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인쇄 지난호보기
겨레말은 겨레얼 입니다 겨레말큰사전 누리판

우리말 보물찾기

누구에게 물을 줄까

_ 이상배 / 동화작가

   복달임도 아닌 유월 더위가 푹푹 찌고, 오랜 가뭄으로 하늘바라기는 모내기를 못하고 있다. 옛 농부들은 가뭄이 들면 논 구석구석에 샘 파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마른하늘을 원망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물을 줄까
   두 사람, 씨동무끼리 여행을 떠났다. 먼 길을 걸어와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볕살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목이 몹시 탔다. 허리끈에 찬 물통에는 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막에 다다를 때까지는 물 걱정 같은 것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지나는 길과 들판에 맑은 물이 흐르고, 산속에 옹달샘이 많았기 때문이다.
   “참, 경치 좋다!”
   두 사람은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연방 감탄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막이 나타났다. 거친 땅에는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이 없고, 땅바람 한 줄기 불지 않았다.
   “이제 더 갈 수 없어. 물을 찾아보자고. 땅속에는 물이 있겠지.”
   두 사람은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열 군데를 파보아도 물이 나지 않았다.
   “물, 물, 물!”
   두 사람은 지쳐 쓰러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걸어온 사막길이 멀고멀었다. 두 사람은
비척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을 거야.”
   얼마쯤 갔을까. 조금 앞서가던 사나이가 소리쳤다.
   “저기, 뭔가 있다!”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그곳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갔다.
   아! 그곳에 조그만 바위 하나 웅크리고 있었다. 바라던 오아시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마침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이 바위 뒤쪽으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먼저 달려온 사나이가 바위 그늘을 차지했다.
   “아, 살 것 같다!”
   사나이는 땡볕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에 온 사나이는 그늘이 너무 작아 볕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늘에 든 사나이는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는 듯이 속눈을 하고 모른 체했다.
   그늘이 없는 사나이는 할 수 없이 웅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물이 나오든, 웅덩이 속에 들어가 볕을 피하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늘을 차지한 사나이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살아 나가게 해달라는 바람이었다.
   웅덩이를 파는 사나이는 죽을힘을 다해 모래를 파냈다.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어기차게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한 줄기 실바람이 일더니 신(神)이 나타났다. 그것도 한 손에 물통을 들고 말이다.
   “오, 신이시여!”
   기도하던 사나이가 감격에 겨워 눈물비를 흘렸다.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신이 응답했다고 믿었다. 웅덩이를 파던 사나이는 힐끔 신을 쳐다보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물통을 든 신은 이곳에 잘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통에는 딱 한 사람만이 마실 수 있는 양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물을 줄 것인가?
   누가 한 모금의 물이 더 필요한가?
   신은 그늘 속의 사나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이곳에서 나를 얼마만큼 생각했느냐?”
   “오, 신이시여! 저는 이곳에 있는 동안 오직 당신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이시여, 한 모금의 물은 제가 기도했던 당신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음, 참으로 열심히 기도하였구나.”
   신은 이번에는 웅덩이를 파고 있는 사나이에게 다가갔다.
   “모래땅을 파는 이 어리석은 자여, 너는 나를 얼마나 기다렸느냐?”
   사나이는 줄줄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신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합니다. 나는 이 웅덩이를 파느라 당신은 물론 뜬생각 할 겨를이 없었소. 웅덩이를 파야 합니다.”
   사나이는 일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신은 얼굴을 찌푸렸다. 신을 우습게 여기다니. 기도하는 사나이는 신 쪽으로 엎드려 계속 ‘오, 신이시여!’를 부르짖고 있었다.
   신은 천천히 물통 마개를 비틀었다. 그리고 숨을 헉헉거리며 웅덩이를 파고 있는 사나이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신을 우습게 보는 이 괘씸한 녀석, 너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이 물을 마셔라. 그리고 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라도 나를 생각해 다오.”
   어려운 지경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겠지요. 그리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행동이 따라야 하고요. 하루 빨리 줄비가 내려 마른 땅을 흠뻑 적셔주기를 기도합니다.

* 동화에 나오는 순우리말

복달임: 복이 들어 기후가 지나치게 달아서 더운 철.
하늘바라기: 천둥지기. 빗물에 의하여서만 벼를 심어 재배할 수 있는 논.
마른하늘: 비나 눈이 오지 아니하는 맑게 갠 하늘.
씨동무: 소중한 동무.
볕살: 햇볕의 따뜻한 기운.
땅바람: 육지에서 부는 후덥지근한 바람.
비척걸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걷는 걸음.
속눈: 눈을 감은 체하면서 조금 뜨는 눈.
어기차다: 한번 마음먹은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 성질이 매우 굳세다.
실바람: 아주 가볍고 약한 바람.
눈물비: 주르륵 흘리는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뜬생각: 헛되거나 들뜬 생각.
일손: 일하는 손. 또는 손을 놀려 하는 일.
줄비: 끊임없이 쫙쫙 내리는 비.

| 이상배 |

동화작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도서출판 좋은꿈 대표이다. 대한민국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책읽는 도깨비,책귀신 세종대왕,부엌새 아저씨,우리말 동화,우리말 바루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