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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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주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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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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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1,139
할 일을 미루는 단어
글 주영훈 겨레말큰사전 선임편찬원
얼마 전 ‘서로 할 일을 미루는 단어’라는 제목의 인터넷 게시물을 보았다. 그 게시물에는 아래와 같은 그림이 있었다.

↑ 위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음란하다’, ‘음탕하다’의 뜻풀이이다.
‘음란하다’는 ‘음탕하다’로, ‘음탕하다’는 ‘음란하다’로 뜻풀이한 것을 단어가 서로의 일을 미루는 것에 빗댄 것이다.
사전에서 올림말을 뜻풀이할 때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위와 같이 단어의 의미를 다른 단어로 돌려 정의하는 돌림 풀이이다. 실체가 분명한 명사보다 움직임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동사나 형용사를 뜻풀이할 때 돌림 풀이를 하기 쉽다. 하지만 돌림 풀이가 동사나 형용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명사에서도 돌림 풀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는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의 경우이다.
《표준국어대사전(웹)》 |
관계(關係) 「명사」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 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관련(關聯/關連) 「명사」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 가 서로 관계를 맺어 매여 있음. 또는 그 관계. |
‘관계’는 ‘관련’으로 풀이하고 ‘관련’은 ‘관계’로 풀이하는 돌림 풀이이다. 두 쌍의 올림말만 돌림 풀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셋 이상의 올림말이 풀이를 돌리는 경우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웹)》 |
액수(額數) 「명사」 돈의 머릿수. 머릿-수(머릿數) 「명사」 돈머리 따위의 수. 돈-머리 「명사」 얼마라고 이름을 붙인 돈의 액수. |
‘액수’를 풀이하며 ‘머릿수’를, ‘머릿수’를 풀이하며 ‘돈머리’를, ‘돈머리’를 풀이하며 ‘액수’를 쓰는 돌림 풀이이다. 실체가 분명한 명사의 경우에도 돌림 풀이를 보일 때가 있는데 아래의 예는 고유어와 한자어 관계에 있는 올림말 사이의 돌림 풀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웹)》 |
도구(道具) 「명사」 일을 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연장 「명사」 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
‘도구’를 ‘연장’으로, ‘연장’을 ‘도구’로 풀이하고 있다. 돌림 풀이는 이렇게 다양한 품사와 원어를 가진 올림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순환적 풀이 방식을 피하여 새롭게 올림말의 뜻풀이를 수정해 보았다.
음탕하다(淫蕩--) [형] 색정에 빠져 방탕하다. 음란하다(淫亂--) [형] 색정에 빠져 추잡하고 난잡하다. |
관계(關係) [명] 둘 이상의 대상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얽혀있는 것, 또는 그 사이. 관련(關連, 關聯) [명] 서로 관계를 맺어 이어져 있는 것, 또는 그 관계. |
액수(額數) [명] 돈이 얼마인지 수량으로 나타낸 수. 머릿수(--數) [명] 돈의 액수. 돈머리 [명] 돈의 분량을 나타내는 수의 크기. |
도구(道具) [명] 어떤 일을 할 때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 연장 [명] 물건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는 등의 일을 하는 데 쓰는 도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
사전 올림말을 집필하거나 교열하다 보면 말의 뜻을 말로만 풀어내는 어려움이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위에서 예로 들은 올림말의 풀이도 아마 그러한 어려움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돌림 풀이는 사전 이용자가 올림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사전의 필요성에 의문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전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올림말이 다른 올림말에 의존해 단어가 가진 개성을 잃게 하지 않고 각각의 올림말이 지닌 고유한 말맛을 살릴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각각의 올림말이 지닌 고유한 말맛을 살릴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