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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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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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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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616
옥천 지방의 무뚝뚝한 말속에 깃든
순한 마음들
글 송진권 시인
너 줄라고 가쟁이째 꺾어온 겨
겨울바람이 문풍지를 흔든다. 쇠죽 끓이고 군불 넣은 방은 새벽이면 차갑게 식어 냉골이 된다. 콩나물시루의 물도 얼어붙는 방이다. 서로 이불을 뺏으려고 잡아당기다 하나가 이불을 둘둘 말고 자면 나머지는 몸을 둥글게 말고 떨며 잠을 설친다. 조용하던 정지1)에서 와르릉 가마솥 뚜껑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뚝뚝 나뭇가지 꺾어 넣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쇠죽을 끓이려고 아궁이에 불을 넣는 것이다. 차갑던 바닥이 뭉근하게 따스해지고 매캐한 냇내2)가 올라온다. 방안에 훈기가 돈다. 아버지는 등겨며 콩깍지를 넣은 쇠죽을 끓여 외양간으로 가져간다.
“야덜아, 싸기 일나서 낯 훑으려 씻구 밥먹으라니께. 해가 똥구녕까지 떴는디 저렇게 게을배기3)니 워디다쓴댜.” 하는 엄마의 지청구가 들리고 “내비둬 줌, 야덜두 방학인디 이런 때 자야지. 때되믄 알아서 일 난다니께 그랴.” 하며 아버지는 지게 지고 집을 나서며 그렇게 우리 역성을 든다.
엄마도 우릴 깨우는 걸 포기하고 “정제 밥 차려놨으니께 먹을라믄 먹구 말라믄 말어.” 하며 마실을 나가는 것이다. 따스한 훈기에 우리 형제들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썰매를 타러 나간다. 동네 가운데 있는 논에서 한참을 썰매를 타고 있으면 작은 산 하나가 움직이듯 나무를 지게에 진 아버지들이 집집마다 마을로 들어선다. 털썩 마당 가운데 나뭇짐 부리는 소리가 들리고 우린 아버지랑 같이 고구마나 감자 삶은 것으로 점심을 먹는다. 지고추4)가 둥둥 뜬 동치미 국물을 훌훌 마시고 아버지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낮잠을 한숨 잔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다시 지게를 지고 다른 아저씨들과 산으로 간다. 해거름에 산에서 내려오는 아버지 지게엔 꾸덕꾸덕 마른 고욤이 가쟁이째5) 묶여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다.
“아나, 겸6) 꺾어왔다. 느덜 먹으라구 가쟁이째 꺾어 왔다니께.” 하며 고욤이 많이 달린 가지를 꽃다발처럼 내밀면 우린 너구리 새끼들처럼 몰려가서 툭툭 씨를 뱉어가며 고욤을 먹었다.
“너무 많이 먹으믄 똥구녕 메인다니께, 뒀다 낼 먹으라니께 그랴.” 가쟁이째라는 말은 그런 말이다. “너 줄라고 가쟁이째 꺾어온 거여.”라는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는 말은 충청도 하고도 옥천에서도 더 들어간 못골에 살던 우리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말이다. 표준말로는 가지째가 맞는 말일 거 같지만, 가쟁이째라고 해야 나는 머릿속에 열매가 가득 달린 채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혼곤한 꿈속으로
