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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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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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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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675
박석눈
글 김도연 소설가

어린 시절 내 고향 대관령의 겨울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빼놓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쪽 땅에서 겨울이 가장 긴 고장이기 때문이다.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태백산맥의 고지대에 자리한 마을이기에 빠르면 시월에 시작된 눈이 다음 해 오월까지 날릴 때도 많았다. 대관령은 예부터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6번 국도가 통과하는 곳이다. 인근에 오대산국립공원, 용평스키장, 그리고 여러 목장들이 대관령의 북쪽 황병산 자락에 포진해 있다. 양떼목장과 눈 덮인 선자령도 빠트릴 수 없다. 그 사이사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름 한 철 고랭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름 한 철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엄살을 덧붙여 설명하자면 일 년 중 반이 겨울이기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만큼 겨울이 일찍 찾아오고 늦게까지 머무르기에 다른 어느 지역보다 눈에 대해 각별한 곳이 바로 대관령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함박눈
눈은 나만 기다린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기다렸다. 아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기다렸을 것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매운바람만 씽씽 달음질치는 것보다 거기에 눈발이 섞여 있는 게 그나마 덜 추웠다. 눈은 늦가을의 삭막한 풍경을 일시에 지워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 눈보라만 있는 게 아니라 날씨에 따라 눈의 종류도 다양했다. 밀가루나 쌀가루, 설탕처럼 내리는 가랑눈이나 싸락눈, 분필이나 누에처럼 쏟아지는 소나기눈, 물기가 많은 초봄의 찰눈이나 떡눈, 해와 달이 떠 있는데도 내리는 여우눈, 모두가 잠든 밤에 내리는 밤눈이나 도둑눈, 눈과 비가 섞여 있는 진눈깨비……. 물론 이 모든 눈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눈은 함박눈이다. 어른들은 그 눈을 ‘박석눈’이라고도 불렀다.
눈은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지만 어느 시간에, 얼마만큼, 내린 뒤 어떤 상태로 있는가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며칠 동안 쏟아져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은 길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였다가 뒤에 내린 눈들과 달라붙어 거의 얼음처럼 변해 버린 묵은눈과 쇠눈. 길눈은 넉가래로 치우는 게 그나마 쉬웠지만 마당 가장자리에 어른 키보다 높이 쌓여 있는 눈더미는 거의 얼어 있어 쇠로 된 삽을 이용해 담장 너머로 던지거나 리어카에 담아 버려야만 했다. 어느 겨울엔 눈 더미 속으로 굴을 뚫고 들어가 방을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입구는 가마니로 문을 달고 바닥엔 멍석을 깔아 화로와 앉은뱅이책상까지 들여놓고 방학 숙제를 하였으니 대관령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물론 에스키모처럼 밤에 그곳에서 잠을 자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일이었다.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아버지는 지난겨울에 사용 했던 발구를 수리하거나 새 발구를 만들어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발구는 일종의 커다란 눈썰매다. 나무가 주 연료인 산골에서는 겨울에 일 년 치 땔나무를 모두 하는 게 관례였다. 여기서 발구는 대단히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눈만 적당히 쌓여 있다면 지게나 리어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운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산비탈에서 나무를 한 뒤 골짜기로 끌고 내려와 발구 위에 가득 싣고 사람이 앞에서 끌어야만 하는데 미끄러운 눈길이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땔감을 운송할 수가 있다. 아버지는 그렇게 겨우내 나무를 해서 울타리 옆에다 나뭇단을 세웠다. 서풍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울타리보다 높은 나뭇단들이 집으로 몰아치는 바람까지 막아주어 가족들은 따스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눈포래’ 치는 저녁
하여튼 눈은 계속 내렸다. 내리 사흘을 퍼붓기도 했고 한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내리기도 했다. 낮에도 내리고 밤에도 내렸다. 엄마를 따라 십오 리 떨어진 외갓집으로 걸어가는 장광1)에도 서쪽에서 눈포래(눈보라)가 몰아쳐 뒤로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진 적도 많았다. 돌아오는 길은 그나마 눈을 등에 지고 걷는 터라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어느 겨울엔 이웃 마을의 한 사내가 깊은 밤 술에 취해 걷다가 눈에 홀려 그만 명을 달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눈에 홀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길을 계속 맴돈다고 하는데 혹 밤길을 걷다가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눈을 부릅뜨곤 했었다.
산에서 나무를 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바짓가랑이에는 눈과 얼음이 구슬처럼 매달려 있어 엄마는 바지와 장화를 부뚜막에 올려놓고 말렸다. 그러면 벅2)에는 바지와 장화가 말라가며 피어나는 쿰쿰한 냄새가, 열어 놓은 가마솥에서 피어나는 김처럼 번져갔다. 부뚜막 가장 따뜻한 곳에선 이미 내 운동화며 양말도 말라가고 있었다. 눈포래가 방향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초저녁 벅의 버강지3) 앞에 앉아 불을 쬐며 바라보는 마당은 성탄절의 카드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풍경이었다. 외양간에선 소가 구유의 여물을 먹느라 콧김을 무럭무럭 피워냈고 대문도 없는, 대문 너머로 보이는, 전기가 들어오는 건넛마을의 집들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눈송이 너머에서 아른거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우리 집 벅의 바람벽에 걸려 있는 남포등 심지에서 타오르는 불꽃, 끄름4)이 가득 묻어 있는 대들보의 창호지, 갈구친다5)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며 반찬을 만드는 엄마, 가슴에 한 아름 장작을 안고 들어오는 아버지, 이 모든 풍경들을 어느 순간 모두 지워버리며 퍼붓는 박석 눈,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미처 헤아릴 수도 없는……. 그제야 나는 하품을 두어 번 토해낸 뒤 배고파 죽겠다고 빨리 밥 먹자고 엄마에게 소리친 뒤 방으로 들어갔다. 형과 큰누나는 대처로 떠났고 작은 누나는 어디로 놀러갔는지 돌아오지 않는, 눈보라 치는 저녁이었다.
박석눈 내리는 밤
결국 화가 난 아버지는 오밤중에 작은누나를 찾아 떠났고 엄마는 등잔불 옆에 앉아 밥상 위에 깔아놓은 콩을 고르던 그 밤, 나는 윗방의 솜이불 속에 엎드려 박석눈이어도 좋고 함박눈이어도 상관없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소리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바람에 날려 온 눈송이는 마치 말벌처럼 문풍지를 툭, 톡, 퉁, 틱, 통, 통……. 북을 치듯 두드리거나 뜯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눈송이의 음악이 피어나는 공명통 속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영영 다시 듣지 못할 음악이라는 걸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잠들었다. 잠이 들면서 나는 누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리란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박석눈 내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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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갈땅’의 강원도 방언.
2) ‘부엌’의 강원도 방언.
3) ‘아궁이’의 강원도 방언.
4) ‘그을음’의 강원도 방언.
5) ‘걸리적거리다’의 강원도 방언.
김도연
소설가. 199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2000년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1년 무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빵틀을 찾아서』,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 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산문집 『강원도 마음사전』, 『패엽경』, 『눈 이야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