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어 공통어 사전으로서의《겨레말큰사전》

우리 말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도 훌륭한 잣대

김필영 (강남대학교 교수)

필자는 한국 사람이지만 프랑스 국민이다. 2005년부터 한국에서 카작스탄학(1) 교수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중앙아시아와 프랑스의 대학에서 한국 문학과 한국 말을 가르쳐 왔다. 그동안 우리 민족 말을 가르치면서 한반도 안팎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겨레말큰사전》의 편찬과 관련하여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의 방침에 따르면 이 사전은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의 《조선말대사전》에서 선별한 어휘와 남북에서 각각 조사한 새 어휘를 검토하여 선정된 30여만 개의 올림말로 편찬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편찬될 이 사전의 명칭은 한국어사전이나 조선말사전이 되어야 함에도 그 명칭이 매우 애매모호하다. 국가의 이름을 내세우기를 매우 좋아하는 미국마저도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사전을 미국어 사전이라 하지 않고, 캐나다나 벨기에에서도 국가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프랑스어를 캐나다프랑스어라든가 벨기에프랑스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말은 그 뿌리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른데, 한반도에서는 국가 체재에 따라 한국어와 조선말이라고 부르고, 중국에 사는 동포들은 조선어라 하고,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고려말이라고 일컫는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래 처음으로 한국어와 조선말의 어문규정을 통일하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는 우리 민족어의 새 어휘들을 망라하여 편찬하게 될 이 사전은 내용에 걸맞게 통일어로서의 명칭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겨레말큰사전》-어느 겨레가 사용하는 말의 큰사전이란 뜻인가! 한국어든 조선말이든, 아니면 조선어든 고려말이든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하여 우리 민족어의 공통 명칭을 내세워야 한다. 이것은 이 말을 사용하는 한반도의 한국 사람과 조선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이 말을 배우는 외국인에게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소련의 해체 후 1990년대 초에 우즈베키스탄과 카작스탄에서 두 곳의 국립대학교에 각각 한국학 대학과 한국어 문학과를 개설하고 한국어 문학 교수 노릇을 한 적이 있다. 1994년에 한국 외무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의 한국학 전문가로 파견되어 국립카작대학교 한국어 문학과에 적을 두면서 국립카작사범대학교 한국어과에도 출강 했다. 특히 카작사범대에서는 평양에서 파견한 교수 두 명과 함께 같은 학과에서 같은 과목으로 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필자는 카작사범대에서 러시아어로 ‘까레이스까야 리떼라뚜라’(Корейская литература)와 ‘까레이스키 이즉’(Корейский язык)이라는(2) 과목을 맡았는데 이때 제기된 문제가 바로 교수들이 출신지역에 따라 한국어나 조선말로 불렀던 이 ‘까레이스키 이즉’이었다. 학생들에게 이 과목을 필자처럼 서울에서 파견된 교원은 ‘한국어’라고 가르쳤고 평양에서 파견된 교원들은 ‘조선말’이라고 가르쳤다. 같은 말을 두고 서로 적용하는 규범 자체가 다르니 학생들은 초기에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 갈팡질팡했다. 게다가 어휘마저 큰 차이가 나자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되면 “어느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치고 저렇게 설명했는데 왜 선생님은 다르게 가르치느냐?”며 질문을 하기가 일수였다. 그렇다고 평양에서 파견된 교수들과 모여서 규범을 통일하자고 상의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평양에서 파견된 교수들은 수업이 끝나면 인사 정도 나누고는 곧장 대사관에서 마련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예사였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런 문제로 한 번도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교수 각자가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쳤으나 실제 상황은 심각했다. 다행히 양쪽 사정을 이해하는 학생들이 잘 적응해준 덕분에 학교 안에서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는 늘 밖에서 생기는 법이다. 당시 한국대사는 카작사범대 총장을 찾

