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합금에 열처리까지 완벽하게 한 겁니다 예, 곰 배때지나 멧돼지 모가지를 찔러도 푹 들어갑니다, 기스 하나 안 납니다. (한창훈,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295쪽)
건성으로 훑어보았는데 그나마 기스 투성이여서 그냥 줘도 받을 사람 없을 그런 시계였다. (김종광, 『전당포를 찾아서』, 113쪽)
소설가 한창훈, 김종광의 소설에 보이는 ‘기스(きず)’가 일본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말로 ‘흠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였다. 아주 어설프게나마 일본어를 알게 되었을 때 희미한 기억 속에 떠오른 말이 ‘로꾸 고 산주’이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셈하며 혼잣말처럼 웅얼이시던 말이다. ‘로꾸 고 산주(ろく ご さんじゆう)’ 는 바로 구구단이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가미소리(かみそり, 면도날), 쓰메끼리(つめきり, 손톱깎이), 우와끼(うわぎ, 욋옷), 오봉(おばん, 쟁반), 와리바시(わりばし, 나무젓가락)’ 등 일본어의 잔재들이 우리 일상에서 떠돌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스’도 그런 말 중의 하나이고 지금도 무심결에 ‘흠집’보다는 ‘기스’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기스’와 ‘내다’와 ‘나다’를 결합하여 ‘기스내다’, ‘기스나다’와 같이 썼던 것처럼 ‘흠집’도 마찬가지로 ‘흠집 내다’, ‘흠집 나다’와 같이 쓰인다. 우리 사회에서 ‘기스내다’와 ‘기스나다’는 ‘어떤 사물에 이지러지거나 상한 자국이 생기게 하거나 생기다’의 의미로만 쓰였을 뿐이다.
요즘 새끼들은 물불을 안 가려. 찍기는 그렇다 치구, 찌르기는 왜 그렇게 휘둘러대. 옆엣놈 기스내겠더라. (김원일, 『아우라지로 가는 길(1)』, 220쪽)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장물아비들이 장물 취급할 땐 곧잘 써먹는 수법이지. 그래야만 감쪽같고, 또 물건도 깨지거나 기스날 위험이 없으니까. (김만태, 『큰도둑』, 261쪽)
비늘 쪽을 도마에 붙이고 꼬리쪽 살을 흠집내어 비늘 위에서 칼을 멈춘다. (백가흠, 『광어』, 『귀뚜라미가 온다』, 13쪽)
흰 거품 속에 마구 나뒹구는 머리통들 중에 말굽쇠 모양으로 흠집난 내 머리통도 끼어든다.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222쪽)
그러나 네거티브(negative) 공방이 정치권의 한 모티브가 되면서 ‘흠집내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나를 홍보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흠집내는 거였지. (이승우, 「동굴」, 『검은 나무』, 219쪽)
경쟁후보에게 해될 일이라면 일부러 다리품을 팔아 찾아다니는 판국인데 김부식이 2번 후보에게 흠집낼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은희경, 『마이너리그』, 211쪽)
은희경이나 이승우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흠집내다’는 앞에서 말한 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전자의 ‘흠집’이 ‘물리적 실체’라면 후자의 ‘흠집’은 ‘심리적 실체’이다. 후자의 ‘흠집내다’는 ‘다른 사람의 결점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들추어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뜻을 갖는 ‘흠집내-’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기’가 결합된 말이 ‘흠집내기’이다. ‘흠집내기’는 1990년대 초 신문기사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같은 대외적인 명분의 뒤에는 金총재의 大權구도와 관련, 일찌감치 盧총리를 물러앉게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盧총리에 대한 흠집내기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포함돼 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 (연합뉴스, 1991. 5. 6)
그런가 하면 야당은 국정조사를 야당세 만회를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거나 전정권에 대한 흠집내기에 주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향신문, 1993. 8. 31)
‘흠집내기’는 아직은 정치권에서 더 유용한 말이지만 점차 우리의 일상 속으로도 깊이 파고들고 있다.
또래들끼리는 목소리를 낮춰 주로 제 청춘 때 사연들, 남편 흉보기, 시부모 욕하기, 시누이 흠집내기, 자식 교육에 관한 것 따위로 수업내용을…. (한창훈, 『홍합』, 100쪽)
너희 매형을 흠집내기 위해 벌써부터 혈안들이다. (조창인, 『등대지기』, 57쪽)
트집잡고 흠집내기에 이골난 그들이 못할 짓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조정래, 『한강(9)』, 60쪽)
남한에서는 이미 ‘흠집내기’가 남을 깎아내리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는 ‘네거티브’의 의미로 고착된 반면에 북한에서는 남한과는 달리 ‘물리적 흠집’을 생기게 하는 뜻으로만 쓰인다.
괜히 남의 사정 봐주다가 제 상판에 흠집내기는 싫었다. (허문길, 『폭풍의 산아(3)』, 133쪽) ![](/webzine/2019_07/images/icon_end.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