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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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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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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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67
‘토착어의 지속가능한 발전’,
지구 문명사의 성숙한 미래에
지속적으로 동참하는
글 고명철 문학평론가
“살암시믄 살아진다”의 언어 철학과 토착어의 지속가능한 발전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업을 얻어 가정을 꾸려 생활한 햇수가 고향에서의 삶보다 길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되뇌곤 하던 말, 서울 살이에서 표준어를 애써 일상화하기 위한 언어생활에 신경을 쓰다가도 힘들거나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마치 주술에 걸린 양 퍼뜩 떠오르는 말이 있다.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제주어가 그것인데, 이 말에 근접한 표준어로는 “살고 있으면 살게 된다”는 표현을 들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토착어가 그렇듯이, 이것을 표준어로 번역한 순간 토착어 본래의 생명의 기운이 증발된 채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간주하는 의미 전달로서만 기능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살암시믄 살아진다”의 표준어 표현 “살고 있으면 살게 된다”는 것은 토착어 표현이 지닌 사회 문화적 맥락의 의미를 갖기는커녕 밋밋한 사전적 의미를 지닐 뿐이다.
하지만 누가 이런 표현을 어떨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어에 익숙한 언중에게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말은 저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복판에서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때문에 주저앉고 싶은 경우가 있겠지만 그 난경을 잘 헤쳐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와 용기를 북돋우는 말로 다가온다. 제주의 척박한 자연 환경과 지정학적 조건 아래 험난한 삶을 살아온 제주인들의 언어 철학이 배어들어 있는 셈이다. 이렇듯이 토착어로서 제주어는 표준어가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삶과 언어의 생명력을 보증한다.
그런데 이런 토착어가 점차 소멸해 가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7,000여 개의 언어들이 언어 생태계를 이루는데, 지구화 시대의 가속화와 함께 첨단 미디어의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는가 하면, 국민국가의 공식어와 표준어 사용이 팽배해지면서 토착어의 존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토착어의 보존과 보급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관련 전문 기관, 전문가의 노력의 중요성과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업회가 유네스코와 협력 아래 2020년부터 ‘토착어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국제학술포럼을 매해 진행하고 있는 것은 그 모범적 사례 중 하나다. 유네스코가 2019년 ‘세계 토착어의 해’를 선포한 이후 2022년부터 2032년까지 ‘세계 토착어 10년’을 선언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토착어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은 토착어가 지닌 사회 문화적 맥락을 중시함으로써 지구화의 미명 아래 점차 평면화 및 획일화의 삶을 살아가는 데 대한 문화 성찰적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토착어로 문학하기’의 성과
이런 측면에서 사업회가 주관하고 있는 ‘토착어의 지속가능한 발전’ 국제학술포럼이 언어학뿐만 아니라 문학을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언어학에 대한 논의를 통해 토착어가 지닌 언어학으로서 학술적 면모와 그 보존과 보급 및 제도 전반에 대한 생산적 검토를 하는 것은 토착어가 지구의 다양한 문화의 생명력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문학적 차원에서 ‘토착어로 문학하기’를 통해 토착어가 문학적 표현으로서 어떤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토착어의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 그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토착어는 앞서 나의 사소한 제주어 활용에서 소개했듯이 표준어로 번역됐을 때 의사소통을 위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그 토착어 본래 사회 문화적 맥락을 염두에 둔 언중의 최적화된 언어 표현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살펴보기 위해 토착어의 문학적 표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토착어의 소멸 위기에 직면하여 토착어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토착어로 문학 하기’를 적극화하고, 이를 위해 문학 안팎에서 노력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2021년 제2회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부터 ‘토착어로 문학하기’로 아카이빙한 주제 발표와 작가의 작품 낭독 동영상들이 언어학과 문학의 성취는 물론 문화인류학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토착어로 문학하기’가 비중 있게 다룬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3개 대륙의 토착어들이 어떤 사회문화 다양성을 갖고 그것들이 지닌 미학으로서 문학적 풍요로움을 이루고 있는지를 아카이빙함으로써 그동안 전횡해 온 서구의 문학이 지닌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구체성을 살펴 본 것은 큰 소득이다. 가령, 아프리카의 토착어(스와힐리어, 기쿠유어, 요루바어), 아시아의 토착어(수누와르어, 오키나와어),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의 토착어(마야딴어, 마야 카치켈어, 케추아어) 등으로 창작된 시와 소설을 해당 토착어 사용자가 낭독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포럼 현장에서 참석자들과 공유한바 지구상에서 얼마나 다양한 토착어들이 각기 사회 문화적 맥락을 지닌 채 그 지역 및 대륙의 문학(문화)적 표현으로서 해당 지역의 소중한 문학적 성취를 축적시키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서구 미학의 영향권 속에서 제국의 언어들(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을 중심으로 한 문학이 세계 문학의 정전이란 제도 아래 그 외의 언어들로 창작되는 문학을 변방의 문학으로 인식한 채 그리하여 이들 제국의 문학이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해 온 것을 상기해 볼 때, 사업회의 ‘토착어로 문학하기’와 같은 예의 아카이빙은 그동안 관성화된 제국 중심의 문학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공부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소중한 성과임을 강조하고 싶다.
