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김석득 / 연세대 명예교수
모든 일에는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완전의 이상을 위하여 늘 끊임없이 나아가는 최선의 노력이 있을 뿐이다. 이 나아가는 길에 이루어지는 매듭은 매우 귀중한 열매이며, 그 열매는 더욱 열매를 가멸게 잇달아 이어 맺는 뿌리를 깊일 것이다. 이러한 뿌리 깊이기와 열매 거두기의 이상은 씨뿌림에서 비롯함이니, 이 이상을 미리 깨치고 씨를 뿌림은 이상 실현을 위한 큰 힘이라 하겠다.
‘겨레’란 본디 옛글에 쓰이던 ‘같은 부류’의 뜻이(<신증유합>, <소학언해> 등에서, ‘결에’) 확장되어 ‘민족’과 아울러 쓰인다(최현배, <조선 민족 갱생의 도>(1926) 맨 끝 쪽에서 보인 ‘배달 결레’의 ‘결레’(겨레)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에서 겨레말이란 일정한 때와 얼안(공간)을 이루는 역사의 같은 뿌리(같은 핏줄)를 가진 겨레 얼의 말을 상징한다. 따라서 ‘겨레말큰사전’의 펴기는 겨레얼 문화인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요, 이루어야 할 최대의 이상이다. 본디 하나인 우리 겨레말은 주어진 오랜 때와 상황이 다른 얼안에서 일어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차이가 매우 크다. 이 차이를 극복하고 본디의 겨레말을 통일로 이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겨레의 사명을 안고 2005년부터 ‘겨레말큰사전’ 펴기를 시작한 것은, 그 완전에의 이상 실현을 위한 매우 슬기로운 판단이었다. 겨레의 같은 바탕(동질성) 이해와 겨레말의 힘의 철학의 신념 아래 그 동안 이룩한 배달겨레 있음(존재)의 까닭을 드러낸 업적은 크디크다. 쌓은 업적 그것은 다음 단계와 또 다음 단계의 야무진 성취로 이어갈 한 큰 뿌리힘이 될 것이다.
여느 일처럼 사전 일에도 완전이란 없다. 끊임없이 흐르는 때에 따라 변하여 마지않는 정신문화 세계의 한 단계를 끊어 정리하는 일은 완전을 위한 최선의 이상일 뿐이다. 사전의 일은 늘 이러한 역사 발전의 이상의 단계를 계속 밟는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펴내기는 오늘과 내일의 겨레 역사의 사명을 안고 나온 새로운 과제이다. 인류의 지적 문화가 발전하여 마지않는 오늘, 더욱 새겨지는 한 뿌리 의식의 얼안의 범주 앞에서, 이미 시작 때부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터이지만, 벌써 내년을 10년으로 바라보는 때 점(시점)에 이르렀다. 이제 그 성과를 기리면서 몇 가지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되짚기의 과정은 여느 일에서나 완전의 이상을 위하여 늘 있어야 하는 맞음·안맞음의 되살핌(검산)의 구실과 같은 것이리라. 이는 다 잘 아는 것을 다음에 생각의 한끝으로 되돌아 다져 밝히는 까닭이다.
첫째, 새로운 사전의 동기와 목적을 늘 되새겨 보자. 그 동기와 목적은 겨레 얼 문화 역사의 창의의 생산성 본부로서의 밑힘이기 때문이다.
둘째, 말본(문법)의 통일된 이론 체계를 되돌아 살피자. 이것은 겨레말큰사전이 완성을 이상으로 삼아, 그 거쳐야 하는 사전의 기본적 기술 체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말본의 체계는 이에 따른 맞춤법 문제, 표준말 문제, 들온말(외래어) 표기 문제들과 같은 이음 끈 관계에 있다. 이 문제를 되짚는 까닭은 새로운 범주의 ‘겨레말큰사전’이 지난날의 이 원칙을 되짚어 보면서 때와 얼안의 눈을 넓혀야 하는 새로운 상황 앞에 섰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과정이 무르고 약하거나 자칫 과학의 짜임새가 흐트러진 사전은 교육이나 지식 정보화나 세계화에 창의 생성의 힘이 약해진다.
셋째, 형태(의미)론의 이론으로 늘 비쳐 볼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얼안을 넘어 온갖 분야에 다양하게 변화 발전한 새로운 개념의 말 분포 상황을 통일로 이끄는 데는 오늘날 발전한 형태론과 의미(인지)론의 잣대를 요구한다. 새 낱말의 낱덩이 분석과 그 올림말 자격을 계속 되짚어 보아야 하는 따위는 그 한 보기이다.
넷째, 넓은 자료의 다시 보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편찬 작업 과정에서 많은 자료와 분석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료는 많을수록 겨레의 참된 속뜻 얼(심층 정신)이 드러나는 법이다. 곧 겨레의 속뜻 얼의 참 값은 자료의 다양성을 따르는 ‘따름수원리’(함수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편찬회에서는 선각들의 앞서간 사전들, 지역을 달리하나 역사상 권위 있는 대표다운 연구 기관을 통한 사전들, 겨레 있는 곳곳의 시골말 연구서나 굵직한 방언사전들, 토박이말 사전, 국어학(옛말, 일반언어학) 사전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 사전들, 그리고 그동안 겨레말 관계의 전문 학자들이 서로 주고받고 합의한 참고 자료들을 많이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을 사전 론에 맞도록 갈라(분류) 고름질함으로써 겨레 문화의 창조 생성의 상징인 ‘겨레말큰사전’으로 선을 보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에 필요한 것은 흠 없는 완성에 대한 마음 조림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이상을 보고 주어진 최선의 힘을 다한다는 성실함과 끈기와 느긋함이다.
다섯째, 올림말(전문, 일반)이나 말본범주의 뜻풀이에서는 겨레의 얼안에 든 관련 분야의 도움은 물론 일반 이론의 받침(의미론,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인지론, 문학말의 창의론 인식, 등 오늘의 발전한 관련 분야 이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는 겨레말의 특성상 그 낱낱의 풀이와 쓰임의 보기 글에는 바른 뜻의 다양성이 녹아나야 하겠기로이다. 이러한 사전이야말로 겨레 문화의 속뜻 이해와 그 바른 정보(과학)화와 그리고 그 참된 겨레 문화의 세계화에 이바지하는 힘이 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의 사명은 크다. 이 사전은 겨레의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창의 지혜의 생산성 본부가 될 것이다. 부디 이 사전이 겨레의 슬기 창조의 힘과 겨레말의 정보과학화와 세계화가 가멸게 열매를 맺는 깊은 뿌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신념으로 이 일에 몸 마음을 바쳐 수고하는 여러 전문가와 그 밖의 관계자 여러분에게 고마운 뜻을 마음으로 보낸다.
| 김석득 |
연세대 명예교수로 한국 언어학회 회장과 파리7대학 동양학부 교수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국어구조론』,『우리말 형태론』,『우리말 연구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