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길재 / 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벌써 어두컴컴하여 자세는 보이지 않으나 뒤에 밤나무가 우거져 있고 제법 {지붕갓이} 넓은 초가 앞에 오자 아낙네와 사내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있는 집 같았다. 《박연희: 홍길동》
{지붕갓을} 한 십삼 년 간이나 안 걷어 내고 그냥 이리저리 밀어 놓고 그맀단 말여. 그렁게 나중에 집을 이러 온 이가 참 욕봤어. {지붕갓이} 원체 두꺼운게.
동아일보의 연재소설 《홍길동》(1972. 9. 8.)과 새어휘 조사 자료에 나타나는 ‘지붕갓’은 《우리말큰사전》(1992)과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만 실려 있는 올림말로, 그 풀이는 다음과 같다.
- 《우리말큰사전》
- 지붕갓 [이] <건> 초가 지붕을 엮는 데에 쓰는 볏짚.
- 《표준국어대사전》
- 지붕갓 [--갇] [명] <건> 초가지붕을 엮는 데 쓰는 볏짚.
두 사전의 뜻풀이에서 용도를 설명하는 부분 ‘초가지붕을 엮는 데에 쓰는’을 제외하면, ‘지붕갓’은 곧 ‘볏짚’이다. 그런데 위 예문의 ‘지붕갓’은 두 사전에서 뜻풀이한 ‘지붕갓’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붕갓’이 ‘넓다’와 ‘두껍다’와 같은 어휘와 결합하는 것을 보면, 분명 위의 예문에서 나타나는 ‘지붕갓’은 ‘초가지붕을 엮는 데 쓰는 볏짚’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볏짚’을 ‘볏짚이 두껍다’, ‘볏짚이 넓다’라고는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사전의 ‘지붕갓’과 위의 예문에 나타난 ‘지붕갓’이 서로 다른 말이거나, 사전의 뜻풀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전자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갓’이 ‘볏짚’의 의미로 쓰인 경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전의 뜻풀이가 잘못된 것으로 보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지붕갓머리’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삭은 이엉 고랑마다 버섯과 개망초까지 뛰어올라 자라고 있고, 호박 줄기는 이제 {지붕갓머리를} 다 휘덮었다. 《전성태: 태풍이 오는 계절》
위의 예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붕갓머리’
는 ‘초가지붕’과 관련이 있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대조선말사전(제1판)》를 제외하면 기존 사전에서 ‘지붕갓머리’를 '용마루‘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지붕갓머리’를 [지붕갓+머리]와 같이 분석했기 때문이다. 이때 ‘머리’는 ‘산머리’의 ‘머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의 꼭대기’
를 나타내는 말이 분명하다. 따라서 ‘용마루’가 ‘지붕의 마루’임을 감안하면 ‘지붕갓머리’가 ‘용마루’가 되기 위해서는 ‘지붕갓’은 ‘초가지붕을 엮는 데 쓰는 볏짚’이 아니라, ‘지붕’과 같은 말이거나 ‘지붕’에 뜻 바탕을 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지붕갓’은 [지붕+갓]과 같이 분석할 수 있는데, ‘갓’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풀이가 다양해질 것이다.
‘갓’을 ‘하늘갓’
이나 ‘치마갓’
의 ‘갓’처럼 ‘갓’을 ‘(일부 명사 뒤에 붙어)주변의 뜻을 나타내는 말’인 ‘가’의 방언으로 본다면, ‘지붕갓’은 ‘지붕의 가’와 같은 뜻을 갖게 된다. 또한 ‘갓’을 ’지붕이나 그릇의 기슭에 덧대어) 그늘이 지게 하거나 무엇이 몸체에 직접 떨어져 내리지 않게 한 것‘의 뜻을 갖는 ’갓‘과 같은 것으로 보면, ’지붕갓‘은 ’처마‘가 될 것이다.
‘갓’을 ‘삿갓’ 또는 ‘갓 모양의 물건’인 ‘갓’으로 보면, ‘지붕갓’을 ‘용마름’으로 볼 수도 있다. ‘용마름’이 ‘초가의 지붕마루에 덮은 ‘ㅅ’자 형으로 엮은 이엉‘임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그 쓰임을 확인할 수가 없다.
지붕갓을 한 십삼 년간이나 안 걷어 내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붕갓‘은 ’이엉‘이거나 ’이엉을 인 지붕‘일 수도 있다. ’지붕갓은 낡고 해어져서 비가 오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지붕갓과 벽난로의 굴뚝이 완성‘, ’장명등의 지붕갓
에서 모진 풍파를 지낸 세월을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등과 같은 쓰임을 고려해 보면 요즘 ‘지붕갓’은 ‘갓 모양의 지붕’이거나 ‘물매가 있는 모든 지붕’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된다. 하지만 원래 ‘지붕갓’은 ‘볏짚으로 엮은 이엉을 인 갓 모양의 초가지붕’을 이르던 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갓’은 ‘지붕갓머리’가 준 ‘용마루’일 수도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견해일 뿐이다. <겨레말큰사전>의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1) ‘지붕갓머리’는 《조선말사전》(1962)에 ‘용마루의 방언’으로 처음 실렸고, 이후 《현대조선말사전(제1판)》(1969)에는 ‘지붕의 용마루와 처마의 둘레’, 《현대조선말사전(제2판)》(1982)에는 ‘지붕의 용마루’, 《우리말큰사전》(1992)에는‘용마루의 방언’, 《조선말대사전》(1992)와 《조선말대사전(증보판)》(2007)에는 ‘용마루’로 풀이 되어 실린다. 《우리말큰사전》은 《조선말사전》은 ‘지붕갓머리’를 ‘용마루’의 방언으로 풀이하고 있는 반면, 《조선말사전》 이후 북측에서 간행된 사전은 모두 ‘지붕갓머리’를 문화어로 처리하고 있다. 이는 북측의 문화어 정책의 일환이었던 1960년대 중엽의 ‘어휘정리사업’에 의해 《조선말사전》에서 방언으로 풀이하였던 올림말을 문화어로 처리한 결과이다.
2) 《우리말큰사전》의 머리1④, 《조선말대사전》의 머리1⑦, 《표준국어대사전》의 머리1⑥ 참고.
3) 하늘가.
4) 치마도리의 가장자리.
5) 《현대조선말사전(제1판)》의 ‘지붕갓머리’ 참고.
6) 석등의 옥개석(지붕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