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
- 글쓴이
- 최유나
-
- 작성일
- 2022.11.21
-
- 조회수
- 1,406
시치미를 떼다
최유나 경영관리부 주임
“아! 너 내 옷 입었지?!”
우리집은 여동생과 나 이렇게 자매만 둘이 있다. 날마다 벌어지는 옷 실랑이는 너무나 익숙한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내가 동생에게 또 내 옷을 몰래 입었냐고 추궁하면, 동생은 태연하게 안 입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매의 눈’은 속일 수 없지. 나는 옷소매에 작게 튄 자국을 발견해내고 동생에게 다시 소리친다.
“그럼 이 자국은 뭔데?”
무슨 말이냐며 옷을 들여다보던 동생이 자국을 보더니 시치미를 뗀다.
“그거 원래 있던 자국 아냐? 난 몰라!”
새로 산 옷을 걸어 둔 건데 원래 있던 자국은 무슨 소린지. 출근길만 아니면 한마디 더 하고 싶지만 1분이 아쉬운 아침이라 할 말을 꿀꺽 삼키곤 한다.

시치미를 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시치미 「명사」 「1」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속에다 매어 둔 네모꼴의 뿔.≒ 단장판. 「2」 자기가 하고도 아니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 |
시치미란 본디 매사냥꾼들이 매의 주인을 알리기 위해서 매어둔 표식이다. ‘시치미를 뗀다’는 것은 매의 주인을 알리는 표식을 떼는 것으로, 남의 매를 훔치고 자신의 매인 척하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시치미를 떼다’라는 관용구는 자기가 하고도 안 한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학창 시절 국어 수업시간에 ‘시치미’라는 단어의 어원과 함께 이 단어를 배운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후로 이 단어를 오래 쓰면서도 그이야기는 자연스레 잊힌 것 같다.
북녘에서 출판되는 연속간행물인 『문화어학습』1)에는 ‘시치미’의 어원 소개와 함께 학생들에게 이 단어를 설명할 때 어원과 함께 뜻풀이를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뭐 다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
우리는 생활에서 이런말을 흔히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고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러면 《시치미를 떼다》의 유래는 무엇인가. 지난날 매를 가지고 꿩을 사냥하는것이 류행되던 때에 매의 꽁지에 주인을 밝힌 이름표인 《시치미》를 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냥군들속에서 꿩사냥을 잘하는 매가 욕심나서 남의 매에 달려있는 주인의 시치미를 떼고 자기의 이름표인 시치미를 슬쩍 바꾸었다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들짱이 나면 안한체 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였다고 한다. 여기로부터 《시치미를 떼다(따다)》(혹은 줄여서 《시침을 떼다》)라는 성구가 생기게 되였다. 《시치미를 떼다》는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체 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성구이다.
“성구, ‘시치미를 떼다’”, 《문화어학습》(2002) |
《시치미를 떼다》의 표현을 설명하는 경우에도 이 말의 어원을 밝혀주고 그 뜻을 풀이하였더니 학생들의 인식과 리해정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시치미는 원래 옛날 꿩사냥군들이 매의 꼬리에 달아주던 이름표였다. 그런데 어떤 사냥군들속에서는 꿩사냥을 잘 하는 매를 가로채기 위하여 주인의 이름이 적힌 시치미를 떼고는 모르는척 하였다는데로부터 <자기가 하고도 안한척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였다. 이렇게 어원을 통한 어휘의 뜻풀이는 학생들의 흥미를 돋구어 사고를 쉽게 그리고 단어를 정확히 인식할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된다.
“어원과 구조를 통한 어휘뜻풀이”, 《문화어학습》(2004) |
겨레말큰사전 말뭉치에서 ‘시치미’라는 단어가 쓰이는 예를 더 찾아봤다.
시치미 따지 말어.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초저녁에 경도가 들어섰을 때 너희들의 기색만 보고도 난 벌써 십상팔구 짐작이 갔어. 《교교한 달빛》(중국)
“아이참, 역시 희덕 동무였군요?”
옥란이 희덕에게 눈을 할기였다. 그제사 건너편만 바라보고 걷던 희덕이 놀란듯이 얼굴을 돌리며
“아니 옥란 동무, 영화구경 가시오?”
하고 동문서답을 하였다.
“아이, 시치미를 떼지 마시라요. 정말 희덕 동문 왜 큰 길바닥에서 옥란 동무! 옥란 동무! 하고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소리를 쳐요? 좀 뭣하지 않아요?” 《조선공들》 (북)
중국 동포사회에서도 북녘에서도, 우리는 모두 같은 의미로 관용구 ‘시치미(를) 떼다(따다)’를 사용하고 있었다. 분단 이후로, 남북 교류가 멈춘 이후로 남북 언어 차이가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겨레가 관습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써 오고 있는 이 표현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 진짜! 너 내 옷 또 입었지?!”
오늘도 난 동생에게 내 옷을 몰래 입었느냐며 소리치고, 내 동생은 아니라며 ‘시치미’를 ‘뚝’ ‘뗀다'.![]()
1) 북녘에서 문화어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1968년에 창간한 국어학습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