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세열 / 직지디제라티연구소장
『직지(直指)』는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이 책은 1351년에 백운경한 스님이 원나라에 유학을 갔을 때 스승인 석옥청공(石屋淸珙) 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1권을 전수 받은 후, 공민왕 21년(1372)에 그 책을 바탕으로 부처와 조사(祖師)들의 게송(偈頌), 법어(法語) 등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그리고 1374년 백운이 열반한 3년 후인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목 변두리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상하 2권 2책으로 찍어 냈다. 그런데 지금은 아쉽게도 하권 1책 만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이름은 백운화상이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초록하였다고 하여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錄佛祖直指心體要節)』ㆍ『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ㆍ『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ㆍ『백운직지심체(白雲直指心體)』ㆍ『백운초록직지(白雲抄錄直指)』ㆍ『백운직지심요(白雲直指心要)』ㆍ『직지심체(直指心體)』ㆍ『직지심경(直指心經)』ㆍ『직지심요(直指心要)』ㆍ『백운직지(白雲直指)』ㆍ『직지경(直指經)』ㆍ『직지(直指)』ㆍ『심요(心要』등 저자와 책이름이 합쳐지거나 줄인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본 겉표지와 판심(版心:고서에서 책장이 중앙에서 접힌 곳)에 쓰여진 줄인 『직지(直指)』라는 책이름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위의 책이름 중 『백운직지심요』ㆍ『백운초록직지』ㆍ『백운직지』라는 이름은 어느 판본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학자들간에 약서명으로 제안되고 있는 서명일 뿐이다.
『직지』에는 여러 책이름이 있지만 그 본래 ‘직지(直指)’라는 말은 『벽암록(碧巖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와 같은 불가(佛家)의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 되었다. 그 뜻을 새겨 보면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백운선사가 가려엮은 『직지』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모든 가르침은 인간의 마음(心體)을 다른 매개체(媒介體)나 거리와 간격이 없이 곧 바로 가리킨 것 중에서 가장 고갱이(要緊)만 가려 뽑았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위에 열거된 여러 책이름 중에『직지경(直指經)』과 『직지심경(直指心經)』은 잘못 쓰이고 있는 이름이어서 바로 고쳐져야 한다. 특히『직지경(直指經)』은 의학서적인 『직지경(直指鏡)』의 ‘鏡’자를 ‘經’으로 잘못 사용하면서부터 비롯되어 바로 고쳐져야 한다.
『직지심경(直指心經)』의 경우는 우리나라 고문헌에 사용한 전례가 없는데 각급 교과서와 언론은 물론 일부 스님들도 이 책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정확하게 그 의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직지심경』으로 쓰이게 된 연유는 1972년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가 책 전시회 출품목록을 작성하면서 원제목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사용하려 했으나 제목이 너무 길어 『직지심체요절』이라고 정하려던 중 책 중간쯤에 백지로 『직지심경』이라 써서 붙여져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부제라 여겨 원제목 대신에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그런데 현재는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본 『직지』하권 서근(書根:선장본 책을 찾기 편하게 하기 위해 밑부분에 쓴 서명) 1/3우측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下 直指心經』 이라고 쓰여 있으나 당시 박병선 박사는 이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리하여 1972년 ‘책전시회’와 1973년 ‘동방의 보물’ 등 프랑스에서 개최된 전시회 소식이 국내 언론에서도 당연히 『直指心經』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은 『한국서지』보유판(Supplément a La Bibliographie Coréenne)에서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고 원명 그대로 소개하였다.
