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 내 손을 잡으렴. 여기서부터 {돌사다리}다.”
노부인의 손은 힘이 있고 눅눅했다. … {돌사닥다리}가 끝나고 길이 한결 평평해지자 그는 노부인의 손을 뿌리치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렀다. 《박완서, 오만과 몽상》
<오만과 몽상>에서 ‘돌사다리’는 한 번, ‘돌사닥다리’는 여섯 번 나타나는데, 둘 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정박아 수용시설’ ‘행복원’에 오르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돌사닥다리’는 일찍이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에서부터 실린 말이지만, ‘돌사다리’는 후대에 들어 사전에 실린 말이다. ‘돌사다리’가 처음으로 실린 것은 1992년에 북측에서 간행된 <조선말대사전>이며, 이후에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도 실리게 된다. 세 사전에서 ‘돌사다리’와 ‘돌사닥다리’를 같은 뜻을 갖는 낱말로 다루고 있는데, 그 뜻 바탕은 ‘돌이나 바위가 많아 험한 산길’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뜻으로 쓰인 예들이 발견된다.
불국사 자랑의 하나인
{돌사다리}다. 번들번들하게 대패로 밀어 놓은 듯한 층댓돌과 그 층층 상하에 손잡이 돌이 우뚝우뚝 서고 … 《현진건: 무영탑》
다만 남은 것은 다보탑(多寶塔), 석가탑(釋迦塔)과, 청운(靑雲)·백운(白雲)의
{돌사다리}와, 연화교(蓮華橋)·칠보교(七步橋) 돌다리가 성하게 살아 있을 뿐이었다. 《박종화: 임진왜란》
따라서 <무영탑>이나 <임진왜란>에 보이는 ‘돌사다리’의 뜻은 ‘돌계단’이나 ‘돌층계’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오만과 몽상>의 ‘돌사다리’나 ‘돌사닥다리’는 문맥상으로 ‘돌이나 바위가 많아 험한 산길’인지, ‘돌계단’인지 판가름하기 어렵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를 만나도 그만이란 생각으로 {돌사닥다리} 위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어머니는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 그의 어머니도 저 꼭대기에서 {돌사닥다리} 못미처까지만 오락가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그러나 현의 발길은 {돌사닥다리가} 시작되는 산기슭까지가 고작이었다. 《박완서: 오만과 몽상》
‘돌사다리’나 ‘돌사닥다리’는 ‘행복원’에 이르는 길이므로, 정황상 아래의 사진처럼 ‘돌계단으로 된 가파른 길’일 가능성이 있다. 어떻든, <오만과 몽상>에서 두 낱말이 어떤 의미로 쓰였든 간에 ‘돌사다리’의 다른 뜻 ‘돌계단(혹은 돌층계)’는 뜻풀이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돌과 바위가 많아 험한 산길’의 의미를 갖는 ‘돌사다리’와 ‘돌계단’의 의미를 갖는 ‘돌사다리’가 어원적으로 같은 말인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전자는 [돌+사달+-이],
후자는 [돌+사다리]와 같이 분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가 옳다면 ‘돌사다리’는 어깨번호를 달리하여 각각의 낱말로 뜻풀이하여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일 뿐이다. <겨레말큰사전>의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 지난 호에 게재한 <뜻풀이 깊고 더하기> ‘돌사닥다리 (1)’에 이어 ‘돌사닥
다리 (2)’를 연재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돌사닥다리(2)’
는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1) ‘돌사달’은 겨레말에서 조사한 새어휘로 ‘돌서덜’과 같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