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조남호 / 명지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속담은 관용 표현의 하나이다. 관용 표현의 범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두 개 이상의 단어의 결합이 굳어져서 단어 각각의 의미를 합한 것과는 다른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는 속담을 관용 표현으로 보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여러 단어가 결합되어 쓰이다 보니 속담은 단어 맞추는 게임이나 퍼즐에서 정답을 찾기 위한 문제로 흔히 출제된다. 아래의 예처럼 ㅇㅇ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문제로 내는 것이다.
ㅇㅇ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ㅇㅇ이 제 발 저리다
흔히 쓰여 친숙한 속담이니 많은 사람이 ‘도둑’이라고 답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이다. 그런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류의 문제가 간혹 불편할 적이 있다. ㅇㅇ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는데 마치 하나만 맞는 것처럼 할 때 그렇다.
속담을 이루는 개개의 단어들을 달리 구성 성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구성 성분은 굳어져서 쓰이기는 하지만 성분들의 결속 정도는 느슨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말 등 그 구성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단어가 있으면 쉽게 대체될 수 있다. 위의 예에서도 ‘도둑’ 대신 ‘도적’이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아래에 제시하는 것처럼 ‘도적’이 들어간 속담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제아무리 문단속 잘 해도 당하려면 할 수 없는 건데요. 아, 도적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단 말이 다 있지 않아요? <박태원, 투도>
도적이 제 발이 저리다고 내가 너무 지나치게 오해를 하는구나. <송영, 숙수 치마>
대체될 수 있는 구성 성분이 다른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속담에 대체될 수 있는 구성 성분이 여럿이면 사전에 이런 속담을 올릴 때 다소 곤혹스럽게 된다. 확인되는 만큼 다 제시하면 그만일 듯하지만 그것들을 다 확인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도둑/도적’처럼 비슷한말일 때는 이 두 단어가 모든 속담에서 교체가 가능한지 아닌지, 또 교체 가능하다고 무조건 다 실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항용 그렇듯이 결국 사전 편찬자가 판단해서 처리하게 되고 때로 일관성이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준』’)에서 ‘도둑/도적’의 처리를 보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 도둑이 도둑이야 한다 / 도둑이 제 발 저리다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2) 옆집 개가 짖어서 도적 면했다 / 큰 도적이 좀도적 잡는 시늉 한다
(3)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한다[도적질하기]
(1)은 ‘도둑’만 제시한 유형으로 이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2)는 ‘도적’만 제시한 유형으로 수가 많지 않다. (3)은 ‘도둑/도적’을 모두 제시한 유형으로 역시 수가 많지 않다. 어미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도둑/도적’이 제시되어 있다. 이처럼 세 유형으로 구분된 것에 사람들이 모두 흔쾌히 동의하지는 않을 듯하다. 예컨대 (2)에서 ‘도적’이 온 자리에 ‘도둑’이 오면 안 될까? (1)에 ‘도적’이 올 수 있음은 위에서 이미 인용문으로 확인했다.
이들을 북한 사전과 비교하면 남북의 태도 차이를 볼 수 있다. 위에 들었던 속담을 『조선말대사전』(이하 ‘『조선』’)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사전에 올라 있다.
(4) 도적(을) 맞으려면 개도 안짖는다 / 도적이 도적이야 한다 / 도적이 제발(발등)이 저리다 / 바늘도적이 소(황소)도적 된다
(5) 옆집 개가 짖어서 도적 면했다 / 큰도적이 좀도적 잡는 시늉한다
(6) 귀 막고 방울 도적질하기
앞서 제시한, 『표준』에 오른 것과 비교해 보면 ‘도둑’이 있던 자리를 모두 ‘도적’이 차지하고 있다. ‘도둑’이 들어간 속담은 꽤 된다. 북한 속담까지 포함된 『표준』에서 ‘도둑’이 들어간 속담을 검색하면 90개가 넘는다. 필자가 일일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들 대부분에서 『표준』은 ‘도둑’을, 『조선』은 ‘도적’을 선택했다. 『표준』을 검색하면 ‘도적’이 들어간 속담도 꽤 있지만 대부분이 북한 속담이다.
이 차이는 남북에서 비슷한말인 ‘도둑/도적’의 사용 정도가 다른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표준』과 『조대』에 두 단어가 다 규범적인 단어로 올라 있다. 차이가 있다면 『표준』은 ‘도둑’에서 풀이를 하고 ‘도적’은 “=도둑.”으로 제시하여 ‘도둑’으로 돌렸고, 『조선』은 ‘도적’에서 풀이를 하고 ‘도둑’은 “(말체)도적.”으로 제시하여 ‘도적’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사전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쓰는 말에서 풀이를 함을 고려하면 남한에서는 ‘도둑’을 더 많이 쓰고 북한에서는 ‘도적’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속담이 모두 분단 후에 만들어진 속담들이 아니므로 결국 말의 사용의 차이로 교체 가능한 구성 성분이 남북에서 달리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 예가 더 있지만 구성 성분이 인상적으로 갈리고 또 사용된 속담도 많은 것은 ‘도둑/도적’이었다.
남북의 속담이 어떻게 다른지 소개한 앞선 글에서 규범의 차이로 구성 성분이 차이가 나는 속담을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다. ‘달걀로/닭알로 바위 치기, 낫 놓고 기역 자도/기윽자도 모른다, 구렁이/구렝이 담 넘어가듯, 굿 본 거위/게사니 죽는다’와 같은 예들이다.(‘/’ 앞이 남한, 뒤가 북한) ‘도둑/도적’은 둘 다 규범적인 단어인 점에서 이들과 다르다. 남북의 말을 아우르는 『겨레말큰사전』에서는 규범의 차이로 인한 것은 규범에 관한 논의의 결과에 따르면 되지만 ‘도둑/도적’ 같은 부류는 불가피하게 나란히 실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 조남호 |
서울대 문학박사.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회 편찬위원과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속담 활용 글쓰기
』,
『두시언해 한자어 연구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