보리똥 달린 나뭇가지를 들고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지요
너 줄라고 식전에 가서 가쟁이째 꺾어온 거여
두었다가 혼자만 먹어
니가 며칠 앓느라구 밥두 못 먹구 있대서
새벽 댓바람에 꺾어온 거라니께
가쟁이째 꺾어왔다는 거요
제 것은 하나도 안 남기고
송두리째 모두 내줄 것 같은 그 말의 가지마다
하나 둘 새콤한 보리똥이 다닥다닥 맺혀
흔들리는 거 같지요
열매가 제일 많이 달린 가지나
기중 실하고 빛깔 고운 데를 뚝 분질러서
제 속의 가장 고갱이 같은 마음을
가쟁이째 꺾어다 건네준 그이처럼
나는 내 마음 가쟁이째 뚝 분질러 누구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모르는 첫새벽에 일어나
꺾어다 줄 수나 있을까요
- 「가쟁이째」 전문7)
홍역인가 더위를 먹었던가 해서 며칠을 학교도 못 가고 쇠풀 뜯기러도 못 가고 집에서 앓고 있을 때였다. 말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종환이 형은 나보다 두 살 손위던 이웃에 살던 형이었는데 같이 쇠풀 뜯기러도 다니고 올뱅이8)잡으러도 다니고 멱 감으러도 다녔다. 사람이 순해서 두 살 더 많대도 동무처럼 구순하니 나랑 잘 놀아주었고 같이 쇠꼴을 베다가도 내 것이 적으면 자기 것을 내 것에 덜어주기도 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씩 먹였다. 소는 송아지를 낳으면 내어 팔거나 논밭 가는 데도 상일꾼으로 썼기 때문에 집안의 큰 재산이었다. 쇠꼴을 베거나 쇠풀 먹이는 일들은 어린아이들 몫이었다. 나는 종환이 형과 늘 함께 산으로 들로 소를 먹이러 다니곤 했다. 내가 아파서 한 달여를 학교도 못 가고 앓고 있을 때다. 밖엘 못 나가서 나는 좀이 쑤셨고 종환이 형도 혼자 다니려니 많이 심심했었나 보다. 겨우 몸이 좀 괜찮아져서 종환이 형을 따라 같이 쇠풀 뜯기러 갔다. 산으로 소들을 고삐를 목에 감거나 뿔에 감아서 올려놓고 우리는 냇가에서 물고기 를 잡거나 멱을 감거나 했는데 종환이 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부르기도 했을 텐데 한참 만에 그가 산에서 내려왔다. 머리에 거미줄이며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는 얼굴에 한 손에 빠알갛게 맺힌 보리똥을 가지째 꺾어 들고 내려와 내게 빨갛게 익은 열매를 내밀었다. 보리똥은 한참을 능선을 타고 가서 골짜기로 내려가야 있던, 그나마도 웬만하면 눈에 띄질 않아서 허탕일 때가 많던 귀한 것이었다. 그 빨갛고 새콤하던 보리똥 열매의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이야 지천이라 울타리나 조경수로 심는 보리똥나무는 개량종이라 열매가 많이 달리고 큼직큼직하지만 쉽게 물크러지고 터진다. 종환이 형이 꺾어온 야생에서 자라던 작지만 알차던 맛과는 비교가 안 된다. 위의 시에도 썼지만 가쟁이째 꺾어왔다는 말은 내게 빨갛게 매달린 보리똥이나 망개 열매와 순박하던 아버지와 이웃에 살던 형과 어릴 적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온다. 새콤하고 떫은맛이 나던, 눈밭에 파묻혀 빨갛던 망개 열매를 생각나게도 하고 아버지 지게에 꽂혀 흔들리던 고욤도 생각나게 한다.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뚝 꺾어서 내밀 만한 사람이 드물어진 지 오래다. 나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제 잇속 챙길 생각부터 머릿속으로 셈하고 있지 않은가. 그 그리운 사람들을 다 어디에다 두고 우린 이렇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너 줄라고 가쟁이째 꺾어온 겨.” 하는 그 말이 무척이나 듣고 싶다.
