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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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조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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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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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556
남북 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사전 원고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글 조남호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장

남측편찬위원장으로서의 다짐
제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인연을 맺은 지 18년이 넘었습니다. 사업회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04년 12월 11일에 남측편찬위원이 위촉됐습니다. 아직 사업회가 출범하기 전이어서 서울 혜화동의 어느 음식점에서 함께 만났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이 시작된 첫 자리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몇 사람이 대표로 북측과 편찬사업을 협의하기 위하여 금강산으로 갔는데 저도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금강산에서 책으로만 알던 정순기 선생님(북측편찬위원,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교수)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돌아보니 금강산 회의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 중에 여전히 남은 사람은 저뿐이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새삼 느낍니다.
2005년 2월 19일~21일 금강산에서 공식적으로 사전 편찬의 시작을 알리는 결성식과 제1차 남북공동 편찬위원회가 열렸을 때는 남측편찬위원으로 참석 했습니다. 이 사업이 될까 하는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결성식에서 이제 시작이 되는구나 실감을 했습니다. 2005년에는 국립국어원에서 《겨레말큰사전》 사업에 대해 국고 보조금을 지원했는데 그 담당자가 저였기에 저는 사업을 관리하는 담당자이자 편찬위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편찬위원으로서의 역할은 연임이 계속되어 7기가 구성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이제 편찬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항상 편찬위원으로 위원장을 보좌하는 역할만 했는데 이제 위원장이 되니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선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으니 이제는 즐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처음 편찬사업이 시작될 때 이렇게 오래 사업이 지속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남북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교류가 막히면 공동회의도 결국에는 중단되곤 했습니다. 남북의 사전 편찬자들이 만나 협의하면서 진행돼야 하는 사업의 성격상 남북 교류가 힘들어질 때마다 일정이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일정이 밀리면서도 편찬사업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이 사업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신 많은 분의 덕분이고 또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의 덕분입니다. 이분들의 이름을 거명할 자리가 아니지만 이분들의 도움을 기억하며 기대했던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편찬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남북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 자료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매우 가치 가 큰 사업입니다.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 듯하지만 1990년대에는 ‘남북 언어 이질화’라는 말이 학계나 정책 계통에서 자주 쓰였습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니 ‘남북 언어 이질화’라는 문제가 처음 부각된 것은 1970년대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북한에서 간행된 출판물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학계에서 북한의 언어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습니다. 그러면서 남북의 언어 차이가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언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안과 노력이 활발했습니다. 많은 논저가 나왔고 국가 예산이 지원되기도 했습니다.
1999년에 간행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 분위기의 영향으로 북한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대거 수록했 습니다. 그렇지만 당시는 북한의 전문가들을 만나 직접 도움을 받으면서 표제어를 고르고 풀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불가피하게 1992년에 간행된 《조선말대사전》 등 출판물을 확인하면서 표제어의 선별과 풀이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북 모두 언어 사용에 관해 규범적인 태도가 강합니다. 실제로 쓰는 것과 쓸 수 있도록 허용이 되는 것이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간헐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책을 통해 짐작한 언어 상황과 북한의 학자들이 알려주는 실정이 달라 학계에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책에 밝힌 대로만 언어생활을 하지는 않는 게 우리와 마찬가지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들 때도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북한의 언어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협의를 통해 사전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남북의 실제 언어 상황을 파악하면서 사전 원고가 다듬어져 왔습니다. 서로가 살아가는 환경이 크게 다르고 교류가 없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오해하는 단어들이 꽤 있습니다. 사전 편찬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수많은 단어를 일일이 검토하면서 편찬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남북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상호 이해가 깊어졌고 그 결과물로 나오는 《겨레말큰사전》은 한 단계 나아간 성과물이 될 것입니다. 최종적인 성과물로 나오는 사전이 물론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남북 협의에 참여할 때마다 저는 논의 과정 또한 중요한 성과라고 감탄하곤 했습니다. 제25차에 이르는 공동회의 기간에 남북의 참석자들은 많은 단어를 함께 검토했습니다. 사전 원고는 분담하여 집필하고 상호 검토하여 최종 합의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검토를 거치지 않는 단어 는 있을 수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편찬될 사전에는 논의되었던 내용들이 건조한 문투로 길어야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되겠지만 논의 과정에서 길게 협의했던 내용들은 남북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됩니다. 급한 업무에 밀려 정리가 되고 있지 않지만 논의했던 자료들이 잘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적절한 때에 정리된다면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중요한 또 하나의 성과로 기록될 것 입니다.
지금은 사전 원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시간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남측편찬위원회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아무래도 사전에 경험이 많은 편찬위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편찬 방향을 정하고 지침을 정비하던 초기 공동회의는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업회 편찬실에서 편찬 실무를 전담하는 직원들의 고민과 헌신이 쌓이면서 남측편찬위원의 역할은 바뀌고 있습니다. 이미 남측편찬위원회의 회의는 결정하는 자리에서 조언하는 자리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편찬위원들께서도 조언하는 역할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2016년부터 만남이 중단되면서 편찬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업의 성격상 남북의 사전 편찬자들이 만나지 못하면 일이 진척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래를 기약하면서 준비를 하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입니다.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북측과의 논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 만든 《겨레말큰사전》 가제본 10권을 아직 북측에 전달하지도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남북의 협의를 거쳐야만 완결이 되는 사전이므로 일방적으로 완료할 수도 없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남북의 교류가 전면 중단된 현재로서는 남북의 언어에 대한 관심도 불가피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업회가 많이 알려지면서 남북의 언어에 관심이 있는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언젠가는 남북 교류가 재개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남북의 언어에 대한 관심도 다시 늘어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내실을 다질 기회입니다. 한창 사전 편찬이 바쁘게 진행될 때는 사업회 편찬원들이 주어진 업무를 해 나가기조차 버거워 차분하게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업회는 남북 언어 문제에 관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20년 가까운 시기 동안 남북의 언어를 놓고 고민한 집단은 달리 없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관련 사업도 펼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 또한 사전 편찬을 위한 경험을 축적하는 좋은 기회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급하게 사전 원고 작성, 교열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금은 편찬원들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남북의 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는 경험을 쌓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경험은 다시 남북의 협의가 진행될 때 사전 원고의 깊이를 더하는 데 보탬이 될 것입니다. 남측편찬위원회에서도 사업회에서 진행하고 있거나 새로 추진하려는 사업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편찬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민이 관심을 갖고 기다리는 좋은 사전으로 보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조남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