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최경봉 /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언어는 어떤 언어나 고요한 자리에 놓고 위하기만 하는 미술품은 아니다. 일용잡화와 마찬가지의 생활품으로 존재한다. 눈만 뜨면 불을 쓰듯, 물이나 비누를 쓰듯, 아니 그보다 더 절박하게 먼저 사용되는 것이 언어라 하겠다.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품이다. 그러므로 잡화나 마찬가지로 생활에 필요한대로 언어는 생기고 변하고 없어지고 한다. (이태준, [문장강화], 1940)
이태준은 언어가 일용잡화와 같은 생활품임을 강조했다. 1940년대 우리말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이처럼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태준의 말이 상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시절 이태준의 눈으로 우리말과 글을 바라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방 후,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해야 했던 때, 우리는 순수한 우리말을 도로 찾고자 했고 이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확인하려 했다. 산업화 시대, 국민정신 또는 민족주체성이 강조되던 시절, 그때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었고,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했고,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면서도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야만 했다. 이때 한글과 우리말은 조상의 빛난 얼이었고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징표였다.
그 시절, 자존심의 회복과 역사적 사명을 의식해야 했던 국어정책은 규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국어순화=민족주체성 확립=국민정신 통일”의 등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되고 민족주체성이 강조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전용을 지시했다. 1970년 교과서에서는 전면적으로 한글전용을 채택하였다.
1972년 유신헌법이 통과되고 한국적 민주주의가 강조되면서, 국어의 정체성 문제가 부각되었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어순화운동을 지시하였고, 문교부 내에 ‘국어순화운동협의회’가 신설되었다. 전국민적인 국어순화운동이 일어났고, 국어순화를 위한 검열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언어의 문제를 민족주체성과 국민정신의 문제로 확대한 결과는 ‘국어의 피폐’였다. 각종 행정조치와 사전 검열을 통해 국어순화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갔지만, 난해한 문장과 비문으로 가득 찬 행정문서와 법률문서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족주체성 확립’과 ‘국민정신 통일’을 위한 국어정책은 상상의 ‘국민’을 동원하는 일이었지, 우리말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겪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아니었다. 국어정책이 국민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방기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인의 상처 입은 자존심이 자부심으로 변할 만큼 국가가 부강해졌다. 그런데 역사적 사명을 강조했던 시절의 잔영은 새로운 한글 판타지를 만들었고, 판타지의 주인공은 상상의 ‘국민’에서 상상의 ‘세계인’으로 대체되었다.
“고유의 말은 있지만 문자는 없는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 그들은 자신의 역사조차 자신의 말로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글을 공식 표기문자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수난과 건설의 시절, 조상의 빛난 얼이었고 자주독립의 징표인 한글은 세상 어느 문자보다 우수한 문자였다. 한글을 쓸 수 있는 우리는 당연히 천운을 타고난 민족이었다. 그러한 자부심은 간혹 다른 문자에 대한 차별을 또는 한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낳았다. 한글과 관련한 오해와 편견의 잠언(箴言)에 어린 시절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가! 그러한 잠언이 얽히고설킨 끝에 드디어 ‘소외된 천재의 강박’과 ‘한글제국주의의 애절한 탐욕’이 배어 있는 한글 판타지가 탄생했다.
매혹적인 서사의 판타지는 너무도 쉽게 상식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그 착각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문화부는 '공식 문자 채택' 관련 부분은 '부족어 표기에 한글 교육 실시'로 수정하기로 했고, '문자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삭제'를 요청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에서 기술한 내용이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관련 법률에 따라 공용어와 고유 문자가 없는 지방어를 모두 로마자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2.10.23.)
역사적 사명감을 벗어던졌을 때, 그리고 잠시나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판타지를 덮었을 때, 현실은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사실 변한 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글과 우리말은 우리가 써 왔고 앞으로도 써야 할 생활품이다. 오히려 적나라한 현실은 생활품을 생활품답게 쓸 수 있는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질문: 말과 글이 왜 있어야 할까? / 대답: 의사소통을 위해서.
질문: 어떨 때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고 하지? / 대답: 상대에게 내 뜻을 잘 전달했을 때지.
그런데 현실의 권력 관계는 이처럼 단순한 의사소통의 원칙을 왜곡할 수도 있다.
국민 참여 재판이란 배심원제도를 뜻합니다. 종래 재판의 객체로만 여겨져온 국민들이 스스로 심판하는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국민주권주의를 재판의 영역에까지 확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략) 이젠 검사나 변호인이 판사와의 소통에 안주하지 않고 배심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호소력을 높이는 새로운 법정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호사 한승헌 인터뷰 기사, [경향신문], 2009년 6월 11일자)
의사소통의 원칙을 왜곡하는 현실의 권력이 분명해질 때 비로소 언어의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생활품으로서 언어의 사용법은 분명해진다. 이때 핵심은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공공언어의 통제 원칙을 정하는 일이다.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글로 배심원을 이해시켜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과 글로 정부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설혹 그 일이 전문적인 일일지라도 국민 누구나 알 수 있게 설명하는 게 정부와 전문가의 의무이다. 그렇다면 국어정책과 국어교육은 공공언어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기반을 닦는 일이다.
민주사회에서 언어 통제는 쉬운 공공언어 쓰기를 지향한다. 이때 언어통제의 제1 원칙은 투명하고 정확하게 쓰라는 것이다. “수용자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 수 있게 배려하는 태도로 쓰면 글은 쉬워진다.”
그런데 우리에게 쉬운 공공언어 쓰기를 요구할 권리만 있을까? 우리는 공공언어의 수용자이자 생산자로서 공적 영역에서 맡은 바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의견을 공적으로 표현할 기회는 많아진다.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타인과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은 생활이자 생존의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공공언어를 통제하는 것과 사회 구성원의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 모두를 공공성의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다문화사회로,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의사소통의 문제는 다분히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재음미할 말은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품”이라는 말이다. 생활품이기에 모든 국민이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방안, 의사소통에서의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배려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생활품의 민주적 공유는 평화적 공존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 최경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