『직지심경』이라는 책이름은 흥덕사 간행 금속활자본의 서근묵제(書根墨題)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근의 묵제(墨題:먹으로 쓴 책이름)는 처음부터 쓰인 것이 아니고 장서 검색의 편리를 위하여 후대에 와서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직지심경』책이름은 간행 당시의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보다는 후대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經)'은 사서삼경이나 불교경전 또는 예수와 같은 종교 창시자나 성인들의 저서에서만 쓰여져 『직지』와 같이 여러 종류의 책에서 가려내어 엮은 책에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불경에서는 "내가 다음과 같이 들었도다!"라는 ‘如是我聞’으로 시작되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금강경(金剛經)』ㆍ『반야심경(般若心經)』ㆍ『대비심경(大悲心經)』과 같은 경전에서 사용된다. 그런데『직지』의 내용은 경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史傳)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經'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조선시대에 유가의 경전인『심경(心經)』이 왕실과 사대부에서는 많이 읽혀졌다. 이 책은 송나라 진덕수(眞德秀)가 경전과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6세기 중엽인 중종 말, 명종 초에 김안국(金安國)이 이를 존숭하여 그의 문인 허충길(許忠吉)에게 전수한 데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서삼경의 고전과 도가의 학문 중에서 ‘심(心)’에 관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이러한 책을 접한 사람들이 마음공부와 유사한 『직지』에 『심경』을 붙여 『직지심경』으로 하지 않았나 한다.
『직지』에 대한 책이름은 분분하지만 올바른 뜻은 “부처님 이래로 웃대의 부처와 뛰어나셨던 인도, 중국, 우리나라에서 뭇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던 부처님에 대한 가르침이 높으신 분들의 말씀 중에서 그 고갱이를 가려 뽑고 보태어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금속활자본 『직지』는 “지금까지 이 세상이 생긴 이래 우리나라에서 쇠붙이를 녹여 만든 글자로 찍어낸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해야 한다.
| 이세열 |
직지디제라티연구소장으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인『직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서예문지』,『직지』,『잃어버린 직지를 찾아서』,『규장각지』,『역사속의 초정약수』,『베스트셀러 100년사』,『직지디제라티』등이 있다.
_ 최준호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저 사람 우리 부서 사람인데, 사전틱하지 않아?”
“오타쿠틱해보이는데?”
영화 <행복한 사전>은 겐부 출판사 사전편집부에서 퇴임하는 사전 편집자가 자신을 대신할 직원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출판사 신관 건물에서 사전 편찬에 맞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전 편집자들은 모두 괴상해 보인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올림말 목록을 대조해도 지루해 하지 않는가 하면, 할아버지 나이의 편집자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수집하기 위해 단체 미팅에 동행하기도 한다. 항상 ‘용례 수집 카드’라는 것을 들고 다니면서 시도때도 없이 새로운 말이나 용법을 발견하면 꺼내서 적어 놓는다. 데이트할 때마저도. 그들은 항상 사랑에 빠진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대신 조건이 있다. 앞으로 ‘사전'이란 이름이 붙는 건 모두 사전편집부에서 만드는 걸로... 패션 사전이라든가, 요리 사전이라든가… 그렇지. 아이들 대상의 괴수백과사전도 잘 팔리겠네.”
“하겠습니다.”
국어사전 출판은 상업적인 가치와 거리가 멀다. 겐부 출판사 영업부장은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서 인력이 투입되는 사전 기획을 취소하려한다. 이에 주인공은 영업부장을 설득하러 찾아간다. 영업부장은 거절의 의미로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걸지만, 주인공은 ‘하겠다’고 한다.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사전 편찬 일이 너무나도 좋아져버린 것이다. 사전 편집자란, 사랑에 빠진 사람이란,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니까 그만둘 수도 없다.
“당신은 사전 만드는 일에 잘 어울리네요.”
“어디가요?”
“정리정돈은 사전 편집자에게 필요한 재능이에요.”
사전 편집부에 패션잡지를 만들던 젊은 여직원이 배속되어왔다. 화려한 네일아트에 술도 샴페인밖에 안마시던 그녀가 사전편집부 사람들과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너무나 내성적인 주인공도 그렇고, 처음엔 사전 편찬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인물들이 하나 둘 모여서 사전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사전은 혼자서 만들 수 없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으면 수십만 개의 원고를 하나의 사전으로 묶을 수 없다. 어느 한 명이 우수하다고 드러나지 않지만, 누군가 실수를 하면 눈에 띄는 것이 사전이니까.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좋아하는 것을 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을 열정적인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지금 <행복한 사전>을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