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과 내면의 소통

고인환(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문학 교류는, 분단의 장벽을 넘어 내면의 소통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05년 평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는 경제적·정치적 교류의 수준을 넘어서는 내면적 교류였다 할 수 있다. 단일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분단과 모순되는 상황임을 염두에 둔다면, 동일 언어를 매개로 하는 남·북 문학인들의 만남은 분단의 끝을 응시하며 통일문학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필자는 민족작가대회에 참가하면서, 남과 북의 분단선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금기의 이미지를 벗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분단선이 작가대회 참가자들이 묵었던 호텔과 그 앞 도로, 북측이 안내한 관광지와 인민들의 삶의 터전, 혹은 작가대회 참가자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차이 등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분단선의 이동은 분단의 상처가 우리의 삶 깊숙이 내면화되었음을 시사한다.

‘안내원들의 가슴에 부착되어 있는 김일성 배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이 배려한 음식’을 맛나게 드시라고 소개하는 기내 안내 방송, 어디를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붉은 글씨의 선동 구호’, ‘인민들의 거주지와 대비되는 혁명 기념 건물의 웅장함’ 등 북측의 풍경은 여전히 낯설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했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 ‘여기서 잠시 산책해도 되나요?’, ‘잠깐 위생실(화장실) 다녀와도 되나요?’ 등 연발되는 질문은 마치 초등학생이 소풍 온 듯한 풍경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 이념적 풍경의 이질감도 북측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점차 완화되어 갔다.

환영 만찬에서는 공적인 이야기를 뒤로 하고 주로 사적인 담소를 나누었다. 이 자리

를 통해 남·북의 문인들은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평범한 아빠, 가사노동 분담 문제로 사소한 언쟁을 벌이는 남편, 아이를 하나 더 가질까 고민하는 아버지 등 공적인 가면을 벗고 일상적 개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이렇게 체제와 이념의 벽을 훌쩍 뛰어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남과 북은 너무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색했는지 모른다. 특히, 체제와 이념의 차이는 언어의 동질성으로 인한 친근한 감정을 공유하는데 커다란 장애로 기능한 듯하다. 이런 점에서 ‘민족의 동질성 회복으로서의 언어’라는 매개항은 남북의 내면적 소통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 문학을 연구하다보니, 남·북 문학의 거리가 철자법의 차이라는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온다. 북측 문학의 인용문을 컴퓨터 화면에 타이핑하니, 남쪽의 작품들보다 붉은 색 밑줄이 더 많이 그려진다. 철자법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 붉은 색 밑줄은 문학적 분단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붉은 색 밑줄을 새삼 확인하며 분단선이 그리 두텁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다소 위안을 얻는다. 몇몇 단어에 표시된 분단선이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의 차원을 넘어, 문학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언어의 분단선이 북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경한 어휘나 표현이 발견되었을 때, 문맥을 통해 어림짐작으로 의미를 파악하곤 하지만, 작가의 섬세한 내면을 추적해야 하는 평론가로선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넘어 인간 본연의 감성을 포착하는 것이 문학적 교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통합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6·15공동선언 이후, 북쪽의 문학이 남측의 독자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점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홍석중의 『황진이』는 북측의 독자뿐만 아니라 남측의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은이가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이라는 점은

남측 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남한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제19회 만해문학상(2004)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흥미성을 넘어 남측에서 그 문학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홍석중의 『황진이』는 남과 북의 언어 이질화가 심각하다는 사실 또한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어휘들 중 두음법칙, 띄어쓰기, 맞춤법, 어휘의 쓰임 등이 남한의 규정과 달라 같은 민족이 쓰는 언어라고 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에 홍석중의 『황진이』 어휘 사전이 발간(2006)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전은 남·북한에서 두루 쓰이는 우리말 어휘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만 사용되는 어휘(32.73%)도 많아 남·북한의 살아 있는 언어를 두루 맛볼 수 있다.

소설가 전성태는 작가와 언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작가에게 미의식은 언어에서 나옵니다. 언어에서 발현되고 언어로 표현됩니다. 작가는 언어의 바다에 외바늘 낚시를 드리우고 바다를 감지하는 존재입니다. 문학의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적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작가에게 언어란 인간 존재의 일부분으로 격상됩니다. 모국어를 가진 작가는 단지 혈연적 친밀성만으로 말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국어가 갖는 색깔과 맛, 그리고 그 언어의 사회적 환기력까지도 예민하게 감지하여 사용하려고 애쓰는 존재들입니다.

작가에게 ‘제1의 조국은 언어이다.’ 언어가 작가의 사유를 지배한다는 것은, 언어가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내용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 남·북의 언어가 점차 이질화의 길을 밟아가고 있다는 점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이며, 이 이질화를 극복하는 일은 사고와 문화의 양식을 통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삶이 분단으로 인해 점차 이질화되고 있다면, 그 차이를 통합하고 이를 현재적으로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언어의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소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겨레말큰사전》을 통한 남·북 언어의 만남은 이념에 의해 단절되었던 우리 민족의 삶을 복원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한의 작가가 북한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북한의 작가가 남한의 독자를 상정하고 창작할 때, 나아가 작가들이 남·북의 분단선에 대한 자의식을 지니지 않게 되었을 때 진정한 문학적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의 초석을 놓는 작업이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이다. 남·북의 작가들이 《겨레말큰사전》을 펼쳐 놓고 하나된 우리말로 창작에 몰두하는 장면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고인환
문학평론가, 2001년 『중앙일보』 평론 등단, 제7회 젊은평론가상 수상. 저서로 『결핍, 글쓰기의 기원』, 『말의 매혹: 일상의 빛을 찾다』,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성 연구』, 『공감과 곤혹 사이』,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공저), 『한국문학 속의 명장면 50선』 등이 있다. 경희대 교양학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