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의 바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싸우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하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좋은 날씨를 당신이 만든 거요.” 하고
어깃장을 놓으며 말싸움을 걸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날씨가 좋으면 무엇하고, 누가 만들었으면 무슨 상관인가. 저녁이면 비가 내릴 날씨구먼.” 하고
퉁바리를 놓으며 말싸움을 이어 갔습니다.
말싸움은 세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나 둘 모두 모여 패가 갈리어 옥신각신
싸개질이 벌어졌습니다. 이렇듯 마을 사람들은 어떤 의견에 뜻을 같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골목에 모여 말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다리를 고치고 길도 닦읍시다.”
“어차피 홍수가 지면 길도 다리도 부서지는데 길을 왜 닦습니까. 장마 끝나고 고치면 되지.”
“고치긴 뭘 고쳐요. 내년에 또 부서지고 패일 길인데 그냥 다니면 되지.”
서로 서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말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쯧쯧. 만날 말싸움질이니
이골이 났군.”
이 꼴을 보다 못한 한 노인이 나섰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든 분이었습니다.
“여보게들, 싸움 좀 그만하고 내 말을 들어보게.”
노인이 하는 말이라 말싸움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마을에는 모두
트레바리만 사는가. 아이들한테 부끄럽지도 않은가?”
“어르신, 그건 서로 의견이 달라서 생기는 일로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닐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일세. 아니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네.”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표정은 슬퍼 보였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다고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주 없다고 하시지 않는가.”
“그런데 지혜가 무엇인지요?”
“지혜란 말을 많이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닐세. 말이 없어도 깊이 생각하면 머리에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일세.”
“그럼 지혜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요?”
노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기서 먼 곳에 지혜의 도시가 있네. 오래전부터 지혜가 꽃핀 곳이지. 그곳에 가서 지혜를 사오게. 지혜를 얻게 되면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당장 지혜를 사러 갑시다.”
“그런데 지혜를 살 수 있을까요?”
“돈으로 뭐는 못 사겠는가?”
세 패로 갈리어 싸우던
무리들은 한 사람씩 대표를 뽑았습니다. 곧 사람들이 모아 준 돈을 가지고 배를 탔습니다. 사흘 밤낮
허허바다를 항해한 배가 마침내 지혜의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린 세 사람은 번화한 도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지혜의 도시라서 뭔가 다르군.”
세 사람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시장 골목으로 걸어갔습니다. 가게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가게 상인들에게 물어보세.”
세 사람은 가게마다 들어가서 다짜고짜로 물었습니다.
“안녕하시오. 지혜를 사러 왔소. 물건이 있소?”
“아주 좋은 것으로 비싼 값으로 사겠소.”
상인들은 별 이상한 사람들 다 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모두 고개를 저으니 나온 물건이 없는 모양이네.”
“그러니 값만 자꾸 올라가겠지.”
세 사람은 시장을 누비고 다녔지만 저녁이 되어도 지혜를 사지 못했습니다.
“아이고 배고파.”
지친 세 사람은 밥집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습니다.
“아주머니. 우리는 멀리서 지혜를 사러 왔는데 혹시 팔려고 나온 것 없소?”
“종일 돌아다녔는데도 못 샀지 뭐요. 아는 데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시오.”
세 사람의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깔깔대고 웃기만 했습니다.
이때, 한구석에서 세 사람의 하는 모양을 보고 있는
털수세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 사람이 진지하게 하는 얘기를 다 들었습니다.
‘저
얼뜨기들이 농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사내는 벌떡 일어나 세 사람의 자리로 가
바투 다가앉았습니다.
“안녕하시오. 이제 보니 슬기를 찾고 있군요.”
“예, 슬기가 아니라 지혜를 찾고 있소.”
“아, 슬기는 지혜를 달리 부르는 값진 이름이지요.”
“그걸 몰랐군요. 슬기가 있습니까?”
“마침 딱 하나 남아 있는데 값이 워낙 비싼지라….”
“돈 걱정은 마시오. 아무리 비싸도 사겠소.”
“허허. 아주 후하신 분들이군요. 그럼 천 냥에 사겠소?”
“좋아요. 돈은 당장 드릴 테니 어서 지혜를 가져오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지혜 상자를 가져오겠소.”
사내는 얼른 뒤꼍에 있는 식당의 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찍찍거리며 돌아다니는 쥐 한 마리를 잡아 단단한 나무 상자에 넣은 다음 끈으로 묶어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 있소. 마지막 하나 남았던 지혜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정말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사내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한 가지 조심할 게 있소. 지혜는 귀한 것인 만큼 상자를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뚜껑을 열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지혜가 도망치고 말아요. 그리고 지혜는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가 아주 독특하지요. 냄새가 빠져버린 지혜는 효능이 없어요. 아시겠지요?”
“염려 붙들어 매시오. 이른 대로 잘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빌겠습니다.”
세 사람을
엎어삶은 사내는 식당을 나오자 낄낄거리며 사라졌습니다.
“종일
발품을 판 보람이 있군.”
세 사람은 지혜를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며 웃고 떠들어댔습니다.
다음 날, 세 사람은
달구리에 일어나 첫 배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이틀 후, 이윽고 고향이 가까워오자 세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왜일까요? 한 사람이 참았던 얘기를 꺼냈습니다.
“이 지혜를 어떻게 나눌 건가?”
“당연히 세 몫으로 똑같이 나눠야겠지.”
“그러기 전에 우리 셋은 고생을 했으니까 냄새라도 조금씩 맡는 게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우리 그렇게 하세.”
세 사람은 지혜 상자를 가지고 구석진 곳으로 갔습니다.
“어서 풀어보게.”
세 사람은 긴장하며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서로 냄새를 많이 맡을 자세였습니다.
“음! 벌써 지혜 냄새가 나는 것 같군.”
“그런데 뭐 긁는 소리가 나는데, 빨리 열어보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뚜껑을 조금 열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생쥐가 튀어나와 달아났습니다.
“앗, 저게 뭐냐?”
생쥐는 갑판 밑으로 달아나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지혜가 도망쳤다 잡아라.”
세 사람은
덴겁하여 뒤를 쫓아갔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비싼 지혜를 놓쳤으니 어쩔 건가?”
한편 마을 사람들은 세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습니다. 세 사람이 배에서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에워쌌습니다.
“지혜를 사 오셨소?”
“예. 사오기는 사왔는데 그게….”
세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간의 일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사온 지혜를 배에서 놓쳤다고. 그리고 지혜라는 것이 꼭 생쥐같이 생겼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세 패의 마을 사람들은 한 패가 되어 세 사람을 마구 나무랐습니다. 그때, 지혜의 도시를 가르쳐 준 노인이 나섰습니다.
“조용들 하게. 비싼 값으로 사온 지혜가 저 배 안에 숨어 버렸다고 하지 않는가.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서 지혜가 달아나지 않게 단단히 지키게. 그리고 매일같이 배 앞에 와서 조용히 지혜의 냄새를 맡게. 그러면 언젠가 지혜를 찾게 될 걸세.”
마을 사람들은
울력으로 배를 땅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일같이 지혜가 숨어 있는 배 앞에 나와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습니다. 지금까지, 오늘도 계속 그렇게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