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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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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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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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424
《겨레말큰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준호 겨레말큰사전 전산부장
사전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품이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과 시간이 매우 많이 필요하고 꽤 다양한 역할도 필요하다. 필자는 그중에서 사전을 만들 때 필요한 집필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전 편찬자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책상에 앉아 사전 원고를 하나하나 집필하고 교정‧교열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사이사이 남녘말과 북녘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가 일본어를 배우지 않거나 일본인 '키무라 상'이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다면 필자와 '키무라 상'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과 북의 동포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면 필자와 북녘 동포는 평생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처음에는 민족의 동질성을 느끼며 기쁘게 대화를 나누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서로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제일 먼저 북에는 두음법칙이 없다는 것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남녘에서 남녀(男女)라고는 해도 녀자(女子)라고는 쓰지 않는 바로 그 두음법칙 말이다. 발음은 같으나 문자로 표기할 때 차이가 생기는 예들도 있다. 장밋빛과 장미빛이라든가, 나무꾼과 나무군처럼 말이다. 같은 대상의 어휘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다. 북녘 식당에서 낙지볶음을 주문하면 기대와 달리 오징어볶음을 먹게 된다. 분단 이후에 새로 생겨난 물건들의 이름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필자가 처음 판형콤퓨터라는 말을 들었을 때 태블릿피시를 떠올리지 못했던 일처럼 말이다.

▲북측 협의용 《겨레말큰사전》 가제본(2021)
필자가《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남북공동 편찬회의가 중단된 지 여섯 해가 넘어가면서 북녘 동포와 얘기할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더욱 커졌다. 아마도 통일 이후에는 북녘 동포와 대화하는 게 일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필자는 《겨레말큰사전》이 동포들의 소통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전을 만들고 있다.
예전에 개성공단에서 일하시는 분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남에서 달걀이라고 부르는 것을 북에서는 흔히 닭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일하시던 작업장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닭알이라고 부르기로 정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필자가 느끼기에는 닭알이 순우리말이면서도 달걀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의미가 잘 전달되고, 어감도 예쁜 것 같다. 이 경우는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편의와 효율을 위해 정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이 긴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맺는 약속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남과 북이 잠정적으로나마 닭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약속을 이루어 내는 과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더구나 ‘남녘이 북녘보다 GDP가 높으니 남녘의 표기를 따르자’라든가, ‘개성은 북녘땅이니 북녘의 표기로 쓰자’라는 일방의 입장만 반영된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라서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겨레말큰사전》의 편찬 목적과 방식, 남북의 합의 과정도 이것과 가까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통일이 되면 좋은 점이 많겠지만, 당장은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점들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언어’라는 문화만큼은 서로의 좋은 말들을 받아들여 훨씬 더 풍부하게 발전했으면 한다. 그러한 발전에 필자와 남북의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고 있는《겨레말큰사전》이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필자는《겨레말큰사전》을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