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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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노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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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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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853
갈맷빛 여름
노명아 겨레말큰사전 경영관리부장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학교 숙제로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아이의 국어사전에서 ‘갈맷빛’이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을 사로잡았다. ‘갈맷빛’은 ‘짙은 초록빛’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1) 겨레말 말뭉치에서 ‘갈매’와 ‘갈맷빛’을 찾아보니 홍명희 작가의 장편소설 『임꺽정』과 김영주 작가의 장편소설 『책쾌』의 한 구절이 검색됐다.
“잇다홍2) 무명적삼에 갈매 무명치마를 입었는데 매무새까지도 얌전하다.”
홍명희 『임꺽정』(1928~1939)
“매미울음소리가 갈맷빛 숲을 이룬 남산기슭을 뒤흔들어댔다.”
김영주 『책쾌』(2011)
초록빛이 얼마나 짙기에 갈맷빛이라고 했을까.
아이가 만든 국어사전 속 ‘갈맷빛’은 일순간 나를 5년 전 여름의 강원도 정선으로 데리고 갔다. 그해, 초록이 우거진 정선의 여름 숲속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뱉어내며 ‘짙은 초록빛’뿐인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에 압도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갈맷빛을 품은 숲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수려한 풍광을 배경 삼아 즐기는 마음 한편으로, 갈맷빛을 가로막아놓은 듯한 철길 위의 레일바이크를 타고 숲속을 빠져나오자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동막해수욕장에 있는 단골집에서 물회를 먹고 갈맷빛 나무들 사이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해변으로 갔다. 때마침 썰물이라 아이는 아빠와 갯벌에서 작은 게와 물고기를 잡았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재잘거리며 즐겁고 신나게 노는 가족을 보고 있으니 고요히 넘실거리는 바다 물결처럼 여유롭고 평화로웠고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수평선으로 새털구름이 몰려와 장관을 이루고 그 구름 사이로 노을이 지는 경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을빛이 마치 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 빛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휴대전화 사진첩 속에서 갈맷빛 풍광을 한 번씩 꺼내 볼 때면 늘 반복되는 생활에 조금의 활기를 되찾곤 한다.
아이가 직접 만든 국어사전에서 시작된 추억 여행을 마치고 나니 집 앞 수림공원에서 뿜어내는 갈맷빛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갈맷빛 이파리들, 갈맷빛 여름, 갈맷빛 바다…. 이제 나에게 ‘갈맷빛’이라는 단어는 여름 여행에서 만난 숲과 바다, 구름, 노을과 함께 겹겹이 포개진다. 갈맷빛으로 물드는 이 계절, 초록빛처럼 이쁘고 고운 말을 앞으로 더 자주 떠올릴 것 같다. 요즘 청치마상추3)의 신품종인 ‘갈맷빛상추’가 상품으로 나왔다고 한다. 우연히 그 상추를 보게 된다면 ‘아, 이게 갈맷빛 상추구나!’ 생각하며 사봐야겠다. 갈맷빛 여름을 더 짙게 만끽하기 위해서.
1) 남북의 사이시옷 표기 차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갈맷빛’을 ‘갈매빛’으로 표기하고 ‘[갈매삗]’으로 발음한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갈매색’, ‘갈매색갈의 빛’으로 풀이하고 있다.
2) 잇꽃의 색깔과 같은 선명한 다홍색.
3) 우리나라에서만 주로 재배되는 잎상추의 한 종류로 잎의 모양이 치마처럼 긴 타원형이라고 해서 ‘치마상
추’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청색은 청치마상추, 적색은 적치마상추라고 부른다.
청색은 청치마상추, 적색은 적치마상추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