를 통해 대륙과 해양으로 이어졌던 문명이동의 꿈을 깨우는 과정이다.
   막히면 뚫고 지나가는 뚝심과 함께 걸리면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막힌다고 주저 않고, 걸린다고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산이 강을 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이 산을 넘지 못하는 것인지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 산처럼 굳건하게 버티는 힘과 막히면 돌아서 길을 찾는 강의 지혜를 모두 배워야 한다. 통일에 대한 준비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다. 통일에 대한 모처럼의 관심과 열기를 통일의 동력으로 확보하고, 통일기반을 구축하는데 돌려야 한다. 통일은 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하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다. 통일이 되었다고, 저절로 강대국이 되고, 자유민주주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 준비해야 한다. 지금 준비하지 않고, 나중에 좋은 결과를 바랄 수는 없다.
   옛날 시골 마을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부에게는 농사짓기 싫어하는 자식들이 있었다. 자식들은 봄이 되어도 논밭을 돌보지 않아 잡초들이 무성하였다. 농부는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밭에 황금을 묻어 두었다는 유언을 남겼다. 평소 게으르고 농사짓기를 싫어하던 자식들이었지만 밭에 황금이 묻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열심히 밭을 갈아엎었다. 하지만 황금을 찾을 수 없었다. 황금을 찾지 못해 실망하던 자식들은 황금을 찾기 위해 갈아엎은 밭을 보고는 농사나 짓자고 하였다. 밭에 씨를 뿌리자 곡식들은 잘 자랐고, 큰 수확을 얻게 되었다. 비로소 자식들은 아버지가 말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진정한 보물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실천하고, 실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