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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3.08

겨레말이 만난 사람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만난 겨레말큰사전 북측 편찬위원

_ 최호철 /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3년 8월 22~23일 양일 동안 중국 광주(廣州) 광동외어외무대학(廣東外語外務大学)에서 국제고려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Korean Studies)가 주최한 제11차 코리아(Korea)학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학술토론회에는 13개 국가에서 120여 명이 참석하였고, 언어, 문학 등 8개 분과에서 총 77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국제고려학회(http://www.isks.org)는 1990년 8월 5일, 일본 오사카 국제교류센터에서 개최된 제3회 국제학술토론회에서 코리아학의 활발한 연구와 그를 통한 학자들 사이의 교류를 목적으로 창립되었는데, 현재 아시아(중국) 분회, 일본 지부, 북미 지부, 유럽 지부, 서울 지회, 평양 지부 등 6개 지부로 구성되어 있다.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는 1986년 8월에 제1회 회의가 북경에서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열한 차례의 회의가 열렸는데, 많게는 대한민국과 북한을 비롯한 14개 국가에서 1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11분과에서 활발한 학술토론을 전개함으로써 남북한 학자들의 교류를 도모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이러한 학술토론회는 남북의 대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한 경우에 그나마 학술적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특히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으로서 북측의 편찬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기에 북측 편찬위원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이 학술토론회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회의는 2005년에 시작하여 2009년 12월까지 제20차 회의를 끝으로 현재까지 4년 동안 개최되지 못함으로써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그만큼 순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는 본래 사업기간을 2014년 4월까지 정했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개정하여 2019년 4월까지 연장하였다.
   제11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 참여한 북측의 학자는 모두 9명으로서 그 가운데에는 언어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회의 때마다 마주했던 정순기 선생이었다. 먼저 노학자인 선생의 건강과 근황을 묻는 인사로 시작하여 4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마음을 서로 주고받게 되었다.
   정순기 선생은 현재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는데 초창기 북한의 국어사전 편찬에서부터 현재까지 줄곧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온 사람으로서 북한 국어사전 편찬의 권위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사전편찬에 관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경험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서 좋은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언어분과 토론회에 정순기 선생과 함께 참석한 필자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관련하여 북측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여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물었다. 필자와 나눈 아래의 대화에서 보듯이 4년 동안의 남북 공동회의 중단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던 편찬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최:
현재 북측의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정:
남북 공동회의가 중단된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연구소 자체 과제를 하기에도 바빠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손을 놓고 있습니다.
최:
그래도 북측이 분담하여 맡은 부분은 자체적으로 진행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정:
남측의 편찬위원회가 해산된 거 아닙니까?
최: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측은 그동안 분담하여 맡은 부분의 집필을 다 끝낸 상태입니다. 나아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개정하여 사업기간을 2019년 4월까지 연장해 놓은 상태입니다.
정:
그렇습니까? 들어가서 문영호 편찬위원장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최:
그러십시오. 남북 공동회의는 일시 중단되었다 하더라도 남북이 각각 맡은 부분은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여건이 조성되어 남북 공동회의가 개최될 때 지체함이 없이 곧바로 상호 검토 작업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영호 편찬위원장에게 이러한 상황을 꼭 전하십시오.
   겨레말의 통일과 보존을 위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디딤돌이 되기 때문에 어렵게 성사시킨 남북공동 편찬사업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중도에 포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은 이름 그대로 남북이 서로 만나 협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긴 시간과 피나는 노력으로 정성들여 쌓을 돌탑이 도중에 무너지는 것을 좌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남북이 서로 만나 공동으로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중도에서 그만두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먼 훗날 후손이 우리에게 물었을 때 우리는 떳떳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은 주어진 기간에 차질 없이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겨레로서 남북이 서로 만나 닫힌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말의 민족적 통일 대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대승적인 견지에서 하루속히 남북공동 편찬회의가 속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