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김종군 /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
남북 분단은 영토와 사람의 분단은 물론이고 문화 예술과 학술적인 분야에서도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을 불러왔다. 필자의 전공인 국문학 분야에 한정하여 보더라도 불통의 요소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학술논문이나 문학사에서 낯선 문장 표현 방식이 종종 등장하며, 생소한 학술용어가 순조로운 소통을 방해한다. 또한 고전문학 작품의 제목을 다르게 부르고 있어서 북녘의 글을 읽어가다 보면 어리둥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학문 분야의 소통과 통합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남북이 통일 과정에서 우리말의 소통이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함께 인식하고 시작한 『겨레말큰사전』공동 편찬 사업은 이 분야에서 선도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좋은 사례를 본을 삼아 문학사나 사상사 · 역사 편찬 분야에서도 남북의 공동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살펴봐야 할 내용이 각 전공 영역의 학술용어나 표현 방식에 대한 차이이다.
북녘 문학계는 남녘보다는 학술활동이 제한적으로 보인다. 국가 주도 학술기관인 사회과학원에서 문학사와 같은 총서 집필을 주도하고, 국문학 분야의 연구는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정도로 파악된다. 그리고 개별적인 학문 연구 집단의 층도 얇아서 고전문학을 비롯한 국문학 전반에 대한 개별 연구 성과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지금까지 북녘의 고전문학 연구 성과를 산출하는 방법은 대체로 총서 형식으로 집필된 문학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북녘에서 출간된 ‘조선문학사’는 북의 사회 변혁 운동 시기에 따라 그 초점이 달라진다. 북은 1970년 11월에 있었던 제5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을 역사적 원리로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는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규정하고 당의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주의적 보편성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사회의 변혁은 문학사에도 그대로 투영되는데, 1959년 출판된 『조선문학통사』에서는 ‘맑스-레닌주의적 방법’을 표방하여 간명하게 문학사를 서술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김일성의 교시 인용도 절제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제5차 당대회를 거친 후에 출판된 『조선문학사』나 『조선문학개관』에서는 ‘수령의 형상 창조 문학 사관’을 표방하면서 주체사상을 문학사 서술의 원리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 교시의 표현 방식도 모두 큰 글자로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1970년을 기점으로 북의 문학사 서술 시각과 작품명의 명명 방식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학술논문의 제목에서 낯선 표현 방식이다. 1993년에 출판된 『조선고전문학연구』는 북에서 발표된 고전문학 관련 학술논문 모음집이다. 이 책에는 18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차례를 보면 몇몇 논문제목들이 눈에 띤다.
「우리 식 문학건설에서 고전문학이 노는 중요역할」(리창유)
「고려시기에 창작된 경기체가요의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정홍교)
「우리 나라 고전소설연구에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김춘택)
띄어쓰기는 남북의 언어규범에 따른 것이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노는 역할’과 ‘제기되는 문제’ · ‘나서는 문제’ 등의 표현이 낯설다. ‘제기되는 문제’나 ‘나서는 문제’는 우리의 논문제목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북녘에서는 일상의 생활총화나 공식적인 발언에서 자주 사용 표현이므로 논문의 제목으로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는 역할’은 우리의 문장 표현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므로 낯설 수밖에 없다.
조선말은 아름다우며 높고낮음과 길고짧음이 있고 억양도 좋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우리 말은 복잡한 사물현상과 섬세한 사상감정을 잘 나타낼수 있으며 발음도 풍부하다.
우리의 말과 글은 그 우수한 특성으로 하여 예로부터 노래, 시, 소설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학예술을 창조하는데 훌륭히 이바지하여 왔으며 전반적인 민족문화발전에도 커다란 역할을 놀았다.(리창유, 「우리 식 문학건설에서 고전문학이 노는 중요역할」 중)
북의 문학사나 학술논문을 자주 접하는 이들은 앞뒤 문맥으로 어림잡아 이해를 하지만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당장에 이질감을 호소한다. 필자가 학회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자 토론자는 ‘역할을 놀았다’라는 표현이 무슨 말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어사전』에서 ‘놀다’를 찾으면 여러 의미 중 ‘(역할, 작용, 방해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이여) 그 단어가 나타내는 행동이나 작용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사전에서는 타동사로 쓰일 때 ‘윷을 놀다’, ‘악기를 놀다’ 정도로 활용하는데 ‘역할을 놀다’, ‘작용을 놀다’는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북에서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보인다.
