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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4.03

뜻풀이 깁고 더하기

시치미를 떼다

_ 김수현 / 겨레말큰사전 선임연구원

   어떤 단어를 뜻풀이할 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존 사전에서 그 단어의 풀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뜻풀이가 녹록지 않은 단어일수록 기존 사전의 뜻풀이는 꽤 유용한 정보가 된다. 그런데 가끔은 기존 사전의 뜻풀이를 보고 더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올림말 <시치미>를 찾았을 때가 그러했다. 사전을 보고 난 후 <시치미>를 뜻풀이할 때에, 이것을 다의어로 처리할 것인지 동음이의어로 처리할 것인지를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기존 사전의 뜻풀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준
국어
대사전
시치미 [명]
   ①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속에다 매어 둔 네모꼴의 뿔.
   ② 자기가 하고도 아니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
   시치미(를) 떼다[따다] 자기가 하고도 하지 아니한 체하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다.
조선말
대사전
(1992)
시치미01 [명]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꽁지우의 털속에다 매여두는 네모난 뿔.
시치미02 [명]
   자기가 아는 일을 모르는척하는 행동.
   시치미(를) 떼다(따다) 자기가 하고도 짐짓 안한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체하다.
연세
한국어
사전
시치미 [명]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하고도 하지 않은 척하는 짓.
   시치미(를) 떼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하고도 하지 않은 척하다.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시치미 [명]
   매의 임자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시치미를 떼다[따다]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시치미>를 동음이의어 곧, <시치미1>과 <시치미2> 둘로 나누어 처리하였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먼저 <시치미를 떼다>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시치미를 떼다>의 어원은 ‘고려 때, 어떤 사람이 사냥매에 붙여 놓은 이름표인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자신이 그 매의 주인인양 행세했다.’는 설이다. 이는 거의 정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설(說)이 국어학적으로나 어원학적으로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의구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확한 출처와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사전의 뜻풀이에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시치미>를 <시치미1>과 <시치미2>로 나누어 동음이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이는 <시치미>의 어원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어원(또는 설?)을 수용하여 뜻풀이에 적극 반영하고 <시치미>를 다의어로 처리한 것이다.1)
   추후 개정된 《조선말대사전(2007)》에서는 <시치미>의 뜻풀이를 아래와 같이 수정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음이의어로 처리하던 것을 개정판에서는 명사 <시치미>와 관용구 <시치미를 떼다> 둘만으로 구분하여 처리한 것이 눈에 띈다. 명사 <시치미2>의 용법과 의미를 관용구 <시치미를 떼다>의 용법과 의미로 수정한 것이다. 북측에서도 통설이 되다시피 한 <시치미>의 어원을 수용한 결과로 생각된다.
조선말
대사전
(2007)
시치미 [명]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꽁지우의 털속에다 매어두는 네모난 뿔.
   시치미(를) 떼다(따다) 매의 꽁지에 주인이 단 표식을 떼여 누구의것인지 모르게
   하고도 모르는체하였다는데로부터《자기가 하고도 짐짓 안한체하는 행동》을
   이르는 말.
   그러면 <시치미>의 뜻풀이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시치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 남북이 동일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음이의어보다는 다의어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파생의미인 명사 <시치미②>를 보이지 않고 관용구 <시치미를 떼다>만 제시할 수도 있겠으나, “너 왜 자꾸 시치미야!”와 같은 말이 빈번히 쓰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기본의미와 함께 보이는 것이 좋겠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시치미 [명]
① 매의 주인임을 밝히려고 이름이나 주소 등을 적어서 매의 꽁지깃 속에 매어 다는 꼬리표.
② 하고도 안 한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짓. | 건달은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 다른 사람들의 {시치미에} 울분이 났다.《배수아: 그 사람의 첫사랑》 / “안 그런 것처럼 {시치미는}? 앙큼한 게….”《윤림호: 비석골의 실화》

시치미(를) 떼다[따다] (남의 매에서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가 그 매의 주인인양 행세한다는 데에서) 자기가 하고도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다. | 눈치를 보면 원록이 한 짓이 틀림없는데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김명수: 이육사》 / 창근이는 전혀 모르쇠로 {시치미를 따고} 있으나 속으로는 어딘가 안착되지 못하고 있다.(《기수》)
※ 이 글은 글쓴이의 견해로, 《겨레말큰사전》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혀 둔다.
1) <시치미>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강로(1992), 조항범(2009)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며, 남측 교과서(중학교 국어
    1-2)에서도 동일한 어원으로 소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