아가 조선에서 파견된 교수들을 내 보내면 한국정부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등 실수를 했고 대학 내에는 같은 민족끼리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현지 보직 교수 몇 명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필자는 몇 명의 교원들과 함께 현지 장관급 고려사람 공직자들을 찾아가 학생들을 위해서 평양에서 파견된 교원들이 학기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총장에게 부탁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은 필자와 학생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이 일로 한국 사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현지 대학 한국어 교육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켰다. 이 사건 이후 나는 평양에서 온 교수들과 가까워졌다. 수업이 끝나면 담배도 한 대씩 나누어 피우고 우리가 공통으로 가르치는 말에 대한 규범이나 어휘에 대한 논의와 토의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별히 어느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하자든가 저렇게 바꾸자던가 하는 제안은 어느 쪽에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차이를 확인하고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것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남북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학생들은 어문규범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민족이든 국가든 그 민족이나 국가의 공통어가 필요하다. 우리 민족도 소위 프랑스에서 말하는 프랑스어권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랑스어사전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에 편찬되는 이 《겨레말큰사전》은 이 말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이나 이 말을 배우는 외국인 모두가 찬사를 아낄 수 없는 중대한 사변이다. 왜냐하면, 서울과 평양, 중국과 중앙아시아,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은 물론 외국에서 제2외국어로 이 말을 배우는 모든 이들이 함께 쓸 수 있는 공통어사전이 될 수 있는 문화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한두 차례 학술적 이유가 아니면 사업상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1992년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내가 묵었던 평양여관의 승강기 안에서 젊은 프랑스인을 만난 적이 있다. 프랑스 만화영화제작사 소속으로 평양에 파견되어 근

무하는 이었다. 그의 주선으로 나는 그날 저녁 늦은 시간에 처음으로 디스코텍(discotheque)에 간 적이 있었다. 이것은 당시 평양에 있었던 외국인을 위한 유일한 춤장으로 창광산여관에 있었다. 그곳에서 평양에서 생활하고 있던 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외교관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온 한 학생의 기숙사에 들린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에티오피아에서 유학 온 한 여학생과 나눈 대화였다. 그 여학생은 내가 프랑스에서 산다는 사실을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고 특히 내가 사용하는 한국에서 쓰는 표준어의 발음과 어휘를 들으며 사뭇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는 그 여학생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양에서 사용하는 문화어를 가끔 썼지만, 그 여학생은 필자가 쓰는 한국어의 어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겨레말큰사전》은 바로 이처럼 외국인 가운데 우리 민족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는 유용한 도구 노릇을 할 것이며 우리 민족어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2004년 10월에 필자는 조동일 선생님의 배려로 봉화, 안동, 예천 지역을 자동차로 돌며 불교 사찰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 안동의 한 조그만 마을에서 느티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중학생들이 표준말을 쓰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집에서도 가족들과 표준어로 대화를 하니?”라는 뜻을 안동 지역어로 질문했다. 학생들은 집에서도 표준어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부모들은 지역어를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안동 지역어를 들으면 알아는 듣지만 대화는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사정이라면 이 지역에서 한 세대가 더 지나면 이 지방 말을알아듣는 청소년들마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 민족어의 지역어 사전이 총체적으로 편찬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에 편찬되는 《겨레말큰사전》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리 민족 말의 어문규범과 어휘들을 최대한 반영하여 사라지고 있는 지역어의 특징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

다. 필요하다면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훈민정음의 자모까지 외래어 표기나 새 어휘 표기에 도입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에서는 서울과 평양의 어문규범에 나타나는 자모 배열순서, 두음법칙, 사이시옷 표기,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등의 차이를 좁혀가며 새로운 어휘를 추가하고 뜻풀이를 새로이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편찬위원회는 서울과 평양에서 한국어와 조선말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위원회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외 각 지역에서 새로 만들어진 어휘들을 심의하여 추가하는 작업의 최종 검증을 위해서는 중국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고려 사람들까지도 한 명씩이라도 편찬위원으로 참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이 편찬사업을 일회용으로 끝내지 말고 사전이 출판된 후에도 이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연장하여 한국의 국립국어원과 조선의 사회과학원 산하 언어연구소가 공동 주관기관이 되어 지속적으로 민족 공통어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해 갔으면 한다. 여기에는 물론 조선족과 고려사람, 일본과 미국을 대표하는 위원들은 물론이고 남북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들을 포함시켜 새로운 어휘들을 조사하고 심의하여, 유명한 프랑스어 양대 사전인 Le Petit Robert나 La Rousse처럼 매년 개정판은 내지 못할지라도, 최소 5년에 한 차례씩이라도 민족 공통어사전 개정판을 출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점차 남북의 어문규정과 어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총체적인 민족 통일어 사전을 편찬하는 길이 마련될 것이다.

김필영 / 강남대 교수
저서 《Elementy sintaksisa koreiskoro yazyka (한국어구문요소)》(카작대출판부, 1999)
《Gramatika sovremennoro koreiskoro yazyka (현대한국어문법)》(카작대출판부, 2000)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1937-1991)》(강남대출판부, 2004).

  • (1) 이 글에서 카작스탄의 국가 공식언어인 카작어식으로 ‘카작스탄’이라고 표기한다. 참고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식 표기이다.
  • (2) 한국어식으로 번역을 한다면 ‘한국문학’과 ‘한국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