북의 문학사를 읽다보면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순우리말 용어들도 자주 발견된다. 판소리와 민요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쐑소리’, ‘오그라든 소리’, ‘코소리’, ‘굳은 소리’, ‘생소리’ 등의 전문 용어들이 등장한다.
쐑소리 : 전날에 판소리를 할 때에 인위적으로 내던 거칠고 탁한 소리. 자연스럽지 못하여 오늘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는다. 탁성
오그라든 소리 : 목안과 입안의 힘살을 조이면서 흉성공명과 두성공명을 잘 배합하지 못하고 주로 입안에서만 내는 소리.
코소리 : 비강 공명을 가슴, 목안, 입안 공명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지 못하고 공명을 국부적으로 코 앞면에만 집결시켜 낸 소리.
굳은 소리 : 두성 공명과 비강 공명이 거의 없이 소리가 뻣뻣하고 무거우며 음역이 좁고 소리가 가슴에 매달리게 내는 소리.
생소리 : 발성훈련을 받지 못한 소리 즉 발성적인 공명이 전혀 없는 매우 얕은 소리.
북에서는 민요를 부를 때 내는 소리도 ‘주체발성’을 쫓아서 아름답게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에 든 소리들은 모두 발성기관의 일부분을 필요 이상 긴장시켜 기형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들로 보고 민요의 창법에서 배제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의 탁성을 ‘쐑소리’로 부르면서 아름답지 못한 소리라고 모든 문학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평가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통일의 과정에서 어떻게 조율될 수 있을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문학사에서 남북의 차이를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고전문학 작품 명칭에서이다. 예를 들면 남북이 함께 고소설의 벽두로 인정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의 명칭이 다른 점이다. 남에서는 한문 원전에 명시된 대로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으로 부른다. 북에서는 1959년 『조선문학통사』에서는 남과 동일하게 작품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1970년 이후의 문학사에서는 한문투의 명칭에서 벗어나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 <리생과 최랑의 사랑>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 <부벽정의 달맞이>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 <남염부주이야기>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룡궁의 상량잔치>
<최치원(崔致遠)> - <두 녀자의 무덤>
<수성지(愁城誌)> - <시름에 쌓인 성>
이처럼 북에서 고전문학 작품의 제목을 변경한 것은 주체사상을 확산하는 가운데, 일상에서 한자 사용을 규제하면서 한문투의 제목들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 변경의 규칙은 작품의 내용을 되도록 우리말에 담는 방식이다. <이생규장전>은 처음에는 <리생의 사랑>으로만 변경하였다가 후에 다시 <리생과 최랑의 사랑>으로 고친 것이 확인된다. 남주인공만 제목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사랑의 주체인 남녀주인공을 모두 언급해야 한다는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불어 『수이전』에 수록되었던 <최치원>은 다른 명칭인 <쌍녀분>을 우리말로 풀어서 <두 녀자의 무덤>으로 변경하였고, 임제의 작품 <수성지>는 작품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담아서 <시름에 쌓인 성>으로 고쳤다.
북의 문학사를 통해 우리와 다른 학술용어와 표현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북의 이러한 달라짐은 매우 긍정적이라서 우리가 본받을 요소가 많아 보인다. 순우리말식 표현과 한문투를 벗어난 우리말투의 변화가 그것이다. 북에서는 ‘주체문예이론’을 준수하면서 문학사를 기술하고, 작품도 창작한다. 그 가운데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자기의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지고있다는것은 우리의 큰 자랑이며 커다란 힘입니다. 조선인민은 오랜 옛날부터 자기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있었기때문에 훌륭한 민족문화를 창조할수 있었으며 자기민족의 아름다운 풍습과 전통을 계속 간직하여올수 있었습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중)
남북이 적대적인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우리는 북에서의 모든 활동과 성과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북녘에서 우리 문학을 평가하고 진단하는 방식은 우리와는 약간 다르다. 자국 영토 중심주의와 실증을 벗어난 연구방법 등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사나 국문학 연구에서 우리말을 중심에 두고, 그 표현이나 용어를 구사하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이 함께 볼 수 있는 문학사 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남북의 문학 용어나 표현 방식의 차이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 김종군 |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통일인문학 연구에 힘쓰고 있다. 남북의 문학 작품이나 문학 연구 성과들을 비교하면서 통일을 대비한 문화 소통과 통합을 모색하고, 통일 이후 국문학 분야의 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전문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 (전 3권)』, 『우리가 몰랐던 북녘의 옛이야기』, 『남북이 함께 읽는 우리 옛이야기』,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탈북청소년의 한국살이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