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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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고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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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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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329
쌀골집과 살골집
고대영 겨레말큰사전 편찬부장
남북의 언어 가운데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어휘라고 한다. 남북의 규범어는 각각 서울말과 평양말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방언 차이를 내재하고 있다. 여기에 분단 후 달라진 체제·문화의 영향 아래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의미가 달라진 말에서 생긴 차이가 더해지고, 외래어의 수용 양상에서 발생하는 차이 등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남북의 언어 차이라고 하면 주로 말의 형태가 사뭇 다른 예들이 종종 언급되곤 한다. 여기서는 남북의 어휘 중에서 말의 형태 차이가 작은 단어, ‘쌀골집/살골집’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한 주방용기 회사의 누리집에서 순대 찜기를 소개하며 ‘쌀골집’을 ‘살코기를 골고루 많이 섞어 창자에 집어넣은 고기순대’라고 설명한 글을 보았다. 재밌고 기발한 삼행시이지만 ‘쌀골집’의 정확한 어원이나 유래와는 무관하다. 남에서는 ‘쌀골집’을 규범형으로 삼고 있는 데 반해 북에서는 ‘살골집’을 규범형으로 삼고 있다. 표기가 다르니 남북의 의미에서도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쌀골집’을 ‘돼지 창자에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삶은 음식’으로 풀이했고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돼지밸에 돼지고기를 썰어넣고 삶은 음식’으로 풀이하고 있다. 창자와 밸의 차이를 제외하면 두 사전의 뜻풀이가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음식의 표기가 남북에서 ‘쌀골집’과 ‘살골집’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쌀골집/살골집’은 분단 이전에는 “살골집은 누린내가 업게해야하는데”, “큰창자 한개중 그중 굵은것이 잇습니다 그것은 짓익여 살골집에나 너흡니다”(‘꼭 알어둘 이달료리법’, 동아일보, 1931. 2. 5.)와 같은 용례에서 확인되는바 ‘살골집’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은 기존의 표기를 계승하고 있고 남에서는 표기를 ‘쌀골집’1)으로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에서 발행된 옛 사전들의 풀이로 미루어 보면 ‘살꼴집’(한글학회,《조선말큰사전》, 1957년)2), ‘쌀골집’(국어국문학회, 《국어새사전》, 1958년 5판)3) 등이 경쟁하다가 ‘쌀골집’이 규범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남에서는 왜 ‘살골집’이라는 표기를 ‘쌀골집’으로 바꾸게 되었을까? 먼저 ‘쌀골집’은 ‘쌀-골집’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골집’은 ‘순대’의 비표준어로 전국에서 쓰이던 지역어이다.4) 문제는 ‘쌀’의 정체다. 그 정체는 ‘살골집’에 대한 아래의 설명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 백문식, 《우리말형태소사전》, 박이정, 2012 싸(다)1 ① 보자기나 종이로 물건을 안에 넣고 보이지 않게 하다 ↔ 풀다. ... 싸쥐다, 쌀골집1263), 쌀깃1264), ...
(2) 박갑수(2002), ‘쌀독에서 인심 난다’, 한글+漢字문화 제40호,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쌀수수”는 수수의 일종으로, 알의 색깔이 희부옇고 까끄라기가 없는 수수를 가리킨다. “쌀고치”는 희고 굵으며 야무지어 질이 좋 은 고치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군물이 들어 깨끗하지 못한 고치는 “무리고치”라 한다. “쌀고치”는 “쌀수수”와 함께 “쌀”의 흰빛과 연합된 말이라 하겠다. “쌀새우”도 마르면 흰색이 나 이런 이름이 붙은 경우다. 漢字語로도 米蝦, 白蝦라 하여 발상을 같이 한다. “쌀곡자, 쌀골집, 쌀무거리, 쌀무리”는 그 자료가 쌀로 되어 합성된 말이다. |
(1)은 ‘쌀’을 ‘싸다’의 활용 형태로 보았다. 순대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골집’에 ‘싸다’는 뜻을 더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한편 (2)는 ‘쌀’을 벼에서 껍질을 벗겨낸 알곡을 뜻하는 ‘쌀’이 ‘쌀-고치’, ‘쌀-새우’의 경우와 같이 접두사적 용법으로 쓰인 것으로 보았다. 이때 ‘쌀[米]’은 흰빛과 관련된 의미를 더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에서는 ‘쌀골집’의 ‘쌀’이 ‘싸다’, ‘쌀’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살골집’이 아닌 ‘쌀골집’을 규범어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에서는 ‘돼지의 살’로 보았기 때문에 기존의 표기 ‘살골집’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쌀/살’의 정체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워 ‘쌀골집/살골집’ 중 어느 게 더 나은 표기인지 논하기 어렵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언어적 접근과 함께 문화적 접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두 형태를 모두 인정하여 남북 언중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1) 같은 기사의 ‘피골집’ 또는 ‘피꼴집’, ‘꼴집’ 등의 표기가 함께 쓰이는 것으로 보아 ‘골집’의 발음이 다소 유동적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2) 살-꼴집 [--찝][이름씨] 돼지 창자에 여러 가지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삶은 음식.
3) 쌀‧골집 [--찝][명사] 돼지 창자에 살을 썰어 넣고 삶은 음식.
4) ‘2007 한민족 언어 정보화 통합 검색’에 따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