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당신

이ㆍ희ㆍ자
겨레말큰사전이라는
영원의 나무를 심다가
52세의 나이로
짧은 生을 마감했다

이희자 선생님, 지난번 당신을 두고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회의를 하기 위해 중국 심양으로 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그 전 준비회의 때 보여준 당신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도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계단을 오르면서 난간을 붙잡고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오르는 모습을 봤으니 무거울 수밖에 없었지요. 더구나 당신께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우리 남북한 편찬위원들의 만남은 당신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을 하곤 했으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안부를 물어볼 때 뭐라고 해야 할 것인지, 상태가 심해져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니 북측 편찬위원들에게도 큰 걱정거리 하나를 심어주는 듯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마음에 또 걸려 내심 심란한 마음이 되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북측 편찬위원들은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가중 되었던지 만나는 이들마다 당신의 안부부터 묻곤 하였습니다.

회의를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당신의 비보를 듣게 되어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너무도 이른 나이에 이승의 삶을 마감해버렸다는 비통한 마음과 함께 겨레말큰

사전 편찬을 위해서나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이렇게 빨리 떠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 가슴이 그만 먹먹해지고 만 것입니다. 한순간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보자니 당신과 함께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이 있었던 날, 기자들 앞에서 겨레말큰사전 편찬 의의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함께 편찬하는 첫 사전이라는 점, 서로 다른 남북의 어문규범을 단일화시키겠다고 나섰다는 점, 남북 18개 도 뿐 아니라 일본ㆍ중국ㆍ러시아ㆍ중앙아시아 등 우리 동포들이 사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가서 입말을 조사ㆍ채록할 것이라는 점, 그런 조사도 해방 이전 세대가 남아있을 때 가능한 것이니 이번이야 말로 우리 민족에겐 마지막 기회라는 점 등 그 의의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설명하셨던 당신이었지요.

겨레말 회의를 하러갈 때 북측 편찬위원들에게 줄 선물이라며 뭔가를 꼭꼭 챙겨가던 분도 당신이었습니다. 공항 면세점에서, 비행기 안에서 ‘이 정도 선물은 괜찮겠죠’ 하며 늘 사재를 털어가며 선물을 준비했던 당신. 겨레말큰사전 편찬회의를 할 때엔 자신의 견해를 가장 먼저 밝히던 당신, 그래서 북측 성원들로부터 ‘남측 여성들은 저렇게 기가 다 세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언젠가 북측 편찬위원인 정순기 선생이 겨레말큰사전 보고대회 참가 차 서울에 왔을 때, 한반도기를 열성적으로 흔드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봤다며 정순기 선생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발을 구르면서 좋아했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전생의 오빠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워하면서 서울에 온 느낌은 어떠한지,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당신 자신의 집은 어디인지 등 물어보지도 않는 말까지를 숨가쁘게 해주던 당신이었지요.

이희자 선생님, 당신이 벌써 그립습니다. 몸이 좀 어떠냐는 말에, 병실에 누워서도 몸이 근질근질해 교정ㆍ교열을 봤다는 당신, 사전 편찬을 위한 일이라면 열 일을 제쳐두고 앞장서던 당신, 그래서 지금도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빤히 내려다볼 것 같은 당신, 먼 훗날 저승에서 만날 때에도 내 손목을 부여잡고 겨레말큰사전 사업의 뒷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를 것 같은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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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 제17차 공동회의(평양) 사진

이제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본궤도에 올라 달려가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의 결성식이 엊그제같이 느껴지지만 어느새 우리는 집필의 단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 어려울 것 같은 어문규범 문제가 두음법칙을 제외한다면 상당부분 합의에 이르렀고 새 어휘의 발굴 문제 또한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몇 년 후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힘든 고비도 많았습니다. 체제가 다른 남과 북의 특성상 서로 간 이해하기 힘든 일이나 오해로 인해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당신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의 유일한 홍일점으로서 앞장 서 분위기를 바꾸곤 하였습니다. 북측의 위원장이나 나이 많은 편찬위원들을 상대로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이 없는 당신만의 화법으로 경색된 분위기를 풀어내곤 하였지요. 그런 당신이었기에 사업이 본궤도에 오른 지금 너무도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아니 그렇게 일 잘하고 열정적인 당신이었기에 저승에서도 욕심을 내서 일찍 데려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희자 선생님,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열정과 순수를 그리워하며 남은 일들은 우리가 완성하겠습니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이 편찬되는 날 그것을 당신의 무덤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2009년 7월 15일

편찬위원 오봉옥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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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자

1958년~2009년 7월 7일. 연세대 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인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지은 책으로 <어미 조사 사전 - 한국어 학습용>(공저), <연세초등국어사전>(공저), <사전식 텍스트 분석적 국어 어미의 연구>(공저),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