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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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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외래어는 얼마나 다를까?

_ 유현경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남과 북이 보이지 않는 선을 사이에 두고 따로 생활한 지가 70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70년 동안 남북의 언어생활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지난해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회의 참석 차 평양에 처음 갔을 때 그동안 책이나 언론을 통하여 알아왔던 북쪽의 언어생활을 실제로 접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되었다.
   남북 언어생활의 차이는 동일한 대상을 다른 형식으로 가리키는 어휘들을 예로 많이 들어 왔다. 그러나 남쪽에서 북쪽의 어휘들로 알려진 것들 중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최근에 여러 지면을 통하여 지적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북쪽의 어휘들에 대한 정보가 사전이나 책 등 글말 텍스트에 국한되어 있었다가 최근에 새터민의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실제 북쪽의 언어생활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된 것이 그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예들 중 북쪽에서 아이스크림을 다듬은 말인 ‘얼음보숭이’가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꽤 알려진 사실이다. ‘얼음보숭이’라는 말은 최근 북쪽에서 나온 사전에도 빠져 있고 오히려 남쪽의 일부 국어사전에만 ‘아이스크림’의 북쪽말로 실려 있는 정도이다. 지난해 가을 평양에서 편찬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묵었던 호텔의 상점에 있었던 아이스크림은 남쪽의 상품과 비슷한 것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에스키모’를 발견하고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로 찍어 보았다.
   ‘에스키모’는 북쪽에서 생산되는 아이스크림의 상품명이다. 냉장고 안에는 ‘코코아향 에스키모’, ‘쵸콜레트 에스키모’, ‘과일즙 에스키모’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에스키모가 있었다. 대표적인 상품명이나 그 상품을 발명한 사람의 이름을 일반명사처럼 사용하는 예는 ‘호치키스, 봉고차, 바바리, 샌드위치’ 등이 있다. 북쪽 호텔의 음료를 파는 커피숍의 메뉴판(두 번째 사진)에도 ‘에스키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접대원한테 물었더니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단다. 에스키모라는 메뉴 옆에 있는 그림으로 보아서는 남쪽에서 파는 아이스크림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에서 나온 사전에는 ‘에스키모’ 이외에 ‘아이스크림’도 올림말로 올라 있다. 실제 북쪽에서는 ‘얼음보숭이’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아이스크림’보다는 ‘에스키모’가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의 다듬은 말인 ‘얼음보숭이’가 정착되지 못하고 없어진 것은 언어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북쪽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언어는 사용자들이 외면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이외에도 커피숍에서 파는 음료의 종류는 커피부터 주스, 녹차, 홍차까지 남쪽과 크게 다름없었다. 남쪽의 외래어 규정에 의하면 ‘주스’인데 북에서는 ‘쥬스’로 표기하고 있었다.(위 사진 참조) ‘과일 종합쥬스’에서는 ‘쥬스’라는 외래어를 사용하고 ‘귤단물’은 ‘쥬스’ 대신에 ‘단물’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한 것이나 아이스커피는 ‘찬 커피’로, 뜨거운 커피는 ‘더운 커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북쪽의 외래어는 대규모 말다듬기 사업을 통하여 많은 외래어가 고유어로 바뀌었지만 ‘얼음보숭이’처럼 다듬은 말이 쓰이지 않고 외래어가 살아남은 경우도 있고 이미 그 쓰임이 굳어져 널리 쓰이거나 마땅한 다듬은 말이 없을 때는 외래어가 그냥 쓰이기도 한다. 다음의 사진은 북쪽의 호텔 안의 여러 가지 서비스의 봉사요금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파마’라든지, ‘쎄트’, ‘보링’ 등의 외래어를 찾아볼 수 있다. ‘파마’와 같이 남쪽의 외래어와 동일한 경우도 있지만 ‘쎄트’나 ‘보링’ 등의 단어에서는 표기의 차이가 눈에 띈다. 남쪽의 외래어 규정은 베트남 어나 타이 어 등 동남아의 몇 언어를 제외하고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에서는 외래어 규정에서 ‘뻐스(bus), 마싸지(massage), 싸이렌(siren), 집씨(Gypsy)’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된소리를 쓰는 범위가 훨씬 넓다. 이밖에도 ‘고뿌(cup), 카텐(curtain), 도라이바(driver), 비데오(video), 세멘트(cement), 이메지(image), 벤취(bench)’ 등 많은 수의 외래어가 남쪽과 표기가 다르다.
   남과 북의 언어 차이는 주로 어휘와 관련된 것이다. 어휘는 남쪽 안에서도 방언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남북의 언어 차이는 어휘를 제외하면 방언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휘 중에서도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류가 외래어이다. 외래어는 분단 이후에 들어온 말이 대부분이고, 같은 어원을 가진 외래어도 들어온 경로나 남과 북의 규정이 다르기 때문에 표기나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남쪽에서는 외래어의 범위를 넘어 외국어에 가까운 어휘들이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되고 있어 남북의 언어 차이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생활 외래어뿐 아니라 학술 분야에서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외래어나 외국어도 남과 북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남과 북의 언어 문제는 주로 두음법칙이나 사이시옷 등의 주요 규정을 초점으로 논의되어 왔는데 이러한 규정상의 문제는 일괄적인 처리를 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측면이 있는 데 비하여 외래어의 경우는 외래어의 표기 양상이 개별 어휘별로 매우 달라서 사전적인 처리에 있어서도 상당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유현경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며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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