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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3.08

우리말 돋보기

다시 살펴보는 우리 말글살이

_ 구법회 / 한글학회 정회원, 전 연수중 교장

   우리는 하루 종일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말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말을 하며 일을 한다. 때로는 글자를 읽어 길을 찾기도 하고 정보를 얻으며, 필요할 때는 글자를 쓰기도 한다. 우리는 한국어로 말을 하고 세계의 으뜸 글자인 한글로 말글생활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 지금 우리 말과 글은 세계의 언어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말글살이의 현실은 어떠한가? 부끄러운 곳이 많아 안타깝다. 어떤 이는 요즘이 우리말의 위기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말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다듬고 가꾸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잘못된 우리 말글살이를 바로잡아 우리말이 가야할 바른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조식, 중식, 석식이 우리말인가?
   여행이나 연수회를 할 때 일정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조식, 중식, 석식이다. 이런 말은 특수한 경우에 간혹 쓰긴 하지만 우리말이 아니다. 일본식 한자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조식 잡수셨습니까? ”, “과장님, 중식 드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밖에도 공공 문서나 생활 언어에서 쓰는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말로 고쳐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하여백→아래빈칸, 빈칸,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 춘계소풍→봄 소풍, 상기(上記)→위(에 적은), 공차(空車)→빈차’로 쓰면 한결 우리말답다. ‘노견(路肩)→ 갓길, 추월→앞지르기’처럼 한자어를 토박이말로 바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며, ‘동아리, 새내기, 먹거리’와 같은 말들을 젊은이들이 살려 쓰는 것은 우리말의 미래를 밝게 해 주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2. ‘임의 침묵’인가, ‘님의 침묵’인가?
   사모하는 사람을 ‘임’이라 한다. 중세국어에서는 ‘님’이라 했지만 현대국어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임’으로 적고 발음도 【임】으로 해야 한다. 만해 한용운의 시 ‘임의 침묵’도 원본에는 ‘님’으로 되어 있지만 지금은 ‘임’으로 적어야 한다. (한글 맞춤법 제10항)
   대중가요 제목이나 노랫말에는 ‘임’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나훈아의 ‘임과 함께’는 요즘도 ㅎ방송의 가요무대에서 간혹 듣는다. 방송 자막을 보면 제목이나 노랫말을 모두 ‘님’으로 적고 가수의 발음도【님】이다. 어떤 노래는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가사도 있다. 두음법칙은 발음의 경제성을 따져서 만든 것이다. 북한에서는 발음이 힘든 대로 그냥 쓰기도 하지만 ‘녀자, 례의, 로동, 님’보다는 ‘여자, 예의, 노동, 임’이 발음하기 쉽고 그렇게 많이 쓰니까 만든 규칙이다. 우리 모두가 이 규칙에 따라야 하고 방송에서는 특히 유념해서 써야 한다.
3. 올레길과 둘레길(?)
   올레는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들어가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토박이말이다. 제주 옛말로는 ‘오라, 오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요즘엔 ‘제주에 다시 올래?’라는 귀여운 말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는 올렛길이란 제주도에서 올레체험이란 관광길을 개발한 것이다. 집 앞이 아닌 바닷가를 따라 인위적인 길을 만들어, 걷기 쉬우면서도 제주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을 가리킨다. 본디 올레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주도의 올렛길이 인기를 끌자 전국에 둘렛길이라는 것이 많이 생겼다. 대표적인 둘렛길은 지리산, 북한산 등에 잘 조성되어 있다. 그밖에도 각 도시 주변의 산에 지자체에서 둘렛길을 조성하여 주민들이 걷기 운동이나 산책로로 널리 애용하고 있다.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올렛길과 둘렛길에 대한 표기의 문제다. 지금 ‘올레길’은 굳어질 정도로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고 있으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둘렛길의 이름도 대부분 ‘둘레길’이라 쓰고 있다. 이들은 ‘토박이말+토박이말’의 합성어로 뒤에 오는 ‘길’이 된소리가 나므로 모두 사이시옷을 붙여 ‘올렛길’, ‘둘렛길’로 써야 옳다.(한글 맞춤법 제30항)
4. 언론에서 잘못 쓰는 말들
