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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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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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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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433
인공지능(AI) 시대,
통일교육에 대한 단상
글 정진헌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바야흐로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일상 깊숙이 파고든 시대다. ‘AI 시대 통일교육’이란 주제는 인간성(humanity)과 인간다움(humanness)에 대한 고민을 끌어낸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교육지원법」에 명시된 ‘통일교육’이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 공동체 의식 및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를 기르도록 하기 위한 교육”을 말하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하나의 교보재 정도로 여긴다면 기존의 동영상이나 현장 체험처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여 통일교육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태도를 기르도록 하면 되겠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AI 시대의 통일교육이라면 답이 간단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무엇을 의미하고, AI 시대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통일교육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기술 AI
AI는 컴퓨터와 기계들이 인간의 지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을 통칭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가장 유사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현재까지의 기술을 집대성한 산물인 셈이다. 인류사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이룩한 눈부신 발전은 극히 최근에 가속화된 현상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은 불과 18세기 후반의 일이며, 19세기 후반, 전기를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 구조로 2차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20세기 중반에 비로소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산업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을 일구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를 바탕으로 클라우스 슈밥 (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디지털, 바이오와 물리학 사이의 모든 경계를 허무는 융합 기술 혁명”이라 정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융합됨으로써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상이 질적인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은 기존과 차원이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특징으로 ‘초연결성’, ‘초지능화’, ‘융합화’를 꼽는다. 현대의 개인들은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고 보다 지능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기술이 AI이다. 이 AI는 크게 약인공지능(Weak AI)인 제한인공지능(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ANI)과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및 초인공지능(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ASI)을 포함한 강인공지능(Strong AI)으로 나뉜다. 이중 우리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는 차량의 자율주행기능, 각종 가전제품의 AI 기능 등이 약인공지능 영역에 속한다. 인간만큼의 수준을 의미하는 일반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강인공지능은 아직은 이론에 머물고 있지만, 자연어 생성 프로그램인 챗지피티(ChatGPT)로 인해 도래가 빨라질 거라 예상한다.

인간다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일각에서는 가속화되는 AI 기술을 우려한다. 데이터 양이 풍부해질수록 인공지능의 성능과 신뢰는 증가하고 그만큼 사용 빈도가 늘면서 사람이 하던 많은 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다. 어떠한 과학기술도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 기술에 따른 사회 전반의 변화는 곧 새로운 인간다움의 추구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여길 수 있다.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던 것을 기계 덕분에 10시간만 일해도 되는 생활 패턴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생산은 기계가 맡고 인간은 분배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펼치면 된다. 그리고 남은 30시간을 어떻게 가장 인간다운 활동들로 채울 수 있을지, 즉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삶의 콘텐츠를 즐겁게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AI 시대는 그래서 인간다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유도하고 있다. 근대 과학의 발달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지나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시대를 열었다. 인간과 비인간적 피조물 간의 관계가 보다 평등해졌으며, 개발을 위한 파괴 대신 생태 친화적 공존의 가치를 키웠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한때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하고자 했고 신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급기야 신의 피조물들이 지닌 특성과 능력을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모사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실현시켰다. 새보다 높고 빠른 비행기, 중력을 거스른 우주선, 바람보다 빠른 정보통신 등 헤아릴 수 없는 발전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복의 결과는 오염과 온난화를 불러왔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그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적 패러다임이다. 그렇다면, AI의 등장과 함께 더욱 강조되는 휴머니즘은 어떤 휴머니즘일까? 인간다움의 해체가 아니라, 이제 닮음의 오지였던 인간 스스로에 대한 분석이 발전하여,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AI 시대는 그래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시대라 불리기도 한다.
분단이라는 물리적 한계와 AI
AI 시대는 인간의 생활 공간 확장과도 연계되어 있다. 여기서 다시 인류사의 거대한 족적을 떠올려 보자.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명명한 ‘축의 시대 (Axial Age)’인 기원전 800~300년경, 현존하는 거대 종교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유라시아에 등장했다. 시간과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과 함께, 연민과 동정, 용서와 사랑, 예절과 품위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가 전해졌다. 현재적 공간만이 아닌 저승이며 천국, 지옥 등의 또 다른 공간 세계에 대한 인식도 체계화되었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을 사유하고 실천해 왔다.
한반도의 사람들도 그런 초월적 존재들과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았다. 지난 70여 년의 분단은 지극히 예외적으로 남북한 사람들 모두를 섬에 가두었다. 밤이 더욱 어두운 북쪽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나 사이버상에서나 매우 제한적인 이동성을 겪고 있다. 반면 남쪽은 근대국가들 사이에서도 유례 없는 경제 성장,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케이 컬처(K-culture)로 대표되는 문화적 성장까지 더해 글로벌화를 체험 중인 한편으로 육지를 통해 경계를 넘나들 수 없다는 근본적인 제약을 안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독일의 통일 세대들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취업할 때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 쉽게 가서 일할 수 있다는 초국적 가능성을 당연시하는 ‘통일 독일’의 청년 세대와 수도권 중심 지역에서 초경쟁(hyper-competition) 배틀(battle)을 벌여야 하는 ‘분단 한국’의 청년 세대 간에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 보는 힘의 차이가 난다.
분단이라는 물리적 한계 속에 도래한 한반도의 AI 시대는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으라 제안하고 있다. 챗지피티만 보더라도 이제는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대화의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좋은 질문을 만들고, 돌아오는 답의 오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소통의 능력과 인문학적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것은 일방향적이고 획일적인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유형의 교육 방식을 도태시킬 것이다.
AI 시대, 분단 세계관을 초월하는 통일교육
이제 통일교육은,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통해 학생들에게 개별적인 학습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세련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AI 장비들이 심층학습(deep learning)을 할 수 있도록 양질의 데이터가 입력되고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관점을 접하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다문화적 감수성과 포용적 민족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도록 해야 한다. 안보적 관점에서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통일의 관점에서는 협력의 대상이라고 하는 북한에 대한 균형적 인식을 나누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실상에 대한 양질의 객관적 정보들을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전통적, 비전통 안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집중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AI 기술은 통일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증진할 수 있으리라 본다. AI 시대는 이렇듯 통일 세대들이 분단 세계관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인간관과 인간관계, 민족의식과 소속감들을 만들어 가는 전환점이다. 우리 통일 세대들은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유로운 개인과 그런 개인들이 공감하는 협력의 공동체성을, 통일 한반도를 넘어 세계적 규모로 상상하고 구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미래세대의 새로운 휴머니즘과 통일에 대한 열망은 완성형이기보다 지속적인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미학 속에 꽃피게 될 것이다. 
정진헌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인류학 박사. 독일 막스플랑크 종교와민족다양성연구원 전임연구원과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사회통합연구분과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과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 객원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North Korean Migrants’ Evangelical Encounters』(2015 Palgrave Macmillan), 『통합 그 후를 생각하다』(공저, 2021), 『베를린에서 만난 서울과 평양』(2021) 등이 있다.
