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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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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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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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393
우리 겨레의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보여줄
《전자 겨레말큰사전》 개통을 준비하며
글 최준호 겨레말큰사전 편찬부장
지금까지 사전을 만들어 온 과정
필자가 사업회에 입사한 2008년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초기였다. 그 당시는 남과 북이 공동회의를 통해 사전에 등재할 올림말을 선정하고, 사전의 내용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 사전의 구조를 정하고, 시험 집필을 통해 결정한 것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시기였다. 그때 처음 맡은 일은 남과 북이 사전 원고를 집필할 때 사용할 《겨레말큰사전》 전용 집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 시험 원고를 작성할 당시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해서 원고를 작성했고, 이를 교환할 때마다 상당한 불편함이 있었다. 전용 집필 프로그램이 이런 원고 교환의 불편함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전 출판 마지막 단계에서의 편집이 쉬워지리라고 기대하였다. 이런 이유로 사전 원고를 쉽게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으로 우리가 만들게 될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여기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남과 북은 시험 집필을 마치고 본격적인 집필과 원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남과 북은 서로 작성한 초고를 검토하여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의 원고를 만들어 가는 일을 계속했다. 검토 단계의 원고와 합의 원고는 남측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여 관리를 계속했지만, 안타깝게도 북에서는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원고를 집필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원고 파일을 각자 작성한 뒤 교환해서 상대측의 원고를 서로 검토하고, 공동회의를 마치면 결과물을 모아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측에서는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연결하여 원고를 집필하고 수정하는 <말망>이라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사전 편찬에 사용하였다.

《전자 겨레말큰사전》 개통 계획 수립
사전 편찬 작업은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아 가다 서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공동회의가 열리지 않을 때마다 원고조차도 주고받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남측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였다. 공동회의가 다시 열리면 그동안 합의하지 못했던 원고들을 빠르게 검토하기 위해 초고 상태의 원고들은 꾸준하게 가다듬어 왔고, 검토 단계의 원고들은 뜻풀이와 예문 등이 어색하지 않은지 공들여 확인하고 수정하였다.
그 중간 성과물로서 10권 분량의 북측 협의용 《겨레말큰사전》 가제본을 제작하였다. 결과물을 살펴보니, 최종 완성 단계는 아니더라도 웹을 통해 《겨레말큰사전》을 미리 보고 싶어 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28년을 목표로 《전자 겨레말큰사전》을 개통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비록 남과 북이 《겨레말큰사전》을 함께 완성한다는 계획은 변경되었지만, 조만간 《전자 겨레말큰사전》을 통해 사용자들을 만날 꿈을 꾸며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되었다.
남과 북이 함께 만든 사전
지금부터 앞으로 사용하게 될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지금까지 남과 북이 함께 작업해 온 중간 결과물을 바탕으로 제작하고 있다. 사전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방대한 작업물이다. 만일 원고를 작성한 사람마다 서로 차이를 보인다면 좋은 사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종합집필요강』이라는 사전의 설계도를 만들고 이에 맞게 원고를 작성하고 교열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설계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작업 현장에서 수시로 의견 교환을 하지 않으면 설계도를 바탕으로 사전을 완성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남과 북은 공동회의를 통해 직접 만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협의해 왔고, 그 성과물로 전체 30만여 개의 올림말 원고 중 12만 5천여 개의 합의 원고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아직 합의하지 않은 원고들이 많이 있지만, 합의한 원고들은 남북 교차 검토를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한 원고들이다.
풍부한 용례와 다채로운 지역어
종이 사전 출판과 달리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지면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가 지금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전 역시 그렇기 때문에, 큰 특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삽화, 용례, 지역어 등에서 우리 사전만의 많은 장점을 보여줄 수 있다.
먼저 삽화의 경우 사진, 일러스트, 세밀화 중에서 해당 어휘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을 선택하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세밀화 제작에 남북, 해외동포 작가들이 모두 참여해서 사용자의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남북이 함께 만든 사전이라는 의미도 부각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풍부한 용례를 제공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전은 문학 작품이나 신문, 잡지 등에서 실제로 사용된 문장을 용례로 인용하고 있다. 사전을 만들 때는 해당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검색할 수 있도록 대량의 텍스트를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놓고 수시로 검색하여 사전 편찬에 이용하는데, 이것을 ‘말뭉치’ 또는 ‘코퍼스’ 라고 한다. 《전자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해 남에서 출판된 자료뿐만 아니라, 북이나 연변에서 출판된 자료 역시 대규모로 말뭉치에 입력하여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사전을 통해 실제 북녘 동포들의 말을 앞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한 용례를 볼 수 있다.
‘지역어’ 역시 《전자 겨레말큰사전》의 특징으로 뽑을 수 있다.
주로 남에 한정된 지역어 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국어사전과는 달리,
《전자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북을 비롯하여 중국 등 해외의 지역어들도 수록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보여 준다.
‘지역어’ 역시 《전자 겨레말큰사전》의 특징으로 뽑을 수 있다. 주로 남에 한정된 지역어 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국어사전과는 달리, 《전자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북을 비롯하여 중국 등 해외의 지역어들도 수록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지역어 올림말과 지역어 정보를 독자들에게 다채롭게 제공하기 위해 지금도 최종 점검에 힘쓰고 있다.
남과 북의 언어 현실을 반영한 사전
사전을 만들면서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 같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어떤 단어를 보면서는 ‘요즘에도 이런 말을 쓰나?’ 할 때도 있고, 어떤 단어를 보고는 ‘이 단어에 이런 의미도 있나?’ 할 때도 있다. 남과 북이 갈라진 70여 년 동안 서로 다르게 변화해 가는 말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서로에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운행표’라는 말은 처음에는 남과 북이 함께 쓰다가 이제 북에서는 ‘다님표’라는 말로 다듬어서 사용하고 있다. 남과 북의 사전 편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뜻풀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북녘 사람들의 언어 현실을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공동회의 재개를 바라며
《전자 겨레말큰사전》은 사실 지금 예로 든 것보다 더 많은 특징으로 지면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사전을 함께 만들고 있는 사업회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종이로 출판할 것을 고려하여 작성한 원고들이 웹사전을 통하여 사용자에게 공개되었을 때 어색한 점은 없을지, 혹시라도 30만여 개의 올림말 원고 중 잘못된 원고는 없을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수정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을 완료하면 《전자 겨레말큰사전》 검색 사이트를 구축하여 테스트하고 최종적으로 공개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전자 겨레말큰사전》 작업 이외에도 언젠가 공동회의가 재개되어 그동안 합의하지 못한 원고들을 다시 작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비록 연락은 닿지 않지만, 북측 편찬위원 선생님들도 《겨레말큰사전》의 완성을 위해 함께 모여 예전처럼 작업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시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한 땀 한 땀 사전 편찬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쌓아가는 일을 계속해 나간다.
최준호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국어 정보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부터 2003년까지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에서 《연세한국어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2008년 사업회에 입사해 현재 편찬1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