   -바라겠습니다 : 이 말투는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쓰기 시작하여 일반 행사 진행자들도 쓰고 있다. ‘-겠-’은 추측, 의지, 능력, 희망 등의 문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희망’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바라다’에 ‘희망’의 뜻이 겹치므로 어색한 것이다. ‘원하겠습니다, 희망하겠습니다’가 어색한 이치와 같다. 이는 ‘-바랍니다’로 써야 한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 방송에서 저녁 인사말로 흔히 쓴다. 이 말에서는 ‘되다’가 어색하다. 여기에 듣는 주체를 넣어 ‘당신은 편안한 밤이 되시오.’라고 고쳐보면 이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이는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정도로 고쳐 써야 옳다. ‘좋은 하루 되세요, 즐거운 명절 되세요.’ 등도 마찬가지다. ‘행복하십시오. 건강하십시오.’도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말은 형용사에 명령형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게 지내십시오.’와 같이 보조동사를 겸해 써야 어색하지 않다.
   ‘-에’와 ‘-에게’ : 신문에서 ‘-에게’를 쓸 자리에 ‘-에’를 흔히 쓴다. ‘-에’를 ‘-에게’의 줄임말로 쓰는 것 같다.
   -……아내 출산 중 내연女에 “사랑해”(2013.11.7. ㅅ일보)-
   위 신문 표제에서 ‘내연녀’는 ‘내연녀에게’로 고쳐 써야 한다. ‘-에게’는 〔+유정성〕뒤에 쓰이고 ‘-에’는 〔-유정성〕에 쓰인다. ‘공과금을 은행 냈다. 공과금을 은행 직원에게 냈다.’처럼 그 쓰임이 다른 것이다. 신문의 특성상 글자를 줄여 쓴다 해도 ‘-에게’를 ‘-에’로 쓰는 건 어법에 맞지 않다.
5. 외래어에 잠식당하는 우리말
   제일 큰 문제는 우리 말글이 외래어(외국어)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회사이름이나 간판, 광고, 상품, 아파트이름 등 우리 주변이 온통 외래어로 얼룩져 있고, 우리말 속에는 ‘오픈하다, 쿨하다, 해피하다, 디테일하다’처럼 영어의 줄기에 가지(-하다)를 붙여 쓰는가 하면 ‘상자’는 ‘박스’, ‘열쇠는 ‘키’로 둔갑하여 우리말 속에서 영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리콜(결함보상), 워킹맘(직장인엄마), 매니페스토(참공약), 스펙(공인자격증), 힐링(치유), 발레파킹(대리주차), 투잡(겹벌이), 블랙아웃(대정전) 등 신생 외래어를 만들어 자꾸 퍼뜨리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경제용어나 정보 통신 용어는 어려운 외래어가 더 많다. 이런 말들은 시간이 흘러 사용자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심의를 거쳐 인터넷『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표제어로 올리게 된다. 외래어가 국어사전에 자꾸 늘어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 외래어의 남용을 줄이는 일은 언론의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수시로 밀려드는 외래 용어를 우리말로 바로 번역해서 써야 하고, 언론사 나름으로 용어의 차이가 생기면 나중에 심의를 통해 적합한 말로 통일하면 될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누리집에 ‘우리말 다듬기’라는 연결 사이트를 만들어 우리가 흔히 쓰는 외래어(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일을 하고 있다. ‘리플→댓글, 웰빙→참살이, 내비게이션→길도우미, 이모티콘→그림말’ 등 390여 개의 낱말을 우리말로 바꿨으나 그 성과는 미흡하다. 이것은 언어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리 쉽지 않으며 이런 말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다듬은 우리말을 언론에서 먼저 쓰고 이를 널리 알리면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까지 부분적이지만 우리 말글살이의 잘못된 모습을 살펴보고 바르게 다듬어 나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리 말글을 바르고 온전하게 가꾸어야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은 세계의 으뜸 글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를 온 누리에 펼치기 위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2009년 찌아찌아족을 시작으로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최근엔 솔로몬 군도의 소수민족들에게 한글 보급을 하고 있다. 한글뿐만 아니라 사용자 수로 본 한국어의 순위는 세계 5천여 개의 언어 중 12위에 올라 있다. 최근 지구촌은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어 공부의 열기도 대단하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학에 한국어학과 설치 대학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을 믿으며, 우리 말글을 바르게 가꾸어 그 품격을 높이는 일에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