들꽤 찌구 칠거지루 묶구 와서 죽은 디끼 둔넜었네
들기름 한 병 받아 차에 싣고 나오는 길
고소한 내 진동하는 차 안엔
우중에 노박이로 비 맞으며
엎드려 들깨를 낸 느 어머이의 소금땀과
더위에 말라 죽지 않게 물 퍼나르던 느 아부지의
거친 숨소리와
들깨 순 꺾는 관절염으로 돌아간 손가락과
들깨꽃 쏟아진 밭고랑에 엎드려 풀 잡던 호미질과
들꽤 찌구 칠거지루 묶구 와서
죽은 디끼 둔넜었네 하는 혼잣소리와
들깻잎에 앉았던 방아깨비의 따다다닥 날아가는
소리들과
- 「백미러」 부분 7)
들깨는 참 강인한 식물이다. 봄 가뭄이 길어 씨갑시 부칠 때10)를 놓치면 어디고 할 것 없이 들깨를 심는다. 아무렇게나 부어놓은 들깨가 싹이 터 소복하게 자라면 뽑아다가 푸석푸석 흙먼지가 이는 밭에 심는다. 들깨는 햇볕이 쨍쨍 퍼부어 배배 말라 돌아가다가도11) 비만 오면 이내 되살아난다. 물론 너무 가물면 물이라도 퍼다가 줘야 하지만 어디에서고 잘 살고 잘 자란다. 비가 오는 중이면 비닐을 몸에 둘둘 감고 나가거나 우비를 입고 나가 노박이로12) 비를 맞으면서 들깨를 심는다. 척박한 땅에서도 들깨는 잘 자라고 씨앗을 맺는다. 뿐만 아니라 들깨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이파리는 따서 장아찌를 담거나 나물을 무쳐 먹고 씨앗은 기름을 짜거나 가루를 내어 먹는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많이 먹었다. 참깨는 들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니 참깨는 모두 내다 돈사고13) 집집마다 들기름을 요긴하게 썼다.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따 먹고 열매는 열매대로 먹고 나면 들깻대는 뿌리째 뽑아다 불쏘시개로 쓴다. 기름기가 많은 들깻대는 불이 잘 붙어서 불쏘시개로 그만이다. 팔밭다랑이 일구고 돌아오던 어머님의 몸에서 나던 들깻내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반찬거리 마땅찮을 때 마당 여기저기 돋은 돌들깨 이파리를 따다 쪄서 양념해 낸다. 물 말아서 밥 먹을 때 한 잎씩 척척 걸쳐 먹던 그 맛과 냄새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파리끼리 붙어서 떼어먹기 어려우니 손으로 하나씩 떼어 숟가락에 얹어 주던 풀물 든 손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들깨는 웃자라면 안 되니 기다란 회초리로 휘휘 둘러 순을 치거나 낫으로 아무렇게나 툭툭 꺾어도 야물게 열매가 맺힌다. 가을이면 허리에 보자기 묶어 누렇게 떡잎 지는 깻잎을 따다 명주실 묶어 누름돌로 지질러 박던 어머니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일에 지친 어머니가 불러도 못 듣고 위 시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들꽤 찌구 칠거지 떠다 묶구 와서 죽은 디끼 둔넜었네”, 하는 말은 순화하면 “들깨 베어 칡넝쿨 걷어다 묶고 와서 물 말아서 밥 먹고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었네”, 하는 말이다. 좀 더 쉽게 풀면 가을볕은 뜨겁게 쏟아지는데 주면 먹기나 할 줄이나 아는 것들이 한 번 내려와서 일 좀 거들라고 해도 코도 들씬도 않으니 앓느니 죽는다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전동 휠체어에 올라타고 무릎걸음으로 간신히 기어가서 꼬투리 버는 들깨 베어놓고 털기 좋게 밭 가에 칡넝쿨 걷어다가 묶어놓으니 힘들어서 대충 밥 한술 뜨고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한숨 잤다는 말이다. 일은 여기저기 밟히는데 혼자 하려니 줄지도 않고 아들딸들은 뭐하러 이런 걸 자꾸 심느냐고 병원비가 더 나온다고 말리지만 그래도 살았을 적 몸 움직일 때 노나 주는 재미로 심는다는 말이다. 기름기 다 빠져나간 몸에 더 뭐 내줄 게 있다고 더 못 해줘서 안달하는 우리 부모 세대의 애끓는 사랑이 소주병에 누런 들기름으로 담겨 찰랑이는 것이다.
1) ‘부엌’의 충청도 말.
2) 연기 냄새.
3) ‘게으름뱅이’의 충청도 말.
4) ‘삭힌 고추’의 충청도 말.
5) ‘가지째’의 충청도 말.
6) ‘고욤’의 옥천 말.
7) 송진권, 시집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2019) 수록 작품.
8) ‘다슬기’의 충청도 말.
9) 앞의 책 수록 작품.
10)‘씨앗을 심을 때’라는 뜻의 충청도 말.
11) ‘어린 모종이 말라서 몸이 배배 꼬일 정도’라는 충청도 말.
12) ‘줄곧 계속하여서’를 뜻하는 말.
13) ‘팔다’의 충청도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