‘구연적 상상력’이 지닌 문학적 상상력의 경이로움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것은 ‘토착어로 문학하기’에 참석한 문학인들이 보내준 동영상에서 낭독자들은 그들의 토착어를 구술로 낭독하는 것 외에 그 표현에 걸맞은 연행(演行)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해당 지역민과 문인은 그들의 토착어로 쓴 작품을 낭독하되, 낭독의 형식을 취할 뿐이지 노래와 춤을 자연스레 결합한 구술 연행의 문학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토착어의 문학적 표현은 근대 문학의 문자성 중심의 표현이 주로 묵독에 비중을 둔 데 비해 낭독의 효과를 최대한 살린 구술성과 연행성이 결합한 구연적(口演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학의 진실의 힘을 재현한다. 고백하건대, 토착어로서 문학은 묵독과 다른 낭독이 지닌 문학적 상상력의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그동안 서구 미학 중심의 근대문학이 벼려온 묵독, 이것이 금과옥조였던 문자성 중심의 문학에 맹목이었던 내 자신을 죽비로 내리치곤 하였다.
그렇다. 문학 연구자로서 그리고 문학 비평가로서 그토록 경계해 온 것이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인데, 문학 교육과 제도권 속에서 문자성 중심주의 문학의 매트릭스에 갇혀있던 나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을 가열하게 수행하도록 한 계기가 ‘토착어로 문학하기’의 프로그램이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십여 년 전 아프리카의 시인 코피 아니도호는 한국의 어느 국제 문학 교류 현장에서 다소 두텁지만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은 그만의 매혹적인 저음의 음색으로 아프리카 토착어로 쓴 구술시를 낭독하였다. 그의 구술시 낭독 현장에서, 분명, 나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아프리카 토착어의 시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흉내 내는 아프리카의 북소리와 원주민의 발장단과 반복되는 시구의 표현을 보고 듣는 내내 근처에서 북소리가 이명(耳鳴)처럼 들리고 그에 맞춰 누군가가 발장단을 하며 반복적 구음을 내는 미적 체험을 경험하였다. 그 순간, 문자성 중심의 번역에 익숙해 있던 내게 번역의 도움 없이 그것을 초월하여 그의 아프리카 토착어 구술시는 전율을 자아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지닌 보편적 감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프리카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그 토착어의 사회 문화적 맥락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구연적 상상력(구술성+연행성)은 문학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추후 아프리카 문학 전문가로부터 들었는데 그 시적 전언은 서구 중심의 단수의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토착어의 문학적 힘을 아프리카의 시인은 구술시로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사업회는 ‘토착어의 지속가능한 발전’ 국제학술포럼에서 문명사적 차원의 담대한 기획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국제학술포럼이 지구 문명사의 성숙한 미래를 모색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동참하길 기대한다.![]()

고명철
문학평론가.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등이 있다.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